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11
108. 비극이다 (3) >
108.
뛰어난 저격수는 단 한 발의 사격을 위해 사흘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기어서 목표지점에 다다른다. 적진 깊숙이 위치한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길이니 수많은 보초병이 득실거린다. 매복한 지점 코앞을 지나갈 때는 심장이 멈출 정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걸리면 처절한 고문 끝에 뼈도 못 추리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 홀로 모든 적을 쓰러뜨릴 능력 따위는 없다. 그저 적 장군의 가슴에 탄환 한 발을 박아 넣을 정도의 기회와 그 한 발을 위해 훈련한 과거가 전부일 뿐이다. 매복한 저격수는 그 한 발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하루가 천년 같은 피 말리는 시간 끝에 간신히 저격지점에 다다른 저격수는 풍향, 습도, 기온, 목표물의 위치와 거리까지 세심하게 모든 것을 고려한 뒤 단 한 발의 탄환으로 적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타아앙!
이윽고 탄환이 날아가고 적 장군의 가슴을 뚫고 피를 사방에 토해낸다. 임무 목표인 적 장군이 죽었다.
그러나 죽었다고 끝이 아니다. 퇴로를 통해 도망치는 것까지가 임무의 완성이니까.
시에라는 차분한 눈빛으로 스펙터 교육 때 훈련교관이 언급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물론 옛 저격수의 모습이다. 기어서 이동? 그렇게 이동할 이유도 없고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적이 코앞에 올 것도 없이 그전에 발각당할 것이다.
하지만 교관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너무나 명확했다. 그 핵심은 어떤 전쟁에서도 통용된다. 함대전이라 해도 마찬가지.
쾌속정 70척, 호위함 30척, 구축함 20척, 순양함 1척, 그리고 3000기에 달하는 함재기까지. 상식적으로 정찰함급 함선 한 척이 절대로 대항할 수 없는 병력이다. 스톰함이라고 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
스톰함의 성능이 순양함 여러 척을 상대할 수 있는 성능을 지녔다고 하나 강화된 배리어와 코어 포격을 연달아 사격할 수 있는 성능을 고려해 운용에 따라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정찰함 한 척이 무슨 순양함 서너 척에 달하는 위력을 지녔다는 소리가 아니다.
아니 차라리 순양함이 두 척 정도였다면 오히려 전술 운용이 간단해졌을 것이다. 파괴해야 할 큰 목표가 두 가지에 지나지 않으니까.
순양함의 코어 포격을 견디고 역으로 코어 주포로 몇 방 갈겨주면 오히려 쉽게 끝났을 것이다. 순양함의 전술이야 강력한 코어 포격을 위주로 운용하는 편이니까.
그러나 맞닥뜨린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100척의 함선,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코어 포격을 고려하면 50척의 목표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격해오는 상황이었다.
무작정 코어 포격 몇 방 갈기고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한두 척 부수고 남은 40여 척 함선의 포화에 휩싸여 우주의 티끌로 화할 게 아니라면 끝없이 움직이며 적의 숫자를 차근히 줄여야 했다.
자연히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사흘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저격지점까지 기어가는 저격수처럼 보초병이 코앞까지 다가오더라도 당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담담하게 버텨야 한다.
그렇게 버티고 차근히 달려온 결과 함대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던 기함인 구축함을 비롯해 80척이 넘는 함선을 우주의 티끌로 만들어버렸다.
남은 함선의 숫자는 구축함 10척과 호위함 7척, 그리고 순양함 1척이 남았다.
그런 와중 배리어는 소실되었고 강화된 장갑도 광속으로 이동하며 적 기함을 빗겨 친 충격으로 70% 이상 손실되었다.
강화된 장갑이 아니었다면 또한 적 기함과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저세상을 향해 그야말로 광속으로 달려가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충돌지점에 이르러선 광속이동을 멈춘 까닭도 있기에 륭샤오핑의 절묘한 조종실력도 빼놓을 수 없었다.
어쨌든 수없이 많은 위기의 순간을 지나 드디어 완벽한 승기를 잡았다. 남은 건 잔존한 적 함대를 괴멸시키는 일뿐.
시에라는 흔들림 없는 예의 차가운 어조로 다시 명령을 내렸다.
“대함미사일! 레일건 준비! 남은 함선을 향해 모조리 퍼부어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슈슈슈슝! 슈슝!
퉁투퉁!
스톰함은 적 함대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다시 함선을 부수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아아앙!
특히 구축함 10대는 코어 포격으로 인한 충격으로 회피기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지라 속수무책으로 파괴되었다.
