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7
7.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한은 의심이 들었다. 유니온에서 수송선을 보낸다고? 보낸다는 보장 또한 어디 있나? 이미 모든 것이 뒤바뀐 거다. 자신이 한 이드라실이 된 그 순간부터.
“어차피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럴 바에는 적들이 방벽에 집중할 때 길을 터주는 것이 낫다. 능선 주위의 배리어도 지속적인 공격으로 급격하게 약해지는 상황 아닌가? 사방에서 놈들이 짓쳐 들게 하느니 그 전에 예측 가능한 지역으로 유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한은 재차 명령을 내렸다.
“소대장 에리오, 빌리와 연결시켜!”
『알겠습니다.』
에리오의 전투 장면이 고스란히 홀로그램에 펼쳐졌다. 아울러 빌리의 전투 장면 역시 펼쳐졌다가 두 장면이 함께 축소되었다.
두두두. 두두.
스페이스 마린들은 쉴 새 없이 라이플을 당기며 크락투를 사살하고 있었다.
이한은 그 광경에 표정을 잠시 굳혔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즉시 벙커를 벗어나 방벽 뒤편 길을 이용해 물러선다.”
그러자 에리오가 사격을 가하며 급히 말했다.
빌리 역시 대답했다.
이한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들에게 소리쳤다. 어디서 그런 박력이 솟아났는지 본인도 의아할 지경이었다.
“방벽이 무너지면! 너희가 후퇴할 시간이나 있나? 후퇴해!”
크락투의 이동속도는 스페이스 마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사족보행의 갯과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던가?
에리오는 잠시 난색을 보이다가 대답했고 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한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워! 마린들의 움직임에 맞춰 방벽을 폭파한다. 폭발로 모조리 죽어버리면 좋겠지만 뒤쪽에서 몰려오는 놈들이 반드시 있을 거다. 기지 내부에 설치된 폭발물과 건설 로봇을 이용해 마린들을 최대한 보호해라!”
초인공지능이 계산하는 것이니 그 어떤 인간보다 정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한은 아직 연결 중인 에리오와 빌리에게 말했다.
“들었나? 기지 내부에 설치된 폭발물이 너희의 후퇴를 도울 거다. 멈추지 말고 후퇴해라. 교전한답시고 발길이 멈추면 그것으로 끝이다.”
강철도 씹어먹는 크락투들에게 둘러싸인다면 그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좋아. 다음 지시는 컨트롤 센터에서 내리도록 하지. 바로 실시해!”
이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에리오와 빌리의 소대가 부스터까지 사용하며 컨트롤 센터를 향해 후퇴하기 시작했다.
크락투는 사격이 멈추기 무섭게 방벽을 넘어왔다. 이한은 그 모든 광경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홀로그램 너머로 보이는 광경인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그 흔한 욕설 하나 생각나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이윽고 방벽이 파괴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한은 주먹을 꽉 쥐며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홀로그램은 방벽과 마린들의 모습을 대조시키듯이 한꺼번에 띄워놓고 있었다.
“젠장!”
불꽃과 화염이 활화산이 폭발하듯 무수히 터져 나왔는데도 그슬리기만 크락투들이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이한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는.
‘이 짓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고? 하아. 돌겠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던 이한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후퇴하는 마린들을 주시했다.
*
키에에엑!
두두두!
뒤편에서 달리던 빌리가 소대원을 덮치려는 크락투의 눈알을 라이플로 터트리며 소리쳤다.
“달려! 멈추지 말고 달려라!”
상당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음에도 이 괴물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던 방벽이 아니었다면 기지 배리어가 박살나는 순간 모두 끝장나버렸을 거다.
그건 지금 역시 마찬가지. 사령관의 안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자신의 뒤쪽을 바짝 따라오던 놈들이 폭발물에 노릿노릿한 바베큐가 되어 나자빠졌다.
“으하하! 뒈져라! 이 개새끼들아!”
소대원 중 한 명이 긴장감과 두려움을 털기 위해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질렀다.
콰직!
“크아아악!”
안타깝게도 그 순간 옆에서 나타난 크락투에게 녀석의 상체가 완전히 으스러져 버렸다.
피비린내가 확 피어올랐지만 빌리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그의 두 눈은 마치 불꽃이 내려앉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달려! 이 새끼들아! 헛지랄 떨지 말고 컨트롤 센터를 향해 달리란 말이다!”
*
세밀하게 갈라진 놈의 근육과 근육을 지탱하는 육중한 뼈대가 눈에 들어온다.
타아악!
놈이 땅을 박차자 이리저리 터져나가는 지면과 흩뿌려지는 돌가루는 이윽고 누런 안개가 되어 흩날렸다.
