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424
424화
“…예. 알겠습니다.”
대답한 발텐이 곧바로 저만치의 늑대 우두머리에 손짓을 보냈다.
한쪽 눈에 흉터 같은 흔적이 새겨진 늑대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이안 일행을 한차례 일별한 발텐이 몸을 돌렸다.
이안이 통로로 들어서는 가운데, 뒤에서 디아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느낌이 안 좋은데. 젠장… 침을 너무 늦게 뱉은 건가….”
“아직 모르잖아요. 금방 돌아오실 수도 있고요.”
루시아가 속삭이듯 덧붙였다.
요그가 비웃듯 키득댔다.
-재미있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것마저 마음에 드는군.
너만 재미있겠지.
내심 읊조리며,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슬슬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예감은 어긋나는 법이 없지 않던가.
저벅- 저벅-
그런 와중에도 다소 좁은 통로 좌우로는 늑대들이 계속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적어도 이 요새에 백 단위의 병력이 주둔 중인 건 분명해 보였다.
‘개미 굴이 따로 없네.’
지하 통로는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며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 요새를 방문한 이들이 길을 잃기 딱 좋은 구조였다. 적에게 침략당할 것도 염두에 두고 지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발텐은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나아갔다. 이미 이 요새의 내부 구조를 꿰뚫고 있는 것이리라.
“벌써 속이 안 좋은데….”
디아나가 나지막이 투덜댔다.
요정에게는 최악의 환경일 터였다. 물론 인간에게도 딱히 다를 건 없었다.
이 와중에도, 이안은 통로가 조금씩 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 위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저기 오는군요.”
곧 발텐이 상반신을 슬쩍 옆으로 비틀며 내뱉었다.
덕분에 이안은 복도 저 너머에서 마주 다가오는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발텐과 마찬가지로 칙칙하게 빛이 바랜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다만 그보다 훨씬 더 체구가 작고 날렵해 보였다.
여기사. 그것도 흑기사였다.
동시에 등 뒤에서 루시아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이안 님. 소개….”
“나중에. 루시.”
“넵….”
루시아가 즉답하는 가운데, 발텐이 이윽고 걸음을 멈췄다.
그건 여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뾰족해서 여우처럼 느껴지는 안면 가리개 사이로 푸른 안광이 일렁였다.
그녀를 마주 보며 고개를 까딱인 발텐이 슬쩍 옆으로 물러섰다.
“소개하겠습니다, 성자 대행. 이쪽은 숭고하며 용맹하신 히케드 전하를 섬기는 흑사자. 세렌 비쿠스 경입니다.”
흑사자 세렌이 흉갑에 손을 얹은 채 정중하게 무릎을 굽혔다.
마주 고개를 숙인 이안이 발텐 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안 호프요. 이미 내가 누구인지 알고 계신 것 같으니, 번거로운 소개는 건너뛰는 것으로 합시다.”
“…예. 이런 어수선한 와중에 인사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성자 대행.”
세렌이 대답했다. 정중한 말투와 달리, 목 뒤가 순간 서늘해지는 목소리였다.
이안이 표정 변화 없이 덧붙였다.
“왜 이렇게 어수선한지는 들어 봐야 할 것 같은데. 기껏 이 먼 길을 부르셔 놓고, 어디로 사라지신 건지도.”
다소 불쾌한 듯 내뱉은 건, 저쪽이 상황을 술술 털어놓게 하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먹힌 듯 멈칫한 세렌이,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예. 송구스럽습니다만 장소를 옮기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이곳에서 나누기에 적합한 대화는 아닐 것 같습니다.”
“뭐, 그럽시다.”
대답하며 횃불이 일렁이는 복도를 돌아본 이안이 덧붙였다.
“여기보단 좀 덜 답답한 곳이면 더 좋겠고.”
“…마침 딱 적합한 곳이 떠오르는군요. 모시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렌이 곧바로 몸을 돌렸다.
이어지는 갈림길을 망설임 없이 선택하며 나아간 그녀는, 이윽고 벽면을 따라 좁다란 계단이 이어진 첨탑 내부로 들어섰다.
능선 위에 솟아있던 초소들로 일행을 안내한 것이다.
“가면을 착용하십시오, 성자 대행.”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을 한참 오르던 세렌이 문득 멈춰 서고는 말했다. 저 위, 닫힌 석문이 머지않은 시점이었다.
이안이 곧바로 대답했다.
“난 이대로도 괜찮소.”
“……?”
의아하다는 듯 발텐을 돌아본 세렌은, 그가 별말이 없자 비로소 놀란 듯 이안을 내려다보았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이자, 비로소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마저 계단을 올랐다.
쿠구구구….
석문이 벽면 아래로 내려갔다. 세렌이 밖으로 나섰다. 발텐에 이어, 이안도 문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호오….
지붕도 덮이지 않은 초소로 나서는 그의 뇌리로, 요그의 탄성이 번졌다.
시야가 탁 트이면서 드넓은 하늘이 가까이에 펼쳐졌기 때문이리라.
