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50
제 50 화
미야의 등장에 코니룸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자신과의 관계가 드러난 이후부터 이곳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미야였기에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좀 애매했다. 지금은 영업을 하는 때도 아니었고 우선적으로 오늘은 학생회에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학생회 때문에 한창 바쁠 애가 여기엔 웬일이래?
코니룸이 의아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 표정을 파악한 미야가 옅게 웃으며 건너편에 앉았다.
“학생회장님, 지금 안 바빠?”
“아니, 바빠. 엄청나게 피곤해.”
그 말은 사실이었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좀 자다 갈래?”
“괜찮아. 그보다 코니룸.”
“응?”
“손 떼.”
“…….”
환한 미소와 달리 힘 있는 목소리에 코니룸이 헐 소리를 내며 입을 턱 벌렸다.
갑자기 등장해서 뭘 하나 했더니만, 이 기지배…… 설마 그거 때문에 온 거야?
코니룸은 음료 병을 가볍게 흔들며 삐딱하게 말했다.
“싫어. 내가 꼬실 건데?”
“안 돼. 너 너무 강해.”
그 말이 무슨 뜻인 줄 잘 알고 있는 코니룸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확실히 이 쓸데없는 쟁탈전에서 제일 유리한 건 코니룸 자신이었다. 우선적으로 ‘도박장’이 가장 큰 힘이었고, 두 번째는 ‘코니룸’ 바로 그 자신 아니던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야였기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골라 코니룸을 찾아온 것이다.
미야가 어떤 의도로 왔는지를 파악한 코니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전교생이 들썩이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 녀석도 끼려 할 줄이야.
“푸하하하. 미야, 학생회도 경쟁에 끼는 거야? 한유림 쟁탈전에?”
“가장 능력 있는 학생들이 들어오는 곳이 바로 학생회야.”
라면서 스스로가 그 능력 있는 자들의 우두머리임을 강조하는 미야의 모습에 코니룸이 웃음을 멈췄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신의 사촌이었지만, 저 자신감만큼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걘 학생회 체질이 아닌데…….”
“체질이 뭐가 필요해.”
미야는 다리를 꼬며 코니룸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어찌나 도도한지 제국의 황비
저리 가라였다.
“적성이 중요한 게 아니야. 훌륭한 상관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유림이는 우리 학생회에서 끌고 갈 거야. 그러니까 코니룸.”
미야의 입가에 보기 드물 정도로 의욕적인 미소가 걸렸다.
“이번엔 네가 접어-”
* * *
유림이 도박장에서 나와 선배들을 따돌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밤 그늘이 하늘에 내려앉아 있었다. 물론 그 시간이 다 되도록 남아 있는 징글맞은 선배들이 있긴 했다. 다만 시간이 많이 늦어서인지 몇 명 되지 않는 데다 유림을 도와주기 위해 나온 디하르와 하민의 능수능란한 솜씨와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하 덕에 별 탈 없이 방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후 유림이 지친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을 땐 자정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하아…… 힘들다.”
한숨이 계속 튀어나왔다.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어째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이 기세라면 나중에 뭔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동아리 모집 기간이 입학식 후 딱 한 달이랬지? 지금이 정확히 2주일이 되었으니 이제 약 보름 정도 남았다는 소리인데…… 으아, 그럼 정말 보름 동안 이 짓을 해야 한단 거야?!’
미친, 죽어도 못해. 으으- 진짜 동아리에 가입해야 하나?
유림은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본 채 푸-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코니룸의 말대로 동아리에 가입하면 더 이상 귀찮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확실히 그가 있는 도박장이 가장 좋았다. 나름 볼꼴 못 볼꼴 다 본 코니룸도 있었고, 딱딱한 동아리보단 훨씬 나았으니까. 거기다 권력과 혜택이 빵빵하지 않던가.
으으으으으, 그치만 진짜 들고 싶지 않은데…… 정말 들고 싶지 않은데…… 귀가부 없나? 동아리가 의무제니까 귀가 부 같은 거 있지 않을까?
