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debuff RAW novel - Chapter 163
제161화.
“흠.”
축융로를 손에 넣은 연오랑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 투박한 고대의 향로를 살펴보았다.
‘어마어마하네.’
연오랑은 축융로 안에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이 세상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한 화기(火氣)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심안으로 볼 필요도 없이, 가장 강력한 화기가 깃들어 있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느 화산이든 이걸 집어넣으면 당장에 폭발을 일으키겠어.’
축융로의 화기는 땅 아래 불의 고리와 만나는 순간 화산을 대폭발시키는 매우 위험한 물건이었다.
어디 내다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다른 데 쓰임새가 있지도 않았다.
물론 법보로서 본래 가치는 있을 테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언제든 중원 대륙의 3분의 1이나 되는 광활한 영토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
그게 축융로가 가지는 무서운 점이었다.
“이런 물건은 존재해선 안 되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축융로를 챙길 마음이 싹 달아나 버렸다.
쓸 데도 없는데 핵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라, 영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꽈아아악!
내공을 끌어올린 연오랑이 축융로를 세게 움켜쥐었다.
화르르르르!
연오랑의 손에서 피어오른 시퍼런 강기가 축융로를 휘감았다.
그러기를 몇 초.
쨍그랑!
정체불명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축융로가 산산조각이 되어 바스러졌다.
“저, 저런!”
“축융로를 박살내 버리다니.”
“맙소사.”
백련교도들은 연오랑이 축융로를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린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축융로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법보.
대단히 뛰어난 신병이기(神兵利器)를 제작할 때 단단한 금속을 녹이는데 필요한 물건이었다.
역사상 뛰어난 보검들 중 상당수가 축융로의 불꽃을 이용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기도 했다.
술법가 혹은 대장장이들이라면 꿈에도 그리는 법보가 바로 축융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귀한 보물을 저렇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산산조각 내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놀라긴.”
연오랑이 백련교도들을 향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고. 이제…… 죽어야겠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연오랑은 백련교도들을 살려둘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개과천선?
‘필요 없지.’
백련교도들은 이미 악행을 저지를 대로 저지른 인간들이라, 개과천선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건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였다.
여태 그들의 손에 죽어간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기타 등등등.
연오랑은 그 어떤 사죄, 변명, 핑계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펄럭!
연오랑이 손을 휘저었다.
촤라라라라라라!
소맷자락에서 뻗어 나간 혈화비접들이 칼날의 폭풍이 되어 백련교도들을 휩쓸었다.
그 결과.
“으악!”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악!”
백련교도들은 만천화우 죽음의 꽃비에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날카로운 표창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모습이란 정말이지 끔찍하고, 또한 참혹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오죽했으면 아미파 무승들이 불호를 외우며 죽은 백련교도들의 명복을 빌어주었을 지경이었다.
물론 냉혹한 연오랑은 동정은커녕 아무런 감흥도 없었지만.
“뀨! 주인놈아! 고생했다! 뀨우!”
“근데 꼬꼬는?”
“뀨! 저기 봐라!”
하늘 위에서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 구구구!”
“저, 저리 가라! 저리 가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전서구 새끼야! 으악! 으아아아아악!”
“구! 구구구!”
꼬꼬가 피투성이가 된 남화요선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마구 쪼아 대고 있었다.
남화요선의 살점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 있는 걸 보면, 꼬꼬에게 아주 호되게 당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남화요선이 꼬꼬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아예 없었다.
남화요선이 탄 황학은 높게, 오래 날 수 있을지언정 그 속도가 매우 느렸다.
일직선으로 쭉 비행할 때야 빠를 때도 있겠지만, 문제는 기동성.
거대한 황새인 황학은 공중에서 그 기동성이 아주 형편없는 영물이었다.
장거리 비행에는 능하지만,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요리조리 민첩함 움직임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작고 날렵한 꼬꼬의 공격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던 것이고.
“영감탱이 잘 걸렸다.”
연오랑이 역천검제와 싸울 때도 내버려두었던 소매를 슥슥 걷어붙였다.
남화요선과는 중양절 사건 당시부터 악연으로 엮인 사이.
그간 황학을 타고 내빼는 바람에 번번이 놓쳤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금 연오랑은 현경의 경지인 500레벨을 향해 나아가는 상태.
황학을 탔다고 할지언정, 지금 연오랑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요사스러운 노친네. 잘 걸렸다.”
연오랑이 으르렁거리더니, 있는 힘껏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 * *
“……!”
“……!”
“……!”
그 광경을 본 모든 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부웅!
제자리에서 힘껏 뛰어올랐을 뿐인데, 연오랑은 수십 장 높이를 솟구치는 신기를 선보였다.
이게 과연 사람이 보여 줄 수 있는 도약력인가 싶었으나,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현경의 고수인 역천검제를 쓰러뜨렸는데, 수십 장을 뛰어오르는 게 딱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전서구 새ㄲ…… 히익?!”
꼬꼬를 상대하느라 정신없었던 남화요선은, 공중에서 연오랑과 눈을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땅 밑에 있어야 할 연오랑이 대체 왜 공중에 둥둥 떠 있단 말인가?
물론 연오랑이 허공비행을 선보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높이 뛰어올랐을 뿐.
타핫!
그러는 사이 황학의 등에 올라탄 연오랑이 남화요선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어이, 영감탱이.”
“……!”
“우리 할 얘기가 많지?”
“네, 네놈은.”
“딱 대.”
연오랑이 남화요선의 주둥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직!
“캬아아악!”
