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1
제31화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7대 주선의 이름을 딴 일곱 개의 성호. 그중 넷이 학생회실에 모여 있었다.
두 가지 안건에 대한 회의를 위해 모인 것이었으나, 정작 회의는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겸손은 불참. 자선은 공석. 인내는 온다고 해놓고 보이지를 않네. 우리 학년에 왜 이렇게 폐급들이 많을까? 응?”
친절의 성호, 여민서가 텅 빈 자리들을 보며 한탄했다. 7명 중 3명이나 없으니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손에 든 서류를 의미 없이 훑으며 말을 이었다.
“인내는 뭐, 일단 학교는 왔으니까 그렇다 치고. 겸손 이 새끼는 왜 학교를 안 와?”
“아버지 돌아가셨다는데. 장례식 간다고.”
“장례식 핑계만 벌써 세 번째잖아. 아버지가 혹시 세 명인가? 지가 무슨 여포야?”
여민서가 들고 있던 서류를 와락 구겼다. 친절의 성호라는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었다. 회의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뭐 일단,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하자. 처음 안건은─”
드르륵─!
막 회의를 시작하려는 무렵, 문이 열렸다.
김진서가 숨을 헉헉대며 학생회실 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여민서는 그런 김진서를 날카롭게, 그러나 은근하게 노려보았다.
“오셨어요? 늦었네요? 좀 많이.”
“미안. 일이 있어서.”
“그래, 사연이 있으시겠지. 5분이나 늦으셨는데. 지각하는 애들치고 사연 없는 애들이 없더라고.”
김진서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김진서는 입술을 깨문 채 내심 솟는 화를 삭이며 자리에 가 앉았다.
탁탁.
원탁의 상석에 앉은 여민서가 서류를 책상에 두드려 정리했다.
“올 사람들은 다 오셨으니까, 회의 시작합시다.”
여민서가 서류를 뒤적거렸다. 회의 진행은 원래 겸손의 성호가 하는 것이 원칙이나, 겸손의 성호인 ‘그놈’이 2주째 결석을 하고 있다. 하여 친절의 성호인 여민서가 진행을 맡았다.
“첫 번째 안건. 피렌체에 사탄교도가 잠입했다는 소식이야. 근거는 ‘축사 마수 사건’과 ‘고준민 사건’. 해서, 사탄교도를 찾으라는 지령이 떨어졌어. 신입생 중에 있을 가능성이 높대. 그래서 교사들도 별도로 우리한테 맡긴 거고.”
“찾을 방법은 있나?”
근면의 성호, 강대만이 물었다.
그는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자리에는 의자가 없었다. 강대만은 회의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내내 투명 의자를 하고 있었다.
“이거부터 보고 얘기해. 사건 당시 사진이야.”
여민서가 탁상 위에 서류를 펼쳐 보였다. 피렌체 축사의 CCTV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검은 후드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정체불명의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다는 것.
“이 검은 놈은 뭐지? 그리고 있는 건 축복진인가. 색이 이상하군.”
눈을 가늘게 뜬 채 사진을 바라보던 강대만이 물었다.
“걔가 사탄교도겠지. 생각을 좀 하고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네?”
여민서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런가. 그럼 이자가 그리고 있는 건 뭐지? 축복진인가.”
“축복진이 아니라 흑마법진. 모르면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어.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강대만이 여민서를 노려보았다. 여민서도 이에 지지 않고 강대만을 노려보았다. 두 눈빛이 교차하며 스파크가 터졌다. 분위기가 살벌했다.
다른 성호들은 끼어들 생각조차 못 하고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연히 강대만과 여민서가 공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됐다.
“겸손의 성호. 그놈을 잘 이용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근데 그놈이 계속 결석하고 있잖아. 협조를 해줄지도 명확하지 않고.”