놈은 누런 안개를 거침없이 뚫고 달려와 앞에서 내달리는 마린의 등을 당장에라도 씹어먹을 것처럼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지금!’
이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한이 발사한 총알은 아가리를 벌리고 짓쳐 들던 크락투의 안면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
키에에엑!
쿠우웅!
실로 놀라운 생명력이다. 그렇게 처맞고도 죽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한은 이미 다른 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의 마린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착 츠르르륵!
마치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라이플이 긴 총신을 가진 형태로 변화했다. 저격모드였다.
스나이퍼 라이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거리에서는 충분했다. 바이저와 라이플의 스코프가 연동되며 역동적으로 달려오는 크락투의 머리가 확대됐다.
투우웅!
이한은 머뭇거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열화우라늄탄은 총열을 통과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갔다.
쉬이이익!
퍼억!
크락투의 머리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기에 놈의 머리통이 대번에 날아가 버렸다. 크락투의 방어력을 생각하면 열화우라늄탄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다만 고폭철갑탄과 열화우라늄탄과 같은 특수탄은 총열을 과도하게 과열시키기에 중화기류의 특수총기가 아니고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한은 다시 일반 탄환으로 변경했다.
그는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놀라운 것은 거의 백발백중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확하게 크락투를 맞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 뭐 방구석 워리어도 아니고. FPS 게임 실력이 도움이 될 줄이야. 황당할 노릇이네. ’
조준점과 탄착점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탄착궤도가 일직선일 리는 없고 거리에 따라 자동으로 탄착점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분명했다.
주변 환경, 거리를 비롯한 변수를 생각할 것 없이 조준점에 맞춰 쏘기만 하면 명중이었다. 심지어 괴물의 움직임, 거리에 따른 탄착 시간까지 계산했으니 이 정도면 못 맞추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물론 그것도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지만 숙련된 FPS 게임 실력이 빛을 발했다. 그 사실이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병맛스러운 경험이 크락투에게 찢겨 죽을 뻔한 사람 여러 명을 구한 셈이니까.
“아직 멀었어?”
『아직입니다.』
이한은 더 반문하지 않았다. 초인공지능의 계산능력은 어떻게 따라가지도 못할 수준이니까.
“서둘러!”
이한은 그런 와중에도 사격을 쉬지 않으며 마린들을 독려했다.
스페이스 워라면 마린이 죽든 말든 알게 뭔가? 숫자 변환 정도에 불과할 텐데.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미션만 달성하면 된다.
어쩌면 이곳 역시 좀 더 복잡하고 치밀한 체계일 뿐, 본질은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들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다. 이게 착각이라면 나 역시 착각의 산물에 불과하겠지.’
가상현실이든 꿈이든 착각이든 알 수 없지만, 현실과 완전히 똑같은 가상현실이 존재한다면 그건 곧 현실이 된다.
아니 더 나아가 의식이 존재하는 그곳이 그 사람의 현재가 된다. 과거든 미래든 게임이든 공상이든 혹 무엇이든지 간에 그 순간만큼은 의식이 자리한 그곳이 실존하는 세계가 된다.
‘나는 여기 있고 저들은 살아있다. 이 시점에서 구태여 다른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살리고 살아남는다!’
그러는 와중 컨트롤 센터로 진입한 마린들이 늘어났고 그들 역시 뒤에 달려오는 마린들을 지원 사격하기 시작했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합류하여 거칠게 사격을 가하던 에리오가 크게 소리쳐 물었다.
“사령관님! 다음 계획은 뭡니까?”
쾅!! 콰아아앙!
저편에서는 계속해서 폭발이 일어났고 건설 로봇들이 톱날 등으로 크락투를 써는 소리도 들려왔다.
위이이잉! 촤아아악!
마찬가지로 그 모든 방어 시설과 로봇이 파괴되는 소리도 말이다. 아비규환의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네가 보기엔 이 상황에 답이 있을 것 같냐?’
고구마를 백 개를 욱여넣은 것 같은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한은 냉정하게 소리쳤다. 사령관이라는 직책이 주는 중압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눈앞에서 사람이 산채로 괴물에게 씹어 먹혔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잔인한 광경은 자신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잔혹하리만치 상기시켰다.
사실 이한이 까무러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자리 잡고 계속 사격해!”
키에에엑! 키에엑!
크락투는 동료의 시체를 밟고 계속해서 몰려들었고 이윽고 컨트롤 센터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준비했던 폭발물이나 방어작전이 거의 소모된 상황. 설상가상으로 마린들이 보유한 탄약마저 거의 소진된 상황이었다.
크락투들이 말 그대로 개떼처럼 몰려들자 이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8. 3분 카레와 쌩지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