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종언의 숫자
“뭐지?”
“현의령주를 상대하는 게 어째서 유신입니까?”
신혁의 질문에 현아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와 주소천은 현의령주와 상성이 좋지 않다.”
“상성이요?”
“그래, 무엇보다 적의 지존은 네놈의 몫이니 남은 세 명 중 한 명이 무명을 상대해야 할 텐데. 무명의 전투방식은 사신혁, 너와 가장 비슷하다. 너와 가장 많이 손을 섞어본 자는 여기 있는 유신이기도 하고, 유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속도로 강해지고 있으니 충분하겠지. 그렇지 않은가 유신?”
“무량수불, 과찬이십니다. 교주님.”
잠자코 현아진의 말을 듣고 있던 유신이 멋쩍은 얼굴로 겸손하게 말했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현아진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의형인 사신혁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던 현의령주를 직접 단죄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마나홀을 이용하지 않고 자연의 마나를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건 아주 놀라운 일이다. 그건 나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야기가 조금 샌 거 같은데, 현아진 교주님의 말씀대로라면 다른 사신문도들은 교주님께서 처리해주신다는 말씀이시겠지요?”
제갈첨이 펼쳤던 부채를 접으며 현아진에게 물었다.
“물론이다.”
“좋습니다. 연맹주님께서도 보증하신 일이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주십시오. 그리고 내일 정오에…….”
신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사신문과 결착을 짓겠습니다.”
* * *
서천평야의 동쪽 구릉.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현의령주님.”
서천평야의 절반을 가득 메운 이만의 무사들을 등지고 요백진이 자신 있게 말했다.
“기쁜가?”
여느 때와 같은 야차 가면 속에서 무명의 무감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입니다. 오늘은 지존께서 이 세계의 신이 되시는 날. 그 영광된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백진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오랜 시간 염원하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사신혁을 제압하고 테레사함을 확보한다면 그와 적무강의 적의신공과 청의신공 또한 완성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지금 눈앞의 무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것이었기에 요백진의 눈에 어린 탐욕은 도통 줄어들 줄을 몰랐다.
“절정고수의 수만 오천입니다. 게다가 나머지 일만오천의 문도들 또한 능히 일류고수라 불릴만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아무리 사신혁이 대단해도 테레사함의 도움 없이는 결코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자신 있나?”
“물론입니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몰아쳐 잔챙이들을 모조리 없앨 것이고 지친 사룡은 저와 적무강의 손에 목이 떨어질 테니. 기필코 사신혁, 그자를 생포해 지존께 바치겠습니다.”
자신만만한 요백진의 대답에 무명이 고개를 저으며 가면을 벗었다.
“요백진.”
무명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신혁과는 달리 얼음처럼 차갑고 섬찟한 미소였다.
“예.”
“사신혁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더이상 지존께 너나 적무강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
“나는 홀로 수백 년간 지존을 지켜왔다.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나와 다르다. 조금 수고스럽겠지만 소모되면 언제든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하찮은 클론일 뿐이다.”
“……알고 있습니다. 현의령주께서 그 옛날 초대 청의령주를 살해한 무림맹주 정천의 세포를 복제하여 저를 만드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반드시, 이번에 너와 요백진의 존재가치를 입증해야 할 거야. 지존께서 신이 되어 만드실 새로운 세계에 정말 너희들이 필요한지 나조차도 의문이 드니까 말이야.”
“……아버님.”
요백진이 입술을 짓씹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때 요백진과 현의령주의 눈에 저 멀리서 나타난 사신혁이 모습이 비쳤다.
“사신문에 알린다.”
가드 위성의 음성 증폭 효과로 서천평야에 신혁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삼도연맹의 연맹주, 사신혁이다.”
가드 위성의 음성 증폭 시스템은 일반적인 무림고수들의 사자후와 달리 메아리치듯이 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로 옆에서 말을 하듯이 사신문도들의 귀에 울려 퍼졌다.
“저자가 바로 찬황지존위군.”
“괴룡 사신혁……. 과연, 소문대로야 전혀 무공을 익힌 것 같지 않아.”
“그게 바로 괴룡의 무서운 점이네. 얼마나 경지가 높으면 무공을 익힌 흔적조차 없겠는가. 말로만 듣던 반박귀진의 경지에 든 초고수일 테지.”
“흥, 그래 봐야 뭐 어쩌겠는가. 아무리 괴룡이 대단하다 한들 이미 대세는 사신문으로 기운 것을. 우리의 선택이 옳았어.”
“암, 그렇고말고. 저 빌어먹을 구파일방과 사도팔문놈들이 거들먹거리는 것도 오늘이 끝일세.”
“크크큭, 그뿐인가. 마교마저 이 기회에 씨를 말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천하는 사신문의 것이지.”
신혁의 등장에 사신문에 투신한 중소방파의 무사들과 낭인 무사들이 승리를 자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루빈지오 그리고 세 명의 령주들과 현의문.”
신혁의 목소리에 약간의 분노가 어렸다.
“너희들의 투항은 받지 않겠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라던가 적의 사기를 꺾고 아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연설이라도 할 줄 알았건만 신혁이 한 말은 사신문도들은 물론 삼도연맹의 인물들조차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하하하하하하, 괴룡이 실성이라도 했나 보군.”
“크크크크큭, 정말 미친놈이 아닌가.”
신혁의 광오한 말에 사신문도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세에 몰려 존망의 기로에 선 것은 삼도연맹인데, 그 상황을 모르는 것처럼 사신혁이 말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대명제국의 백성이며 강호의 무사들에게 고한다.”
사신문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신혁이 말을 이었다.
