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055)
EP.1061 #252_사냥꾼(2)
#1055
1.
일주일이 지났다.
각본은 완벽했다.
기획해두었던 일은 각본대로 흘러갔고 시우는 시행착오를 거칠수록 익숙해졌다.
무엇에 익숙해졌는가 하면 두 가지다.
시나리오를 써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능력.
레하르 그룹 소속 4개의 팀.
총 10인의 목숨은 연꽃의 양분이 되었다.
2.
헥센나흐트를 양분하는 솔리두스 상단의 본진은 알막 클럽이다.
외관은 답답 텁텁 투박 그 자체.
수상할 정도로 SM에 진심인 포르노 회사가 매입했던 병기창을 연상케 한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알막 클럽은 이따금 경매, 파티, 연극 등 각종 엔터테이먼트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리디아의 소유 공방이다.
어딘가 유별난 구석이 있는 리디아의 취향이 듬뿍 반영되었으니 솔리두스 상단원은 그나마 실내 인테리어가 표준 규격을 따라주었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는 실정이었다.
“샹들리에 떼고 미러볼 달면 안 되나?”
“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백 년 동안 천장에 달 수 있는 가장 고급 장식품이 크리스탈이랑 금으로 만든 촛불 거치대라니 고루하지 않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리디아의 비서는 행여나 상단주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실무에 반영될까 전전긍긍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문제는 그 모습이 너무 티가 났고, 리디아는 성격이 곱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안되는 걸 알고 있기에 부하직원에게 이루어지지 못할 소망에 대해 화풀이를 자행했다.
“그럼?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나한테만 고루해 보인다는 거야?”
“아, 아뇨…. 하지만 미러볼은….”
“넌 트렌드를 따라갈 생각만 해? 주도해볼 생각은 없어? 만약 베르사유 궁전에 미러볼이 달렸으면 지금도 고급 호텔 로비엔 미러볼을 달고 있을 걸?? 안 그래?”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까칠한 상사의 욕구불만에 시달리던 비서는 조만간 업무로 복귀할 수 있었다.
연락도 없이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몹시 불편한 기색으로.
“마그누스 여사.”
“대금 지급 건은 끝난 걸로 아는데. 여긴 어쩐 일?”
리디아는 앉은키로도 머리 하나가 큰 손님을 올려 보았다.
레하르 그룹의 단장.
전쟁의 마녀 헤르야 발히리에.
여러모로 특이하다는 간단한 수사로는 설명이 어려운 마녀였다.
우선 키가 190cm다.
전신은 여성부 유도 선수 못지않은 근육질이고 옆머리를 밀어버린 모히칸 컷 탓에 뒷모습으로 봐서는 성별이 가늠되질 않는다.
어지간히 거친 남자도 모성애가 아닌 완력으로 제압할 것 같은 ‘강한 여성’이다.
“이런 시발.”
자리에 앉으려던 헤르야는 여성용으로 맞춰진 소파에 앉지 못하다가 결국 테이블 위에 걸터앉았다.
리디아는 헤르야를 볼 때마다 영체에 뭔 개지랄을 해야 이런 흉물이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성장 호르몬과 스테로이드를 치사량까지 주사하면 저렇게 변하려나?
“당신이지?”
마치 깡패처럼 앉아 험악하게 이를 드러내는 헤르야.
“밑도 끝도 없긴. 갑자기 찾아와서 뭔 소리야?”
레하르 그룹과 솔리두스 상단의 관계는 제법 찐득하다.
솔리두스 상단이 귀찮은 일을 돈만 받고 해결해주는 레하르 그룹은 훌륭한 용역이고, 레하르 그룹에게 솔리두스 상단은 번번이 쏠쏠한 일감을 물어주는 우량 거래처니까.
하지만 리디아는 헤르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원시부족장 와이프를 연상케 하는 헤르야는 거칠고, 야만적이며, 교양이 없었다.
태생부터 어느 왕국 공작가의 외동따님이었던 리디아와는 씨앗부터 다른 작자다.
