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푸른 궤적이 거대한 심장 윗부분에 틀어박혔다.
콰직-
손아귀에서 전해지는 단단함.
매달린 채로 검 자루를 고쳐 쥔 이안이,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리긋기 시작했다.
타후므리트가 순간 굳어졌다.
카- 드득-
그 사이에도 심장에는 깊고 기다란 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푸른 신성력이, 균열을 타고 번지는 오염된 마력을 불태웠다.
키아-아악-!
타후므리트가 비로소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냈다.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검신이 심장을 조금씩 계속 내리 갈랐다. 비명이 더 커졌다. 으직, 다음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이안의 전신을 울리던 비명이 사그라들었다.
아르케아스가 물고 있던 타후므리트의 목을 꺾어 버린 것이다. 기괴한 각도로 비틀어진 타락용의 거대한 머리가 축 늘어졌다.
보랏빛 안광이 사그라들었다.
쿠르르….
소용돌이치던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울렸다. 잿빛 눈보라가 그 사이로 번지기 시작했다. 주인을 잃은 막대한 양의 오염된 마력이, 증발하는 것보다 빠르게 흘러내렸다.
그 한복판.
“…….”
뒤틀려 꺾인 채 늘어진 타후므리트의 머리를 응시하던 이안이, 이윽고 시선을 돌렸다.
한쪽 목덜미가 찢겨 나간 아르케아스. 죽음을 맞이한 동족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저 슬프고, 지쳤을 뿐.
아르케아스의 시선이 이윽고, 심장 한복판의 이안에게로 돌아왔다.
이안이 입을 열었다.
“나 좀 받아 주시오.”
아르케아스의 눈매가 설핏 휘어졌다. 우지직, 타후므리트의 갈비뼈에 깊이 박혀 있던 한쪽 앞발이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는 한 팔로도 이 거대한 용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 시체는 어쩐다. 내 지분도 3할 정도는 있으니까….’
생각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의 미간이 문득 좁아졌다. 그의 시선이 자신이 기대고 있는 거대한 심장으로 돌아갔다.
중요한 의문이 고개를 든 것이다.
왜 퀘스트 완료 창이 안 뜨지,
‘…설마.’
이안의 양팔에 힘이 들어갔다.
게임에서도 약점을 공격한다 해서 보스가 반드시 한 번에 죽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상대는 용이라는 상식을 초월한 존재인 데다, 심지어 언데드이기까지 했다.
목이 부러지고 심장이 꿰뚫린 상태에서도 죽음을 유예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솨아아-
그 예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번져 나온 보라색 마력이 심장의 갈라진 틈을 이어 붙였다. 검날을 옭아매는 압력이 느껴졌다. 푸른 신성력이 발작하듯 타오르고, 마력이 그 사이로 치솟았다.
푸스스, 옆에서 보랏빛이 번졌다.
‘이런 씨…!’
이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축 늘어진 타후므리트의 머리에 안광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안을 노려보는 채로.
아르케아스도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앞발을 다시 갈비뼈에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타후므리트의 기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키- 아아아아-!
어긋난 턱뼈가 벌어지며 절규를 토해냈다. 자욱한 잿빛 눈과 흘러내리던 오염된 마력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콰과과과과-
폭발과 충격파가 사방을 뒤덮었다.
충격의 대부분은 엉겨붙은 두 용이 막아 주긴 했지만, 이안도 몸을 움츠리며 역장 방패로 몸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복수■■… 반드시 이■■니…!
처절한 사념이 뇌리를 뒤흔들었다. 폭발이 거세졌다.
아르케아스가 황금빛 역장을 두르기 시작했다. 이안도 검을 내리그으려 애썼다.
‘마력 밀도가 도대체 얼마나 높은 거야…?’
하지만 온 힘을 다해도 검신은 아주 조금씩만 움직였다. 검이 부러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타후므리트가 축 늘어져 있던 날개를 펼쳤다. 끝에서부터 가루가 되기 시작한 두 장의 마력 날개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놈의 의도는 명확했다. 이안은 단죄의 검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건 최후의 발악이었다. 검은 나중에 유해에서 회수하면 되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이안이 심장에 발을 얹고 도약을 준비한 순간이었다.
솨아아-
오염된 마력이 흐릿한 막을 형성해 벌어진 가슴을 감쌌다.
-너는 결■ 벗어나지 못■■■…!
으직, 으지직-
사념과 함께, 아르케아스의 앞발이 박힌 타후므리트의 갈비뼈가 으깨지기 시작했다. 곧 가슴 한쪽이 통째로 부서졌다. 앞발 하나가 함께 떨어져 나갔지만, 타후므리트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캬오오오-!
아르케아스가 놀란 듯 포효했다.
하지만 몸이 조각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갯짓을 시작한 타후므리트는, 이미 그에게서 벗어난 뒤였다.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만신창이가 된 타락용이 솟구쳤다.
“……!”
역장 방패로 마력 장막을 후려치던 이안의 눈이 이내 커졌다.
