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debuff RAW novel - Chapter 172
제170화.
태성의 복귀는 전 세계 BNW 게이머들에 이슈가 될 게 분명했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후에 단 한 번도 복귀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태성이었기에, 그 파급력은 장난이 아닐 터.
무림 서버뿐 아니라 다른 서버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 또한 태성에게 집중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쩝. 한동안 피곤해지겠네.’
판타지 서버에서 태성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 그냥 태성을 싫어하는 안티들, 그리고 전설적인 프로게이머인 태성을 잡고 명성을 얻으려는 떠오르는 샛별들 기타 등등등.
온갖 게이머들이 태성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귀찮게 굴 게 뻔했다.
한동안은 온갖 놈들을 상대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어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물론 현재 연오랑의 무력이라면 그 어떤 게이머가 덤벼들든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게이머들로 이루어진 거대 문파들이 연합한다 한들 연오랑 하나를 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황천독무를 켜고 돌아다니기만 해도 어지간한 게이머들은 제자리에서 즉사할 테니까, 실상 연오랑과 직접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현재 무림 서버의 랭커들 역시 아직 화경의 경지에 오른 사람도 없다고 알려져 있어서, 연오랑의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기도 했다.
마치 그늘에 쉬고 있는 수사자에게 들러붙은 날파리라고나 할까?
‘이젠 상관없긴 하지.’
만약 고자인 상태였다면, 연오랑은 절대 나서지 않았을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판타지 서버만큼 절대적인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무림 서버에서 랭킹 1위를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상태라면 복귀 소식이 알려진다 해도 역시 한태성은 명불허전이란 평가를 받을 테니, 망신을 당할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연오랑이 견쌍섭을 향해 말했다.
“백련교와의 개인적인 원한이 있긴 하지만, 이번 사태에는 힘을 보태드리기가 어렵겠네요.”
“아…….”
견쌍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현재 대명제국은 연오랑의 힘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무시무시한 무력을 보유한 진시황을 상대하려면, 연오랑과 같은 절대고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도움을 거절하다니…….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저는 대명제국의 신하가 아니고, 협객도 아닌데요.”
“…….”
“왜 제가 대명제국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겁니까?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 그건.”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협객이 아닙니다.”
연오랑이 딱 잘라 말했다.
“아무 대가 없이 대신 싸워 주는 사람 아니니까, 무턱대고 도움을 요청하진 말아 주세요.”
“…….”
“애초에 백련교를 처단하는 것도 대명제국이 할 일 아닙니까?”
그런 연오랑의 말에 견쌍섭은 차마 할 말이 없어 입을 꽉 다물어야만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지간한 협객이 아닌 이상에야 대뜸 도와달라는데 만사를 제쳐놓고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오랑과 같은 고수가 무슨 종놈도 아니고.
“말씀은 알겠어요.”
견쌍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 보고를 올려 연 공자께서 만족하실 만한 포상을 건의하겠습니다.”
“그럼 얘기가 다르죠.”
“…….”
“얼마까지 생각하세요?”
견쌍섭은 연오랑의 달라진 태도에 황당해서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
“…….”
그런 견쌍섭과 함께 온 동창 요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더니, 보상을 이야기하자마자 자세를 다잡고 눈을 반짝이는 게 어이가 없었다.
연오랑쯤 되는 고수라면 금전적인 부분에서 초탈할 만도 하련만, 무슨 삼류 시정잡배나 돈에 무공을 파는 낭인이랑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아, 참고로.”
연오랑이 덧붙였다.
“저 돈 많습니다.”
“네?”
“부자라고요. 평생 돈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연오랑이 씨익, 웃어 보였다.
“…….”
견쌍섭은 연오랑이 뭘 말하는지를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연오랑이 부자임을 피력하는 이유는, 딱 봐도 돈 말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게 분명했다.
예컨대, 각종 무공이나 특혜 같은 것들 말이다.
