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37
“그러니까 이게 뭐라고?”
무림맹 총사 제갈운.
남궁천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있었을 당시에도 무림맹을 이끌었던 최고의 두뇌, 그게 바로 제갈운이다. 한때 무림맹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는, 다시금 맹에서 총사를 맡으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떨어져 나간 팔대세가의 인물들이 천도회를 세우면서 맹의 위치가 위태로워졌으나, 그가 다시 돌아오면서 어느덧 다시금 자리를 잡았으니 단순히 제갈운의 역할이 크다는 말로 그의 공적을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가 집무실에 삐딱하게 앉아, 한 장의 용모파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소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눈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마성자…… 천지교 사천황 중 한 명…… 이라네요.”
제갈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놀라는 아비의 표정이 재미가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입가에 맺힌 미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천지교의 사천황…… 마성자 추작한…… 이라고……?”
제갈운이 힐끗 제갈연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엄청난 정보를 얻었다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반짝 눈을 빛냈다.
용모파기를 알아내었으니 그놈을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천지교 사냥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놈이 호북으로 이동했으니 지금 당장, 용모파기를 내걸고 무림공적으로 수배를 한다면 잡는 건 식은 죽 먹기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총사! 지금까지 말만 많았지 실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사천황 아닙니까? 그런 놈 중 하나가 드러났으니 천지교를 소탕하는 건 시간문제란 말입니다!”
“천도회보다 놈들을 먼저 소탕한다면……!”
곳곳에서 사람들이 기대 어린 눈빛을 반짝 빛냈다. 음지에 숨어 암약하는 최악의 단체 천지교. 점조직이나 다름없는 놈들을 소탕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천도회보다 먼저 놈을 붙잡아 천지교를 소탕할 수만 있다면 무림맹의 이름을 다시금 반석에 올려놓는 것 또한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나 제갈운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가만히 용모파기를 쳐다보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 천지교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는가?”
“본 맹과 지부를 다 통틀어 칠 할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건 왜……?”
그 정도로 많은 인력을 투입했던가?
그럼에도 근 칠팔 년이 넘게 놈들을 붙잡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천지교의 능력이 생각 이상으로 뛰어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운은 힐끗 집무실에 가득 쌓여 있는 서류들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천지교의 뒤를 쫓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후우- 전서를 띄워 다 그만하라 하게.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서, 본래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전하고…….”
“예?!”
“아…… 아니, 총사! 천지교를 붙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지금 놈들을 쫓는 걸 그만두겠다는 소리십니까?”
“쫓는 걸…… 그만둔다기보다는…… 이제는 필요가 없으니 말이네.”
제갈운은 가만히 용모파기를 바라봤다.
정확히 그려지지는 않았으나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다. 마치 호남 어딘가에 사는 종놈이 떠올랐고, 그가 이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곧, 그분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좆됐구나, 천지교주는…….’
제갈운은 한 번 본 적도 없는 천지교주를 떠올리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냥 얌전히 무림맹에 토벌되었으며 몇 죽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좋든 싫든, 단우현과 그 집안사람들이 엮이는 순간…….
“그냥 다 조진 거야…….”
“예?!”
“그냥 그런 줄 알고 시키는 대로 하게. 아…… 혹여나 천지교에 대해 파고들 생각은 하지 말고 말이네. 이제는 없는 놈들이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일들 보게나. 알겠는가?”
제갈운은 콧노래를 부르며 천지교의 관련된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 버렸다. 책상 가득했던 그것이 끝으로 밀려 나가며 이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뒤죽박죽 섞여 버렸으나, 제갈운은 이제 쓰레기라 생각을 하는 것인지 주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 오늘은 기분이 좋군. 연아야, 저녁이나 한 끼 할까? 아주 비싼 곳에서 술 한 잔 마시면서 말이야.”
“좋죠. 아버지가 사 주는 거죠?”
“물론이지. 하하하-!”
제갈운은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쭉 기지개를 켜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근심 걱정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랄까?
그만큼 기분이 좋아 보였다.
* * *
“조용하구나.”
마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던 단우현은 쥐 죽은 듯 고요한 주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른 아침이라는 점도 있지만 대로가 아닌 소로이기에 사람들이 잘 이용을 하지 않는다.
하여, 조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무언가 지루한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단순히 주변이 조용해서 뱉은 말은 아닌 듯 보였다.
“허허, 마치 무슨 일이 있었으면 하는 듯한 말투로구만 그래.”
“저놈 마음 이해하지! 근래 산적하고 도적 몇 놈 빼고는 사람 구경도 못했잖아!”
사도학이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칼을 들고 뭐 좀 내놓으라 소리를 치는 놈들이 전부다. 그러다 단소미와 남궁소혜를 보면 헤벌쭉한 표정으로, 데려가려 애를 쓴다.
그런 사람 같지 않은 놈들만 상대하고 있다 보니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아! 하지만 곧 의창이잖아요. 전 벌써부터 엄청 기대가 되는걸요?”
