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시간 끌기
투기가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듯, 혈능도 혈능만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혈능은 황금색으로 빛났다.
아니, 은색으로 빛나기도 했다.
혈능은 시시때때로 두 가지 빛으로 반짝였다.
어떨 땐 황금색으로, 어떨 땐 은색으로.
또 어떨 땐 두 가지 색이 동시에 섞여 나타나기도 했다.
“오오!”
“로열……황제이시여!”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대하고 찬란함이 느껴지는 광채였다.
습관적으로 로열이라는 칭호를 입에 담았다가도 황제의 호칭으로 자연스럽게 고쳐 부를 만큼.
로열은 웅혼한 혈능을 거침없이 조작했다.
혈능은 널따란 복도를 가득 덮을 만큼 거대한 손이 되어 마왕군을 덮쳤다.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방어막을 펼쳤지만.
콰창! 콰창!
방어막은 그 효능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하고 단숨에 박살 났다.
“뭐……?”
이렇게 단숨에 깨져나갈 줄 몰랐던 일부 흑마법사가 놀란 눈을 했다.
이를 본 흑기사가 크게 일갈하며 검을 휘둘렀다.
“정신 안 차려?!”
흑기사의 검에서 마기로 만들어진 검기가 발출되었다.
그러나 검기는 혈능으로 만들어진 손의 전진을 멈춰 세우지 못했다.
그저 손은 가볍게 마기를 움켜쥐었을 따름이다.
우직! 우지직!
무언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손아귀 안에서 들려온다.
마기는 곧 검기의 형태를 잃고 힘없이 소멸했다.
그럼에도 혈능의 손은 조금의 힘도 잃은 것 없이 건재했다.
데스슬라임이 불쑥 솟아올라 혈능의 손과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흑마법사들과 흑기사의 공격이 쏟아졌다.
“됐다!”
“없어진다!”
적들은 서서히 사라지는 혈능의 손을 보며 화색을 했다.
하지만.
“그걸 막고 좋아하면 좀 섭섭한데?”
로열은 방금의 공격이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는 듯 연달아 혈능의 손을 쏘아냈다.
“이, 이게 무슨……!”
실력이 떨어지는 일부 흑마법사가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혈능의 손은 거대한 크기와 달리 움직임이 느릿하지 않았다.
기민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느릿하게 움직인 건 바로 놈들의 허를 찌르기 위함이었다.
퍽! 퍼벅!
느릿하게 움직이던 손이 단숨에 속도를 올리자 반응하지 못한 마왕군이 혈능의 손에 휩쓸려 곤죽이 되었다.
“갑자기…….”
“크아악!”
단말마를 남기며 쓰러지는 마왕군.
로열은 작은 벌레를 잡듯 혈능의 손으로 마왕군을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복도를 가득 메웠던 마왕군의 대다수가 쓸려나갔다.
“후, 후퇴하라!”
“뒤로 빠져!”
그들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듯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로열은 그들을 뒤따르며 뒷마무리를 하려고 했으나, 이는 금방 제지당했다.
“퇴각이 먼저입니다.”
지그렛은 본질을 꿰뚫고 있었고, 적절한 순간에 조언했다.
“아, 퇴각. 그렇지요. 그럽시다.”
로열은 출수하던 것을 멈추고 지그렛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궁전을 나왔을 때였다.
“빨리 땅굴을 따라 빠져나갑시다!”
노블의 귀족들이 가장 먼저 땅굴을 따라 들어갔다.
“모두 멈춰! 토굴로 들어가지 마!!”
갑자기 가온이 소리치며 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채 말리기도 전에 행동한 자들이 있었다.
“끄아악!”
“사, 살……!!”
우득! 우지직!
토굴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뼈가 부러지고 살결이 찢어지는 처참한 소리였다.
으적으적!
그리고 연달아 살점을 씹는 소리와.
퉤!
무언가를 뱉는 소리까지.