물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헤르야는 항상 아니꼽게 굴며 잔머리 굴리는 리디아가 싫었다.
황금빛 머리통을 깨부숴 내용물을 확인할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그누스 여사 당신이잖아. 허, 시치미 떼는 꼴이 딱 맞네. 넌 언제나 그랬지.”
“이게 뭔 개 불알 빠는 소리를….”
리디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대뜸 공방까지 흙발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니 기가 찬다.
“헤르야 씨? 나 바쁜 여자야. 같이 뜬구름이라도 잡고 싶으면 요금 청구할게. 돈 내.”
“돈?”
-쾅!
그 순간 빗살처럼 뻗은 헤르야의 팔이 리디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꿈틀거리는 전완근과 흉악하게 돋은 핏줄은 리디아의 가느다란 목 따위는 수수깡처럼 비틀릴 것 같았다.
“놔. 뒤지기 싫으면.”
식별이 어려운 빗살 같은 속도였으나 리디아의 눈은 이미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어느샌가 나방들이 금가루를 휘날리며 날개를 퍼덕이고, 목을 감싸듯 타오른 마멸의 불길이 헤르야의 손바닥을 되레 태우고 있었다.
이를 갈며 먼저 물러선 건 헤르야였다.
분노가 치밀어 손이 앞서 나갔지만 리디아의 강함은 진짜다.
공적 중 최강을 자처해도 좋은 셋 중 하나.
클리포트의 게헨나 침공 당시 에렐림 공작과 호각을 이루었던 대마녀.
그게 리디아 마그누스다.
애써 침착함을 되찾은 헤르야.
“레하르 그룹 팀 중 5팀. 13명이 돌연 연락 두절됐어. 마그누스 여사 당신의 의뢰를 받은 이후에.”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개새끼 단속은 엄마 개가해야지. 네가 좆같이 굴어서 가출한 거 아니야?”
“계획적인 습격이야.”
헤르야는 직선적이지만 멍청하진 않다.
그랬더라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공적 세계에서 레하르 그룹의 단장 역을 수행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룹 내 팀 중에서도 연락이 자주 닿질 않는 곳을 노렸어. 전투 이후의 마력흔 따위는 남지도 않았고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누구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지.”
으레 발생하는 그룹 탈주자나 개인적 분쟁 탓에 사라진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너무 깔끔히 소멸해버렸다.
따라서 헤르야는 이 일련의 실종 사건에서 직감적으로 위화감을 발견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기에 도리어 느껴지는 인조적인 간섭의 흔적.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사냥꾼의 솜씨다.
“즉, 솔리두스 상단이 레하르 그룹을 노리고 있다. 그게 내 결론이야.”
“생사람 잡는 거야.”
“증거 있어?”
“그걸 왜 내가 대. 대려 해도 네가 대야지.”
“너만큼 레하르 그룹에 대해 잘 아는 년도 없지. 별 시답지 않은 임무에 우리 팀원을 움직이게 한 뒤 직후의 빈틈을 노린다. 공교롭지 않아?”
“어이가 없네.”
“네가 마녀를 팔아먹는다는 사실도, 마녀를 금화로 만들어 뿌리고 다니다 ‘금화의 마녀’라는 이명이 붙었다는 사실도 알지.
레하르 그룹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통째로 먹어 삼키려 들던 야심가라는 것도 알아. 더 필요한가?
더군다나 이만큼 깔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마녀는 너뿐이야. 마그누스 여사.”
“뭐 그게 사실이라 치자. 그게 어떻게 증거가 되는데?”
“나한텐 그딴 거 필요 없어!!!!”
“방금은 나더러 증거 대라며.”
리디아는 억울함을 넘어 어처구니없음을 호소했다.
하지만 헤르야는 격분하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탈리아가 사라졌어.”
“…비극의 마녀가?”
반쯤 설렁설렁 헤르야를 대하던 리디아의 낯빛이 덩달아 심각해진다.
비극의 마녀라면 헤르야의 최측근이면서도 21 위계의 강자다.
