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뜻밖의 사고 (5)
‘기다려.’
미쳐 날뛰는 맹견의 견주가 이런 기분일까. 당장이라도 파괴광선을 난사할 것 같은 오페라를 말리는 신혁의 심정이 그랬다.
[함선 운영지침에 따라 사령관님께 적성 사이오닉 반응을 보인 상대는 파괴해야 합니다.]‘테레사 함선의 사령관 사신혁의 이름으로 명한다. 대기하도록.’
[Copy that.]‘이럴 줄 알았으면 아스트랄 증폭기 속에 있는 한이 있더라도 진즉에 테레사함으로 복귀했을 텐데.’
신혁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미량이지만 아스트랄 에너지를 사용해서 딱 눈앞에 있는 적성 개체들을 토벌할 수 있는 사이오닉 에너지를 충전했다.
[현재 용신주의 사이오닉 에너지양은 약 38%입니다.]38%면 반중력 시스템을 가동하여 편하게 테레사함으로 복귀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에너지를 이딴 놈들을 때려잡는 데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일단 돌아가서 쉬자.’
여기서 사이오닉 에너지를 전부 소모해버린다면, 눈앞의 놈들을 곤죽으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더욱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힘겹게 테레사함으로 복귀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증폭기 속에서 최소 3일은 갇혀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테냐? 빨리 선택해라 백도화. 순순히 우리를 따르겠느냐 아니면 개처럼 끌려가겠느냐? 물론 저놈의 시체도 봐야겠지?”
대흉악노(大凶惡老) 좌철기가 더욱더 짙은 살기를 뿜어내며 백도화를 압박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백도화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좌철기와 마주한 상황에서 그 하나만을 상대로도 도주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격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4명의 일류무사들까지 그녀를 포위한 지금에서는 사실상 도주가 불가능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항복하는 게 맞아. 하지만 고당박 그놈에게 더럽혀지고 팔려 가듯이 후처가 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나아!’
백도화가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이렇게 된 거 저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놈이라도 더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겠다. 고당박 그놈도 인두겁을 쓴 사람인데 내가 죽었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 동생들을 해치진 않겠지.’
결심을 굳힌 백도화가 암암리에 공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희희낙락하는 좌철기와 달리 사신혁의 안색은 점점 창백하게 변해갔다.
[임시 코드네임 부여. 코드네임 : 백도화의 사이오닉 에너지가 은밀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곧 전투가 벌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사이오닉 흐름에 매우 민감한 신혁은 오페라의 경고가 들리기 전부터 백도화의 기세를 감지한 상황이었다. 평소의 아니 평소의 반의반만 되는 몸 상태였더라면 저런 놈들은 10초 안에 아작을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이지 단 한 톨의 사이오닉 에너지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잠시만요.”
백도화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을 때, 좌철기의 살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때까지도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고 손가락 하나 꼼짝 못 하고 굳어있던 놈이 움직였다.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좌철기와 백도화의 사이에 끼어들면서 말이다.
‘뭐야 이놈? 무공을 전혀 모르는 놈인가? 아니야, 차림새로 봐서는 외공을 익힌 놈 같기도 한데.’
무공을 익힌 적도 없기에 절정고수인 자신과 절정의 경지에 거의 근접한 백도화의 기세를 느끼지 못한 걸까?
‘내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외공만을 수련한 반쪽짜리 삼류무사였어.’
빠르게 신혁을 흩어보고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좌철기가 짐짓 노한 얼굴로 자연스럽게 기세를 모아 신혁에게 내쏘며 말했다.
“감히 어르신의 행사에 끼어들다니, 죽고 싶은 게냐?”
웬만한 삼류무사라면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릴만한 살벌한 기세였다.
“그럴 리가요. 그렇지만 말하는데 끼어들었다고 사람을 죽이다니요.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이놈이?”
발끈한 좌철기가 그대로 손을 휘둘러 신혁의 머리통을 날리려던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좌철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신혁을 죽이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지만, 백도화를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자자, 두 분 다 진정하시고 잠시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신혁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좌철기와 백도화를 돌아보며 계속해 말했다.
“두 분이 무슨 원한으로 얽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혁의 말에 백도화와 좌철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가 떠난 뒤에 두 분께서 서로 상의하여 일을 마무리 지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말이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틀렸어요.”
“아니 왜요?”
“저자는 결코 당신을 살려두지 않을 거예요.”
백도화의 말에 좌철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음침한 괴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클클클클, 저년의 말이 맞다. 우리가 저년을 데려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아니 될 일이야.”
“아, 예. 그렇군요.”
신혁이 김샜다는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해도 안 믿으시겠죠?”
“그럴 리가 있나? 자네가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이곳을 떠나도 된다네.”
“그 조건이 뭡니까?”
신혁이 전혀 기대하지 않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물어보았다.
“간단하네,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할 수 없도록 혀를 자르고 입을 뭉개고, 글로써도 알릴 수 없도록 팔다리를 자른다면 내 이곳에서 보내주겠네.”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살벌한 좌철기의 협박에도 신혁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혀를 자르고 입을 뭉개고 팔을 자르는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칩시다. 말도 글도 할 수 없게 만든다니까. 그런데 다리는 왜 자른다는 겁니까?”
“으하하하하하. 재밌는 놈이구나. 그래, 같잖은 놈들이 꼭 죽기 전에 재밌는 말을 한마디씩은 하기 마련이지.”
좌철기는 크게 웃으며 신혁의 말에 답했다.
“그야 당연히 발가락으로라도 붓을 집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군.”
신혁이 좌철기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 모습에 백도화가 어이가 없었는지 신혁에게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지금 이 상황에 겨우 그런 게 궁금해요?”
