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86
83. 복수전 (2) >
83.
이한에게 아직 넵튠 8함대의 지휘권은 물론 타카스 토벌에 대한 권한이 주어지기 전, 상파울로의 번화가에 위치한 빌딩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동양계 사내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상당히 세련되고 휘황찬란한 고층 빌딩이었기에 입구에서부터 절차가 빡빡했다.
자연스러운 여성의 음성이 울려 퍼졌지만 프로그램인 것이 분명했다.
사내는 잠시 입구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을 툭 뱉었다.
“륭샤오핑.”
륭샤오핑은 들고 있던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희도 테라에서 허가받지 않은 자들이다.”
파지지직!
어느새 꺼내 든 라이플로 인해 음성송출장치가 산산이 박살 났다. 그와 동시에 빌딩의 천장과 바닥 곳곳에서 터렛으로 보이는 것들이 마구 솟아올라오기 시작했다.
투투투퉁! 투퉁!
륭샤오핑은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터렛이 미처 작동하기도 전에 그 모든 터렛을 무효화시켰다.
심지어 륭샤오핑이 들고 있는 라이플을 보니 일반 라이플이 아니라 중화기에 가까웠다. 지금 발사된 탄환은 모조리 고폭철갑탄으로 그 반동이 상당한 탄환이었다.
그런 것을 움직이면서 발사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러나 터렛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위이이이잉!
륭샤오핑을 향해 터렛이 작동되는 소음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륭샤오핑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라이플을 사방으로 난사했다.
투투투투!
고폭철갑탄의 강력한 반동으로 라이플이 쉴 새 없이 흔들렸지만 살짝 드러난 륭샤오핑의 팔뚝으로 희미한 빛 같은 것이 일렁이며 그 모든 반동을 최소화시키고 있었다.
바이오나노슈트가 분명했다. 사실 슈트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BN슈트는 육체와 결합된 형태로 존재했으니까.
BN슈트와 동화율이 얼마냐에 따라 슈퍼솔져의 강력함이 달라지긴 하지만 최소한의 동화율, 곧 슈퍼솔져로 변이할 수 있는 동화율만 지녔다면 마린은 물론 스펙터라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메리카 섹터의 라이언이 대동하고 다녔던 인물이고 이한에게 온 20명의 슈퍼솔져의 리더이니 륭샤오핑의 강력함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따라서 분명 난사한 것처럼 사격한 것이 맞는데 륭샤오핑이 쏜 고폭철갑탄은 터렛이란 터렛을 모조리 파괴시켜버렸다.
콰아아앙!
콰직!
허공에서 제비돌기를 하며 바닥에 착지한 륭샤오핑은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쥐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조리 쓸어버려라.”
통신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빌딩 곳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위이이잉! 위이잉!
꺄아아악! 으허허헉!
빌딩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경고음과 당황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무려 이곳은 상파울로의 중심가 지역이었으니 말이다.
“기스모토 히데키.”
륭샤오핑은 미간을 좁히며 표적이자 원수의 이름을 뱉은 뒤 폭발로 인한 잔해가 우루루 떨어지는 빌딩 속으로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
가상훈련에 몰두하던 이한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시에라를 찾아가 다짜고짜 그녀를 데리고 셔틀에 탑승했다.
혹독한 훈련에 돌입해 어떻게든 본인의 능력을 상승시키려고 노력 중이던 시에라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이한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셔틀은 수중통로와 지하통로를 지나 어디론가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기에 주변의 광경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확인할 수 없는 건 또 아니었다.
따라서 주변을 스쳐 가던 광경을 무심한 눈빛으로 주시하던 이한은 옆에 앉은 시에라를 바라봤다.
“시에라.”
“예.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타카스에 다시 가게 될 것 같다.”
“······. 타카스는 제게 한을 잃은 곳이고 또 한을 찾은 곳이에요.”
“음?”
“우리가 함께했던 과거의 임무들을 기억하나요? 기억하지 못하겠죠. 그곳에서 당신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어요. 거의 모든 기억을 말이에요.”
이한은 뭔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묵직한 돌이 얹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한 이드라실을 사랑했다. 그리고 한 이드라실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이한이라는 나라는 존재는 그림자와 같은 거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 나 역시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러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는 이한을 바라보던 시에라는 이한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한. 한 이드라실. 당신이 나에 대해 기억하는 첫 모습은 타카스 행성에서 눈을 떠서 본 그 모습이겠죠?”
이 세계에 도착해서 처음 본 사람이 시에라였고 그게 첫 모습인 것도 맞았다.
따라서 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당신이 예전과 다르다는 건 벌써부터 눈치챘어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죠.”
“음······.”
침음을 뱉는 이한의 얼굴을 시에라가 그 아름다운 눈망울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를 사랑하나요?”
사랑? 사랑하냐고?
이 세계의 어디도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하지만, 언제부턴가 시에라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오늘도 무작정 그녀를 데리고 셔틀에 탑승했다. 눈앞에 펼쳐질 현실이 가져다줄 이질감도 그녀가 곁에 있다면 산들바람처럼 흩어질 테니까.
그 시점이 언제부터인지는 글쎄 나도 모르겠다. 첫 만남에서부터인지 그녀가 내 목숨을 구해주고 난 이후부터인지 대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어느새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이 지랄 맞은 세상에 온 이유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만큼. 어느새 나는 시에라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
“······.”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이한이 강렬한 눈빛으로 시에라에게 말했다.
“사랑해. 이 지랄 맞은 세상에 온 걸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시에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한의 뺨을 쓰다듬었다.
