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82
동굴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형운각의 직속 수하들이다. 천지교 장로의 직속이다 보니 하나같이 뛰어나지 않은 이들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교에서 지내는 데다, 이렇다 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탓에 풀어지는 경향이 제법 많다.
“으아아- 지겨워 죽겠네.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야. 그냥 후딱 죽이고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나참, 신녀를 죽이다니……. 천벌받는 거 아닌지 몰라?”
“푸하하! 저걸 신녀로 인정하는 놈들이야 저년 미색에 빠진 바보들밖에 없지. 다들 알지 않는가? 그 웃기지도 않은 백호 사건 말일세.”
지겨운 표정으로 모여 있는 이들은 따분함을 이겨 내기 위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천지교를 양분하는 절대권력인 신녀를 입에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들은 금지란을 신녀라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그 빼어난 미색 덕에 교주에게 뽑혀 세워진 인형이란 인식이 있다.
만약 그것에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면 칼부림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장로의 직속, 결국 교주의 파벌이다 보니 신녀를 좋게 보는 자가 없었다.
“그래도 미색 하나는 끝내주지 않은가? 그냥 죽이기 좀 아까울 정도로, 흐흐…….”
몇몇 사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게슴츠레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죽여야 하는 거, 맡겨 주었으면 좋은 경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흐믓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수풀이 들썩였다.
“누구냐!?”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모습과는 다르게, 한껏 날이 선 표정의 사내들이 칼을 쥐었다. 여차하면 언제든 뽑을 수 있다는 듯 살기가 넘실넘실 흘러넘쳤다.
“앗?!”
그리고 순간, 누군가가 슬쩍 모습을 드러내며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마치 보아선 안 될 것을 본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죄…… 죄송해요!”
급하게 고개를 숙인 그녀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마치, 이들을 피해 달아나는 듯한 행동에 사내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는데, 가장 뒤에 있던 한 이가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잡아! 이상한 소리라도 했다간 일이 골치 아파진다고!”
“그, 그래, 장로의 귀에라도 들어갔다간 우리까지 큰일이 난다고!”
그의 외침에 사내들이 정신을 차리며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한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절반이 넘게 달려 나갔는데, 이는 귀찮은 일이 발생하여 장로에게 받을 문책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저 계집이 산에서 길을 잃었든 혹은 뒤를 쫓아온 것이든 간에 어찌 되었든 기이한 무리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만약 재수 없게 천지교라는 사실이 들통나는 날에는, 단순히 귀찮아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망할…… 도대체 뭐 하는 계집이길래 이런 곳까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느닷없이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무…… 컥?!”
“끄악!”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의 움직임은 몹시 빠르다. 삽시간에 손을 뻗어 상대의 급소를 정확하게 노렸다. 쓰러지는 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후우…… 괜찮으려나?”
이내 쓰러진 사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남궁소혜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단소미의 뒤를 쫓아갈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동굴 안쪽을 바라봤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이 있다.
그 수가 상당하니만큼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으하하!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것들아! 이 장삼태 님이 너희를 구해 주러 왔다고!”
이윽고 들려오는 우람찬 목소리에 남궁소혜는 미간을 쥐었다. 조용해도 모자랄 판국에 소리를 치고 있으니, 이럴 거라면 작전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뭐냐?! 무슨 일이냐!”
벌써부터 안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애초에 저 큰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깜짝 놀란 장삼태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며 그제야 입을 틀어막아 보았으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하…… 멋진 계획이네요. 아주 말이죠. 당신 머리에서 나올 법해요.”
남궁소혜가 긴 한숨을 내쉬며 검을 고쳐 잡았다.
* * *
-으하하!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것들아! 이 장삼태 님이 너희를 구해 주러 왔다고!
메아리치며 들리는 목소리에 금지란은 천천히 눈을 떴다. 형운각의 고문 아닌 고문으로 인하여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그녀는,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었으나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힘겹게 자세를 잡았다.
“하아……. 태공……! 태공! 괜찮아요?”
“끄으으…… 시, 신녀님……. 저는…… 괜찮습니다.”
금지란의 목소리에 진태공이 가까스로 눈을 떴다.
눈을 뜨며 보이는 동굴 안 풍경과, 걱정스런 눈빛의 금지란의 얼굴을 바라보니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요, 용케, 살았습니다…….”
“같은 생각이에요. 그보다 밖에…… 우리를 맞이하러 온 이가 있는 것 같네요.”
“예?”
놀라는 진태공의 얼굴을 바라보며 금지란은 살포시 웃었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을 기대했겠는가?
그녀 역시도 아무런 방도조차 찾지 못한 채 형운각에게 죽임을 당하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틀림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바보가 우리를 구해 주러 온 것 같네요.”
“바…… 바보라면……?”
“네, 그 머저리 말이죠.”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태공은 누구를 말함인지 알아들은 것인지 슬쩍 웃음을 지었다. 바보이니 머저리이니 하는 욕들은, 대부분 장삼태를 지칭할 때 쓰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자가…… 어찌 저희를……?”
