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5
* * *
“…….”
“…….”
면사를 쓴 여인, 남궁소혜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잣거리에서 소미를 만난 뒤 저도 모르게 손에 이끌려 장원으로 왔다.
사파의 이름난 고수인 권무진이 소미를 호위하고 있는 것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단우현이 돌아왔다.
“……저.”
“흠…… 뭘 잘못 먹었나. 헛것이 다 보이는군.”
“진짜거든요.”
단우현은 고개를 돌렸다.
남궁소혜의 두 손을 잡고 있는 단소미가 보였다. 그 옆에는 다소 굳은 표정의 권무진이 우두커니 서서 경계를 하고 있다.
아무리 사파에서 제 발로 뛰쳐나왔다 하더라도, 상대가 남궁세가의 인물인 만큼 긴장을 늦추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봉황단주로 이름 높은 남궁소혜라면 응당 그럴 법도 했다.
“언니를 저잣거리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소미가 데리고 왔어요.”
‘나 잘했죠?’라는 얼굴로 싱글싱글 잘도 웃는다.
단우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참……. 잘했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멀쩡한 것만 가지고 오렴.”
“에? 언니 어디 이상해요?”
남궁소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찌릿-! 하며 날카로운 눈동자로 단우현을 쏘아보곤 앙칼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고장 난 물건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요? 저 멀쩡하거든요?”
“다행이구나. 다친 줄 알았는데 말이다. 특히 여기가.”
단우현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호남오검과의 굴욕은 자존심 강한 무인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특히, 고난 한 번 없이 승승장구하며 성장해 왔던 남궁소혜한테는 더더욱 말이다.
그녀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흐, 흥!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그렇군. 그보다 여긴 왜 있는 거지?”
단우현이 자연스럽게 툇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정면에는 남궁소혜가 서 있었고,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장삼태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쓰는 시늉을 하고 있다.
권무진은 여전히 남궁소혜를 경계하며 서 있었다.
“그걸 답하기 전에,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그래.”
“저 인간이 여긴 왜 있는 거죠?”
남궁소혜가 권무진을 쏘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지난번에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장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마독진의 수하라니!
그때 했던 고생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이제는 우리 식구다.”
“이제는? 사파의 인물을 식구로 들인 것을 보니 단 공자도 사파의 인물이었군요?”
“네가 이곳에 머물렀을 때는 정파의 인물이고, 사파 사람이 머무르면 사파의 인물이 되는 것이냐? 그럼 다음에는 마교도를 받아들여 볼까?”
피식 웃으며 내뱉은 단우현의 날카로운 지적에 남궁소혜는 입을 다물었다.
단우현이 사파의 사람이라면 마독진을 그렇게 박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파 최대 세력인 무황성에서 마독진은 제법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니까.
더군다나 지난날, 이 장원에 머물렀을 무렵에도 단우현은 정사마라는 무림의 구분으로 판단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런 세상의 잣대보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자였다.
“그럼 네가 답할 차례로군.”
“좋아요, 무림맹에서 아편 밀매상을 추격하는 도중에 그 발원지가 호남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뒤쫓아 내려왔죠.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중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계시나요?”
단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가 아편 밀매상을 찾기 시작한 이유는 장삼태의 누명을 벗겨 주기 위함이었다.
아편이 어떻고, 호남이 어떻고 같은 문제로 나선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 점점 상황이 커져 가는 느낌이었다.
단우현이 힐끗 장삼태를 바라봤다.
그가 맹렬히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작은 마을 한 곳은 아편으로 사람들이 모두 미쳤어요. 큰 마을들도 예외 없이 중독 증상을 보이는 자들이 있었죠. 더 웃긴 것은 중독된 이들 중에 젊은 여인들은 대부분 얼마 뒤에 행방불명되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호남으로 내려왔다?”
“네, 꼬리를 밟다 보니 이곳까지 왔네요.”
남궁소혜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아편에 대한 문제는 황실에서 해결해야 할 국가적인 문제였다.
다만, 이번에 무림맹이 나선 이유는 한 가지, 맹에 가입한 중소 문파들 중 몇 곳이 아편 중독으로 인해 몰락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과정이 너무 은밀했던지라 무림맹조차 최근까지 그들의 몰락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랴부랴 조사단을 보냈지만, 문파의 규수들마저 행방이 모연했고, 재산은 모두 조각조각 난 채 호남으로 흘러 들어간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호남에 있는 누군가가 벌인 짓임은 틀림없다.
“호남에 그런 간 큰 놈이 있을 수 있나? 대부분 잡아들여서…….”
“삼도회, 그들은 자신들을 그리 부른다 하더군요. 그리고 그 회주란 자는 역용술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얼굴을 바꾼다고…….”
“그거다!”
장삼태가 느닷없이 큰 소리를 질렀다.
역용술!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역용술이 뛰어난 자라면 얼굴을 바꾸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빗자루를 냅다 버리고 단우현에게 달려든 장삼태가 중얼거렸다.
“장주님! 역용술! 역용술만 있으면 제 얼굴과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었다.”
“예?”
“알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장삼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뚫어지게 단우현의 얼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왜 제겐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 마음이다.”
