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11
315화
자립
블루블러드가 거대세력이 될 수 있었던 건 전대(前代)의 역할이 컸다.
8레벨의 초월자였던 전대는 푸른 피를 가진 모든 몬스터를 모아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세력을 규합하고, 세력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그가 곧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의문사는 아니었다.
명확한 사인이 존재했다.
대침공에서 입은 치명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침공에서 활약한 영웅이었던 그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러니 그는 마왕군이 물러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8레벨에 이른 초월의 경지가 있었기에 죽음을 유예할 수 있었으며 지금의 블루블러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꽤 오랜 시간을 나쁘지 않게 살다 떠났다.
몬스터족이 아닌 다른 종족들도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만인의 배웅 속에 눈을 감은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었다.
‘블루블러드의 옥좌는 푸른 피를 초월한 자의 것이다.’
그의 유언은 다양한 해석이 달릴 수 있는 말이었다.
블루블러드에 소속된 사람들은 그의 유언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했다.
몬스터족이지만, 피가 푸르지 않았던 일부 종족들은 푸른 피를 초월한 건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주장했고.
푸른 피를 초월하려면 일단 피가 파란 게 맞지 않겠느냐며 반박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인원수를 가진 종족이 적합하다는 말을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의견은 의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대의 유언을 놓고 블루블러드에 소속된 종족들이 뭉치고 흩어지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그중 유독 단일 세력을 유지하는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세력이 바로 가장 많은 인원수를 가진 오크족이었다.
오크족이 단일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 많은 인원수가 도움이 되기는 했다.
다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이 단일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전대가 오크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크족은 다른 종족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위대한 자의 후손’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오크족의 탄탄한 조직력은 다른 종족들의 질시를 자아내기 충분했고.
이는 반(反)오크족으로 뭉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 블루블러드는 큰 두 개의 사내조직을 가진 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서로 반목하면서도 여전히 전대의 유언에 따라 적법한 계승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적법한 계승의 의미는 각 조직에 따라 달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재에 이르러 그들이 공통적으로 수긍하는 유언의 해석은 ‘초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초월의 가장 확실한 의미, 8레벨.
8레벨을 이루는 자가 조직의 수장이 되는 것으로 말이다.
“사실 제일 확실한 건 원이 나서주는 건데…….”
“제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네.”
“알아, 나도. 그냥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해본 이야기야.”
레이나는 눈썹을 으쓱거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둘은 붉은 오크나 엘프들에 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도 거대세력 못지않은 위세를 가진 종족임은 분명했지만, 기존의 세력 구도를 변화시키기엔 합류한 시점이 너무 최근이었다.
다른 도시인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칫 반발을 살 수도 있었다.
그걸 알기에 두 사람 모두 언급하지 않은 것이고 말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면.
‘가온이 새로운 체계를 주도해 만드는 건데…….’
정식으로 어떤 세력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붉은 오크나 엘프 모두 무조건적으로 가온을 지지하는 세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거기다 이번에 초월의 경지를 뛰어넘었으니 본신의 능력으로나, 세력적으로나 빠지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본인의 의지라고나 할까.
“레이나.”
“으응?”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내게 은근히 바람을 넣으려는 생각이라면 접어둬.”
“……내, 내가? 그럴 생각 없는데?”
레이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대답했지만,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떨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가온이 이를 알아차리는 건 너무나 당연했고 말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
가온은 레이나의 거짓말을 알아차렸지만, 짐짓 모른 척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가온도 자신이 나서면 정리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도시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개입해선 안 될 일이야.’
도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온이 도시를 위해 아무리 많은 일을 했다곤 하지만, 결국 그는 외지인에 불과했다.
납득하지 못하는 인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해온 일들은 도시를 위해서였다기보다는 인류를 위해서 한 일이지.’
인류의 멸망을 막고 마왕군을 내쫓기 위한 일들이었고, 그건 결국 가온 자신을 위한 행동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었다.
가온이 도시의 수장이 되는 건, 도시를 위한 일이지 인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도시는 도시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법을 강구 해야 했고, 강구하는 법을 깨우쳐야 했다.
자립(自立).
도시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가온은 장고 끝에 이 두 자를 입에 담을 것이었다.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때문에 가온은 그런 말밖에 더 할 수가 없었다.
* * *
톡.
레이나가 떠나고 혼자남은 가온이 정좌한 채 손가락으로 제 무릎을 두드린다.
톡.
다시 한번 더.
톡.
이는 그의 생각이 깊어짐을 의미했다.
레이나에겐 도시에 자립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또한 대답에 확신은 없었다.
때문에 레이나를 보내놓고도 과연 그게 맞는 대답이었을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와중에도 분명해지는 한 가지 생각은 있었다.
