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nience Store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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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집단에 의한 개인의 사정
일단 침묵. 변함없는 얼굴로 바라보는 미영의 모습에 근호는 큰 소리로 웃어보였다.
“결혼하시나 봐요, 축하해요. 그래서 상대가 누구에요? 저도 아는 사람이에
요?”
계속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 웃기에는 호흡이 곤란했던 근호는 일단 숨을 고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미영씨. 그 일은 제가 거절한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알아요.”
보기 드문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그런 근호의 모습에 미영은 여전하다. 그랬기에 그는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못 들은 척 넘어가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들켰다. 스리슬쩍 넘겨보려고 했던 근호의 작전은 실패로 끝이 났고, 그는 곧바로 플랜B를 시행했다.
“저 결혼하면 이러고 있을 거예요.”
밥상을 등지고 드러누운 그는 다리를 쭉 뻗어 TV리모컨을 발가락만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밥도 안 차릴 거고, 먹으면 바로 누워서 TV만 보고 빨래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할 거예요. 일도 안 할지도 몰라요.”
이런 남자, 아무리 콩깍지가 쓰였다고 한들,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당장 정이 나가떨어질 것이다. 거기다 애당초 미영의 시력은 멀쩡하다.
코에 손가락을 쑤셔 넣은 채 채널을 쉼 없이 돌린다. 떨 수 있는 주접은 모두 하고 난 후 근호는 미영을 슬쩍 쳐다보았다.
머리위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형광등을 가린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은 것도 잠시, 근호는 눈앞에 떨어지는 무언가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통장?”
직사각형의 종이에는 화려한 수채화와 함께 은행의 이름이 적혀있고, 떨어지면서 펼쳐진 통장을 얼핏 본 근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때요?”
“어뗘, 허뗘냐뇨?”
“이게 공동명의가 될지도 모르는데도?”
“지금 당장 식을… 아니, 아니지.”
특별한 사치를 누리지만 않은 채 남들 월급 받는 다는 생각으로 한 달에 일정한 만큼만 쓴다면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금액이다.
매번 그러면서도 또 흔들렸던 근호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미영씨, 난 어딘가에 속할 생각은 없어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금전의 힘이 미치는 영역뿐이다. 이를 제외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심신의 피로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얼핏 들었을 때 느끼기에는 굉장한 기회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호는 알고 있었다.
“권력만큼 피곤한 건 없잖아요.”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면 자연스럽게 권력을 쥐는 자가 생긴다.
거기다 집단과 집단이 부딪치면 권력을 쥐고 있는 자는 더욱 그것을 바라는 법이다.
그 구조가 수직이라면 더욱 그렇고, 그것이 혈연관계로 가게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난 그런 싸움을 많이 봐왔어요. 아무 질리도록 말이죠.”
“아르티니아에서 겪었던 일인가요?”
고개를 끄덕인 근호는 말을 이어나간다.
암투, 착취, 부조리, 불합리. 권력다툼이 있는 곳은 언제나 그러한 것들이 행해졌고, 사람들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 마냥 그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어떤가요, 비슷하죠?”
이는 어떤 세상이든 똑같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장근호씨가 이쪽으로 돌아온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에요?”
“뭐,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마르티니아 대륙에 남았더라면 자신은 분명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걸 근호는 알고 있었다.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 있어 얼마나의 피로를 느껴야 할지는 가늠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른 선택지를 선택한 것이다. 가족이 있는 곳으로의 귀환을 말이다.
“결국 하고 있는 건 편의점 알바생이지만 나름 만족은 하고 있으니까요.”
가진 것을 내려놓았음에도, 그로인해 바닥을 허우적거릴지언정 더러운 꼴을 보지 않겠다.
“가진 게 없어도 그건 마찬가지잖아요.”
“윽.”
그런 근호의 이야기에 미영은 일침을 가한다. 이렇게까지 되어 버릴 줄은 몰랐기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그건 마물이 나타났으니까,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 그것만 아니었다면.”
눈을 피한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근호를 보며 이번에는 미영이 한숨을 내쉰다.
“됐어요, 이제. 장근호씨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았네요.”
“어떤 사람인데요?”
입으로는 분쟁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결국 피하기만 할 뿐이고, 어떤 일이 생겨도 자신은 뒤에서 쳐다보기만 한다. 그러다 위기가 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서고 나중에는 발뺌한다.
모든 일에 의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이 받을 불이익에 대해서도 투덜거리기만 할 뿐, 못 본 척 눈을 돌린다.
“아닌가요?”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숨기기 위해 덤덤한 척 장난스럽게 입을 놀린다.
“한 달에 지원금이라고는 고작 30만원 밖에 받지 못 하는데 아무리 바빠도 전화가 오면 출동해야 하고, 생명수당도 받지 못 하는 주제에 고작 기물 좀 파손했다고 청구서가 날아가고.”
짜증스럽다는 듯, 한심하다는 듯, 미영은 그런 표정으로 근호를 향해 쉼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런 주제에 친구한테는 손도 못 벌리고.”