“저야 모르죠. 하지만…… 죽지 않고 살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장로는 강합니다.”
“예, 하지만 그들도 강하죠.”
금지란은 마치 모든 상황이 끝이 났다 생각을 하는 사람마냥, 벽에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하며 한숨을 쉬고 있자니 긴장 탓에 그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아-배고프고 목마르고……. 졸리네요.”
진태공은 그런 금지란을 바라보며 애써 웃었다.
혼절하고 있었던 탓에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나, 자신 못지않게 험한 일을 당했음을 은연중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진태공 역시 한숨을 쉬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긴장이 풀리니 다른 것보다 오줌이 마렵군요.”
“……저도요.”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금지란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 * *
남궁소혜는 눈에 보이는 이들을 향해 사정을 두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이라는 점과 상대의 수가 많다는 것, 그리고 하나같이 뛰어난 이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손에 사정을 둔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서걱-!
“컥?!”
“빠…… 빨라!”
“지, 진을 펼쳐!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고수다!”
“진은 개뿔?! 이 안에서 무슨 진이야!”
그러나.
틀림없이 뛰어난 자들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나, 경험이 많이 부족한 것인지 갑작스런 기습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심지어.
퍼걱-!
경공이 빠른 장삼태가 지휘하는 이들이 보이면 가장 먼저 다가가 목을 꺾어 버리니 지시를 내리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되면 어쩌겠는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뭉치지 못하면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퍽퍽-!
“이 자식들아! 내 후임 놈년들은 어디에 있어!”
장삼태가 바득바득 이를 갈며 주먹을 휘둘렀다. 압도적인 수를 상대로 가장 선두에 있음에도 밀리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을 반드시 데리고 가야 한다는 의지 때문인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 벗어나고 싶은가……?”
남궁소혜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을 자신의 후임으로 점찍은 그다. 그만큼 가장 밑바닥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긴, 반대 입장이었어도 똑같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호남단가에 누가 들어오든 간에 장삼태보다 낮은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남궁소혜가 스산한 기운을 느끼며 소리쳤다.
“앞에 조심해요!”
“응?”
장삼태가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남궁소혜가 달려 나갔다. 가장 빠른 경공을 펼치며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그녀가,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격렬한 마찰음과 동시에 불꽃이 터졌다.
누군가 밀려 나갔고, 남궁소혜 역시 허공에서 빙글 한 바퀴 돌며 착지했다.
“제법이로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줄까 하였는데…….”
모습을 드러낸 형운각이 눈썹을 들썩이며 이를 갈았다. 가장 앞에서 활개 치고 다니는 놈을 먼저 죽일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다른 것이 끼어들어 방해했다.
심지어 검술이 제법 날카롭다.
칼을 쥐고 있는 오른손의 떨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뭐야, 이 늙은이는?”
“보면 몰라요? 아마도 이들을 이끄는 대장? 같은 자겠죠.”
“그럼 저게 내 후배들을 납치한 장본인이란 말이냐?”
“그렇겠죠.”
“이런 개호로 새끼!”
장삼태가 바득바득 이를 갈며 형운각을 쏘아봤다.
주먹을 꾹 쥐고 있는 그의 몸에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는데, 그 광경에 형운각이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마…… 마기!? 마교의 인간이었느냐!”
“뭔 개소리야! 개뼈다귀 같은 놈이?!”
장삼태의 손에서 기이한 힘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으나 점점 확실하게 힘을 보태고 있었고, 곧 남궁소혜조차 압박을 받을 만한 힘이 응축되었다.
“그…… 그것은?!”
형운각은 그 광경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마교의 인물이 어찌 이런 곳에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보다, 지금 그의 손에 맺혀 있는 검은 기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마회천공이라니?!
현 마교의 교주조차 사용하지 못한다는 그것이 아니던가.
어찌 이런 곳에 그것을 쓰는 이가 나타난단 말인가?
“뒤져 버려, 개자식아!”
그리고 순간.
장삼태가 달려들었다.
도망을 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로 삽시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저 내달림과 동시에 모든 이들을 무시하고, 형운각 앞에 도달한 것이다.
“큭?! 어디 마음대로 될 성싶으냐!”
그러나 형운각은 고수다.
천지교에서 장로 직위를 맡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다른 경험 없는 교도들과는 다르게 그는 풍부한 경험을 지닌, 노련한 인물이다.
빠르게 다가온 장삼태의 손이 휘둘러지기도 전에 그의 가슴을 향해 검을 뻗었다. 빈틈을 노리는 검 놀림은 완벽하고, 피하거나 혹은 쳐 낼 수 있는 간격조차 아니다.
이내, 칼날이 정확하게 가슴팍에 꽂혀 들어가는 순간.
“머리통은 장식이냐, 개자식아?”
캉!
느닷없이 날아들어 온 힘에 칼날이 튕겨 나갔다.
휘둥그레 눈을 치켜든 형운각이 시선을 돌리자 남궁소혜가 돌멩이 몇 개를 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