“……시발.”
대번에 단우현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말실수를 깨달은 장삼태가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썩을, 욕도 마음대로 못하나?’
그때, 남궁소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알고 계신가요?”
“어느 놈이 이놈의 얼굴로 아편과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더군. 인면피구인가 싶었는데 역용술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는 녀석이었군.”
단우현은 품 안에 보관해 두었던 용모파기를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남궁소혜가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이내 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장삼태를 쏘아봤다.
“당신……!”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조금 전 이야기 못 들었어? 역용술이라고, 역용술!”
“왜 굳이 당신 얼굴로 역용술을 했을까요? 이름 난 사람도 아니고 뭐 예쁜 얼굴이라고.”
“그거야말로 내가 먼저 묻고 싶은 말이야!”
남궁소혜가 여전히 의심을 품은 눈초리를 하고 검을 쥐었다.
여차하면 잡아가겠다는 기세였다.
그것을 본 권무진이 슬쩍 앞으로 나서더니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쌍도에 손을 댔다.
“이곳에서 칼을 뽑을 생각이라면 그만두시오.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
소쌍도 권무진.
그 실력만큼은 진짜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대로 붙는다면 이십여 초를 나누면 밀리기 시작할 테고, 오십여 초까지 가지도 못한 채 지고 말 것이다.
그게 지금 권무진과 남궁소혜의 실력 차이였다.
“괜한 분위기 잡는 짓은 그만해라. 소미가 있지 않으냐.”
두 사람 사이에 험악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자, 단소미는 어찌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단소미는 남궁소혜도 좋고 권무진도 좋으니까.
두 사람 다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권무진의 손을 잡은 단소미가 다른 한 손으로 남궁소혜의 손도 잡았다.
곧 힘을 주어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게 하려는 순간.
팟팟-!
살결이 닿기도 전에 기겁을 한 두 사람이 손을 뺐다.
“그럼 안 돼, 소미야.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저런 인간과 손을 잡았다간 큰일이 나.”
“에?”
“맞다, 소미야. 아무한테나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저런 자신밖에 모르는 여자는 더더욱.”
“네? 네?”
양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단소미의 고개가 좌우로 몇 번이나 돌아갔다. 화해의 악수를 시키고 싶었는데, 이 두 사람 반발이 격해도 너무 격했다.
그때, 한쪽에서 단우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이것이 그 녀석이 판 아편이다.”
“!?”
그것을 받은 남궁소혜는 화들짝 놀랐다.
구하고 싶어도 찾을 방도가 없었던 탓에 구하지 못했던 것이 아편이었다.
그런데 단우현은 도대체 어디서 이걸 손에 넣었단 말인가?
그녀는 작은 종이에 싸여 있는 아편을 이리저리 살폈다. 냄새를 맡아 보더니 무언가 이상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평범한 아편이 아닌데요?”
“특별히 제조한 물건처럼 보이더군. 일반적인 아편보다 중독성이 몇 배는 더 강해.”
남궁소혜가 고개를 돌렸다. 아편의 향기조차 맡기 싫은 것인지 재빠르게 접어 단우현에게 돌려주었다.
“어떻게 이런 걸?”
“다 방법이 있지.”
“……그럼 놈을 잡을 방법도 있나요?”
“전부는 아니지만 꼬리 정도는.”
남궁소혜가 새삼 놀란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무림맹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순식간에 척척 진행해 버리는 이 인간.
도대체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 저리 말하는 것을 보니 방도가 있는 것 같았다.
남궁소혜가 살포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뭔데요?”
“잡고 싶으냐?”
“네, 물론이죠.”
“그럼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지.”
“예?”
씩 웃고 있는 단우현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필요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인간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게 뭔가.
그녀가 아미를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빠지는 찰나.
“흑도회 회주의 목에 걸렸던 현상금을 가져와라.”
“그…… 그건…….”
금 이백 냥, 적지 않은 금액인 데다 이미 그 상황을 무마해 버린 지 오래였다.
제갈총사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하고 그 돈을 받아 온단 말인가.
심지어 무림맹과 악양은 적지 않은 거리였다.
오가는 시간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싫으면 말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드릴게요. 하지만 저도 조건이 있어요.”
“조건?”
남궁소혜는 짧게 호흡을 골랐다.
사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도 굉장히 창피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붉어진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 이번 일을 해결한 뒤 모든 공은 저희 무림맹에서 가져가겠어요.”
“마음대로.”
“예?”
“네 마음대로 하라고.”
너무나 시원스레 수락하는 단우현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 수면 위로 확실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잡는다면 어마어마한 명성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는 너무 쉽게 포기했다.
단우현이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주저 없이 말을 꺼냈다.
“흑도회 때문에 무림맹의 입지가 안 좋게 변했겠지. 일개 현령보다 못한 단체라고. 그렇기에 이번 일을 해결함으로써 만회하려는 것 아니냐?”
“마, 맞는데요…….”
귀신 같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사람 마음을 저리 들여다본 듯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상대하기 껄끄러운 제갈 총사조차 이러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저 인간이 더욱 거북했다.
그때,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삼태야.”
“예?”
“홍원창을 불러오너라.”
“예! 알겠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