“……아무래도 만나봐야겠어.”
그건 누군가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가온은 그길로 곧장 사람을 보내 그 누군가를 불렀다.
터벅터벅.
한참이 지나고 누군가가 가온을 향해 다가갔다.
사람을 보내놓고 다시 정좌를 한 채 눈을 감았던 가온은 슬며시 눈을 떴다.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보시다시피 내가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널 이곳으로 불렀다.”
“괜찮아.”
상대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날 부른 거야? 얼굴 본 지 오래됐다고 얼굴이나 보자고 부른 건 아닐 테고.”
“물론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널 부른 건 아니야.”
가온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는 게 아니잖아, 렌?”
렌.
가온이 멋모를 때 잡았던 상어이빨늑대의 사체를 그대로 받아주었던 부산물 중개업자.
아니, 그런 글자의 나열보다는 이 세상에 떨어지고 가장 처음으로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던 이.
그는 그런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동료들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의 정신적 교감을 나눈 사람이 아닐까.
물론 렌의 생각은 다를 수 있었지만, 적어도 가온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리 생각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지.”
렌은 호쾌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요즘 많이 바쁘지?”
“그야 그렇지? 도시 코앞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들어오는 부산물도 많고, 가격도 많이 올랐거든.”
공급이 많아졌는데도 가격이 올랐다는 건 수요도 그만큼 증가했다는 뜻이었다.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군수품으로 취급되는 물품의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골치 아프겠네.”
“그렇지,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니까.”
오른 가격으로 물건을 많이 팔 수 있다는 건 곧 수익의 증가함을 의미했지만, 이상하게도 렌은 그것이 썩 좋지만은 않은 듯했다.
“그렇지. 가격이 오른다고 마냥 잘 팔린다고 박수만 치고 있었다간 물가에 혼란이 올 테니까.”
급진적 변화는 여러 가지 경제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걸 렌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내가 왜 이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하고……뭐, 그래.”
렌은 머리가 복잡하다는 듯 손을 들어 벅벅, 머리를 긁었다.
가온은 그런 렌을 바라보다 가만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렌.”
“……응?”
렌은 가온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눈치채고 머뭇, 대답했다.
“네가 주선해줬으면 하는 만남이 있어.”
“내가?”
“어.”
순간, 렌은 가온의 말이 잘 이해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네 명성이라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텐데.”
“네가 아니면 안 돼서 그래.”
가온의 말은 그가 진짜 만나고자 했던 인물은 렌이 아니었음을 의미했다.
“내 인맥이 필요하다고? 이거 귀하신 가온 님께서 친히 요청하실 만큼 중요한 사람이 과연 누굴까?”
렌은 영광이라는 듯 익살스러운 말과 표정을 하며 물었다.
하지만 가온은 그를 따라 미소를 그리지 않았다.
여전히 진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온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렌.
“……누군데 그래?”
“원.”
* * *
원(One).
디 원(The One)이라고도, 온리 원(Only One)이라고도 불리는 존재.
그를 부르는 호칭이 이렇듯 거창한 건, 그 존재가 능히 그런 호칭으로 불리울 만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단 한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당당히 거대세력 중 하나로 인정받는 존재.
그 혼자만으로도 능히 다른 거대세력만큼의 힘을 가진 존재.
그게 바로 원이었다.
“……누구?”
“원. 내게 그를 소개해줘, 렌.”
“……하하, 장난이지?”
“장난 아니야, 렌.”
꿈틀거리는 눈썹.
짝짝이로 떠진 눈.
벌름거리는 코.
어색한 미소를 그린 입.
렌은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고, 가온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고수한 채 고개를 저었다.
“정식으로 요청하는 거야, 렌.”
렌은 빠른 속도로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
“네게 원을 소개받고 싶어.”
“…….”
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끔뻑거리고 있었다.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외안경이 땅에 떨어져 굴렀지만, 그는 거기에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점점 빨라지는 눈깜빡임.
그러다 뚝.
어느 순간 단숨에 그 깜빡임이 멈추었다.
“……어떻게 알았지? 아니, 언제부터 안 거지?”
질문을 던지는 렌의 목소리가 달랐다.
톤의 변화가 아니었다.
경쾌한 톤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고 나올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목소리가 달라진 거였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처음 느낀 건 대수림으로 떠나기 전, 확신을 한 건 대수림에서 돌아온 후.”
7레벨의 끝에 의아함을 느끼고, 8레벨이 되어서 의아함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는 뜻이었다.
“……7레벨에 느꼈다고?”
렌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기존의 초월자들도 느끼지 못했던 걸 7레벨에 느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