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1
41화
가온의 각성(2)
분명한 건 가온의 각성이 레벨업을 뜻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온의 전투력이 올라가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레벨은 오르지 않았지만, 뚜렷한 전투력의 변화는 있었다.
그 상승을 가온이 체감했고, 스마셀 또한 느꼈다.
가온은 흥분했고, 스마셀은 분노했다.
가온은 들뜬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고, 스마셀은 질투를 억누르지 못했다.
가온의 새로운 전투법이 점점 자리를 잡아갈수록 두 사람의 대비는 더욱더 뚜렷해졌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전투가 가온에게 기울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전투는 여전히 스마셀에게 우세했으니까.
두 사람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분명 존재했다.
가온이 제아무리 새로운 전투법을 완벽하게 체득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혼자만의 힘으로 스마셀을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온에겐 그 실력 차를 메워줄 동료가 있었다.
켄트였다.
핑-!
바람을 가르는 옅은 휘파람 소리가 울리면, 여지없이 날아드는 화살.
빛의 화살이었다.
“큭.”
부족한 그릇으로 여신의 신성을 담아낸 여파로 반쯤 그로기 상태에 빠졌던 켄트가 어느새 후유증을 해소하고 손을 거들기 시작한 것이다.
켄트가 성물을 이용해 쏘아내는 빛의 화살은 여신의 신성이 담겼던 그것과 퍽 닮아있었지만, 또 많은 점이 부족하기도 했다.
공기를 뒤흔들고 좌중을 압도하던 기의 파장도,
영구적으로 마기를 소실시킨 파사의 기운도,
쏘는 순간 공간을 격하는 듯했던 빛의 속도도.
모든 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했다.
비록 열화된 화살이었지만, 여신의 신성에 한 차례 정화된 바 있는 스마셀에겐 유효타를 먹이기엔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따지자면, 이제 고작 2레벨이 된 켄트가 4레벨 초입의 스마셀에게 제대로 된 대미지를 입힌다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물에는 사용자의 신성력을 증폭시켜주는 기능이 있었다.
게다가 스마셀의 몸 안에는 그에게 치명상을 선사했던 여신의 신성이 일부 남아있었는데, 그게 빛의 화살과 동조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거다.
결국, 상황 자체가 가온과 켄트에게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쥐새끼가!”
잔뜩 화가 난 스마셀이 홱, 몸을 돌려 켄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켄트는 결코 위축되는 법이 없었다.
가온이 든든하게 제 앞을 막아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가온은 온갖 변칙성이 추가된 몸놀림으로 켄트를 향한 스마셀의 진로를 방해했다.
스마셀 또한 이를 알았지만, 한껏 까다롭게 변해버린 가온을 쉬이 떨쳐낼 수 없었다.
가온의 집중력은 이미 절정에 다다라 있었다.
모자란 경지를 메우기 위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확장된 기감.
스마셀이 내뱉고 들이쉬는 호흡,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까지.
모든 게 선명했다.
무거운데다 크기까지 한 대검을 어떻게 해야 빠르고 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저렇게 움직였던 거구나.’
스마셀의 대검처럼 커다랗고 무거운 것을 다루는 건 결코 일차원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검의 무게중심은 일반적인 검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대검을 휘두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몸이 휘둘러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모든 검이 다 그렇겠지만, 대검은 특히나 더더욱 몸의 중심을 잘 지켜야 하는 검이었다.
대검의 무게를 백 퍼센트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심력을 더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원심력은 몸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해야지만 나오는 종류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가온은 스마셀이 격한 움직임 속에서도 무게중심을 유연하게 이동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자세에서도 대검이 최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실로 완벽한 육체 밸런스다.’
가온은 감탄했다.
그리고 열망했다.
‘가지고 싶다.’
갈구함은 가온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육체의 재능은 머릿속으로 구상한 바를 몸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게 해주었다.
가온의 움직임에 스마셀의 일평생이 담긴 동작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수천 번도, 수만 번도 더 해온 동작들일 테니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뭐……?”
믿을 수 없다는 듯 스마셀의 목소리가 떨린다.
“감히!”
분노가 폭발했다.
참을 수 없었다.
도둑질. 그건 도둑질이었다.
가온은 자신이 평생을 깎아 만든 보석을 훔쳐 간 도둑놈이었고.
켄트의 화살을 견제하느라 신경의 일부를 분산해두었던 스마셀이지만, 더 이상 자신의 머릿속이 분노로 점철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이제 그의 눈앞에 적이라곤 눈앞의 가온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스마셀은 우둔한 광전사라도 된 듯, 미친 듯이 가온을 향해 덤벼들었다.
핑-! 핑-!
빛의 화살이 날아와 스마셀을 꿰뚫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쾅! 쾅! 콰아앙-!
가온은 온전히 방어에만 정신을 쏟았다.
“큭.”
신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허나 곧 신음은 줄어들었고, 사라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가온의 재능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덕분이었다.
