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96
제296화
버려진 민가에 세워진 수십 개의 막사. 하늘에는 몇 마리 까마귀가 호선을 그리며 불길하게 비행하고 있고, 막사와 막사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쩐지 꺼림칙한 기운이 감돈다.
새까만 얼굴에 파랗게 질려 핏기 없는 입술, 얼굴.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까지.
그들은 흙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서 주사위를 굴리며 도박을 하거나, 호미나 낫 같은 농기구로 바닥을 의미 없이 내리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새총을 든 몇몇은 하늘을 나는 까마귀를 향해 쇠공을 몇 발 쏘기도 했다.
그때, 새총으로 까마귀 사냥을 하는 단원들을 묵묵히 쳐다보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 있던 다른 누구보다도 더 꾀죄죄하고, 음침하며 꺼림칙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에게 단원 하나가 다가왔다.
“단장님.”
단장이라고 불린 자는 사냥당하는 까마귀들을 올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단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해.”
“육은형 용병단과 전투를 치른 분대가 있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방금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분대원은 전멸이라, 자기만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왔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분대원은 전멸이고, 자기만 살아서 돌아왔다고?”
단장은 단원의 지시 내용을 확인하려는 듯 되물었다. 단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이 생각에 잠겼다. 다른 분대원은 전멸, 혼자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생존. 그리고 본대 막사로 복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단장이 꺼림칙하게 여긴 부분은 그 점이 아니었다.
그는 분대가 전멸했다는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육은형 용병단은 로마니카교 성전사단에게 습격을 받은 이후 전력이 급감했다.
실질적인 전투원은 육은형 혼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총까지 쥐여 준 분대가, 로마니카교 성직자도 아닌 고작 육은형 용병단에게 전멸했다?
“…….”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몸에 상처가 있던가? 수색은 했고?”
단장이 물었다. 단원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몸수색은 했으나 무기는 없었습니다. 상처는 없고, 대신 몸 전체에 검붉은 반점이 듬성듬성 나 있었습니다.”
“반점. 그러나 상처는 없고.”
“아, 그리고 다리를 다쳤다면서 지팡이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오면서 나뭇가지를 아무거나 주워 온 것 같습니다.”
단원이 말했다. 단장은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데려와. 그 전에 두 분대 정도를 무장하게 해. 총이든, 농기구든, 뭐든 일단 전투 준비를 하라고 시켜.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단원은 단장의 지시를 받아, 놀고 있는 병력 몇몇을 모아서 분대를 편성하고 무장하도록 시켰다.
단장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육은형 용병단에게 총기로 무장한 분대가 전멸했다는 그 꺼림칙한 정보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어쩌다가 전멸하게 되었을까? 마땅한 무기도 없는 육은형 용병단이 도대체 어떤 전략을 구사했기에 총기로 무장한 분대를 압살할 수 있었을까?
육은형 용병단은 부두교 소속이다. 그렇다면, 정말 설마, 혹시나, 부두교의 교주가…….
“단장님?”
그때, 지시를 내렸던 단원이 돌아왔다. 단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무장한 병력들. 그리고 전투 중에 홀로 살아남았다던 그 단원이 지팡이를 들고 몸을 웅크린 채 이곳에 와 있었다.
그는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뺨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으며, 몹시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단장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몸을 움찔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뭐가 그리 두렵지?”
단장이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눈동자를 좌우로 떨면서 몹시 불안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단장은 그의 모습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약간 절름거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못 걸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은 다리. 움츠러들어서 왜소해 보이는 몸.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들고 있는 지팡이.
지팡이?
“쏴.”
단장이 지팡이를 보고 뒷걸음질 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장하고 있던 단원들은 단장의 지시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눈 채,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발포할지 말지 고민할 뿐이었다.
단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을 이었다.
“당장, 당장 이 새끼 쏴 죽여─!!”
꽈득, 꽈드드득─!
그 소리는 총성보다 먼저 들렸다.
지팡이가 찢어지고 우그러지는 소리.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의 표면에서 듬성듬성 비늘 모양이 새겨지더니, 이내 그것은 자그마한 뱀의 형상을 갖추었다.