‘큰일이야. 연 공자의 성향이라면 관직을 하사한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녀는 동창제독이니만큼, 연오랑이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관직 같은 걸 내렸다간, 황제가 천하제일문을 인질 삼아 연오랑을 쥐락펴락 부려먹으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연 공자를 자극해선 안 돼.’
견쌍섭은 연오랑의 성장 속도로 봐서, 그가 곧 천하제일인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이미 천하제일인은 연오랑일지도 몰랐다.
그런 상대를 자극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위였다.
만일 연오랑이 독한 마음을 먹는다면, 황제조차도 암살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즉, 지금 대명제국은 절대 갑의 위치에서 연오랑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견쌍섭이 고심하는 표정으로 연오랑에게 말했다.
“폐하께 연 공자께서 만족할 만한 포상을 얻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야 좋죠. 헤헤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연락드리겠어요.”
견쌍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오랑은 더 이상 흥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견쌍섭도 바보가 아닌 이상 후려치려고 들지는 않을 테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만족할 만한 보상을 가져올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 * *
느긋한 연오랑과는 다르게, 대명제국의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이번 사태를 섬서성에서 저지하지 못한다면, 중원 전체가 전쟁에 휩싸일 게 분명한 상황.
안 그래도 시황제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섬서성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동안 변방에서는 이민족들의 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난다면, 지방 귀족들마저 군벌로 변해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대명제국에 의해 통일되었던 중원 천하는 사분오열됨과 동시에 전국시대가 열릴 터.
이에 황제는 금의위 도독과 동창제독, 그리고 고위 관료들을 불러 모아 대책마련에 나섰다.
“폐하, 천하제일문의 문주에게 번왕의 지위를 하사하시고 그 일대에 영구적인 자치권을 부여하소서.”
“……그런 보상까지 해줘야 한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그 방법만이 유일하옵니다.”
견쌍섭의 간언에 황제는 한동안 고심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무림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천인들이 약해진다면 황제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황제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보다 대명제국이 몰락하는 게 더욱 빠를 터.
아쉽지만, 이번에는 연오랑의 힘을 빌려 이번 사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 하라.”
황제가 결단을 내렸다.
“연오랑이 만족할 만한 모든 혜택을 제공하라.”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렇게 견쌍섭은 황제의 윤허를 얻고, 다시 연오랑을 만나기 위해 섬서성 서안으로 향했다.
“오셨어요?”
다시 만난 연오랑은 같은 객잔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당장 서안은 전시상황이라 긴장감이 감돌고, 거리는 흉흉했으며,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로 인해 분위기가 사뭇 흉흉했다.
그런데 연오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여유가 넘치던지, 그 온화한 견쌍섭조차 속이 터져 눈살을 찌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 공자에게는 이 세상 모든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견쌍섭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보고에 따르면, 연오랑은 사실 무적천존의 후예.
삼세제일인의 직계 제자라면, 아무리 못해도 현경의 경지를 넘어 생사경의 경지에는 올라본 경험이 있단 뜻이었다.
천외천의 경지에 이른 그에게 있어 평범한 이들의 세상 따위, 시시하고 부질없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폐하께서 천하제일문의 문주에게 번왕의 작위를 약속하셨어요.”
“흠.”
연오랑이 번왕이라는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번왕(藩王)이란 일종의 독립된 지역의 군주를 뜻하는 작위로서, 사실상 한 지역을 통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치권은?”
“천하제일문을 중심으로 그 지역 일대의 영토를 완전히 하사하시고, 영구적인 불가침을 약속하셨어요. 자치권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죠.”
“면세 혜택은? 예컨대 관세라던가.”
“그, 그건.”
견쌍섭은 연오랑이 세금, 특히 관세를 지적하자 정신이 나갈 뻔했다.
비록 작지만 영토를 할당받았으면 만족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연오랑은 대명제국과 자치권을 가진 천하제일문의 영토 사이를 오가는 물류의 흐름마저 예측하고, 관세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연오랑이 견쌍섭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영리하고 이치에 밝다는 뜻이었다.