“으으으…….”
암담함이 담긴 비명이 괴기스럽게 흘러나왔다.
결국, 자신의 안녕과 평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림은 코니룸에게서 받은 가입 신청서를 꺼냈다.
젠장! 몰라. 일단 쓰고 보자.
그리고 입술을 짓씹으며 그곳에 서명했다. 아주 깔끔하게 말이다.
“으아아아악!! 미치겠네? 댁들 수업 안 들어요?!”
유림은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등 뒤로 킬킬킬거리며 쫓아오는 우락부락한 체격의 선배 두 사람. 몇 날 며칠을 쫓아오는지 이젠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저 둘은 더 그랬다. 무슨 동아리에서 오는 건진 모르겠지만, 손목에 노란색 팔찌를 차고 다녔는데 그 인원이 어찌나 많은지 어딜 가나 최소한 한 명은 꼭 등장한 동아리였다(더욱이 동아리 멤버들이 다 몸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후훗, 돌아가면서 쫓고 있다고!”
“우리 동아리의 단합심을 무시하지 마라!!”
“시끄러워! 이딴 일에 단합심 운운하지 마!!”
유림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세룬 교수님의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쫓아온 선배들. 이놈의 학교는 뭔 놈의 선배가
이리도 많은지 한 놈 떼어내면 또 한 놈이 달라붙고, 또 한 놈 떼어내면 또 다른 한 놈이 따라붙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력 단련 수업 신청 안 했을 것이다. 이보다 좋은 체력 단련이 어디 있겠는가.
“한유림, 거기 안 서!!”
“댁들이라면 서겠어요?!”
“서명만 하면 안 쫓을게!”
“젠장! 그게 싫어서 도망치는 거잖아! 거기다 나 이미 서명했다고!!”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순간, 두 사람이 뚝 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 덕에 졸지에 같이 서버린 유림이었다.
공터 한가운데에서 유림과 그런 그녀를 향해 얼빠진 표정을 짓는 두 사람. 그들은 좀 전 들은 말이 제법 충격이었는지 멍청한 얼굴로 본의 아니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서, 서명했다고?”
“어, 어, 어, 어, 어디?!”
“도박장이요.”
그리고 그 말에 세상의 멸망이라도 본 것처럼 두 사람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빽빽거리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코니룸의 도박장 말이냐?!”
“어째서?! 너 거기랑 싸웠잖아?!”
“그냥요.”
“…….”
“…….”
두 사람은 유림을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서로를 바라봤다.
순간, 왠지 모를 불길함이 발밑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유림의 예상이 맞는다는 듯 두 사람이 동시에 키르를 꺼내 들었다. 그들은 누가 더 빨리 말하나 내기라도 하는지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대장!”
“보스!”
헐, 이 인간들이 지금 뭔 짓이야?!
동아리장에게 연락해 씩씩거리며 떠드는 두 사람의 모습에 유림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 도박장을 향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느낌이 안 좋다.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 해.
쾅!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도박장의 문이 열렸다.
소파에 앉아 과자를 집어 먹던 코니룸은 갑작스러운 소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어떤 놈이 이렇게 문을 쾅쾅 걷어차는 거야?!
자신의 소중한 장소를 침범했단 사실에 미간을 팍 구긴 그는 ‘그 잘난 면상 한번 보자-’라는 심보로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유림이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게 보였다.
우악스럽게 열린 문, 그리고 손으로 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그녀의 오른발이 허공에 떠 있었다. 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발로 뻥뻥 차는지.
그는 뭐라 한마디 하기 위해 입을 열려 했다. 그러다 유림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고는 다물었다. 동아리 가입서였다.
순간 코니룸의 입꼬리가 씨익 하고 올라갔다. 그는 소파의 등받이에 팔을 걸친 후 유
림을 바라봤다. 어찌나 격하게 뛰었는지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자신이 앉아 있는 곳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유림아, 물 줄까?”