숱한 악담을 들으면서도 웃기만 하던 근호의 얼굴이 조금씩 변해갔다.
“장근호씨, 당신은 힘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오면. 나랑 함께하면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미영씨.”
말이 나온 김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것이다. 자신을 부르는 근호의 목소리에도 미영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그런 바보 같은 점이 난 정말….”
“더 이상 말하면 화낼 거예요.”
순간 굳어진 근호의 얼굴에 미영은 입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람이 내뿜는 무언가는 공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미영이었지만 마치 맹수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감각에 그녀는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싸늘함을 느꼈다.
“아.”
아주 잠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던 미영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자리에 주저앉은 상태였고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아이고.”
그런 미영의 모습에 근호는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지만, 이미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인 상태였다.
“윽, 으윽. 흐극.”
느껴본 적 없던 두려움에 코끝이 시큰거리고 잠깐이라도 긴장을 풀어버리면 펑펑 울어버릴 것만 같다. 미영은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떨어뜨린 고개를 애써 돌리는 근호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의 시선이 닿았던 곳은 치마 끝자락. 젖어있는 옷을 본 미영은 하반신에서 축축한 감각을 느꼈고.
“흐에에엥!”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조용한 반지하. 그곳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리고 화장실 문 너머로 들리는 노크 소리에 미영은 어깨를 떨었다.
“잘 몰라서 대충 사왔어요.”
수건으로 주요 부위를 겨우 가린 채 문을 열자 그 틈으로 불쑥 손과 함께 검정색 비닐이 안으로 들어왔다.
근호가 사온 속옷은 디자인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존재하지 않은 그저 기능만이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 위로 펑퍼짐한 그의 옷을 입은 미영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가나 코끝은 시뻘게진 상태였고, 번져버린 화장은 이미 지워버렸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남에게는 보일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 점이 미영을 서럽게 만들었고, 다시금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녀는 코를 잔뜩 들이마시며 겨우 참아냈다.
“죄송합니다!”
터져 나오는 민망함에 차라리 화장실에서 썩어가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문을 열고 나온 미영은 무릎을 꿇고 앉은 근호를 발견했다.
“아, 아뇨. 제가 말을 함부로 한 탓에….”
그런 탓에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얼굴이 새빨개진 미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그렇지만 근호도 죽을 맛이었다.
악담을 좀 들었다고 못할 짓을 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전투는 물론 싸움조차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여성이다.
무심코 한 짓이라고는 하나 그 점이 정상참작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해도 모자랄 행동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뜨겁게 달군 돌판 위에 무릎을 꿇고 뾰족한 가시에 머리를 숙여도 모자랄 잘못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이, 일단 고개를 좀 들어요.”
“아뇨!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렇게 죄를 뉘우치는 근호에 모습에 미영은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앞서 벌어진 일도 그렇지만 지금 그가 위치한 곳이 바로 자신이 실례를 한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 흔적을 치운 사람이 그라고 생각하니 더욱 얼굴이 달아오른다.
시간이 약이다. 대략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겨우 마주한 두 사람이지만 분위기는 생면부지의 남녀가 선을 보는 자리보다 어색했다.
“저기…”
“저기…”
같은 말을 동시에, 그와 함께 서로의 고개가 돌아간다.
“먼저 말씀!”
“먼저 말씀!”
그러나 개그도 반복하는 것이 재미있듯 그런 상황이 겹치다보니 두 사람은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했고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장근호씨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어요.”
사과도 하고 용서도 했다. 받기도 했다. 그 속에서 근호는 입을 열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잖아요.”
“예, 그렇다고들 하죠.”
들었던 말들에 대한 변명이다.
“거기다 힘이란 건 쓰면 쓸수록 나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 그걸 요구하더라고요.”
그렇게 책임은 쌓여만 간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가는 그것은 이윽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크기가 되어버린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커져만 갈수록 자신은 점점 작아져간다.
“하려면 할 수 있겠죠. 그게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결국 모든 건 돌아오는 법이잖아요.”
왜 마을 사람 모두를 구하지 못 했나. 왜 그들을 죽였어야만 했나. 왜 좀 더 일찍 움직이지 않은 것이냐.
왜, 왜, 왜, 왜. 도대체 왜.
잠깐 과거의 일을 떠올린 근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영웅이랑 칭송받는 것도 좋다, 거대한 궁궐에 살며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는 것도, 써도써도 가득 차있는 금고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비난으로, 질책으로 돌아온다.
“왜 좀 더 잘하지 못 했냐, 라고 말이죠.”
“누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고개를 숙인 근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금 얼굴을 보였을 때 그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으며 웃고 있었다.
“이야, 이것 참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 웃음은 때로는 무언가를 감추고자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미영은 두 팔로 근호의 얼굴을 감싸 안아 자신의 가슴에 끌어당겼다.
“장근호씨, 이제야 당신이란 사람을 알 것 같네요.”
============================ 작품 후기 ============================
근호가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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