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83
눈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남궁천은 질끈 눈을 감았다.
결코 그럴 리가 없다. 정도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절대로 해선 안 될 짓을 할 리가 없다.
남궁천은 문득 단우현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만약 그놈들이 칼을 들고 온다면?’
‘허허, 그럴 리가 없네. 아무리 못났다고 하나, 그들 또한 무림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자들일세.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리가 없다네.’
단우현은 비웃었다.
곁에 있는 권무진 또한 묘한 웃음을 지었다.
남궁천은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풍검문.
무림맹주였던 남궁천의 머릿속에는 이름조차 기억에 없는 작은 문파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림맹에 가입되어 있고 정도의 길을 걷고 있다 생각을 하였기에, 내심 그들이 선을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다.
‘만약 그자들이 온다면 이 노부가 나서겠네.’
‘한 팔과 내공도 없이 말인가?’
‘허허, 이 남궁천을 뭘로 보는 것인가?’
남궁천은 자신이 있었다.
팔 한쪽이 사라지고 내공도 없는 몸으로 그들을 이길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허튼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자신이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무림맹주였던 그다. 자신이 맹에 속한 이들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무림맹을 믿는단 말인가.
그러나 이렇게 눈앞에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쥐고 있는 검, 내뿜는 살기, 저들이 보이고 있는 눈동자……. 그것을 보고 있자니 이러한 일이 결코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남궁천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로구나.’
무림맹주, 검황.
그 어느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 있던 남궁천은 그 아래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보고를 받은 내용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정파인들은 사파와 다르다, 마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믿음만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단우현의 말이 뇌리로 파고들었다.
“사람의 본성이란 정사(正邪)가 없는 법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사파도 정도(正道)를 걷고, 정파도 사도(邪道)를 걷는 법이지.”
그 말이 사실이었다.
단우현과 권무진은 누구보다 사람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이제 죽을 나이가 되어서야 그것을 깨닫다니.’
그리고 남궁천은 알아차렸다.
지금 눈앞의 자들을 제외하고도, 아직도 많은 곳에서 무림맹이라는 허울을 쓰고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존재할 것임을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남궁천은 검을 쥐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그대들에게 군자의 도를 가르쳐 주겠네.”
“푸하하하! 늙은이! 인형극을 봤는지 아주 그 주인공인 된 것처럼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풍검문의 제자 한 명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남궁천의 저 말은 인형극의 주인공인 군자검이 악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내뱉는 대사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말이었다.
제자 하나가 칼을 쥐고서 달려들었다.
어차피 모두 죽여야 한다. 아직 후자령의 명령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고작해야 나이 먹은 외팔 늙은이가 아닌가. 저런 늙은이 하나쯤 죽이는 것이야 누워서 떡을 먹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 여겼다.
캉-!
“억?”
한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남아 있는 노인의 오른팔을 일검에 베어 내려 했던 제자의 검은 너무나도 가볍게 튕겨 나갔다.
그러고는 사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 틈도 없이 노인의 검이 사내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푹!
“커어억!”
“걱정하지 말게나. 사혈을 찌르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당분간 운신을 하는 것은 힘들 것이야.”
검을 뽑은 남궁천이 주저앉은 사내를 보며 중얼거렸다.
남궁천은 내공이 없다. 또한 주로 쓰던 왼팔마저 잘린 상황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오른팔을 사용하기 위해 지난 몇 달간 피땀을 흘리며 칼을 쥐고 휘둘렀다. 그것이 어느새 익숙해지니 어떤 검술을 펼친다 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내공은 없으나 검황은 검황이다.
경험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는 최강 존재 중 한 명.
아무리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 한들, 눈앞에 있는 풍검문 정도는 가볍게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은 남아 있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미친 늙은이가!”
우르르-
제자들이 남궁천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명이 당했으니 응당 그 복수를 위함이다.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그들에게서 살기가 넘실넘실 흘러넘쳤다. 마치 남궁천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겠다는 각오가 서린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남궁천의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과연 이자가 내공을 잃고 한쪽 팔마저 잘려 나간 이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아드는 검들을 빠르게 피하고 쳐 내며 그들의 빈틈을 노렸다.
사혈을 노리지 않는 그 노련한 검술 또한 대단했다.
서걱- 서걱-
“끄아악!”
“아아악!”
격한 신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분노한 군자검의 검을 막아설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 풍검문의 문도들은 속절없이 바닥에 누워 그 참담한 모습을 드러냈다.
“크윽…… 말도 안 되는……!”
후자령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문도들이 모조리 쓰러지는 것을 보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처음 한 수를 보았을 때만 해도 제법 한가락 하는 인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상당하다.
