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주윤문
주윤문의 말을 똑똑히 들었으나, 사신혁을 앞에 둔 호위병들은 우물쭈물하며 형관오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같은 말을 두 번 해야 하는가?”
높낮이가 없고 감정이 절제된 목소리가 다시 한번 가마에서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 형관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닙니다, 전하.”
가마를 향해 읍소한 형관오가 몸을 돌려 신혁에게 다가가 포권하였다.
처억.
“수하의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기인을 몰라보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 바랍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절정고수이자 금의위에서도 요직에 있는 형관오의 예의 있는 말과 태도에 금의위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령이 있은 뒤로는 사적인 판단과 감정을 접고 그대로 명을 따르는 것으로 보아, 위계질서가 잘 정립돼 있구나. 생각보다 제법이야.’
“저를 따르시지요.”
형관오가 가마에서 5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 신혁을 멈춰 세운 뒤, 가마의 오른편에 시립하였다.
“무릎을 꿇으시오.”
신혁이 자리하는 것을 본 문관 중 하나가 목청을 한껏 가다듬으며 근엄한 말투로 신혁에게 명령했다.
“……?”
“어허, 예가 어딘 줄 알고 그리 꼿꼿이 서 있는 게요. 어서 무릎을 꿇으시오!”
“저한테 하신 말씀입니까?”
“당신 말고 여기 또 누가 있소이까!”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신혁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가마 속의 인물이 누군지 몰라서 저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의를 모르는 야인이어서 저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신혁은 감히 황실의 사신단을 앞에 둔 태도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당당했다.
“되었다, 그만하여라.”
신혁에게 소리치던 문관이 읍소하며 물러섰다.
“그래, 그대가 청동현의 현사인가?”
“명목상은 그렇습니다.”
“명목상이라? 무슨 뜻인가?”
“그 말 그대로입니다.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시지요.”
“네 이 노오오옴!”
신혁의 말에 무릎을 꿇으라고 외치던 문관이 결국 분기를 참지 못하고 다시 앞으로 나서며 고함을 질렀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망발을 하는 것이냐!”
“예의를 갖추는 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혹시나 제가 실수할지도 모르니 여쭤봅니다. 그래서, 여기가 대체 어느 안전입니까?”
“가, 감히…….”
이제는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문관이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신혁은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마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루시아.’
[예, 오라버니.]‘스캔 결과는?’
[일치하여요. 크리스탈 님의 약 5%에 해당하는 아스트랄 에너지가 감지되었어요.]‘좋아, 수고했다.’
“이분이 감히 누구신지 알고! 이분으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같으면?”
“이분은…….”
“?”
차마 황손의 정체를 주윤문의 허락도 없이 밝힐 수는 없는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문관은 이내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례하구나.”
스윽.
가마 속의 인물이 몸을 일으키자, 형관오와 수하들이 부랴부랴 달려들어 가마의 문을 열고 그 앞에 부복했다.
“전하를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가마 속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명의 차기 지존, 황제의 위에 가장 가까운 자.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장손이자 의문황태자(懿文皇太子) 주표의 아들로서 공식적인 세자의 위에 오른 자.
모든 수식어가 황손 주윤문을 일컫는 말이었다.
[생각보다 거물이 온 것 같아요 오라버니.]“이거, 생각보다 높으신 분이셨군요.”
모두가 엎드려 황손을 연호하거나 말거나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은 신혁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감히!”
“어찌, 황손을 뵙고도…….”
주윤문의 호위 세력과 문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쯤 되면 누구신지 몰라서 실수를 했다거나, 예의범절을 몰라 무례했다는 말로는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누가 봐도 신혁은 의도적으로 예를 갖추지 않았다.
“금의위의 위사들은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오! 감히 세자전하께 저토록 오만방자한 말을 지껄이는 자를 그대로 둘 것이오?! 그러고도 금의위의 위사라 할 수 있소이까!”
“맞소이다! 당장 저자를 추포하여 혀를 잘라야 하외다!”
“그렇소! 전하의 명을 기다릴 것이 아니오. 황권을 수호하는 금의위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정작 의문의 적들에게 습격당했을 때는 병사들을 앞세우고 가마에 꼭 달라붙어 자신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던 문관들이 그 적들을 물리친 굉장한 무공의 소유자는 알아보지 못하고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이것들이 분위기 파악을 못해도 유분수지…….’
형관오의 이마에서 힘줄이 굵어졌다. 엎드려서 벌벌 떨기만 하느라고 정작 신혁의 무위는 보지 못했기에 지금처럼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리라.
“전하…….”
다행히 주윤문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의문사하고 범과 늑대 같은 번왕들의 희멀건 눈이 가득한 황궁에서 자랐던 만큼 눈치 하나만큼은 차고 넘치게 기를 수 있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만나려고 하던 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이름이 무엇이더냐?”
의연하게 문관들의 읍소를 무시하고, 은연중 기품을 드러내며 하대하는 황손이었다.
“사신혁.”
“…….”
“…….”
신혁의 짤막한 대답에 황손 주윤문은 물론이고 금의위를 비롯한 일반병사들까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귀를 후벼 파는 녀석부터,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하는 자, 두 눈을 비비는 자 등 각양각색의 당황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래, 이.름.이. 무엇이라고?”
주윤문이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한번 신혁에게 물었다.