온갖 색이 뒤엉킨, 아주 불길하게 휘몰아치는 바다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혼돈력이 섞인 오염된 마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혼돈의 정수가 낮게 공명할 정도였다.
“…이래서 가면을 쓰라고 했군.”
걸음을 옮기며 읊조리던 이안의 시선이, 문득 저편의 하늘 한 곳에서 멈춰섰다.
“세상에….”
그사이 뒤따라 나온 루시아와 디아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건?”
하늘을 훑던 루시아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좌측 하늘 저 너머. 손가락 몇 마디 크기의 새카만 구멍이 뻥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불길한 자줏빛을 토해내는 소용돌이의 눈이었다.
“하나가 아니야.”
그 반대편을 보고 있던 이안이 덧붙였다. 그제야 루시아의 고개가 그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저 먼 하늘에 또 하나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잿빛 파장을 어지럽게 뿜어내고 있었다.
이안의 시선이 다시 주위의 하늘을 훑었다. 어딘가에 존재할, 다른 색의 혼돈을 뿜어내는 소용돌이의 눈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옆에 선 발텐이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샛노란 안광 역시 하늘을 훑고 있었다.
“마족들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만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나는 편이죠. 그리고 전하께선, 저 소용돌이의 눈 근처에 대마족들이 있으리라 추측하고 계십니다.”
“……!”
루시아는 물론, 디아나도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눈을 치켜떴다.
-실패한 것들 다운 어설픈 흉내로군….
요그가 비웃듯 속삭였다.
이안은 뭘 흉내 내는 거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저 저 멀리, 빛무리를 토해내는 소용돌이의 눈을 눈에 담았다.
처음 볼 때는 심연으로 이어진 구멍 같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불길한 빛을 뿜어내는 검은 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도 이렇게까지 선명한 건 처음 보는군요….”
발텐의 침음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쩌면 이번 전쟁의 판도가 평소와 다른 것도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가 무슨 상관인 건데.
내심 읊조리며 시선을 거둔 이안이, 이쪽을 바라보고 선 세렌을 마주 보았다.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예.”
묘한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보고 있던 세렌이 고개를 숙였다.
“먼저, 전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혹여라도 성자 대행께서 먼저 도착하신다면, 심심한 사과와 함께 양해를 구하겠다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뭐, 합당한 이유만 있으시면야.”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를 잠시 바라본 세렌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혹, 이번 전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가늠하기 위한 질문일 터였다.
발텐을 일별한 이안이 대답했다.
“이미 시작되었고, 평소와 다르다는 것 정도는 들었소. 겪기도 했고.”
“두 샤곤 북부에, 이나스 커글과 다르마라자의 권속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했소. 본래는, 바로 전하께 보고드릴 예정이었지.”
발텐이 첨언하듯 덧붙였다.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벌써 거기까지 진출했군요.”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소?”
“예. 전하께서는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관측되던 때부터 직감하고 계셨습니다. 이번 전쟁이, 지금까지 중에 가장 빠르고 극단적으로 진행되리라는 사실을요.”
대답한 세렌이 시선을 돌렸다.
“이상 현상만큼이나, 혼돈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다른 외부적인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측하실 만큼.”
…역시, 나 때문인 건가.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내색하지 않고 세렌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도 자신이 만들어낸 파장의 여파인지, 품고 있는 혼돈의 정수 때문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물론, 둘 다인지도 몰랐다.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세렌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해서 빠르게 몇 가지 방비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드릴까요?”
“넘어갑시다. 그리고?”
“그리고 얼마 뒤… 이나스 커글의 권속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안이 턱을 까딱이자, 세렌이 곧바로 덧붙였다.
“처음 보는 마족도 몇 섞여 있더군요. 놈들은 야성에 젖은 채, 북쪽 아키하타라의 권역을 무차별적으로 침공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쭉 뚫고 올라간 건가….”
발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읊조렸다. 세렌의 푸른 안광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전하께선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 놓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절호의 기회가.”
“대마족을 죽일?”
이안이 툭 내뱉었다.
루시아와 발텐이 순간 눈을 치켜뜨는 가운데, 잠시 이안을 바라본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적어도 하나는 제거하리라고 결의를 다지셨습니다.”
이안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역시. 히케드는 통찰력과 과감함을 모두 갖춘 자가 분명했다.
현실에 순응해 마음이 꺾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떤 놈을 노리기로 하셨소?”
“…이나스 커글.”
세렌의 대답에, 발텐과 루시아가 거의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맙소사….”
루시아의 뒤편에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듣고 있던 디아나도 경악성을 터뜨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웃음 짓는 건 요그. 그리고 이안 뿐이었다.
조금 더 짙게 미소 지은 이안이 읊조렸다.
“과감하시군…. 승기를 잡은 쪽을 노리시다니.”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세렌의 눈빛은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종종 보이던 불안해하는 눈빛.
“…설마, 출진하신 것이오?”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발텐이 간신히 놀람을 추스른 목소리로 물었다. 세렌이 돌아보는 사이, 그가 덧붙였다.