뱀은 단숨에 몇십 번의 탈피를 거듭하며 덩치를 불렸다.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뱀이었다.
혓바닥의 굵기가 사람의 허리만 한 뱀. 쩍 벌린 아가리는 사람 수십을 집어삼켜도 만족을 못 할 것처럼 보였으며, 거대한 몸뚱이는 뱀이 아니라 용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뱀은 싯누런 안광을 뿜어내며 까마귀 용병단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단원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우, 우와악……!”
“쏴, 빨리 쏴!”
타다다다당─!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들이 쏘아낸 탄환은 뱀의 비늘에 생채기조차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탄환은 찌그러져서 바닥에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뱀이 꼬리를 휘둘렀다. 총을 들고 있던 단원들의 몸뚱이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뱀의 꼬리에 맞은 단원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비명조차 되지 못한 신음을 흘렸으며, 그조차 아니면 소리 없이 피가 섞인 구토를 했다.
“교주……!”
단장은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며 뱀과 거리를 벌렸다. 지팡이를 보고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저건 교주의 권능이었다. 오직 교주만이 할 수 있는, 기이하고 괴상하며 폭력적인 재주. 주술, 권능!
단장은 그것들의 파괴력과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한때, 부두교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촤르륵!
단장의 손아귀에서 부두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부두 마력은 단숨에 주술진이 되었다. 주술진에서 나온 것은 보랏빛 안개가 아니었다. 보라색 광채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단검이었다.
지금 나타난 뱀은 교주의 권능으로 나타난 것. 사람이나 악마종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탄환 따위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오직 주술, 부두 마력으로 이루어진 무기만이 뱀의 몸에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단장은 주술로 불러낸 단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표독스러운 눈깔로 자신을 노려보는 뱀을 응시했다.
단장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쳐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뱀을 공격할 틈을 노렸다.
우직.
그때,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이 부서졌다. 부서진 단검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단장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단검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단장이 고개를 들었다. 뱀의 공격에 맞아 널브러진 단원들 사이를 헤치고,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그는 가면과 판초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단장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단장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는 지금 언젠가 느꼈던 익숙한 공포를 다시금 느끼고 있었다.
가면과 판초를 뒤집어쓴 남자에게서는 익숙한 분위기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단장이 부두교의 일원으로 있었을 때 존경하고 섬겼던 그 남자.
절대로 항거할 수 없고, 다만 복종하고 경외하는 수밖에 없었던, 그.
“……도명준.”
“그건 우리 아버지.”
가면을 쓴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도망자’였구나.”
쿵─!
단원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뱀은 어느덧 지팡이가 되어, 도선우의 손에 들려 있었다.
도선우는 지팡이로 지면을 내리찍었다. 풀 한 포기 없던 척박한 땅에서 마법처럼 자라난 나무뿌리와 식물 줄기들이 단장의 몸을 휘감아 단단히 조였다.
* * *
7년, 아니, 이제는 8년 전 일어난 성전. 그때 아버지를 배신하고 도망친 자들은 많았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로마니카교에 붙어먹은 자도 있고, 부랑자가 되어 죽어버린 자도 있다.
개중에는 용병단을 꾸려 살아가는 자도 있다고 들었다.
까마귀 용병단이 만들어진 것은 딱 그 무렵.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성전으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까마귀 용병단의 단장이 ‘도망자’ 중 한 명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두 마력을 사용하는 단장의 모습으로 하여금 그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이름이 뭐지?”
나는 식물 줄기에 붙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단장에게 물었다. 내내 단장이라고 부르면 육은형을 부를 때 혼동이 있을 수 있었으므로, 부를 이름이 필요했다.
단장은 버릇없는 눈깔로 나를 노려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없어. 지금까지 없었고.”
“그래? 그럼 초롱이라고 부를게.”
“왜 초롱이지?”
“눈 좀 초롱초롱하게 뜨고 다니라는 의미에서. 눈깔 버릇없이 뜨지 마. 뽑아버리고 싶으니까.”