먹구름에 맺힌 마력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광-
보라색 마력 장막 위로 충격파가 끝없이 터져 나왔다. 몸을 숙인 이안은 벌어진 갈비뼈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비처럼 쏟아지는 마력이 폭발하면서 아르케아스를 추락시키고 있었다. 그는 비명을 토해내는 와중에도 자세를 다잡았다. 그를 중심으로 끝도 없이 펼쳐지기 시작한 황금빛 역장이, 이안의 눈에 느릿느릿 새겨졌다.
콰아- 과과과과-
종말이 온 것 같은 폭발이 역장을 뒤덮는 걸 마지막으로, 모든 풍경이 멀어졌다.
***
“…….”
트라벨가는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 누구도 거리를 오가지 않았다.
북쪽 하늘 너머에서 굉음이 번진 순간부터 시작된 적막이었다.
카링기온에서 온 지원군이 북쪽으로 향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은 시점.
벨리움 요새가 위치한 북쪽의 굉음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몇 채의 집에 나눠 모인 야인 정착민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들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아스켈이 집을 오가며 다독였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다른 집으로 들어가는 그의 기척을 좇던 테사이아의 얼굴에도, 옅은 불안이 감돌았다.
“이안은 괜찮은 거겠지? 설마-”
“헛소리는 내뱉지도 마라.”
벽에 기대선 샬롯이 말을 잘랐다.
“이안은 절대 죽지 않아. 그렇게 약속-”
쿠구구구구-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굉음이 이어진 건 그때였다.
수인과 흡혈 요정이 말을 멈췄다.
테사이아가 안대를 벗으며 샬롯의 눈을 마주보았다. 곧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건물의 지붕 위로 튀어 올라갔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폭음을 귀에 담으며 지붕 몇 개를 타 넘은 그들은, 이윽고 높고 좁은 굴뚝 위에 나란히 섰다.
밖의 전경이 드러났다.
어둠. 북쪽에 자욱한 먹구름과 저 먼 하늘에 번지는 번쩍임.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테사이아가 이윽고 탄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녀의 귀가 문득 쫑긋댔다. 홱 뒤를 돌아본 그녀의 눈빛이 붉게 번뜩였다.
침묵에 잠긴 어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주민 몇몇이 슬쩍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는 테사이아를, 이윽고 샬롯이 돌아보았다.
“왜 그러지?”
“…아니야. 뭔가 기분이 쌔 했어.”
읊조린 테사이아가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곧, 그녀는 자신이 느낀 불길함을 깨끗하게 잊었다.
저 먼 하늘. 밤하늘을 가린 먹구름을 뚫고, 허공에 보랏빛 궤적을 수 놓는 거대한 존재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 존재는 포물선 같은 궤적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동쪽을 향해 날고 있었다.
그 존재가 이윽고 트라벨가에서 머지않은 상공까지 다가오자, 테사이아가 더듬대며 내뱉었다.
“용…? 용이야, 저거…?”
샬롯은 눈만 끔뻑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랬다. 저만큼 거대한 크기를 가진 날개 달린 존재는, 용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생김새만큼은 아주 괴상했다.
뼈밖에 남지 않은 데다 온몸이 너덜너덜하고, 결정적으로 거꾸로 뒤집어져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상하게 꺾인 채로 축 늘어진 건, 꼬리가 아니라 머리였다.
허공을 수놓는 보라색 궤적은, 두 장의 날개가 부스러지면서 만들어 내는 마력의 잔해였다.
그때 용이 궤적을 틀었다.
한쪽 날개가 깊이 가라앉으면서, 누가 찢어발기고 헤집은 것처럼 엉망이 된 몸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샬롯의 입이 더 벌어졌다.
보랏빛 마력이 아른거리는 그 한복판, 어딘가 낯이 익은 붉은 빛과 푸른 빛이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 아아아-!
용이 섬뜩한 비명을 흩뿌렸다. 이어 잿빛 숨결이 땅으로 쏟아졌다.
번쩍이는 푸른 빛이 짙어졌다.
그 사이로 설핏 드러나는 작은 실루엣.
그대로 멀어지는 용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하던 샬롯이, 이윽고 탄식하듯 내뱉었다.
“이안…?”
***
‘시발….’
간신히 뽑아 든 검을 움켜쥐며, 이안은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 이건 게임에선 없었던 상황이 분명하다고.
제아무리 악랄한 제작자라도, 플레이어를 이런 상황에까지 밀어 넣는 건 말이 안 됐다.
물론 지금에 와선 달라질 것 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미 죽어가는 용의 심장 위에 선 채,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추락하고 있었다.
고도가 조금씩 낮아지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나랑 같이 죽을 생각이네.’
속으로 내뱉으며, 이안은 머리 위를 뒤덮은 마력 장막을 올려다보았다. 굳이 심장을 다시 찌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놈은 곧 알아서 죽을 테니까.
이 순간에도 심장에 담긴 마력이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 놈이 땅에 추락하기 전에 먼저 탈출해야 했다.
‘착지는….’
이안은 몸속의 마력을 확인했다.
손아귀의 비늘은 어느새 떨어져 나갔지만, 아직도 그의 몸속에는 용의 마력이 남아 있었다. 이걸로 휘몰아치는 방벽과 돌풍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뼈만 몇 군데 부러지는 정도로 착지할 수 있으리라.