남화요선이 비명을 내질렀다.
우수수수수수!
피 묻은 누런 이빨이 사방팔방으로 흩날렸다.
“컥, 커헉!”
연오랑의 주먹 한 방에 이빨이 몽땅 나가 버린 남화요선은, 컥컥 피를 쏟아내며 고통스러워했다.
“야.”
연오랑이 황학에게 말했다.
“그만 고생하고 내려가자.”
“꾹, 꾸욱?”
“저번에 보니까 학대당하던데. 주인 바뀔 절호의 기회니까, 그냥 땅으로 내려가자고.”
“꾸, 꾸우우욱…….”
황학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곧 지상을 향해 비행했다.
그간 남화요선에게 심심하면 머리통을 얻어맞고 폭언·욕설을 당하는 듯 동물학대(?)를 당한 게 사실인지라 더는 고통받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연오랑과 남화요선을 태운 황학이 땅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일루와.”
“컥, 커헉!”
“영감탱이가 미쳐 가지고.”
연오랑이 남화요선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황학의 등 위에서 끌어내렸다.
“이, 이 개 같은 새 새끼야! 감히 주인을 배신…… 컥!”
“영감탱이 정신 안 차려?”
“끄아아아악!”
“뒈져, 이 영감탱이야.”
뒤이어 실로 끔찍한,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구타가 가해졌다.
노인공경…… 이 아니라.
노인공격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퍽! 퍽! 퍼억! 퍽! 빠악! 퍽퍽! 빡! 빠아악! 퍽! 퍼억! 퍽!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제, 제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정말이지 원초적이고 무식한 폭력 앞에서, 남화요선은 철저히 무력했다.
애초에 술법가라는 특성상 아무래도 육체적인 능력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데다가, 나이도 많아서 구타를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꽥!”
결국, 남화요선은 몇 대도 버티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에라이.”
연오랑이 입맛만 버렸다는 듯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약해 빠져 가지고. 쩝.”
이제 슬슬 두들겨 패나 싶었는데, 그걸 못 참고 기절해 버린 남화요선의 내구도(?)에 못내 불만인 연오랑이었다.
“뀨! 주인놈아! 벌써 그만두냐! 뀨우!”
“응?”
“주인놈 성격 같았으면 강제로 깨워서라도 패야 하는 거 아니냐? 뀨우?!”
“그건 그런데.”
연오랑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좀 피곤해서. 쉬다 와서 나중에 응징하려고.”
“뀨우?”
“지금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청성파 사건부터 이번 아미파 사건까지.
연오랑은 지난 며칠 동안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 며칠 동안 내내 게임만 했던 것이다.
퀭~~
그러다 보니 연오랑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피로에 찌들대로 찌들어서, 이제는 진짜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뀨우! 주인놈아! 그럼 좀 쉬다 와라! 안색이 안 좋다!”
“그러려고.”
연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무리하긴 했지.”
물론 체력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강도 높은 운동을 해 온 덕분에 육체적 강함과 지구력은 오히려 젊을 때보다 지금이 나았다.
젊은 게이머들조차 연오랑처럼 오랜 시간 집중해서 게임하는 건 불가능할 게 분명했다.
“나 좀 쉰다.”
“뀨! 알겠다!”
“어르신이 뒷정리 좀 해 주세요. 저 좀 쉬다 올게요.”
연오랑이 당괴괴를 돌아보았다.
“그래, 아주 고생했구나. 한 며칠 푹 쉬도록 해라. 여긴 노부가 알아서 할 터이니.”
“예, 부탁드립니다.”
연오랑은 당괴괴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연 대협께 감사드립니다!”
“연 대협께 감사드립니다!”
“연 대협께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정파무림인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로그아웃하는 연오랑을 향해 존경을 표시했다.
연오랑이 이번 아미파에서 보인 활약은, 전설로 남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 * *
태성은 로그아웃하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거의 1주일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게임만 했더니 완전히 지쳐 버려서, 거의 의식이 꺼지듯 잠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잤을까?
“……으음.”
태성은 무려 12시간이나 지나 있는 걸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길어야 한 8시간 자겠지 했는데 하루의 절반을 자 버리다니…….
‘설화는 나갔나?’
침대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이 돼 가지고 게임한다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네.’
태성은 지난 1주일 동안의 게임 삼매경을 깊이 반성하면서, 앞으로 한동안은 아내에게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침실을 나서 거실로 나갔는데.
“어? 집에 있었네?”
아내 용설화가 태성을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잘 잤어?”
“으응.”
괜히 멋쩍어진 태성이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오빠.”
“응?”
“잠깐 이리와 봐.”
용설화가 소파 옆을 탁탁 두드리며 태성을 불렀다.
‘헉!’
태성은 그런 아내의 부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 오늘 혼나는 날인가?’
하긴.
지난 1주일 동안 가정에 소홀하긴 했다.
혼나도 싸지…….
태성은 주춤주춤 주눅 든 표정으로 아내에게 다가가 곁에 앉았다.
“오빠.”
“응.”
“나, 할 말 있어.”
“뭐, 뭔데?”
태성은 혼날 걸 각오했다.
이제 곧 아내의 무시무시한 잔소리가…….
“이거.”
“응? 이게 뭐야?”
태성은 아내가 내민 길쭉한 막대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걸 어디서 봤더라?
분명 본 적이 있는 물건인데?
자, 잠깐.
저거 설마…….
‘임신테스트기?!’
태성은 막대기의 정체를 알아보고, 거기에 두 개의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걸 보고 흠칫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