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새로 받은 이름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초롱이를 앞에 두고 오군을 불러냈다. 주변에 있던 쇠붙이들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공중에 떠올랐다. 쇠붙이는 뾰족하게 날을 세운 채 초롱이를 겨누었다.
“초롱아, 묻는 말에 대답 잘해라. 죽기 싫으면.”
“…….”
“이번 의뢰를 사주한 건 누구지?”
초롱이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살짝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몇 대 때리고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들고 있던 지팡이로 초롱이의 머리통을 한 대 내려쳤다.
강하게 때린 것은 아니었는데 초롱이의 입에서 욱, 하고 신음 소리가 났다.
“대답해. 누가 사주했냐고?”
“……말할 수 없다. 의뢰인 보호는 용병단의 의무─”
“어어, 그러냐? 보수.”
나는 보수를 불렀다.
[살살해라.]“하는 거 보고요.”
나는 보수의 말에 적당히 대답하고 주먹을 쥐었다.
퍽, 퍽!
초롱이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한 방으로는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서 한 네다섯 대는 더 때렸다. 그러고 나서도 분이 안 풀려서 계속 주먹을 날렸다.
초롱이의 입에서 주륵, 피가 흘러나왔다. 입술이 터진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며 내 공격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초롱이는, 이내 몸을 축 늘어뜨리며 내 주먹을 맞기만 했다.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부두교 배신은 쉽고 의뢰인 배신은 어려워? 배신 잘하잖아, 개새끼야. 너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지 알아?”
“읍, 윽, 푸하……! 억, 그만. 잠시……!”
“의뢰인 보호가 지금 중요하냐? 지금 의뢰인 누구인지 말 안 하면 너희 용병단도 싹 다 해산이야. 왜 너 같은 새끼들은 꼭 주먹을 들어야 말을─!”
턱.
그때, 사정없이 초롱이의 얼굴을 내리치던 내 팔을 누군가 잡았다. 나는 주먹질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육은형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육은형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쯤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말할 틈은 주면서 고문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피투성이가 된 초롱이를 보았다. 초롱이는 입에 고인 피를 뱉고, 숨을 몇 번이나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퉁퉁 불어 터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몹시 처량하게 입을 열었다.
“말할게요! 말하겠습니다!”
“그래, 진작 그러지. 왜 꼭 맞아야 입을 여는 거야? 아니면 끝까지 말하지를 말든가. 참 이해할 수가 없네.”
“사,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온갖 센 척 다 하던 그는 몇 대 맞더니 비굴하게 꼬리를 내렸다.
그는 도망자였다. 성전 당시 로마니카교를 상대로 싸우다 죽은 부두교도들은 전부 용감한 자들이었고, 죽는 것이 두려워 도망친 자들은 죄다 겁쟁이였다.
이놈도 별반 다르지 않은 부류였다. 까마귀 용병단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 있어도, 결국 죽기 직전까지 패다 보면 입을 여는 한심하고 인내심 없는 놈에 불과했다.
도망자들이 부두교를 버리고 간 대가는 부두교에 남아 있던 자들이 치렀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되거나, 상실감에 못 이겨 광인이 되어버린 자도 있다. 나는 어쩌면 도망자를 향한 모든 분노를, 눈앞에 있는 초롱이에게 전부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가? 도망자를 향한 분노를, 도망자인 초롱이에게 전부 쏟아내는 것이?
만일 내가 이러는 게 나쁘다면, 나는 도망자를 향한 분노를 누구에게 쏟아내야 하는가? 삼키고 삭이다가 그렇게 썩어서 없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나?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너무 세게 쥐었는지, 손에 피가 나서 뚝뚝 흘렀다. 내내 턱을 악 다물고 있던 탓에, 턱 관절이 삐걱거렸다.
나는 초롱이를 노려보았다. 초롱이가 겁에 질려 몸을 바짝 움츠리며 입을 열었다.
“마, 마유현! 마유현이라는, 어린놈이었어요!”
“…….”
그리고, 초롱이의 입에서 비로소 의뢰인의 이름이 나왔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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