아니라 해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찰나의 순간 만에 결정을 끝낸 이안은 단죄의 검을 고쳐 쥐었다.
검신에 균열이 생긴 것이 느껴졌지만, 신성력만큼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콰드득-!
이안은 마력 장막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효과는 충분했다. 몇 번 만에 깨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장막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소용■■… 너는 ■■ 함께… ■■하리라….
사념과 함께, 이안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게 날개라는 걸 깨달은 이안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우드득, 남은 하나의 앞발도 억지로 움직여 그 위를 덮었다.
이안의 머리 위로 용의 뼈를 얼기설기 엮은 새로운 가림막이 생겼다. 틈이 작진 않았지만, 타오르듯 일렁이는 마력을 보아하니 손을 댈 수도 없을 터였다.
‘진짜 작정을 했네, 이 새끼.’
이안이 이를 갈았다. 저 뼈를 전부 갈라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균열이 시작된 검으로는 더더욱.
결국, 그의 고개가 다시 아래로 향했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려면, 이번에야말로 놈을 완전히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콰직-!
양손으로 자루를 쥔 이안이 심장 한복판을 내리쳤다. 신성력과 맞부딪힌 마력이 불똥을 튀었다.
이안은 멈추지 않고 내리쳤다. 검신의 균열이 점점 더 커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신성력 역시 더 짙어지고 있었다.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는 것처럼.
콰지직-!
심장을 두르고 있던 마력이 깨졌다. 검이 그 아래로 깊이 파고들었다. 이안은 온 힘을 다해 검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그의 의지를 읽은 것처럼, 신성력이 눈부시게 타올랐다.
쩍, 쩌적- 쩌저적-
심장 전체에 균열이 번졌다. 그 사이로 보랏빛 마력이 치솟고, 푸른 빛이 아른거렸다.
키- 아- 아-
발아래에서 타후므리트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단말마였다.
퍼억-!
검신이 폭발하면서, 동시에 심장이 사방으로 조각나 흩어졌다. 아래로 떨어진 이안이 착지했다.
퀘스트 완료 창이 비로소 뒤를 이었다. 이안은 창을 닫으며, 부러진 단죄의 검부터 눈에 담았다.
‘…고마웠다.’
감상은 짧았다. 타후므리트의 몸이 축 늘어지고 있었다. 꽃이 피듯 몸통을 감쌌던 날개와 다리가 흘러내렸다.
비로소 밖이 보였다.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땅이 멀지 않았다.
솨아아-
조각난 심장 파편들에서 마력이 휘몰아친 건 바로 그때였다.
‘미친-!’
콰과과광-
이안이 몸을 날린 것과 파편들이 폭발한 건 거의 동시였다. 이안은 마구 회전하며 튕겨 나갔다.
고통과 함께 몸속, 용의 마력이 뭉텅이로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마력 폭발로부터 그의 몸을 지키고 대신 승화한 게 분명했다.
아쉬워할 틈은 없었다.
이안의 눈동자에 잿빛 마력이 휘몰아쳤다. 휘몰아치는 방벽. 동시에 돌풍이 거세게 회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뻗어 나왔다.
몸의 회전이 줄어들었지만,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콰과과과과-
타후므리트의 시신이 땅에 추락했으니까.
흙먼지와 산산조각난 용의 뼈가 이안의 앞으로 솟구쳤다.
“……!”
이안은 앞으로 치솟은 뼈를 바라보며 황급히 역장 방패를 들었다.
카드드득, 방패가 뼈 표면을 긁듯 스치며 이안의 궤도를 틀었다. 진언이 사그라들면서 방패가 깨졌다.
다음 순간 휘몰아치는 방벽이 그의 몸을 밀쳐냈다. 높이 솟은 또 다른 뼈가 그의 팔을 스쳤다.
이안은 그것만으로도 왼팔이 부러졌다는 걸 깨달았다. 투쟁의 축복과 용의 마력도 물리적인 충격에선 완전히 그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다시 휘몰아치는 방벽을 펼치고는, 바로 앞으로 보이는 땅을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다.
푸확-!
돌풍이 한순간 뻗어 나왔다. 속도가 아주 조금 줄어든 게 전부였다.
다음 순간,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의 몸이 다시 떠올랐다.
이안은 자신이 비스듬하게 떨어지며 땅에 박힌 게 아니라, 축복과 용의 마력이 만들어 낸 반발력으로 튕겨 올랐음을 깨달았다.
용의 마력이 전부 흩어졌다. 몸 곳곳의 뼈가 부러진 게 느껴졌다.
의식을 잃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상황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이안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 속, 모든 게 느리게 느껴졌다. 흩어져 쏟아지는 용의 뼈. 어둠과 흙먼지. 다시 가까워지는 땅. 그리고 상태창.
돌개바람이 몰아치는 걸 느끼며, 그는 남은 능력치 포인트를 전부 다 체력에 투자했다.
그리고는 태초의 내성 스킬 바로 옆, 이미 과거에 1레벨을 찍어 두었던 공용 스킬인 태초의 생명력을 다섯 개 전부 올렸다.
그게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