힘만 센 원숭이, 그러니까 죽자고 무공만 익힌 무골(武骨)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관세가 아직 협의가 안 됐나 보네요?”
연오랑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견쌍섭을 압박했다.
‘내가 어? 이래봬도 황제 출신인데!’
연오랑은 판타지 서버의 최강대국인 프로아 제국의 황제.
황제로서 온갖 업무를 처리하느라 게임 속에서도 문서 작업에 시달렸던 그가, 이런 중요한 부분을 놓칠 리 없었던 것이다.
“협정서 초안부터 다시 작성 부탁드립니다. 흥.”
연오랑이 견쌍섭을 향해 콧바람을 내뿜으며 슬쩍 돌아앉았다.
“…….”
견쌍섭은 협상이 결렬되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남경으로 향해야만 했다.
* * *
연오랑과 대명제국이 협상안을 가지고 옥신각신 씨름하는 동안 서안의 방어선은 점점 더 위태로워져만 가고 있었다.
진시황은 전황이 지지부진하자 극도로 분노했고, 더욱 거센 공격을 가하며 토벌군을 몰아붙였다.
사실 진시황이 서안을 점령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까지는 아니었다.
백만 병마용을 앞세운다면, 서안을 점령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진시황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병력을 신중하게 운용했기 때문이었다.
진시황이 가진 백만 병마용은 먹고, 마시고, 쉴 필요가 없는 존재들.
비전투손실이 없을뿐더러, 휴식과 보급이 필요하지 않은 군대였다.
그러나 그런 군대에도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병력의 보충이 없다는 것.
병마용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
그러니 한 번 파괴되면 재생이 불가능했기에, 병력 보충 역시 불가능했다.
즉, 진시황으로서는 병력을 잃으면 보충할 방법이 없으니 소모전을 피하면서 극도로 신중하게 군대를 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서안 방어선이 간신히 유지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하루 24시간 2주일 내내 계속된 전투에 무림인들, 관군들, 그리고 게이머들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다.
NPC인 무림인들과 관군들은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존재들.
게다가 그들은 한 번 죽으면 부활할 수 없으니, 전사자가 누적되어가면서 사기가 크게 꺾인 상황이었다.
급히 소집된 무림맹에서 파견한 각 문파의 고수들도 하루가 멀다고 죽어 나가거나 큰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게이머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물론 죽어도 49시간 후에 부활하니 사정이 좀 낫긴 했지만, 그래도 게이머들 역시 사람이니만큼 24시간 내내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최대한 접속한 상태에서 전쟁에 참여한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한 번 죽기라도 하면 사망 페널티로 아이템을 잃고 레벨이 떨어지니 아예 부담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방어선이 차츰차츰 무너지면서, 섬서성의 핵심 도시인 서안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최후의 방어선마저 위태로워지면서, 서안이 점령당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그렇게 최후의 방어선에서 연일 전투가 벌어졌다.
“으악!”
“크아아아아악!”
토벌군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진시황의 병마용들이 토벌군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이런 빌어먹을!”
토벌군에 속한 무림인들, 관군들, 그리고 게이머들은 절망했다.
더는 희망이 없었다.
서안 방어는 사실상 실패였다.
“에라이.”
“일단 튀죠.”
게이머들이 하나 둘 전선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서안을 내주게 된 이상 더는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필요가 없었기에, 일단은 사망 페널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탈영을 시도한 것이다.
게이머들의 탈영이 줄을 짓기 시작하자 전황은 더더욱 불리해졌다.
그렇게 서안을 방어하던 성이 무너지기 직전이던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어지는 천지개벽이 일어나 성벽을 공격하던 수천 여 기의 병마용들이 한 줌 흙이 되어 바스러졌다.
“……!”
“……!”
“……!”
모두가 그 경악할 만한 파괴력에 놀라던 그때.
쿠웅!
연오랑이 성벽 앞에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전설의 프로게이머 한태성.
판타지 서버 부동의 랭킹 1위인 그가 무림 서버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