“저도 사랑해요. 그거면 된 것 아닌가요?”
“그래. 맞는 말이야.”
이한은 시에라의 얼굴을 부드럽게 당겨서 키스했다. 다시 목에 키스하고 그녀의 모든 것에 키스했다. 그렇게 이한과 시에라는 둘만 있는 셔틀 안에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
워가 이끄는 드론과 비행형 크락투가 맞붙기 전 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의문이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날은 이한 자신이 살던 지역으로 향하던 길이었으니까.
가서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생년월일과 이름을 지닌 이한이라는 자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언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잊어버렸다.
륭샤오핑은 기스모토 히데키를 사살하는데 실패했다.
갑자기 한국으로 향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륭샤오핑의 보고때문이었다. 상파울로에서 기스모토 히데키의 행적이 발견되었고 곧 사살할 거라는 짤막한 보고 말이다.
륭샤오핑의 보고에 암살 당할 수도 있었다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지역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과거가 줄줄이 떠오르자 이한은 문득 궁금해졌다.
이 세계가 미래세계의 어디쯤이라면 이한 자신도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았고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불안했다. 한편으로 없기를 바랐고 한편으로 있기를 바랐다. 한편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한편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묻어 두었는데 그것들이 암살자인 ‘기스모토 히데키’의 이름을 듣는 순간 연쇄적으로 터져나왔다.
그의 존재나 이름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겠지. 그 가운데 륭샤오핑이 언급한 기스모토 히데키는 불씨가 되었을 뿐이고.
『격돌합니다.』
워의 보고가 이어졌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
결국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이유나 필요도 없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다. 이한은 어떤 방향으로든 그 부분을 정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시에라와 함께하는 이 순간으로 충분했다.
그러니 승리한다. 이 크락투 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어서 클론 군단도 쓸어버리겠다.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
화면에 확대된 비행형 크락투의 모습은 크락투의 모습이 그러하듯 저마다 천차만별이긴 했으나 날개가 달린 모습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 날개를 퍼덕이며 날지는 않았다. 공기라고는 전혀 없는 우주공간에서 날개를 아무리 퍼덕여봐야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으니까. 드론 등이 그러하듯 추진할 수 있는 뭔가를 뿜어내며 우주공간을 부유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게 가스인지 액체인지 뭔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비행형 크락투는 이리저리 뭉치더니 대략 다섯 무리 정도로 나뉘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놈들도 순양함 헬시온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걸 파악했다는 뜻이다.
워는 드론을 산개시켜 비행형 크락투를 포격하기 시작했다. 레일건에는 비할 수 없지만 50mm 기관총을 장착한 드론이 발사한 탄환은 비행형 크락투의 살점을 짓이겨 놓기에 충분했다.
퉁퉁퉁퉁퉁!
키에에엑!
키에엑!
사방에서 살점이 찢기고 터져나가는 소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놈들도 반격하기 시작했다.
산성액으로 보이는 것이 탄환처럼 빠르게 날아와 드론을 뒤덮자 뭐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녹아버렸다.
콰아아앙!
콰아앙!
물고 물리는 대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워는 우주모함 디카르마타에 장착된 기관총과 레일건까지 이용해서 비행형 크락투를 절멸시켜나갔다.
투두두두둥! 투두두둥!
드론과 이리저리 뒤섞여 있어 오발사격을 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워는 정확하게 비행형 크락투만 격추시켰다.
키에에엑!
키에엑!
콰지지지직!
탄환 등에 의해 피와 살점이 흩뿌려지자 핏방울은 완전한 구를 그리며 우주공간을 둥둥 부유했다.
함교에 있던 승무원들은 워의 정교하면서도 확실하게 적을 제거하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왜 초인공지능이 초인공지능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사령관님! 크락투 모함이 지금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은 비행형 크락투를 발출합니다. 드론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이에 이한은 아미드 함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미드 함장!”
아미드 함장은 이한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하달했다.
“모든 요격기를 발출한다! 실시!”
“실행합니다.”
이윽고 디카르마타에 탑재된 무수히 많은 요격기가 파일럿의 조종 아래 빠르게 우주공간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황이었기 지체하지 않고 출격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아미드 함장은 편대장은 물론 모든 조종사들에게 일괄적으로 통신을 연결한 뒤 말했다.
“코어 주포 포격을 준비 중인 헬시온을 무조건 사수하라! 아울러 폭격기가 거대한 크락투에게 포격을 가할 수 있도록 길을 열도록! 이상!”
물속에서 잉크가 이리저리 퍼져가는 것처럼 요격기들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이어질 전투에 대비했다.
크락투 모함에서도 실로 엄청난 숫자의 비행체들이 넵튠 8함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우주모함 디카르마타는 물론 구축함 케르베르스, 호위함 프로그레타 등도 쉴 새 없이 포격을 가하고 있지만 대개 함선과 싸우기 위한 무기가 대다수였기에 요격기처럼 재빨리 움직이는 물체를 포격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요격기급의 화력으론 함선에 극심한 타격을 입히긴 어렵지만 폭격기는 말이 다르다. 요격기가 폭격기가 함선에 폭격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다면 함선은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적함과 전투를 치른다면 패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아직 폭격기에 준하는 비행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함대를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막강한 에너지포를 날릴 수 있는 놈들에게 없을 거라 단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따라서 대다수 함선은 크락투의 역습에 주의하면서 요격기를 지원하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함선은 머물러 있고 요격기 등이 전투를 치르는 모습은 여러 거점을 두고 병사들이 전투를 치르는 모습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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