“아하. 근데 아까부터 내 말에 딴지만 거는 것 같군. 반박할 거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야~ 맞네. 네가 하도 멍청한 소리만 해서 나도 지능이 낮아졌나 봐. 미안.”
강대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여민서를 향해 걸어가려던 그를, 가느다란 팔이 제지했다.
“그만. 싸우지 마.”
절제의 성호, 한수련이었다. 그녀가 서류를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축사 CCTV밖에 없네? 고준민 사건 일어난 데가 어디였지?”
“바로 앞. 시립공원 쪽.”
“그래. 거기 CCTV 사진은 없어?”
“없어. 싹 다 파손됐거든. 고준민 사건 관련해서는 증거가 하나도 없─”
한수련의 물음에 무심하게 대답하던 여민서가, 이윽고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있네. 여기 유일한 목격자가 있잖아. 김진서.”
김진서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여민서는 섬뜩한 웃음을 입에 머금은 채로 김진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광기가 어려 있었다.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고준민이 악마종으로 변했을 때 좀 특이한 점이 있었다거나.”
“……기억 안 나.”
“거짓말하지 말고. 협조 좀 하지?”
김진서가 고개를 떨군 채 심호흡을 했다. 그때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고준민, 이라는 이름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했다.
“진짜야. 기억 안 나.”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실제로 기억이 잘 안 나기도 했다. 설령 기억이 난다고 한들,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 말하기 싫으면 말고. 지각도 하고, 협조도 안 하고. 되게 쓸모 있네.”
대놓고 비아냥대는 말투였다. 화가 났지만, 김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참았다.
여민서와는 말을 섞는 것조차 싫었다. 여민서와 말싸움을 하면 항상 손해를 보는 건 자신이었기에.
옆에서 한참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한수련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겨우 이 사진으로는 못 찾을 것 같은데. 걔, 겸손의 성호 오면 그때 이야기하자. 어때?”
여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다음 안건은 배성현. 그 병신이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해서 퇴학을 당했어. 그래서 자선의 성호가 공석. 재선출해야 돼.”
“그게 왜 안건이지?”
강대만이 피식 웃었다. 여민서의 눈썹이 뒤틀렸다.
“……그래. 지금부터 설명할 거야. 만약 재선출 시험으로 뽑았다 쳐. 근데 들어온 애가 또 머저리라, 배성현처럼 개짓거리하다가 또 퇴학당하면. 그땐 어쩔 건데?”
“뭐가 문제지? 그때는 또 재선출 시험을 보면─”
“이래서 멍청한 새끼들한테는 발언권을 주면 안 된다니까.”
여민서가 강대만의 말을 끊었다. 운동복 너머 선명한 강대만의 팔근육이 꿈틀거렸다.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민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재선출 시험 기획에 걸리는 시간만 최소 2주. 재선출 시험을 두 번 보면? 기획에 걸리는 시간만 한 달이네? 그럼 그 한 달, 우리는 그냥 통으로 버리는 거야. 그럼 공부할 시간도 없을 걸?”
“나는 공부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러시겠지. 멍청한 근육 돼지 놈아.”
“우리 업계에선 칭찬이다. 고맙다.”
강대만이 웃으며 받아쳤다. 여민서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튼. 시간 낭비할 일 없도록 이번에 제대로 된 애 뽑고 3년 순탄하게 가자고. 배성현 같은 병신이나, 강대만처럼 멍청한 새끼는 뽑지 말고.”
“근데 그걸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방법이 있어?”
듣고 있던 한수련이 물었다.
“우리도 재선출 시험에 관여할 수 있는 건 알지? 그걸 잘 이용해서, 내정을 할까 하는데.”
내정.
미리 뽑을 사람을 정해놓고, 재선출 시험에 관여하여 그 사람에게 점수를 몰아주자는 뜻이었다. 간단히 말해, 부정행위다.
듣고 있던 강대만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굳이 왜 내정을 하지? 능력이 있으면 알아서 뽑힐 텐데.”
