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0
처음으로 단우현의 표정과 모습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남궁소혜는 그것을 보고 더욱 큰 확신을 가졌다.
주먹을 꾹 쥔 채 어떠한 말이라도 해 달라는 시선을 보내지만, 침묵이 깊게 내리깔리고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긴 세월처럼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침묵이, 고작해야 찰나에 지나지 않다는 불현듯 것을 깨달았다.
멍하니 단우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소혜가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것과 동시에 침묵이 깨졌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아하하…… 그, 그냥 재미 삼아 해 본 말이에요.”
장난이었다는 식으로 웃어넘겼다.
남궁소혜는 방금 전 침묵을 통해 단우현이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단우현은 더 이상 자신이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이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무언의 합의를 본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지었다.
“남주련의 무공은…… 아주 우연히 알게 되어 머릿속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완벽하다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거라도 괜찮아요. 가르쳐 주세요.”
흐음- 하며 단우현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고민은 깊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남궁소혜의 요청을 따라 주었다.
“어렵지 않지. 내일 아침부터 지난번 그 공터로 오너라.”
“알겠어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소혜는 등을 돌렸다.
거칠게 뛰는 마음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
단우현의 얼굴을 이렇게 직시를 한 것도, 그의 비밀을 대놓고 이야기한 것도, 그녀로선 상당히 용기를 냈던 일이니까.
“하아.”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고 주먹을 꽉 쥐었다.
궁금증은 확연히 해소되지 않았으나, 목적은 이루었다.
아직 더……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다.
남궁소혜가 웃음을 지으며 거처로 달려갔다.
“눈치를 챘다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어찌 안 것일까?”
사라져 가는 남궁소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단우현은 고민에 빠졌다. 딱히 무신이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은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말한다 해도 믿을 수 없을 테니까. 천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아무리 단우현이라도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선술(仙術)에 통달하고 영혼마저 옮길 수 있다던 혈마조차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모를 거라 안심하고 있었건만.
조금 전, 남궁소혜의 눈빛은 확신에 가까웠다.
“이것도 네 짓이더냐?”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한 곳을 바라봤다.
거대한 장원 너머로 보이는 높은 절벽.
그 위에 세 사람의 무덤이 있었다.
단우현은 눈앞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모습의 여인은 단우현을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틀림없는 것 같았다.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넌 항상 장난이 심했지.”
그는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오늘따라 그의 발걸음이 무척 경쾌해 보였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홀로 품어 온 고민을 털어놓은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 * *
“음, 일련의 일들은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이런 식으로 나왔을 줄이야.”
이틀 후.
이제는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회복한 제갈운은 단우현과 남궁천, 사도학이 모인 자리에서 호남상단과 있었던 일을 들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도 있었고, 모르는 것도 있었다.
나름 정보 수집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상대가 함정을 파 놓고 기다렸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쪽에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자가 있다는 소리였다.
제갈운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이쪽이 본 손해는 제법 큽니다.”
금환상단의 가장 중요한 품목인 술과 비단을 도둑맞았다.
제일 먼저 놈들의 잡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면 제법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터였다.
찾을 수 없다면 말이다.
제갈운은 단우현을 바라봤다.
“금환상단은 어쩌고 있습니까?”
“글쎄?”
단우현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방문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권무진이 성큼성큼 다가와 짧게 목례했다.
“현재 낭인 수십 명을 고용했으며 상단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환상단이 모든 것을 잃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단가에도 호연지의 술과 단소미가 가끔 재미 삼아 만들어 놓은 술이 남아 있었고, 그 덕분에 당장 장사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도둑맞은 후, 사람을 내보내거나 했던 적은 있습니까?”
“없는 것으로 압니다.”
제갈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환상단은 장사에서도 상당히 오래된 상단이었다.
규모가 작은 만큼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도 최소 십 년 이상을 일해 온 믿음직스러운 자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었다.
“물건의 양이 많으니 아무리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해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무엇 하나 남지 않았다는 것은…….”
“내부에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는 거지.”
단우현 또한 염두에 둔 의심이었다.
그러나 금은학은 그런 것을 배제했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직원들이니,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단우현은 그에 대한 아무런 말없이 내버려 두었다.
한 번 실수를 저지른 이는 변화하지 않는 이상 또 실수하는 법.
그렇기에 지금의 금은학은 어떤 식으로든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본인이 깨닫고 잡아내기 전까지 몇 번이고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물론, 그렇게 거듭된 실수로 진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너무 늦는다.
그때가 되면 단우현은 이미 금은학을 버렸을 테니까.
우둔한 자는 필요 없었다.
그런 쪽으로는 누구보다 칼 같은 단우현이다.
“물건은 아직 무사할 겁니다. 호남상단이라 해도 그렇게 대량의 장물을 넘기기에는 이 호남성이 너무 깨끗하니까 말입니다.”
제갈운이 씩 웃음을 지으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이 호남 땅에서 범죄자들의 뿌리가 뽑힌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 덕분이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특히 악양 인근에 도적 한 명보이지 않는 것은, 홍원창을 내세운 단우현의 영향이었을 테니까.
“훔친 물건들은 틀림없이 뱃길을 이용해 가져갔을 겁니다.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려면 배를 타는 것이 가장 편한 법이지요.”