그런 강자가 공적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이 대륙 위에서 하루아침 만에 사라졌다.
헤르야의 분노와 당혹감이 능숙한 연기가 아니라면 ‘뭔가’ 일어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시치미 떼지 마. 상판을 갈아버리고 싶어지니까.”
리디아는 헤르야를 보았다.
호전적이지만 적당히 영악하고, 판세 전부를 읽진 못하지만 당면한 위기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수준.
그게 리디아가 책정한 헤르야의 가치다.
그 가치를 봐서라도 이 문답에 조금 더 어울려주기로 했다.
“억측이야. 네 말이 반쯤 진실이래도 게헨나 측 소행이겠지.”
예측 하나.
위치포인트를 습격당한 게헨나에서 앙갚음을 기획했다.
“하, 그럴 리가 있나? 고작 배신자 하나 죽은 게 다야. 우리에게도 배신자지만 그 샌님들에게도 배신자라고 알아들어?”
그렇다.
그래서 목표로 책정했다.
거기에 위치포인트는 수행하는 역할에 비해 게헨나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흐릿하다.
공적 하나 죽었다고 액션을 취하기엔 게헨나는 이제껏 무심한 방관자의 자세를 취해왔다.
만에 하나 이번 일에 심사가 뒤틀려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 했다면 지금처럼 조용히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란듯이 레하르 그룹에 괴멸적인 피해를 줬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분이 일어난 건?”
예측 둘.
레하르 그룹 자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사실 리디아가 보기엔 가장 합리적인 가정이다.
공적끼리 뒤통수치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내부자의 반란이라면 같은 팀의 소재 및 상황 역시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을 터.
“…….”
헤르야는 의표를 찔린 듯 멈칫했다가 더욱 격렬하게 가시를 세웠다.
“논점 흐리지 마.”
“논점을 흐리다니. 흐린 건 네 판단력이겠지.”
집단의 리더가 해당 집단의 소속감에 잡아먹히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자신이 이끄는 집단에 배신자가 나왔을지 모른다는 지적은 인정하기 싫겠지.
하물며 손가락질의 주인이 앙숙인 리디아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헤르야도 여기서 꼬투리를 잡아 늘어져 봤자 나오는 게 없다는 건 알기에 당장 취해야 할 조치를 우선시했다.
“도시에 우리 그룹의 자리를 마련해.”
“내가? 왜? 너희 골칫덩어리를? 굳이?”
리디아와 헤르야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계기가 이것이다.
레하르 그룹 소속 대다수 공적에겐 헥센나흐트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았고, 여기에 리디아의 입김이 작용했다.
“쌈닭인 너희를 도시에 넣었다가 뭔 난장판을 보려고.”
투쟁을 업으로 삼았다는 건 그만큼 적이 많다는 것.
섣부르게 그들을 헥센나흐트로 들였다간 절대 중립의 규율이 깨진다.
하지만 원래 공적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하면서 크는 게 아니던가?
리디아는 겉으론 이런 포장지를 내세웠지만, 속내는 달리 있었다.
배부른 사냥개에게 일을 시키는 건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레하르 그룹이 헥센나흐트 생활에 안주해버리면 앞으로 귀찮은 일은 누가 맡아주겠는가?
사냥개들이 계속 배고파해 주는 편이 리디아로선 편리한 일이었다.
“이 시발년이 진짜…!”
이후 몇 차례 설전이 오갔지만 리디아는 ‘난 모르겠고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한결같은 태도를 고수했다.
“이대로는 안 넘어가.”
“그래그래, 기대할게.”
헤르야에게 증거는 없었고 두 사람의 권력 차이는 확연하다.
리디아의 빈정거림에 격분하면서도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
파나마 운하를 거쳐 헥센나흐트의 ‘문’으로 향하던 솔리두스 상단의 물류 선단.
배수량 80,000톤짜리 파나맥스급 물류함이 원인불명의 이유로 가라앉았다.
짙고 푸르게 넘실대는 깊은 바다 저 아래로.
“이 시발년이?!”
리디아는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