“역적인 사신문에 협력하여 강호를 어지럽히고 대명제국의 법도를 어긴 너희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한다. 이는 찬황지존위군의 이름으로 약속하겠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지금 투항하는 자들에게는 그간의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으하하하하하, 과연 자비로운 찬황지존위군이시오.”
사신문의 대열이 갈라지며 중앙에서 요백진이 여유롭게 걸어 나오며 신혁을 비웃었다.
“그래, 삼도연맹주님의 마지막 자비는 받아들여야겠지요. 으하하하하하.”
요백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청의령주 요백진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위대하신 찬황지존위군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신문을 떠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지금 나서라.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겠다.”
느긋하게 이만의 무사들을 돌아보며 요백진이 말을 이었다.
“아무도 없나?”
“없습니다!”
“정말 아무도 없나?”
“없습니다!”
요백진의 질문에 사신문의 문도들이 목청껏 화답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요백진이 몸을 돌렸다.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소이다 찬황지존위군. 아무도 투항할 생각이 없다는구려. 으하하하하하하.”
“네게 묻지 않았다, 요백진.”
요백진의 조롱과 비웃음에도 신혁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천천히 열을 세겠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헛되이 목숨을 던지지 말도록.”
“크크크큭, 그래 그것도 좋겠지요. 열이 아니라 백이라도 기다려 드리리다 찬황지존이군이시여.”
“……열.”
끝까지 신혁을 비웃는 요백진이었지만 신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가 말한 대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아홉.”
“미친 새끼, 저런 놈이 황사라니. 그러니 대명제국이 이 모양 이 꼴이지.”
“……여덟.”
“클클클, 대명제국도 끝났어. 조만간 연왕이 수십만의 정병들을 이끌고 황제를 끌어내릴 테지.”
“……일곱.”
“괴룡이네 찬황지존위군이네 하며 거들먹거리더니 최후의 순간이 도래한 걸 알면서도 끝까지 잘난 척은 하다가 죽겠다는 게로군.”
“……여섯.”
“청의령주님, 더 이상 기다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선봉을 서겠습니다. 사신혁과 함께 저기 있는 머저리 같은 놈들을 모조리 쳐 죽이고 말겠습니다.”
“……다섯.”
이미 숫자가 다섯까지 줄어들었지만 사신문에 속한 그 누구도 전향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봐도 사신문이 이길 것 같은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정된 상황이기도 했다.
“……넷.”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 같으니. 연맹주님께서는 결코 허언을 하실 분이 아니에요. 사도맹을 따르던 형제들이여, 지금이 마지막 기회에요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앞으로 벌어질 끔찍할 일을 알고 있는 주소천이 보다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움직이는 사신문의 무사는 없었다.
“……셋.”
“정도맹주 유신이 약속하겠습니다.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눈을 뜨십시오, 목숨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예상은 했지만 단 한 명의 전향자도 나오지 않는 모습에 유신마저 큰 소리로 전향을 종용하였지만 돌아오는 건 비웃음과 조롱뿐이었다.
“으하하하하하, 이제는 사도맹주와 정도맹주마저 나서서 항복을 구걸하는구나.”
“크크크큭, 이거 정말 오늘 좋은 구경을 하는구만. 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난체하던 놈들이 이렇게 우리에게 애걸복걸하다니 말이야.”
“……둘.”
어느새 신혁의 카운트가 끝을 향해갔고, 요백진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굳이 입 아프게 입씨름할 것 없다. 사신문의 무사들이여, 그대들의 뜻을 저들에게 보여주어라.”
“존명!”
이만의 무사가 한 명이 복명복창하듯이 큰소리로 요백진에게 화답하며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기세를 올렸다.
“하나!”
이제 더이상 남은 숫자는 없었다. 사신문도들의 눈이 힘껏 들어 올린 요백진의 손에 집중되었다. 저 손이 떨어지는 순간 그들은 봇물 터지듯이 진격을 시작할 것이고, 물밀 듯이 진격하여 삼도연맹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것으로 너희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그 말을 끝으로 신혁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모두 죽여라.”
신혁이 삼도연맹의 무리 속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요백진이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차갑게 명을 내렸고, 요백진의 돌격명령만을 기다리던 사신문의 문도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승리를 자신하는 사신문도들이 앞을 다투어 경공을 펼쳤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단 한 명의 삼도연맹원이라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패배는 생각지도 않는 상황에서 남은 것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이라도 큰 공을 세워야 한다는 욕심뿐이었다.
앞으로 강호의 아니 천하의 주인은 사신문이 될 것이 너무도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저, 저게 뭐야?”
“응? 웬 여인이…….”
거칠 것 없이 돌격하던 사신문도들의 눈에 삼도연맹의 진영 속에서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목격되었다.
“현아진, 마룡 현아진이다!”
“마교주? 저자가 왜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른 현아진이 비스듬한 각도로 계속해서 상승하며 고도를 높이며 사신문도들 쪽으로 향했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응? 뭐야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다니?”
“구름? 비라도 내리려는 건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길함에 돌격하던 사신문도들이 고개를 들어 현아진의 신형을 쫓았고, 그 순간 무언가에 태양이 가려지며 거대한 그늘이 만들어지더니 서천평야에 어둠을 가져왔다.
“저, 저게 뭐야?!”
“괴, 괴물?!”
“용……. 흑, 흑룡이다!”
사신문은 물론이고 삼도연맹의 무사들조차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놀라운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곧이어 그들의 귓가에 본능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괴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오오오오오오~”
모든 생물을 공포에 몰아넣는다는 드래곤의 포효, 바로 드래곤 로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