“그럴 테지.”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남궁천이 옳거니 하며 무릎을 탁 쳤다.
내부에 흔적을 남지 않았다는 것은 도움을 준 이가 있다는 것이고, 밖에도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내부의 조력자가 되돌아와 그것을 지웠기 때문이리라.
또한 마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뱃길을 이용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찾을 수 없을 테고, 동정호 인근에는 숨을 곳이 무수히 많으니 물건을 숨기기에도 적합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사도학이 귀찮다는 듯 귀를 후벼 파며 물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든 말든, 뱃길을 이용하든 말든 그런 것이 지금 무슨 소용인가?
단우현은 물건을 찾는 것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물건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거다.
그저 이런 일을 벌여 심기를 거스른 호남상단이 문제인 것이다.
물건을 찾는 데 시간을 버리는 것은 상책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보물찾기라도 할 생각은 아닐 테지?”
사도학의 못마땅한 시선에 제갈운은 숨을 죽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마교의 교주.
무림맹 총사라 해도 그 격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자였다.
곁에 있는 검황조차 제갈운의 목숨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
제갈운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한 번입니다.”
“뭘?”
사도학이 다소 고까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계속 의뭉스럽게 반만 말하는 저 혀를 잘라 버릴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자극했다.
그 날카로운 시선이 향하자 제갈운이 흠칫 몸을 떨었다.
“단 한 번으로 호남상단은 물론이고 그놈들과 연을 맺고 있는 대부분의 싹을 잘라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호오.”
작게 탄성을 터트린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이다.
그는 귀찮은 것은 싫어했다.
일을 벌여도 단번에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만큼, 제갈운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말이라 할 수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하지 않습니까?”
제갈운이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 *
야심한 밤.
한 사내가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엔 누구에게 들키는 것은 아닌가 하며 불안함이 가득하였고, 그렇기에 몇 걸음을 가다 주위를 살피는 기괴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 사내는 한참 동안 움직여 악양을 빠져나와 동정호 길을 따라서 계속해서 걸었다.
야심한 밤인지라 숲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는 물론이고, 퍼덕이는 새들의 날갯짓마저 소름이 돋게 했다.
그렇게 반 시진을 더 움직이고 나서야 그 사내는 멈춰 섰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숲.
주변에는 커다란 고목, 바위와 수풀이 가득했다.
사내가 그곳에 멈춰 서서 초조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 때마침 기이한 그림자 몇 개가 사내 앞에 멈춰 섰다.
“새로운 정보가 있다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 물론입니다요. 절대 이 자리에 대해 발설하지 않을 것이고, 아, 아무도 모르는 중요한 정보입니다요.”
사내는 덜덜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인영들은 품에서 자그마한 전낭 하나를 꺼내 던져 주었다. 툭 하고 떨어지는 그것이 상당히 묵직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내가 재빠르게 그것을 주웠다.
그러나 차마 안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어느새 검이 사내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윽……!”
“안을 확인하기 전에 우리를 부른 용건을 말해라. 쓸모없는 정보라면 목을 여기에 두고 가야 할 것이다.”
“끅…… 그…… 그것이 말입니다…… 그…… 금 상단주가…… 대상단을 꾸리려 합니다요.”
“대상단?”
“예, 있는 대로 낭인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요. 하도 은밀하게 따로 만나는 것 같아 정확히 수는 모르겠지만 오십은 넘는 것 같습니다요…….”
“……그렇군. 한데 그만한 짐들이 있나?”
“최근 단가에서 대량의 술이 다시 들었습니다……. 아,아마도 그것을 팔러 가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만…….”
“정확한 것은 아니로군……?”
인영의 반문에 사내가 기겁하며 물러섰다.
정확한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술이 대량으로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포장하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미 몇 개의 짐수레에 짐이 실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천으로 가려진 내용물은 모르겠지만, 금환상단이 주로 팔고 있는 것이 술인 만큼 수레에 든 것도 술이 틀림없었다.
“그게…… 말입죠? 이것은 귀동냥한 것인데…….”
“뭐냐?”
“이번 상행은 북경이 목적지가 아닌가 하는 말이, 쟁자수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습죠…….”
“그게 사실이냐?”
“소…… 소문입니다, 소문……. 하지만 금환상단주가 제 아들과 있을 때 오랜만에 북경 구경을 하겠다고 중얼거린 것을 들었습니다요.”
북경이라는 말에 인영들이 기겁했다.
금환상단은 호연세가의 술을 팔았다. 그 술이 다시금 대량으로 들어왔고, 북경으로 간다는 것은 술이 황실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속히 총관에게 알려야 할 정보였다.
인영들은 재빠르게 등을 돌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헤헤, 물론입죠. 이 입은 죽었다 깨어나도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요.”
사내는 실없이 웃었다.
많은 돈을 벌었다. 금환상단에서 이십 년을 넘게 일하면서도 벌지 못했던 금액을, 고작해야 한 달도 되지 않아 손에 넣었다.
이런 돈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사내는 사라져 가는 인영들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저들이 금환상단을 노리는 동안에는 아주 중요한 고객이 될 테니까.
사내가 묵직한 주머니에 만족하며 등을 돌렸다.
“힉?!”
그 순간.
눈앞에 누가 있음을 보았다.
시꺼먼 그림자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윽고 그 검은 그림자의 칠흑 같은 손이 천천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