“요새의 병력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그래서고…?”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방비의 일환으로, 필요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집결 병력은 다른 전선 거점에 골고루 파견했습니다. 필요 인원에는 물론, 경의 합류도 계산되어 있었고요.”
“그럼….”
“…전하께선 이나스 커글의 본거지가 거의 비어있으리라 확신하셨습니다.”
발텐의 안광이 가늘어지는 가운데, 세렌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해서, 그림자 숲 인근에 전초 기지를 확보하러 떠나신 겁니다. 위험하지만,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면 필요한 과정이니까요.”
…그래. 정말 솔선수범하는 군주라 이거지.
코로 웃음 지은 이안이 입을 열었다.
“놈의 본거지가 그림자 숲인가 보군.”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대답한 발텐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이안의 고개가 그가 가리킨 오른편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회색의 파장을 토해내는 소용돌이의 눈.
“…….”
이안의 시선이 그 아래로 내려갔다. 온갖 색이 뒤섞여 휘몰아치는 하늘과 달리, 지상은 여전히 그림자에 뒤덮인 것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어쨌건, 저 일대가 그림자 숲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저 너머로 늑대들을 보내는 건 너무 위험할 것 같소만.”
손을 내리며, 발텐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토록 광기가 가득하다면, 아무리 보호 장구를 두텁게 갖췄다 하더라도 과반수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오. 전하께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실 리가 없잖소.”
“…모르셨으니까요. 광기가 멈추지 않고 계속 짙어져 지금에 이른 건, 전하께서 떠나신 후의 일입니다. 게다가 본래도 늑대들은 전초기지 인근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길목만을 방비할 예정이었습니다.”
발텐을 마주 본 세렌이 목소리를 낮췄다.
“전하를 비롯한 극소수의 최정예 전력만이, 숲으로 진입할 예정이었죠.”
“돌아오면 계획을 바꾸시겠군.”
이안이 덧붙이자, 멈칫한 세렌이 그를 돌아보았다. 이안이 턱을 까딱이며 물었다.
“그래서. 전하께선 언제쯤 돌아오실 것 같소?”
“그게….”
머뭇거린 세렌이 이윽고 내뱉었다.
“…전하께서 약조하신 기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
눈을 치켜뜬 발텐이 굳어졌다.
반면, 이안의 입가에는 옅은 쓴웃음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럴 것 같더라,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서였다.
세렌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하의 계획대로라면 아무리 늦어도 이미 돌아와 계셨어야 합니다. …돌아오실 수 없는 상황에 처하셨거나, 계획을 바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아니…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소.”
발텐이 더듬댔다. 이안이 그를 돌아보았다. 히케드에게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모를 리 없다 호언장담하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세렌이 자신의 흉갑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최근에, 언제 깊이 관조해 보셨습니까?”
“……?!”
눈을 치켜떴던 발텐이, 뒤이어 자신의 흉갑에 손을 얹으며 눈을 감았다. 이안은 물론, 루시아도 그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익숙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사도가 성흔을 관조할 때의 모습과 흡사했으니까.
“이건… 맙소사….”
이윽고 발텐의 입에서 저주파 섞인 탄식이 번졌다. 다시 피어오른 그의 샛노란 안광이 황망하게 세렌을 바라보았다.
세렌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은 전하께서 남기고 가신 편린만을 느껴 온 겁니다.”
“…당장 전하께 가 봐야겠소.”
“아니요.”
“……?”
발텐이 곧바로 이어진 대답에 멈칫하는 가운데, 세렌이 내뱉었다.
“제가 갈 겁니다. 이제 경이 요새를 맡아주실 수 있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세렌 경.”
“먼 길을 오셨을 뿐 아니라, 전초 기지로 가는 길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제가 부탁드려야 할 분은, 경이 아닙니다.”
세렌의 시선이 이안 쪽으로 돌아왔다.
“…성자 대행이시죠.”
“…….”
이안은 놀라지도, 뭐라 대답하지도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고 내심 읊조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세렌을 마주 보았을 뿐이었다.
“…드라그 벨가에서 얼마나 위대한 전공을 이룩하셨는지,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이내 고개를 숙인 세렌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지독한 혼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시는 모습 역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죠. 그러니… 결례를 무릅쓰고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철컥, 그녀가 한쪽 무릎을 땅에 댔다.
“전하를 무사히 찾아뵐 수 있도록, 저와 동행해 주십시오. 지금 전하께서 어떤 상황에 처하신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성자 대행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어떤 상황이더라도 큰 힘이 될 겁니다.”
루시아와 디아나의 시선이 이안에게 집중됐다.
난감한 듯 침음하면서도, 발텐 역시 차마 만류하지 못하고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이안이 식인 마적단을 궤멸시킨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한순간 초소가 고요해졌다.
귀가 먹먹해지는 듯한 바람 소리만이 아주 먼 곳에서부터 메아리칠 뿐이었다.
이윽고 세렌을 내려다 본 이안이, 표정 변화 없이 내뱉었다.
“맨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