슬쩍 다가온 단소미가 단우현의 곁에 붙어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이미 다음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인지 눈빛과 표정에는 한껏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래, 재미있겠구나.”
“아! 그러고 보니 떠나기 전에 진랑에게 들었는데, 홍 아저씨께서 호북에 있다고 하던데요?”
단소미가 말을 뱉는 순간, 단우현의 미간이 들썩였다.
남궁소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렸고, 남궁천과 사도학은 시선을 돌리며 듣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다들…… 왜 그러세요?”
“아니, 그놈만 만나면 꼭…… 귀찮은 일이 벌어지잖아. 안 그러냐 늙은이?”
“허…… 허허,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으네…….”
두 노인이 좀처럼 인상을 펴지 못했다.
홍원창은 정사품이 되었으나 여전히 악양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황제가 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해결하고 다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단우현에게 너무 큰 의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 풀리지 않는다면 전서를 보낸다.
만약 그것에 답이 없으면 직접 찾아와 울고 불며 난리를 쳐 댄다. 덕분에 사도학이나 남궁천이 나서게 되고, 일을 해결하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된다.
단우현의 입장에선 큰돈을 만질 수 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홍원창의 뒤처리를 해 줘야 하는 두 노인은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놈은 사기꾼이야, 사기꾼.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놈 말이다.”
“허허허, 오랜만에 자네와 생각이 같네 그려.”
그 모습에 단소미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곤란해 보이는 홍원창의 얼굴과 그것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홍진랑의 표정, 그리고 사악하게 일그러진 두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반대로, 단우현은 그럴 때마다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던 거로 기억한다. 아마도 사도학과 남궁천이 나서서 홍원창의 일을 해결해 주면 언제나 큰돈을 싸 들고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번만큼은 그 망할 놈과 마주치고 싶지 않구나.”
“같은 호북이라 해도 넓은 곳이다. 쉬이 만날 일이 있을까 모르겠군.”
“그래,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지…….”
사도학이 힐끗 단우현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이하게도 입가에 묘한 미소를 걸고 있었다. 조금 전, 지루해 보이던 표정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보다 아직 멀었나?”
“이제 곧이에요. 저기 보이는 곳이 의창이니…… 조금만 더 가면 되겠네요.”
“그렇군.”
단우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궁소혜가 힐끗 주변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살짝 웃음을 머금고 있었던 표정이 삽시간에 사라졌는데, 마치 무언가를 눈치챈 이의 얼굴이다.
“저기…….”
“안다. 신경 쓰지 마라.”
“그야, 뭐…… 당연히 알겠죠.”
남궁소혜는 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마차 안에 있는 자들의 실력을 말이다.
자신 따위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
“그럼 의창 근처에 세울까요? 저는 어차피 못 들어가지 않습니까요?”
그때 장삼태가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곳에도 칼 든 무인들이 많을 것인데 가 봐야 괜한 싸움밖에 더 나겠는가?
“아니, 함께 간다.”
“예?!”
갑작스레 들려오는 말에 장삼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삼태와 함께 들어간다는 것은 곧, 스스로 일을 벌이자는 것과 다름없다.
귀찮은 일에는 엮이려 하지 않는 그였기에 지금 이 결정은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뭘 그리 놀라는 거냐?”
“아니…… 제가 함께 가면…… 민폐 아닙니까요? 저 무슨 천지교 사천황이라고 용모파기까지 뿌려졌는데?”
“그래서 네놈이 진짜 그놈인 것이냐?”
“아니! 아니죠! 제가 뭘 했다고요! 저는 언제나 깔끔한 사람입니다. 다들 알잖아요?! 그렇죠?”
장삼태가 두리번거리며 다른 이들을 쳐다봤다. 그러나 남궁소혜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남궁천이나 사도학은 시선을 돌려 버렸다.
“맞아요! 장 아저씨는 아무 잘못이 없는걸요. 얼마나 착한데요!”
“으하하! 역시 날 생각해 주는 건 소미밖에 없구나!”
“어떤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제가 막아 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만 믿으세요!”
단소미가 두 팔을 걷어붙이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것만으로도 감동한 듯 장삼태가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무도 없이 홀로, 다 삭아 빠진 백골과 함께 노숙을 하는 게 얼마나 쓸쓸한 일인 줄 아는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을 거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허락한 거예요?”
그때 남궁소혜가 힐끗 단우현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렇게 허락을 할 것이었다면 지난번, 그 마을에서도 굳이 노숙을 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이대로 방해를 받으며 계속 유람을 할 생각인가?”
“……아-”
작은 탄성을 내지르는 남궁소혜를 보며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내 그의 시선이 주변으로 향했는데, 어렴풋이 검은 그림자 몇 개가 무서운 속도로 뒤를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한순간, 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꼬인 실을 더 꼬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이리도 계속해서 길을 막아서려 한다면 그 뿌리까지 잡아 뽑아 불태워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