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23
1022
지크는 즉시 전략회의를 소집했다.
“뭔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반격할 좋은 방법이라도 떠오른 거냐?”
타이칸은 이번에도 지크가 뭔가 기상천외한 방법을 떠올린 줄 알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다만.”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아냐.”
“그럼…?”
“초토화 작전.”
지크가 타이칸의 물음에 대답했다.
“신성동맹군은… 키예프의 국토 전체를 박살낼 계획이야.”
그 말이 떨어지던 순간.
“……!”
“……!”
“……!”
회의실 내부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초토화 작전이라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던가?
“에이, 설마.”
타이칸은 지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초토화 작전을 펼치겠어? 전쟁도 결국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건데. 초토화 작전을 펼쳐버리면, 영토를 확보한다고 해도 얻는 게 없잖아. 게다가 주변국들의 민심도 더 흉흉해질 테고.”
“틀린 말은 아니지.”
지크는 타이칸의 의견이 마냥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근데… 신성동맹은 현재 유지하고 있는 전선이 많아. 그래서 손발이 부족한 상황이고. 나 같아도 이참에 초토화 작전으로 키예프를 박살내버리고, 중서부 전선을 완전히 정리하고 싶을 것 같은데?”
“……!”
“그리고 신성동맹의 최종적인 목적은 유일신 교단의 교세 확장을 통해서 천계의 문을 여는 거야. 천족들을 강림시켜서 중간계를 지배하는 거지. 단순히 영토 확장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게 아니라고.”
“그, 그게 정말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지크가 타이칸의 물음에 오히려 되물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갑자기? 그리고 신성동맹에 천족들이 있는 걸 보면 몰라?”
“그, 그렇군….”
“초토화 작전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야.”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도를 가리켰다.
“지금 신성동맹군이 퇴각하고 있는 방향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지?”
“응.”
“여기 이 지점.”
지크가 특정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군대가 갈라질 거야.”
“왜?”
“초토화 작전을 펼치는데 큰 덩어리는 필요 없어. 병력을 분산시킬 게 분명해. 10만씩 3개로 나누겠지. 그리고 각자 흩어져서 키예프의 국토를 파괴할 테고.”
“마, 맙소사….”
“그 와중에 대형은 유지할 거야. 이렇게 부채꼴 형태로 움직이면서….”
지크가 지도에 신성동맹군을 가리키는 검은 말 3개를 삼각편대로 만든 뒤 설명했다.
“우리가 초토화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서 오데사를 나서면….”
“포위.”
타이칸이 지크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섬멸.”
“정답.”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토화 작전은 중서부 전선도 정리할 겸, 우리 군도 오데사에서 강제로 끌어낼 겸해서 펼치는 거야.”
“아….”
“일석이조겠지.”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안면을 감쌌다.
“문제는… 지금 우리 군은 이 작전을 저지할 능력이 없다는 거지.”
지크의 말은 옳았다.
신성동맹군의 움직임만으로 그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앞으로의 이동 경로까지 모조리 예측해낸 건 정말이지 엄청난 거였다.
지크의 지략이 얼마나 뛰어난지가 엿보이는 단적인 예라고나 할까?
문제는 현재 오데사에 주둔 중인 10만 병력으로는 신성동맹의 30만 대군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
전쟁 초기부터 연전연패를 거듭해서 30만에 달했던 엄청난 병력을 대부분 잃어버린 탓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연합군을 출동시키기도 힘들었다.
지크가 제안한 연합군은 이제 막 결성되는 단계라서 당장에 군대를 동원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연합군에 가입한 국가들도 이미 신성동맹과 전쟁을 치루고 있기도 했고.
“어떻게… 해?”
타이칸이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
만약 군대를 끌고 오데사를 나섰다간 신성동맹군에 포위당해서 쌈 싸 먹힐 테고, 버티자니 초토화 작전에 수백만 명이 학살을 당할 터였다.
“어떡하긴.”
지크가 말했다.
“프로아 왕국군… 투입해야지.”
결국, 지크는 이번 전쟁에 프로아 왕국군의 투입을 결정했다.
***
사실 지크는 이번 키예프 왕국과 신성동맹 간의 전쟁에 프로아 왕국군을 투입할 생각이 없었다.
왜?
프로아 왕국군은 소수였으니까.
프로아 왕국은 드물게 징집병을 운용하지 않는 국가였다.
평소에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에게 양질의 전투력을 기대할 수는 없기에,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면서도 굳이 상비군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프로아 왕국군은 개개인의 전투력이 높은 대신, 그 병력의 전체 숫자가 10만 명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같은 경제력을 가진 국가들에 비해 병력의 수가 5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크는 프로아 왕국군을 소규모 교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지, 이렇듯 대규모 전투에 투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다른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다.
급하게 연합군을 꾸려서 투입한다고 해도, 그땐 이미 수백만 명이 학살을 당한 다음일 게 분명했다.
결국 지금 즉시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프로아 왕국군을 동원하는 것만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일단… 모든 학살을 막을 순 없어.”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여기 이 지점. 신성동맹군의 삼각편대 간의 거리가 가장 넓어질 때. 이때까지는 참아야 돼.”
지크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보이지? 적들의 이동 경로에 자리한 도시 9개.”
“보여.”
“인구가?”
“다 합쳐서 130만 명 정도….”
“다 죽을 거야.”
지크가 말했다.
“그 130만 명 모두… 살아남지 못할 거다.”
“하,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크는 타이칸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걸 보고도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아 왕국군은 전투력이 뛰어난 대신 병력의 숫자가 적다는 명백한 한계를 감안해야 했다.