백도화의 입장에서는 생명이 경각에 달하고 인생을 결정지을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건만 무공을 익힌 흔적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남자가 저리 말하니 속이 탈수밖에 없었다.
‘지니고 있는 무기는 훌륭해 보이는데, 어찌 사람이 이 모양이란 말인가!’
신혁의 손에 차고 있는 굉뢰권갑과 빅토리노가 만들어준 명검을 보며 속으로 탄식하는 백도화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혁이 좌철기를 보며 물었다.
“저기 오는 마차같은 건 노인장의 일행입니까?”
“그렇다.”
좌철기의 뒤편에서 4개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일행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라기보다는 튼튼한 철로 만들어진 커다란 상자를 수레에 실어놓은 것 같은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여기 있는 이 소저를 아무도 모르게 제압하여 데리고 가실 요량이셨겠죠?”
“물론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놈이었고, 좌철기 일행의 목적은 백도화 역시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신혁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여기서 내가 찬황지존위군이네, 괴룡이네 떠들어봐야 헛소리하지 말라며 싸움이나 일어날 거 같고, 그렇다면 차라리…….’
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대화 내용을 되새기며 결론을 내린 신혁이 좌철기에게 그럴듯한 제안을 하였다.
“아까 여기 소저가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댁들이 모시는 사람이 섬서성 제형안찰사사의 적자라는 것 같던데 맞죠?”
“그래 맞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것이 네가 죽을 이유가 될 테지.”
“예, 뭐 죽이든 살리든 그건 댁들 능력껏 마음대로 하시고, 이왕 죽이실 거면 서로 편하게 갈까요?”
“무슨 말이냐?”
좌철기에 말에 더 이상 대답하기도 피곤했던 신혁은 다짜고짜 백도화의 손목을 잡았다.
“무슨?!”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제대로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삼류무사에게 손목이 잡힌 것이 부끄러웠는지 백도화가 화를 내며 손을 빼려 했지만, 이상하게 신혁에게 잡힌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걱정 마시고 저를 따르시면 됩니다.’
좌철기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백도화에게 속삭인 신혁이 그대로 거대한 철제상자와 같은 마차의 문을 열고 그대로 백도화와 함께 들어가며 말했다.
“뭐합니까? 출발 안 하고.”
좌철기가 하도 황당한 일이 벌어지니 어이가 없었는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출발해라.”
백도화마저 아무런 저항 없이 신혁을 따라 마차로 들어가는 것을 본 좌철기가 음흉한 눈으로 그녀의 위아래를 흩어보며 말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순순히 따르게 돼서 다행이군. 조금 있으면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고당박 공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좌철기에 말에 백도화는 속에서 천불이 끓는 것 같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이제 와서 화를 낼 수도 없었기에 신경질적으로 마차의 문을 닫았다.
콰아앙!
만년한철까지는 아니더라도 족히 백련정강정도의 강도를 지닌 마차는 밖에서 안을 볼 수 없었고, 유일한 출구는 마차에 들어올 때 사용한 작은 출입문뿐이었다.
백도화는 마차의 벽면을 조심스레 두들겨 보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끌고 들어온 걸까?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한 발버둥? 그것도 아니면 뭔가 대책이 있나?’
백도화가 마차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리며 눈을 감고 잠들어 버린 신혁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능동자율모드를 가동하겠습니다.]‘제발 잘 때는 보고 같은 거 하지 마라 오페라.’
[주의하겠습니다 사령관님.]좌철기 일행과 몇 마디 대화를 섞어본 소감은, 척 봐도 이놈들은 나쁜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무공을 익혀서 힘만 센 나쁜 놈이 아니라 권력까지 가진 아주 질이 안 좋은 놈들이라는 점. 무엇보다 제형안찰사사는 종3 품의 관직에 준하는 각 성의 성주와 맞먹는 고위 관리이지 않은가.
‘모르면 몰랐으되,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만약 제형안찰사사라는 단어만 듣지 않았어도 진작에 좌철기 일당은 신혁에게 요절이 났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백도화에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오페라.’
[예, 사령관님.]‘루시아 연결해.’
[Copy that.]잠시 후 신혁의 귓가에 활기찬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뭘까요 이 가슴 떨리는 상황은? 묘령의 여인과 빛 한점 없는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서 어딘가로 끌려가시는 것 같은데요?]루시아의 장난스러운 말에 신혁이 피식 웃으며 마음을 놓았다. 루시아가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신혁에게 위험한 상황이 닥칠 확률이 제로에 가깝게 수렴한다는 뜻이었다.
‘위성으로 보고 있었겠지?”
[그럼요, 테레사함의 사령관님께서 무뢰배들에게 납치되신 상황인데, 빅토리노 씨는 진지하게 밖에 있는 자들이 사령관님의 몸값으로 얼마를 요구할지가 매우 궁금한 것 같았어요.]‘몸값은 무슨. 도착하자마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 하거나 인적없는 곳에 가둬두겠지.’
[어머나, 그러면 전투원 전조라도 급파할까요? 일명, 사령관님 구하기 대작전!]‘전조가 오면…… 피바다가 되지 않을까?’
신혁은 머릿속에 자신을 구하러 온 전조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분노한 전조의 칼에 여기 있는 놈들뿐만 아니라 섬서성의 제형안찰사사를 포함한 수많은 관리들이 시체가 되겠지. 그러면 그걸 수습하는 나는 몹시 피곤해지겠지?
[그렇겠죠. 그런데 오라버니, 무슨 생각이 있으세요? 왜 굳이 이런 상황을 만드신 거예요?]‘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