투르르르.
뱉어낸 무언가는 바로 방금 막 땅굴로 들어갔던 이의 머리통이었다.
그 머리는 짧은 사이에 끔찍한 고통을 맛봤는지,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로열의 활약을 보고 환호했던 원정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크워어어어.”
땅굴이 와르르 무너지며 땅 한 곳이 불쑥 솟아오른다.
치솟는 살점바닥과 흙, 돌덩이 사이로 놈의 모습이 보였다.
반쯤 썩은 살점과 허옇게 드러난 뼈.
고름이 줄줄 흐르는 눈알이 가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온전한 팔다리가 섞여 있기도 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은 없었다.
대신 얼굴 전체를 뒤덮은 듯한 크기의 입이 있을 따름이었다.
상어이빨 같은 날카로운 치열이 몇 겹이나 돼 한 번 씹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분쇄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데스웜…….”
데스웜은 무려 6레벨의 언데드였다.
레벨로만 따지면 원정대의 전력상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데스웜이 하나가 아니라 두 자릿수가 넘어간다면?
불쑥, 불쑥.
데스웜이 계속해서 땅을 파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땅굴로 빠져나가는 건 물 건너간 모양이야.”
지그렛이 혀를 쯧 하고 찼다.
처음 등장한 데스웜만 봐도 원정대가 파둔 땅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땅굴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만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몰랐고.
‘기다리고 있던 흙마법사들은…….’
가온은 혹시나 궁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던 흙마법사들이 살아있는지 흘끔흘끔 확인해봤지만, 그들이 살아있을 리 만무했다.
이미 데스웜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없으면 없었지 말이다.
[과-아-연-그-것-만-물-건-너-갔-을-까?]갑자기 들려온 길게 늘어진 목소리.
그 목소리는 지그렛의 혼잣말을 정확하기 듣고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혼자서 말하는 것 같지 않고 여럿이서 함께 합을 맞춰 말하는 것 같이 들렸다.
달그닥! 달그닥!
데스웜이 씹다 뱉은 원정대의 머리통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바로 옆에 머물던 원정대원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움직임을 보인 머리통이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휘릭, 허공을 날았다.
머리통이 허공을 날아 건물 너머로 코너를 틀어 사라졌다.
[살-수-있-다-고-생-각-한-것-자-체-가-오-만-이-다!]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나타내는 존재를 가온은 너무 잘 알았다.
“머리수집……가?”
하지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머리수집가는 그가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달린 머리 개수며 뿜어져 나오는 기세며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실제로 머리수집가의 몸에 달린 머리는 하나같이 인류의 것이었다.
마수나 마왕군의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의 수와 질에 따라 본신의 경지가 결정되는 머리수집가가 저만한 몸 전체를 인류의 머리로 채운 것이다.
애초에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동급…….”
머리수집가의 역량을 가늠하던 아이기스가 침음을 흘렸다.
사람들은 아이기스의 말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와 동급이라는 말은 곧 7레벨임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 * *
7레벨의 머리수집가 하나.
6레벨의 데스웜 다수.
그 외 흑마법사와 흑기사 전력까지.
마왕군의 전력이 급상승했다.
패퇴하던 흑마법사와 흑기사 사이에도 초인급 전력이 섞여 있었다.
원정대로서도 이제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진 셈이다.
머리수집가와 데스웜은 모습을 드러낸 후로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공격 의사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가온은 적의 행태에 깨달은 바가 있어 크게 탄식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가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간끌기입니다!”
“시간끌기?”
“필히 다른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애초에 우릴 이곳에 묶어두려던 겁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표정이 다급하게 변했다.
머리수집가도 그걸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상-황-판-단-이-빠-르-군-그-래-봤-자-지-만.]“크워어어어!”
“크워어어어!”
데스웜들이 일제히 포효하며 다시 땅속으로 머리를 쳐박았다.
쿠르르르.