“시험은 운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경우가 많아. 띨띨하고 능력 없는 새끼가 운 좋게 자선의 성호로 발탁되면? 배성현처럼 바로 나가리 되는 거지. 그러니까, 최대한 안전하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으로 내정을 해두고 변수를 차단하자는 거야.”
“그거 괜찮군. 좋은 것 같다. 내정.”
강대만이 별생각 없이 수긍했다.
여민서가 들고 있던 서류 중 몇 장을 솎아 탁상 위에 펼쳤다. 세 장의 서류에는 세 명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성적, 가정 형편, 자기소개서 등등. 합법적인 루트로는 구할 수 없는 개인 정보들이었다.
“내가 생각한 건 일단 세 명. 정인아, 구준혁.”
여민서가 고민하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리고 좀 애매하긴 한데, 도선우까지.”
도선우.
그 이름이 언급되자, 세 명이 일제히 반응을 보였다.
“어? 그, 그 사람은 절대 안 돼요!”
순결의 성호, 성하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의 내내 한마디도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내뱉은 의견이었다.
뒤늦게 품위가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성하연이 얼굴을 붉히며 스르르 자리에 앉았다.
쿵.
성하연이 불러일으킨 소란 틈, 김진서가 갑자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고개를 떨구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흘러내린 머리카락 틈으로 붉어진 귀가 엿보였다.
“─으.”
이제는 ‘도선우’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이상했다. 어제 체육관에서 구준혁이 자신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 발끈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음. 도선우로 하지!”
그러던 와중 강대만이 힘차게 외쳤다. 그 거대한 목소리가 학생회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여민서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여민서는 소리에 예민했기에, 강대만의 큼직한 목소리가 늘 거슬렸다. 그녀가 강대만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것이었다.
“후.”
여민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화를 삭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도선우는 그냥 말만 꺼내본 거야. 어차피 얘는 안 돼. 애매하다고 한 이유가 있어.”
“이유가, 뭐지?”
강대만이 못마땅하다는 듯 물었다.
“첫째, 가정 형편이 안 좋다. 자선의 성호로 발탁되면 피렌체에 기부금 내야 되잖아. 도선우는 기부할 형편도 못 돼. 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야.”
“가난은 죄가 아니다!”
“죄는 아니지. 근데 그렇다고 선도 아니야. 자선이 왜 자‘선’이겠어?”
강대만은 말없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여민서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여민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강대만의 무지(無知)를 한탄했다.
“이해 못 했으면 됐고. 둘째, 인식이 안 좋아. 저번에 그랑체에 글 올라온 거 봤지? 가해자다 뭐다 난리 났던 거.”
“잠깐만.”
엎드린 채 가만히 여민서의 말을 듣고 있던 김진서가 벌떡 일어났다. 탁상에 닿았던 이마에 붉은 자국이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오병훈이 해명 글 올렸잖아. 루머라고 판명 난 지가 언젠데.”
“루머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도선우 이미지가 안 좋은 건 팩트잖아?”
“이미지가 뭐가 중요해?”
“중요해. 마침 배성현 때문에 학생회 이미지가 개판이 됐거든. 배성현 퇴출하고 재선출한 게 도선우다? 애들이 뭐라고 할까?”
“도선우 이미지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닌데.”
“도선우보다 정인아랑 구준혁 이미지가 더 좋아. 근데 굳이 도선우를 뽑아야 할 이유가?”
여민서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김진서는 말없이 여민서를 노려보았다. 할 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민서와 언쟁을 나눠봐야 손해를 보는 건 자신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문 것이었다.
여민서는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의식하곤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도선우랑 비슷한 일 한 번 겪었었지?”
“……뭐?”
“왜 도선우만 두둔하나 했더니.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런 거구나? 막 동질감 느껴지고, 공감되고 그래?”
여민서와 김진서는 중학교 동창이다. 김진서가 중학교 때 그 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면서도, 여민서는 굳이 그 일을 언급했다.