번쩍이는 섬광에 휩싸여 사라져가는 리퍼의 함선을 바라보던 시에라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 저편을 바라봤다.
위험천만한 전투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쾌속정 70척, 호위함 30척, 구축함 20척, 순양함 1척 정도는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타고르스함이 은폐한 채로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스톰함만으로 ‘쿤’의 함대와 싸워 승리하는 것이 한 사령관의 첫 번째 계획.
그러나 언급했다시피 스톰함만으로는 역부족인 부분이 있었다. 위험한 전투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기에 최악의 경우 타고르스의 지원으로 모조리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단 언급했다시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계획에 불과했다. 때문에 스톰함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도 타고르스가 개입하지 않은 것이었고 무엇보다 초인공지능 워는 타고르스 개입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다.
타고르스함이 주변에 존재함에도 끝까지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은 이유? 삼대 세력을 일어난 전투 하나 분석하지 못하는 머저리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겠지. 아닌 게 아니라 정찰기 등을 통해 지금의 전투 자체가 이미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 사령관의 본래 계획대로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졌다.
리퍼뿐만 아니라 모든 세력이 오늘 벌어진 전투를 주시할 것이다. 정찰함급 함선 한 척으로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는 경우는 테라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또한 스톰이라는 이름에 대해 경계할 것이다. 강력하긴 하나 고작 정찰함급 함선 한 척으로 함대를 쳐부순 자의 이름을. 마찬가지로 그자가 앞으로 구축할 세력에 대해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겠지.
“적 구축함 전멸! 호위함 5척 역시 곧 폭발합니다. 호위함 2척이 후퇴합니다. 추격합니까?”
“아니 이대로 대기하며 배리어를 충전하고 아울러 코어 포격 역시 준비해라.”
시에라의 명령에 승무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걸 이기다니? 이걸? 이건 우주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쓴 전투나 다름없었다. 자연히 상기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
파지직! 파직!
충격파에 의해 난장판이 된 함교 외부에서 폭발과 함께 섬광이 번뜩였다.
콰아앙! 콰앙!
마쿤은 손을 휘둘러 이한을 밀쳐낸 뒤 우주 저편에서 일어나는 섬광을 힐끗 바라봤다.
함교 구석에 형편없이 처박힐 정도로 강력한 기세였으나 이한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착지했다.
섬광을 바라본 마쿤은 그런 이한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함선 한 척으로 함대를 상대한다라···. 큭큭큭”
마쿤은 이마에 손을 대고 작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내 곧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이 마쿤이! 제물이 되었다?”
돌연 웃음을 그친 마쿤은 차가운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검을 뽑아 들었다.
차르륵!
우우우웅!
금세 검날을 갖춘 초진동검은 미친 듯이 진동하며 뭔가를 베어내길 갈망하고 있었다.
“네놈. 나를 천하의 우스갯거리로 만들었군.”
이한은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난 또 무슨 헛소리라고. 언제는 안 그랬냐? 네가 리퍼라는 게 부끄러운 거야. 그걸 모르고 살았어? 이런 병신을 봤나.”
눈매를 꿈틀거린 마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서 나타난 놈이냐?”
“뭐. 하늘에서 폭풍처럼 나타났지.”
마쿤은 눈을 좁히며 이한을 노려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그래. 상관없겠지. 대답하는 데 팔다리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촤르르륵!
우웅!
이한 역시 초진동검을 펼치며 마쿤에게 말했다.
“유언은 그게 전부냐? 들어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만.”
“놈!”
마쿤은 그 말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이한에게 짓쳐 들었다. 슈퍼솔져라고 해도 미처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역시 육체계 초능력자였나?’
짧게 상념에 잠겼던 이한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바닥을 박찼다. 이한 역시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는데 놀라운 것은 마쿤의 움직임만큼이나 신속했다는 점이었다.
채애앵!
초진동검과 초진동검이 부딪치며 함교에 요란한 소음을 낳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시 여러 번의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 퍼졌다.
챙! 채챙! 챙!
이를 악문 마쿤이 초진동검을 맞댄 이한에게 말했다.
“어디서 너 같은 놈이 나타났지? 너 같은 놈이 출현했다는 정보는 들은 적이 없는데.”
“자꾸 말하게 만들지 마라. 원래 하늘이 하는 일은 하늘만 아는 법이야.”
“흥! 하늘? 그런 게 있다면!”
마쿤은 거칠게 이한을 밀어내며 양손의 검을 교차하며 그의 허리를 베어냈다.
부우웅!
이한은 몸을 뒤로 뺐다가 다시 짓쳐 들며 역시 양손의 초진동검을 마쿤에게 사선으로 휘두르며 그를 몰아쳤다.