순식간에 사라진 데스웜.
하지만 원정대는 알았다.
데스웜이 땅 아래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꿀꺽.
원정대는 제각각 이능을 끌어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하필 흙마법사들이…….’
원정대원들은 주변을 흘끗거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 원정대에 흙마법사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땅굴을 지키기 위해 흙마법사들을 놓고 궁전 안으로 들어간 게 패착이었다.
비교적 데스웜을 상대하기 수월했을 흙마법사들은 그들이 궁전 밖으로 빠져나오기 전에 이미 언데드들에게 참변을 당했다.
[후-후-후.]머리수집가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와르르 머리를 쏟아냈다.
머리수집가가 쏟아낸 머리들이 마기로 강하게 결속했다.
촤르륵!
머리를 체결해 만들어진 채찍이 휘둘러졌다.
공포스런 표정의 머리가 원정대를 향했다.
아이기스가 나서 공격을 막았다.
콰아아아앙────!
전과 다른 거대한 폭음이 귀를 쩌렁쩌렁 울렸다.
머리수집가는 아이기스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다.
아그작! 아그작!
머리들은 아이기스의 홀리실드를 쉴 새 없이 씹어댔다.
채찍을 타고 머리수집가의 머리가 계속 이동해 오고 있었다.
홀리실드에 붙은 머리가 점점 불어났다.
“큭!”
아이기스는 뒷발을 다시 뻗어 단단하게 지지한 후, 신성력을 크게 일으켰다.
“「디지니스Dizziness」!”
“「역병의 포자Spore of Disease」!”
“「나태의 늪Swamp of Pigritia」!”
곧바로 흑마법사가 가담했다.
아이기스의 방어에 막혀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던 그들은 한풀이라도 하듯 온갖 흑마법을 쏟아냈다.
그러나 원정대엔 아이기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세인트 실드Saint Shield」!”
“「정화Purification」!”
아이기스 덕분에 힘을 비축해온 사제들이 나서 맞불을 놓았다.
“죽여주마!”
흑기사가 저마다 마기를 뿜어내며 달려들고.
“죽는 건 너희들이다!”
노블의 귀족들이 응수한다.
“크워어억!”
혼란을 틈타 데스웜이 땅을 뚫고 나타났고.
“으아악!”
“안 돼!!”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한 원정대가 데스웜의 입속으로 으적으적, 씹혀 사라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건 바로.
“하아압!”
로열이었다.
로열은 혈능을 아낌없이 개방했다.
콰직, 쐐애액!
날개를 펼치듯 찬연하게 일어난 혈능은 손이 되고 검이 되어 적들을 공격했으며.
“끄아아악!”
“물러서지 말고 덮쳐!!”
쿠웅, 팅- 팅!
“젠장, 이 방패는 어디서 나타난 거야!”
“꾸워어어억!!”
또 커다란 방패가 되어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했다.
로열의 혈능 조작은 매우 능숙했다.
손, 검, 방패.
그것들로 공방을 삽시간에 교체하면서도 어느샌가 망치로 변해 데스웜을 쾅쾅 두드리기도 했다.
그런 조작이 전장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혈능에 담긴 권능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로열이 사용하는 ‘구현’이었다.
로열은 혈능을 사용하여 그 무엇도 구현할 수 있었다.
이는 켄트가 신성력을 조작해 다양한 형태로 만드는 것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로열은 혈능을 통해 물리적인 구현이 가능했다.
진짜 검, 진짜 방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굳이 그렇게까지 구현하지 않아도 전투를 하는 것에는 하등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고 승기는 원정대를 향해 점점 기울어가는 듯했다.
혈향 가득한 붉은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기 전에는.
“어머, 이거 재미난 판이 벌어졌네?”
모든 뱀파이어의 어머니.
그녀의 가장 충실한 시녀, 나이샤가 뱀파이어들을 이끌고 전장에 합류하고 만 것이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