그런 프로아 왕국군이 이번 전쟁에서 효율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려거든, 흩어진 신성동맹군들의 거리가 멀어야 했다.
130만 명이 학살을 당하더라도,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 한두 명도 아니고… 130만 명이 다 죽게 생겼는데?”
“없어.”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 방법밖엔….”
“그래도 그렇지, 130만 명이 죽어가는 걸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게….”
“모두를 살리는 건 불가능해.”
지크는 그 말을 하면서 스스로도 기분이 나빴다.
신성동맹의 꼬락서니가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모두를 살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프로아 왕국이 총력을 기울인다면, 충분히 전면전을 해볼 만했다.
그러나 지크는 프로아 왕국군이 큰 피해를 입는 걸 원하지 않았다.
키예프 왕국민들을 도와주겠답시고 프로아 왕국군을 희생하는 건 일국의 군주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대전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이 전투에서 병력손실을 크게 입으면 곤란하기도 했고.
“대신에.”
지크가 말했다.
“이 도시들에 사는 130만 명의 백성들이 탈출하게끔 별동대를 운용해볼 계획이야.”
“별동대?”
“다 살리진 못해도, 일단 절반 정도는 살려보려고.”
“어떻게?”
“모험가들.”
지크가 대답했다.
“모험가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운용해서 신성동맹군을 막고, 백성들을 대피시키는 거야. 그렇게 하면… 반 정도를 살릴 수 있을 거야.”
“그게 최선이냐?”
“응.”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엔 답이 없어.”
“알겠다.”
타이칸은 지크의 말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초 예상했던 피해인 130만 명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65만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지크의 예상대로, 오데사 근처에서 철수한 30만 신성동맹군은 10만 명씩 3개의 부대로 나뉘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학살했다.
신성동맹군은 크고 작은 마을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건물을 모조리 부쉈고, 논밭은 독극물을 뿌려 망가뜨렸고,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닥치는 대로 죽였다.
신성동맹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가축조차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였다.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라!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사악한 마귀가 들린 이교도들일 뿐이다! 자비를 베풀지 마라! 자비를 베풀 가치도 없는 마귀들이다!”
신성동맹군은 장교들의 독려를 앞세워 무자비한 학살을 벌이면서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렇다고 신성동맹군의 학살이 마냥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지크의 의도대로, 곳곳에서 게이머들이 튀어나와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쳤던 것이다.
“모조리 추격하라!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이런 빌어먹을! 포위! 포위하라! 도망치게 두지 말란 말이다!”
신성동맹군은 마치 홍길동처럼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게이머들 덕분에 골머리를 앓았다.
대도시에서는 게이머들이 백성들을 데리고 하수도를 통해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수천 명의 게이머들이 대도시의 성벽 앞을 가로막는 동안, 도시에 살고 있던 시민들 절반 이상이 대피에 성공했던 사례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피해가 적은 건 아니었지만, 키예프 왕국은 당초 예상했던 130만 명의 피해를 절반 이상으로 낮추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이 쥐새끼 같은 놈들.”
한편, 신성동맹군의 펜릴 군단장은 초토화 작전이 예상과는 달리 순조롭지 않자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그는 3개로 나뉜 신성동맹군 중에서 가장 북쪽을 담당하는 제2군단의 사령관이었다.
하지만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펜릴 군단장이 지휘하는 제2군단이 인구수 50만의 대도시를 포위함으로써, 곧 대학살을 벌일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청소를 시작한다.”
50만 인구수를 가진 도시는 이미 무력화된 지 오래라서, 전투를 치를 필요도 없었다.
그냥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죽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신성동맹군 제2군단이 학살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르던 무렵.
번쩍! 번쩍! 번쩍! 번쩍!
프로아 왕국군이 제2군단으로부터 약 5킬로미터쯤 떨어진 지역에 하나 둘 워프되기 시작했다.
신성동맹군 제2군단과 작은 야산 하나를 사이에 둔 지점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타난 10만 명의 프로아 왕국군은 재빨리 진열을 가다듬고, 전투 준비태세에 나섰다.
“충성! 전하를 뵙습니다!”
오스칼은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는 한편,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지크를 만났다.
“직접 오셨네요?”
“예, 전하.”
오스칼이 지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오스칼이 고개를 저었다.
“워프 게이트를 타고 왔을 뿐입니다.”
“하하….”
“아, 전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떤 보고입니까?”
“이번 작전에 아이린 전하가 이끄는 마우레키온 제국 제8군단이 참여하겠답니다.”
“예?”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아니.”
지크가 오스칼에게 물었다.
“그 여자, 아직 안 돌아갔어요? 마우레키온 제국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예, 전하. 차라리 프로아 왕국을 도와서 신성동맹과의 전투를 수행해나간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요?”
“현재 마우레키온 제국 제8군단이 신성동맹의 제3군단 근처에 워프한 상태입니다.”
“……!”
“한 시간 뒤 작전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오오!”
지크는 오스칼의 보고에 환호했다.
마우레키온 제국 제8군단이라면 신성동맹군의 제3군단을 순식간에 박살낼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2군단을 박살내고, 아이린이 제3군단을 박살낸다면….’
지크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남은 제1군단은 우리가 오히려 쌈 싸 먹는 거다.’
신성동맹군 측의 계획은 오데사를 빠져나온 키예프 왕국군을 3방향에서 포위, 섬멸하는 것.
하지만 아이린이 마우레키온 제국 제8군단을 이끌고 참전한 이상,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갈 게 분명했다.
이제 포위 후 섬멸당하는 건, 연합군이 아니라 신성동맹 측이 되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