“사.신.혁.”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쯤 되면 금의위들이 애써 모른 척하려 해도 모른 척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금의위 무사들의 눈에 결의가 어렸다. 황손이나 지휘관인 형관오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옥쇄를 각오하고 칼을 뽑아야만 했다.
“크, 크크큭……. 사신혁……. 사신혁이라.”
주윤문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작은 웃음과 함께 신혁의 이름을 되뇌었다.
“과연, 듣던 대로요.”
“음……?”
“청동현 현령의 보고서를 읽고도 반신반의했건만, 그의 말이 맞는 모양이오. 본인은 주윤문이라 하오.”
“그렇습니까? 사신혁입니다.”
주윤문의 존대에 이번에는 신혁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존대로 응대하였다.
그런 신혁을 보며 분노에 떨던 문관 중 하나가 슬쩍 주윤문의 눈치를 살피고는 앞으로 나서서 호통을 쳤다.
“네 이놈! 감히 야인주제에 대명제국의 황손이시며 세자의 위에 오르신 분께 세 치 혀를 놀리느냐!”
‘충복이란 이런 것이다. 주군의 마음을 헤아려 직접 나서기 곤란한 상황을 앞장서서 처리하는 것. 그것이 충복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나선 문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고,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문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분이 계시는군요.”
“무어라?! 네, 이놈 감히…….”
신혁의 말에 다시 한번 문관이 발작하려는 순간 주윤문이 문관의 말을 끊었다.
“감히는 경이 할 말이 아닌 거 같소. 본 세자가 신혁 선생과 대화 중인 것이 경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하오나 전하…….”
황손의 예상치 못한 태도에 문관이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
“물러서시오. 두 번은 말하지 않겠소.”
“예…….”
싸움에 진 강아지가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듯 어깨를 늘어뜨린 문관이 자리로 돌아갔고,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혁이 입을 열었다.
“피차 시간이 아쉬우니 용건만 간략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소.”
“제 목적은 가마 안에 있는 검입니다.”
“검이라……? 설마 의천검을 말하는 것이오?”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 검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 검이 어떤 검인지 알고서 달라고 하는 것이오?”
주윤문의 얼굴에 노기와 당혹감이 동시에 어렸다.
의천검(意天劍)은,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을 나타내는 검.
황제의 검이자, 차기 황위에 가장 가까운 주윤문을 대표하는 신물이었다.
그런 검을 달라고 하니, 그야말로 기가 차는 상황이지 않은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오?”
“반 각 정도만 제가 살펴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흐음…….”
주윤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 정도라면 크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검을 하사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잠깐 살펴볼 수 있게만 해달라지 않는가.
그가 듣기로 무인들은 뛰어난 무공과 신병이기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들었기에, 신혁의 부탁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것뿐이오?”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 조건을 이야기하리다.”
“그러시지요.”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오.”
“예?”
신혁이 주윤문의 말을 듣고서 되물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설마 남색을 하는 자인가?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당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를 청동현까지 무사히 인도하시오. 그리해준다면, 청동현에 도착한 뒤 그대에게 검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소.”
“흐음? 그건…….”
신혁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제가 너무 손해인 것 같군요.”
“무슨 말이오?”
“뭐……. 이런 말이지요.”
신혁이 슬쩍 고개를 양옆으로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신혁의 눈길을 쫓는 순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엄청난 함성과 함께 일단의 무리가 대지를 박차고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들은?!”
처억.
신혁의 난입으로 내상을 입고 물러섰던 적의 무사가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주윤문 일행에게 접근했다.
“감히 방심한 틈을 타 기습을 하다니, 주군의 명을 완수함과 동시에 네 놈의 목을 베지 못한다면 내 혈륜검귀(血侖劍鬼)의 별호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겠구나.”
“와아아아아~!”
흘러내린 피만 살짝 닦아내고, 접근하는 적의인 뒤로 족히 수천의 병사가 지르는 듯한 함성이 들려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혈륜검귀와 함께 처음 그들을 습격한 나머지 절정고수들 역시 나타났다.
족히 수천을 헤아리는 병사들이 달려와 주윤문 일행을 포위했다.
“주윤문.”
내공을 가득 실은 음공이 평원에 울려 퍼졌다.
조금 높은 평원의 언덕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흑의인이 고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그리하면 죄 없는 수하들은 놓아주겠다.”
채애앵!
형관오를 비롯한 금의위의 무사들이 검을 뽑았다.
“닥쳐라. 내 시체를 넘기 전에 감히 주군의 앞에 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기세 좋게 발검한 형관오와 금의위의 무사들이었지만, 주윤문을 호위하는 일반 병사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적들이 포위할 것을 알고 있었소?”
주윤문의 질문에 신혁이 씨익 웃었다.
“물론입니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 그 사실을 알았다 해도 이미 적들의 포위망 속에 계셨기에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겁니다.”
‘무섭군. 강하고 영리한 자다.’
주윤문이 신혁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신혁의 말은 많은 뜻을 담고 있었다. 이미 포위된 너희들의 입장을 알고도 여기에 온 나다.
즉, 혼자 여기서 몸을 빼는 것은 일도 아니며 협상 조건에 따라서 사신단 일행을 구해줄 수도 있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친 것이다.
“충분히 알아들었소. 검을 살펴보는 시간을 주는 것만으로는 그대에게 너무 불리한 조건이구려. 원하는 조건을 이야기하시오.”
주윤문의 말에 만족한 신혁이 몸을 풀더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청동현에 도착하셔서 이야기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