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debuff RAW novel - Chapter 169
제167화.
‘제압하자.’
연오랑이 햄찌에게 신호를 보냈다.
‘뀨! 알겠다!’
연오랑과 햄찌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알아온 사이.
굳이 입을 열 필요 없이,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셋, 둘, 하나.’
‘뀨!’
연오랑과 햄찌가 슬쩍 경비병들의 등 뒤로 돌아가 그들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퍽, 퍼억!
털썩!
쓰러진 경비병들.
스으으!
연오랑은 곧장 경비병들에게 독기를 주입해 그들을 천령독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인이시여.”
“주인이시여.”
경비병들이 오체투지로서 연오랑에게 노예의 예를 올렸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냐? 백련교의 본거지냐?”
“그건 아닙니다.”
천령독인이 된 경비병이 대답했다.
“이곳은 백련교에서 납치해 온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곳입니다.”
“아?”
그러니까, 백련교는 진시황릉을 비밀 거점으로 삼아 병력을 생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 책임자는 누구야?”
“좌호법 사령마선이 황릉의 총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사령마선이 누군데?”
“사령마선은…….”
경비병에 따르면, 사령마선은 인간을 세뇌시키거나 망자의 혼을 소환하는 등 사령술법에 정통한 술법가라고 했다.
술법 문파인 모산파 출신인 사령마선은, 무인으로 따지자면 화경의 경지를 넘어 거의 현경의 경지에 근접해 있다고도 했다.
즉, 술법가로서는 남화요선을 아득히 뛰어넘는 최정상급의 기량을 갖춘 고수라는 뜻이었다.
“오호라.”
연오랑은 사령마선의 목을 반드시 따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백련교가 비정상적으로 강한 전력을 갖출 수 있었던 비결에는 사령마선의 각종 술법들과 대법들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중원 전역에서 납치한 사람들을 여기서 세뇌시키고 백련교의 꼭두각시로 써먹는단 말이지?”
“예, 주인이시여.”
“그럼 방어 병력은 얼마나 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많지는 않습니다. 보안이 중요한 곳이기에 사람보다는 강시들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하긴.”
연오랑이 그럴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보안이 허술해진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일수록 각종 생필품이 많이 필요하기에, 필연적으로 보안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필품이 필요하지 않은 강시들로 방어 병력을 대체한다면, 오고 가는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 테니 보안 유지에는 유리할 터.
“안쪽에는 뭐가 있냐?”
“납치해 온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 외엔?”
“딱히 없는 것으로 압니다.”
연오랑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경비병들에게 정보를 습득한 후 다시 진시황릉 깊숙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마어마하네.”
“뀨! 그렇다! 이렇게 큰 무덤 처음 본다! 뀨우!”
비록 어두컴컴했지만, 진시황릉의 규모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황궁을 지하에 옮겨 놓은 듯 규모가 대단했으며, 곳곳에 낸 배수로에는 은은한 빛깔의 수온이 마치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전각은 지금의 황궁보다도 더욱 큰 위용을 자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 전각 뒤에 자리한 부장품이 얼마나 될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재건 비용은 걱정 없겠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만일 이곳에 있는 부장품들 중 극히 일부분만 챙긴다 해도 천하제일문의 건물 규모를 황궁만큼 거대하게, 아예 성 하나를 쌓아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한낱 사악한 종교집단 따위가 어디서 그런 자본력이 나왔겠어. 각종 사업도 벌이면서 야금야금 여기 있는 것들을 내다 팔아서 자금을 마련한 거겠지.’
연오랑이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때.
“네놈들은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잡아라!”
“게 서지 못할까!”
고요하던 진시황릉 내부가 갑자기 시끌시끌해졌다.
“헉?!”
“뀨?!”
“구?!”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연오랑, 햄찌, 꼬꼬는 발각당한 줄 알고 제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근데, 아니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백련교도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맨 뒤쪽에서 쫓아오는 백련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카렐?!”
연오랑은 저 멀리서 백련교도들과 맞서 싸우는 유건명을 보고 카렐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유건명이 사용하는 무공과 검법이 과거 카렐이 구사하던 것과 거의 유사했던 것이다.
* * *
판타지 서버의 검술과 무림 서버의 검법은 다르다.
무림 서버의 검법이 파괴력이 약하다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빠르고 정교하며 유연한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 서버의 무림인들은 군인이 아니기에 갑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중원 대륙의 왕조들은 군벌이 생기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기에,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이 갑옷과 장병기로 중무장하는 걸 용납하지 않기도 했고.
반대로, 판타지 서버의 검술은 갑옷을 착용하는 것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판타지 서버 사람들은 무림 서버 사람들보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더욱 세기에 검을 들더라도 더욱 무겁고 큰 것을 선호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만큼 무림 서버의 내공심법이 워낙에 뛰어나기에, 에너지 자원의 효율성에서는 판타지 서버가 불리했지만.
그런데 지금 유건명이 사용하는 검술은 판타지 서버의 검술과 매우 엇비슷했다.
정교하고 유연함을 포기하는 대신에 파괴력을 잘 살린 그런 검술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아아악!
번쩍!
지금의 유건명은 몸에서 강기가 뿜어져 나올뿐더러,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연오랑은 그런 유건명이 사용하는 무공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머신 건 하트.