“하아…… 하아…… 아뇨, 괜찮아요.”
그러더니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코니룸에게 다가왔다.
“선배, 그보다 이거.”
유림은 후 하고 크게 숨을 고르더니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이제 정말 이것만 주면 끝이다. 정말로 끝나는 것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한 순간. 이제는 편히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아니, 앞으로 조용히 지낼 수 있다는 희열에 빠진 유림이었다.
“이거 빨리 승인해 줘요!! 나 진짜 이렇게는 못 살아!”
“알았어, 알았어. 자, 이리 줘.”
유림의 재촉에 코니룸이 종이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화악.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의 섬광. 곧이어 가입서의 끝부분에 불꽃이 타올랐다.
“으힉?!”
유림은 갑작스러운 불길에 저도 모르게 종이를 놓치고 말았다.
활활 타오르며 바닥으로 떨어진 종이.
타닥타닥.
얇은 백색의 종이가 유림의 앞날을 예견하듯 작은 불꽃 너울을 그리며 서글프게 타들어 갔다.
“…….”
허허허허허허허. 아버지, 이건 또 뭔 짓일까요?
유림은 헛웃음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클레이즈의 학생회장이자 유림이 잘 알고 있는 선배인 미야가 한 치의 틈도 없는 단정한 차림으로 손끝을 가볍게 매만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화상 안 입었어? 미안, 좀 급해서.”
우리 학교 학생회장님 1형이었구나……. 그것도 화(火)계. 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너무 놀라고 황당해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유림뿐만이 아니라 코니룸도 어이가 없는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유림, 반가워. 학생회장인 미야야.”
“아, 안녕하세요.”
그건 알고 있어요. 근데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히야스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뇌가 정지해 버린 유림은 자신의 잠들어 버린 뇌를 깨우기 위해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미야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에…… 그래서 무슨 일로…….”
유림이 바보처럼 멍청하게 묻자 미야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말며 말했다.
“우리 학생회의 가입을 권유하러 왔어.”
“…….”
“물론 부담 가지지 않아도 괜찮아.”
부담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고?
유림은 미야가 태워 버린 도박장 가입서를 바라봤다. 이제는 새까만 재만 남긴 채 황망하게 사라져 버린 종이의 모습이 마치 ‘내 권유를 거절하면 너도 이렇게 될 거야’라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한유림, 우선 천천히 학생회에 대해…….”
콰앙!!
미야가 유림에게 학생회 권유를 하고 있을 때, 거친 문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그 소리에 유림을 비롯한 세 사람이 시선을 돌려 도박장의 두 번째 입구를 바라봤다. 반대쪽 문이 열려 있음에도 닫혀 있는 문을 뻥 차고 들어온 무식한 인물. 짧게 친 머리와 큰 키의 체격 좋은 청년으로 넥타이에 세 개의 잎을 달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미야와 코니룸과 같은 3클래스?
유림은 두 사람과 아는 사람인가 싶어 둘을 바라봤다. 그리고 두 사람의 표정에서 그들이 저 청년과 잘 알고 있는 사이임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낭패’라는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누구지?
유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갑자기 등장한 인물을 바라봤다. 그러다 그의 팔에 끼워져 있는 노란색 팔찌를 보고 몸을 굳혔다.
저 익숙한 팔찌는…… 아까 그 노란 팔찌?
유림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청년이 유림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한유림, 교내봉사 동아리다! 가입해라!”
“…….”
뒤는 코니룸, 앞은 미야, 그리고 옆은 웬 미친놈. 하하하하…….
저 덩치와 인상으로 봉사 동아리라고 하는 것에 웃어야 할지, 아니면 저 인간이 끈질기던 노란색 팔찌의 동아리라는 사실에 웃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더는 도망칠 장소가 없단 것이다.
이젠 아버지 찾을 힘도 나지 않는다. 시댕, 이런 개 같은 팔자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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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