하지만 겁을 먹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포보다는 군자검이란 늙은이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그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후자령은 검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냅다 내달렸다. 그러고는 마침 남아 있는 제자의 몸을 꿰뚫고 있는 군자검을 향해 기습적으로 날아가 검을 휘둘렀다.
후자령의 기세를 느낌과 동시에 남궁천은 검을 휘둘렀다.
캉-!
그러나 한 발 늦어 버렸다.
또한 검이 맞닿은 순간, 검 끝에서 전해진 격한 내공이 그의 온몸을 흔들었다. 지금 이곳에 쓰러져 있는 문도들과는 격이 다른 힘이었다.
“허허, 이것 참…….”
“고작해야 문도들 몇을 벤 것 가지고 강하다 착각하느냐?”
후자령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자신의 일격이 상대에게 타격을 주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후자령은 노인에게 내공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승기를 자신이 쥐고 있다는 생각이 후자령을 더욱 웃게 만들었다.
“늙은이, 제법 실력이 있는 것 같지만 이것으로 끝이로구나!”
후자령이 웃으며 달려들었다.
남궁천의 검술은 제법 정교하고 빠르다. 하지만 내공이 없고 몸놀림 또한 느리다.
문도들에게는 통했을지 모르겠으나, 이미 절정고수에 올라와 있는 후자령에게는 소용없는 짓이다.
‘이게 바로 격의 차이라는 거지, 후후.’
후자령이 씩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파고들어 가는 검날이 섬광처럼 뻗어졌다.
촤촤촤촤악!
남궁천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검이었다. 아무리 기본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하여도, 내공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보일 수 있는 능력은 너무나도 차이가 나기 마련이었다.
온몸에서 피가 뿜어졌다. 그러나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남궁천은 신음 한 점 흘리지 않았다. 검황이라는 위치에 있었던 남궁천은, 이보다 더한 상처들도 무수히 받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주춤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허…… 허허, 이 노부도 다 늙었구나.”
“염병, 그러게 뭐하러 나서우?”
장삼태의 말에 남궁천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그의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장삼태가 주먹을 쥐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 했다.
“아니, 아니네. 노부가 할 것이야.”
“거 참, 고집 있는 영감이네. 정말로 할 수 있겠소?”
“영감이라니? 자네 그러다 또 맞는 수가 있네.”
“…….”
남궁천은 으득으득 몸을 풀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후자령을 바라봤다. ‘후우-’ 하며 짧은 한숨을 쉬고, 지친 정신을 갈무리하는 듯 고요함을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살짝 마음이 들떴다. 어느새, 검황이라는 위치에 올랐을 때부터 전혀 느끼지 못했던 두근거림이었다.
“아직…… 무인이로구나.”
남궁천이 중얼거리며 다시금 허허 웃었다.
그동안 스스로 초탈하였다 여겼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어린 시절 느꼈던 그 무공에 대한 갈망이 깃든, 혹은 상대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
스스로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올랐음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 잊었던 감정이 이제야 되살아나며,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들끓었다.
가면 사이로 드러난 그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자, 다시 오게나.”
“하하! 이 늙은이가 정말, 명을 재촉하는구나!”
캉-캉카캉-!
장원 안.
그 안에서 단우현은 느긋하게 술을 마시며 달빛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품에선 자그마한 단소미가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들려오는 칼부림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혈도가 집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괜찮겠습니까? 내공도 없는 상태에서 절정고수를 상대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권무진은 단우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궁천을 저리 내버려 두는 것은 죽음으로 모는 일이다. 모두 내공이 없는 상황이라면 남궁천의 승리일 것이다. 초식만으로 본다면 권무진조차 여전히 남궁천을 이길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공 여부의 차이는 매우 분명하다. 심지어 그 상대가 절정고수라면 결과는 더더욱 불 보듯 뻔 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아무리 검황이라 해도 이길 수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권무진은 단우현이 아직 나서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
“노력 아닙니까?”
권무진은 피땀 흘린 노력으로 지금 이 자리에 올라섰다. 그렇기에 노력 외의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듯 단호한 목소리였다.
한데 단우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권무진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다.
“본능이다.”
“본…… 능……?”
“그래, 어떤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길을 찾는다. 이길 수 있는 길, 혹은 바르게 가는 길. 그것이 바로 천부적인 무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래, 네놈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말이다.”
권무진은 주먹을 꾹 쥐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천부적인 무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니.
자신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까득 무는 그 순간.
“끄아아악!”
후자령의 괴성에 권무진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휘둥그레 치켜뜬 시선으로 담장 쪽을 바라봤다.
그는 당연히 후자령의 승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그 본능이다.”
“……!”
권무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