과거 카렐은 전투 중 심장이 파괴되어 죽을 뻔했다.
그러나 기계심장을 이식받은 뒤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고, 심박수를 가속시켜서 모든 신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스킬까지 터득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유건명이 사용하는 무공이 바로 그 카렐의 것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기억을 되찾았구나.’
연오랑은 유건명이 전생의 기억, 즉 카렐로서 각성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전생에 사용하던 검술과 스킬을 저렇듯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크아악!”
“이런 빌어먹을!”
백련교도들은 그런 유건명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중원에서는 상대해본 적 없는 특이한 검술.
그리고 오직 카렐만이 사용하던 특유의 심장 가속 능력.
그 두 가지 낯선 무공을 구사하는 유건명의 무력이란, 어지간한 화경의 고수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감히.
– 본교의 행사를 방해하는 자…… 용서하지 않으리라.
어디선가 수없이 많은, 족히 수백여 구는 넘을 것 같은 강시들이 나타나 유건명 일행을 포위했다.
이곳 진시황릉을 지키는 건 인간이 아닌 강시들이라던 경비병의 말이 사실이었다.
사령강시.
일전에 장강에서 장강염마의 수로맹을 지원하던 바로 그 강시들이 이곳 진시황릉을 지키던 주요 병력이었던 것이다.
“크, 크윽!”
유건명이 차츰차츰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건명, 그러니까 카렐의 무공은 전투력을 단기간에 올리는데 특화된 것.
그렇다는 말은, 순간적으로 적을 압도해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데는 뛰어나지만 장기전이나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는 필연적으로 취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악!”
유건명이 강시의 일장에 가슴팍을 얻어맞고는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사령강시 수백 구를 상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 죽어라.
– 네놈도 우리와 같아질 것이다.
사령강시들이 쓰러진 유건명을 향해 달려들던 바로 그 순간.
촤라라라라락!
연오랑이 소맷자락으로부터 혈화비접들이 뿜어져 나갔다.
* * *
‘아…….’
유건명은 절망했다.
기껏 백련교의 술법가들을 제압한 뒤 장문인 양봉길, 사제들, 그리고 요리사인 덕팔이와 함께 이곳을 빠져 나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백련교의 경비병들에게 발각되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백련교도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와 공격을 가해오고, 사령강시들까지 가세하니 유건명으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만약 전생의 몸이었다면 이마저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을 터.
하다 못해 몸 상태가 조금만 정상이었더라면 충분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육체개조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내공마저 이질적이라 이래저래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애초에 유건명이 가진 무공은 장기전이나 일대 다수의 전투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기도 했고.
‘전하.’
유건명은 자신의 유일한 주군이자 영원한 주군이며, 또한 사문의 대사형이기도 한 연오랑을 떠올렸다.
환생한 신하를 찾기 위해 머나먼 이역만리도 아니고, 차원이동까지 해 온 주군.
그와 제대로 된 재회를 나누지도 못한 채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하면, 죽어서도 눈이 감기지 않을 것 같았다.
‘절대 죽을 수 없다.’
유건명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투지였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살아남아서 주군을 다시 만나 뵙고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그 집념이 유건명을 움직이게끔 했다.
그러나…….
쾅! 콰앙!
사령강시들의 공격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의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름다운 꽃의 비(雨)가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잔혹함을 품고 있는 죽음의 꽃비.
“……!”
유건명은 갑작스레 쏟아져 내린 이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고, 또한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품은 무공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만천화우.
전생에서부터 존경하는 주군이 적들을 한꺼번에 즐겨 사용하던 바로 그 무공.
비록 전생의 것과 비교했을 때 위력이 많이 줄어들어 있을지라도, 누가 뭐래도 만천화우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크아아아아아아아악!
– 으아아아아아악!
사령강시들이 한순간에 한 줌 핏물이 되어 갈려나갔다.
유건명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환생한 그를 찾기 위해 다른 세계까지 차원이동을 해 온 그의 주군이.
“……전하.”
유건명이 홀리듯 연오랑을 향해 다가섰다.
씨익!
연오랑이 늘 그렇듯, 예전과 같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윽.
유건명이 연오랑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유건명은 천하제일문의 대제자 유건명이 아니었다.
프로아 왕국의 국왕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의 신하이자 제2근위기사단의 단장이며, 비어만 공작령의 후계자였다.
“신(臣) 카렐 데 비어만.”
카렐이 그렇게 말하며 연오랑을 올려다보았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런 카렐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영원히 다시 모실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눈앞에 존경하는 주군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록 겉모습을 달라졌을지언정, 여전히 아끼는 신하인 자신을 향해 웃어 주고 계셨다.
“카렐.”
연오랑이, 아니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가 카렐을 일으켜주었다.
그리고는 카렐을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안아주었다.
“그간 잘 있었냐?”
“저, 전하.”
“보고 싶었다, 인마. 그때는…… 고마웠다.”
지크가 카렐의 최후를 떠올리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세계, 즉 판타지 서버를 지켜내고자 주군인 지크를 대신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그 고결하고 숭고했던 희생에 대한 찬사였다.
“그리고 미안했어.”
연오랑이 카렐의 양 어깨를 붙들고 힘주어 말했다.
“그땐 내가 너무 약해서, 힘이 부족해서 지켜주지 못했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 아직까지도.”
그와 동시에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