이유는, 그냥 김진서가 아니꼽게 굴어서.
김진서의 표정이 확연이 어두워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 기분 나빴어? 농담이었는데. 미안~”
그것을 본 여민서가 히죽대며 성의 없는 사과를 건넸다. 김진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떨궜다.
입을 열면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여민서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여민서는 승리에 찬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 같은 이유로 도선우는 제외. 정인아랑 구준혁 중에 내정자를 고를 거야. 내가 생각하기엔 구준혁이 나을 것 같은데. 구준혁으로 정할까?”
지 마음대로 할 거면 뭐 하러 회의를 열어. 그냥 혼자 정할 것이지.
김진서가 투덜거렸다. 물론 속으로만.
“네 마음대로 할 거면 왜 회의를 열었지?”
그러나 강대만은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난 것을 바로 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강대만의 지적에 여민서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내 생각이 보통은 맞으니까. 너처럼 멍청한 애들 의견까지 하나하나 다 수렴하면, 회의가 끝나질 않거든.”
“아하! 그거 참 맞는 말이군. 맞고 싶나?”
“때려봐, 병신아. 깽값은 있고?”
여민서와 강대만 사이,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기류가 흘렀다.
강대만이 주먹을 우득거리며 여민서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민서는 신성력을 사출하여 축복진을 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였다.
“그만.”
그때, 한수련이 튀어나와 그들을 중재했다.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여기 말고.”
여민서와 강대만이 진심으로 치고받고 싸우면 학생회실은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한수련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여민서와 강대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 도저히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다. 싸우지 말자. 싸워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먼저 고개를 숙인 것은 여민서 쪽이었다. 그녀가 한숨을 푹 쉬더니,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강대만을 바라보았다.
“그래.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나는 도선우가 자선의 성호로 발탁되기를 원한다.”
“이유는?”
“도선우는 매일 헬스장에서 체력 단련을 한다. 아주 성실하고 근면하지. 이게 이유다.”
“겨우 그딴 이유, 아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정말 납득이 되네.”
여민서가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 앉았다. 잠깐 성질이 나올 뻔했지만, 끓는 마음을 억지로 눌러 화를 삼켰다.
“근데, 그래도 도선우는 안 돼.”
“왜지?”
“아까 말했잖아. 백번 양보해서 이미지가 안 좋은 건 넘어간다 치자. 근데 기부금은? 도선우는 기부금을 못 낸다니까? 거지라서?”
여민서의 말투가 점점 격앙됐다.
“기부금을 못 내면, 애초에 자선의 성호로 발탁될 수가 없다고요, 네? 그래서 도선우는 안 된다는 거고. 아저씨, 이해돼?”
“나는 아저씨가 아니다. 그리고, 돈은 벌면 돼.”
“아, 제발 좀, 돼지 새끼야! 벌어서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니까! 네가 이, 피렌체 구조를 모르니까 그 따위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지.”
답답해진 여민서가 꽥 소리를 질렀다. 흰자에 핏발이 바짝 서 있었다.
“후. 아, 그래. 그럼 거수투표로 정하자. 도선우로 할지 구준혁으로 할지. 그럼 됐지? 공명정대한 민주주의 법칙을 따르는 거야. 오케이?”
“좋다.”
강대만이 동의했다. 여민서는 곧바로 거수투표를 진행했다.
도선우 쪽에 손을 든 것은 강대만과 김진서, 구준혁 쪽에 손을 든 것은 여민서와 성하연이었다.
하여, 결과는 2대2 동률.
“한수련. 너는 왜 손을 안 들어?”
“기권. 난 딱히 누가 돼도 상관없어.”
“뭔. 어? 아니, 하.”
여민서는 기가 막혀 뒷목을 잡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가까스로 화를 누르는 그녀를, 한수련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구준혁이랑 도선우, 둘 다 내정자로 두면 돼.”