챙! 채챙!
“핑계대지마. 새끼야.”
이한의 머릿속으로 생체실험으로 죽어간 아이들의 홀로그램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일가족은 물론 스테이션 전체를 살육한 경우도 수두룩했다.
워를 통해 자료를 확인했던 이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리퍼 이 개새끼들은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깊이 다짐했었다.
따라서 단순히 어떤 세력을 조직하기 위한 계산만으로 리퍼를 건드린 건 아니었다. 어떤 이득이 없어도 이 새끼들을 개박살 낼 생각이었으니까.
“사람 새끼도 아닌 새끼가 뭔가 있는 척하기는! 씨발 새끼가!!”
이한은 불같이 분노하며 미친 듯이 초진동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챙! 채챙! 챙!
그 속도와 힘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듯 이한의 검을 막아내는 마쿤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헬멧으로 인해 외부에서 보이지 않지만 이한은 야차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온힘을 다해 초진동검을 내리쳤다.
“큭! 크흑!”
이윽고 검을 받아내는 마쿤의 입에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 노오옴!”
점점 더 거세지는 이한은 공세에 마쿤은 눈을 빛내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강력한 충격파가 그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우우우웅!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강력한 충격파도 이한의 움직임을 막아설 수 없었다.
이한은 충격파마저 가르며 마쿤의 왼팔을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크흑!”
마쿤이 주춤거리며 물러서자 득달같이 달려들며 오른팔 역시 베어냈다.
“컥!”
양팔이 잘린 단면에서 붉은 피가 새어나올 때 이한은 그의 가슴을 발로 걷어차면서 말했다.
“억울해하지 마라. 내가 리퍼놈들은 모조리 쓸어버리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동료들도 곧 보내줄게. 동료인지는 모르겠지만.”
“커헉! 큭큭큭. 크하하하.”
바닥에 내팽개쳐진 충격으로 신음을 토해낸 마쿤은 미친놈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멈춘 마쿤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이한에게 짧게 반문했다.
“너라고 다를까?”
콱!
이한은 마쿤의 가슴에 발을 올린 뒤 몸을 숙여 그와 눈을 마주했다.
“어. 달라.”
그런 뒤 그의 목을 초진동검으로 깔끔하게 베어냈다.
서걱!
데구르르.
두눈을 부릅뜬 채로 죽은 마쿤을 바라보던 이한은 주변을 스산하게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시간부로 순양함은 나 스톰이 접수한다. 불만있는 새끼는 누구든 나와라. 이 새끼처럼 참수해 버릴 테니까.”
마쿤은 물론 함교에 있던 리퍼들 역시 똑똑히 목격했다. 매드솔져가 중화기로 퍼부었어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 매드솔져를 모조리 베어버린 사실을 말이다. 오죽하면 매드솔져가 중화기까지 버려두고 초진동검 등을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겠는가?
더욱이 마쿤은 삼대 세력의 고위 등급 ESP 능력자들도 상대하지 못한 괴물 같은 보스였다. 그런 괴물을 검 몇 번 나누다가 베어버린 자에게 대항한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까닭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한은 어렵지 않게 순양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스톰함이 대다수 함선을 쓸어버린 상황에서 남은 순양함 1척마저 이한이 점령했으니 전투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물론 이한에겐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었다. 가까이는 리퍼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부터 남아 있었다.
*
쿤과 스톰의 전투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스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을 맺었다. 이 사실은 고정되어있던 세력권에 극심한 변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지금. 지금 뭐라고 했나?”
사이먼은 황당한 표정으로 재차 반문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먼에게 다시 보고가 이어졌다.
사이먼은 표정을 수습하며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승리···. 승리했다고? 사실이라면 더 확인할 것도 없이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로군.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야.”
*
자연히 그 소식은 유니온 경계를 지키고 있는 루퍼스 사령관에게도 전달되었다.
전송된 자료를 확인해보던 루퍼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존 테라의 기술로 만들어진 함선이 아니다.”
“예. 제가 보기에도 분명합니다. 순양함이라고 해도 코어 포격을 연달아 포격할 수는 없습니다. 배리어 역시 강력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기술의 출현이라니···. 마치 노린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리퍼와의 전쟁이 마치 무기의 탁월함을 시연하는 시연회처럼 보일 지경이니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스톰. 스톰이라고 했나?”
“예. 쿤의 함대와 교전한 함선의 이름 역시 스톰입니다.”
미간을 좁힌 채로 눈을 감고 있던 루퍼스 사령관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전투 자료를 바라봤다.
“그야말로 폭풍의 눈이로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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