스마셀의 움직임이 방어 자세에도 묻어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가온의 흡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온몸을 다양하게 쓰는데도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몸의 밸런스 조절이 완벽하게 통제하에 놓인 것이다.
스마셀이 가온에게 완전히 집중한 사이,
푹! 푹!
켄트의 화살이 계속해서 스마셀을 꿰뚫었다.
스마셀은 켄트의 화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시했지만,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다.
몸에 박힌 화살이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 순간,
“크헉.”
스마셀의 입에서 침음성이 새어 나왔으니 말이다.
***
십여 발의 화살에 적중당한 스마셀이지만, 온몸에 화살대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지는 않았다.
빛의 화살은 몸을 꿰뚫자마자 부스러져 빛의 가루가 되었고, 곧장 몸 안으로 파고들 듯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며든 빛무리의 정체는 켄트의 신성력이었으며 그건 흑기사인 스마셀에게 상극의 기운이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혹은 분노에 몸을 맡겨 가온만 쫓아다닌 대가는 이토록 처연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내부에 쌓인 신성력이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크기가 되어, 짜르르 통증을 유발한다.
거기다 켄트의 신성력에 반응하는 것인지, 내내 잠잠하던 여신의 신성 조각이 심상치 않았다.
더 이상 공격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
스마셀은 몸을 타고 오르는 통증을 삼키며,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전투를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서는 안 돼.’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마쳐야 했다.
‘먼저 저 활잡이부터 처리한다.’
더 이상 시간은 스마셀의 편이 아니었다.
조금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승부를 내야만 했다.
경중을 따져 내어줄 부분은 내어줘야 했다.
2레벨 사제의 공격이 더 위험하다는 게 아이러니한 부분이었지만.
스마셀이 가온의 공격을 갑옷으로 흘려 최소화하고 돌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
타이밍을 재던 스마셀은 켄트의 화살을 피해낸 순간 마기를 폭발시켰다.
울컥울컥, 쏟아져나온 마기를 온몸에 둘렀다.
결코 효율적인 운용방식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낭비되는 마기가 지나치게 많았지만 감내할 부분이었다.
마기는 스며들 듯 자리를 잡았고, 스마셀을 강화했다.
콰득!
바닥을 박찼다.
밟힌 건축물 잔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가온이 재빠르게 앞을 가로막았지만, 대검을 비스듬하게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힘으로 뚫고 갈 생각으로 마기를 더욱 두텁게 휘감았다.
더 많은 마기가 의미 없이 소모되었다.
“비켜라!”
스마셀은 귀찮다는 듯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휘이잉-
둔중한 대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잠시 물러났던 가온이 측면을 공격해왔다.
스마셀은 대검을 앞세워 막는 대신, 살짝 몸을 비틀어 갑옷으로 검을 흘리듯 막아냈다.
쿠득.
일부 갑옷이 뜯겨 나갔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돌진했다.
핑-!
화살이 날아왔다.
몸을 돌려 피했다.
덕분에 가온의 공격은 또 허용해야 했고 갑옷은 더욱 벌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덕에 좀처럼 줄지 않던 켄트와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파르르 흔들리는 켄트의 눈동자가 보인다.
스마셀은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끝이다!”
지척에 다다른 스마셀이 악의에 차 소리쳤다.
들어 올린 대검을 내리쳐 이 꼬마 놈을 처단하리라.
그런 생각으로.
하지만, 스마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커억!”
바로,
위협적이지 않다고 여겨 차순위로 미뤄두었던 가온에 의해서였다.
아찔한 고통이 눈앞을 하얗게 물들였다.
스마셀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고,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던 켄트가 멀찍이 달아나 있었다.
아니, 켄트가 달아난 게 아니었다.
자신이 그만큼 멀어진 것이었을 뿐.
스마셀은 자신이 몇 바퀴나 굴러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막대한 충격이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꼬마 놈을 먼저 처단하려는 의도는 간파되고 말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스마셀은 까득,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시야는 여전히 바닥에 붙어 올라갈 줄 몰랐다.
“……?”
스마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탓이다.
손을 뻗어 다시 바닥을 짚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야는 그대로다.
그제야 의아함을 느낀 스마셀이 시선을 거둬 몸을 살폈다.
그렇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반쯤 뜯겨 나간 자신의 허리를.
“이, 이게…….”
스마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연신 끔뻑거렸다.
상흔은 참혹했다.
몸을 단단하게 지켜줬어야 할 갑옷은 박살이 나있었고, 그 자리를 파고든 칼날은 피륙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놓은 상태였다.
척추라고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채 가르고 지나가진 못했지만, 박혀들 듯 반쯤 박혀버린 날붙이는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후드득, 아니 콸콸콸!
피, 부러진 뼛조각, 조각난 장기.
그 어떤 것 하나 가릴 것 없이 몸 안에 있던 것이라면, 갈라진 틈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스마셀은 제 몸을 눈으로 확인한 후로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커흐으…….”
스마셀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샜다.
두려움이 가장 컸고,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가온에 대한 원망도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스마셀은,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조무래기 둘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비로소 전투가 끝나가고 있었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