“뭔 소리야? 자리가 하나밖에 없는데.”
“이번 재선출 시험은 성물 반입이 허가된다는 설이 있어. 나도 들어서 안 거지만.”
한수련이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여민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재선출 시험에서 구준혁이랑 도선우, 둘이 1대1 구도를 만들면 되지.”
“……아.”
여민서가 뒤늦게 이해한 듯 탄성을 흘렸다. 한수련이 말을 이었다.
“둘이 실력은 비슷하다 치고. 누가 더 비싸고 좋은 성물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겠지. 간단히 말해서, 둘 중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쪽이 이긴다는 거야.”
“그러니까 구준혁이랑 도선우 둘이 경쟁하게 판을 만들고, 나머지는 자본에 맡긴다?”
“그래. 어때?”
한수련이 웃었다. 악의라고는 한 점도 비치지 않는 맑은 미소였다. 반면, 여민서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김진서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도선우가 너무 불리하잖아.”
“왜?”
“왜냐니. 당연히…….”
여민서가 건네준 서류에 따르면, 구준혁은 고위 성직자 부부의 외동아들이다.
반면 도선우는 성전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평범한 성직자이며, 그마저도 해외로 출장을 가 있는 상황.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본력이 강한 쪽은 구준혁이다. 자본 싸움으로 가면 도선우가 불리한 게 당연했다.
“아, 그러니까 도선우는 자본이 부족하니까, 구준혁이랑 1대1 구도를 만들면 불리하다?”
김진서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주저하자, 여민서가 그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김진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자본 싸움에서 졌다는 것부터 이미 자선의 성호로서 자격이 없는 거니까.”
“그게 뭐야. 그럼 능력으로 뽑는 게 아니잖아. 부모님 직업 보고 뽑는 거지.”
“부모님 잘 만난 것도 재능이지. 그리고 자선의 성호는 부모님 직업도 중요해. 피렌체의 복잡한 메커니즘이야. 너네 아빠 이사장이잖아. 너도 대충 알지?”
자선의 성호는 피렌체에 기부금을 바친다. 피렌체는 그 보답으로 학생회의 편의를 봐준다. 자선의 성호가 얼마나 많은 금액을 기부하냐에 따라 학생회의 위상이 달라진다.
이 같은 이유로, 자선의 성호는 능력보다는 자본을 기준으로 선출했다.
“배성현도 솔직히 능력만 따지면 좆도 별거 없었잖아? 아빠가 dBP 회장이니까, 거의 뭐 기부 입학 개념으로 들어온 거지. 안 그래?”
“그래도, 이건 너무 불공정─”
“불공정? 야. 그걸로 먹고사는 주제에 무슨 불공정이야.”
여민서가 김진서를 몰아세웠다. 김진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입만 뻐끔거리다, 이내 고개를 떨궜다.
김진서의 양아버지는 피렌체 이사장. 그녀가 이토록 호의호식을 누리며 사는 것도 전부 기부금 덕분이었다.
김진서는 불공정이고 자시고를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불공정한 세상의 최대 수혜자가 자신이었으니까.
“말고 다른 사람은 이의 없지? 그럼 이렇게 정하는 걸로 하고. 회의 끝. 가자.”
여민서의 말을 마지막으로 회의가 끝났다. 교실로 돌아가는 와중, 김진서의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 * *
방과 후, 이진성 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일전에 배정환에게 받기로 약조했던 성물이 지금 막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예배당으로 가자, 성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와. 신기하네 이거.”
“그치. 돈값 제대로 한다니까?”
[신비롭구나. 나 때는 저런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그리하여, 우리는 성물의 성능 테스트를 하는 중이었다. 말이 성능 테스트지 그냥 가지고 노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야, 가방 가지고 다닐 필요 없겠다. 그냥 여기 넣고 다니면 되겠네.”
“그러네!”
오늘의 지하 예배당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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