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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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와 이건이 마지막으로 격돌한 맵은 이른바 이라 이름 붙은, 일종의 서바이벌 전장이었다.
이곳 에는 무시무시한 중립 생명체들, 그리고 식물들이 득실거렸다.
또한, 중간중간 이로운 버프들을 획득할 수 있는 우물과 엄청난 성능을 발휘하는 아이템들을 판매하는 비밀상점들이 다수 존재했다.
지크와 이건은 이곳 에서 살아남으면서, 기회를 잡아 서로를 죽여야 했다.
앞선 필드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빠르게 일대일 승부를 내는 거였다면, 이번 은 달랐다.
은신, 기습, 생존, 상황 판단, 몬스터 사냥 등등 게이머의 종합적인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필드였다.
[알림: 보정이 적용됩니다!] [알림: 보정에 따라 몬스터들이 폭발적으로 강해졌습니다!] [알림: 주의하세요! 이곳 필드에 등장하는 몬스터들과 각종 위험성은, 보정 시스템으로 인해 엄청나게 치명적입니다!]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오.”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재밌겠는데…?”
웃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지크는, 어느 필드에 떨궈놓더라도 위협 같은 걸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만큼 스펙이 높아져서, 긴장감을 느끼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 은 보정 시스템으로 인해 지크조차도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렇듯 스릴 넘치는 게임을 해본 적이 오래간만인 지크로서는, 오히려 보정 시스템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런 지크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매우 감탄했다.
– 아~ 한태성~ 웃고 있어요~
– 웃습니까? 이 상황에서~?
–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한태성. 이렇게 변수가 많은 맵에서도 이건을 압도할 수 있단 자신감을 드러내 보입니다.
게이머 입장에서 은 기피 대상 그 자체였다.
은 프로게이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필드였다.
공식전에서 은 총 34번 사용되었고, 경기를 치렀던 프로게이머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치를 떨었다.
그만큼 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아서, 적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는 생존 자체에 중점을 두어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크는 웃고 있었으니, 해설자들과 게임 전문가들이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쳤다.”
“뒤틀린 정글에서 웃어?”
관객들 역시 놀랐다.
팬들은 그동안 명성 높은 프로게이머들이 에서 어떠한 고초를 겪었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게다가 은 필드의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매 경기마다 필드의 형태가 뒤죽박죽으로 변하고 오브젝트의 위치도 달라지기에, 연습조차 불가능했다.
연습을 철저히 방지함으로써, 게이머들이 가진 본연의 실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내 실력을 확실히 보여줘야 돼. 논란의 여지를 만들면 안 돼. 내가 이건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걸 세계에 각인시켜줘야 해.’
지크는 생각했다.
‘그럼….’
지크는 아이템을 손에 쥐고 을 비추었다.
그렇게 지크가 가진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다.
“와. 저런 게 있네?”
“완전 맵핵이잖아?”
관객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거의 모든 필드를 통찰해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니….
– 아! 한태성 선수! 웃는 이유가 저거였습니까?
–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네요!
모두가 오해했다.
“당연히 켜겠지?”
“이건 이번 판에 암살당하겠는데?”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지크가 을 사용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스윽.
지크는 을 아공간 인벤토리에 넣고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 서, 설마!
– 한태성 선수! 저런 아이템이 있는데도 안 쓰겠다는 겁니까? 예?
– 퍼포먼스였습니다! 이런 아이템이 있다, 그런데 안 쓰겠다, 이거 안 써도 내가 이긴다. 이런 마인드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쓰지도 않을 아이템을 보여줄 이유가 없습니다!
지크는 이 있는 데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 후 발걸음을 옮겼다.
‘사냥 시작이다.’
이건을 사냥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지크의 입가에는, 즐거움 가득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의 면적은 제주도의 10분의 1 크기로, 엄청나게 큰 필드는 아니었다.
그러나 필드 자체에 정글이 우거져 있고, 길이란 게 없었으며, 각종 몬스터들과 오브젝트로 인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에 떨어진 지크와 이건이 서로 만나는 것조차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핵심은 ‘생존’이었다.
‘여기선 방심하면 죽어.’
지크는 스릴을 만끽하면서, 풀숲을 해치고 조심스레 나아갔다.
언제 어떤 변수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곳이니만큼,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곤란했다.
‘비행 능력은 쓰면 불리하다.’
지크는 날지 않았다.
정글 필드에서 비행 능력을 써봤자 제대로 된 정찰이 가능할 리 없었다.
오히려 지크의 위치만 노출시킬 뿐이었고, 자칫 잘못했다간 요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지크는 최대한 신중한 움직임으로, 필드를 돌아다녔다.
혹시나 근처에 있는 이건에게 기습을 당할 수도 있는 만큼, 주변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스윽.
풀숲을 지나던 중 날카로운 모양의 풀잎 하나가 지크의 손등을 스쳤다.
그 결과.
주르륵….
지크의 손등이 쩍! 하고 벌어지더니 피가 철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지크는 한낱 잎사귀에 손등이 베인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풀에 베인다고? 내가?’
지크의 육체는 칼에도 베이지 않을 만큼의 강도를 지녔다.
그런데 손등이 베였다?
보정 시스템이 지크의 예상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의미였다.
즉, 제아무리 스펙이 높은 게이머일지라도 이곳 보정 받은 에서의 생존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더 조심해야겠어.’
지크는 그런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정글도 같은 아이템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왜?
흔적이 남으니까.
풀을 닥치는 대로 베고 지나갔다가는 하는 꼴밖엔 되지 않았다.
‘시야를 확보해야 해.’
아는 것이 힘.
정보는 곧 생명이었다.
특히나, 이곳 과 같은 미지의 필드라면 더더욱.
‘나타나라.’
지크는 정말 오래간만에 들을 불러들였다.
최근에는 잘 사용할 일이 없어서 불러내지 않았지만, 지크는 시야를 공유해주는 망령들을 언제든 불러내는 게 가능했다.
지크가 을 전개할 때 적들을 붙드는 망령들이 바로 들이었다.
“흩어져서 주변을 감시해 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시야 공유해주고.”
그런 지크의 명령에 50마리의 들이 곳곳으로 흩어져 어둠 속에 자리를 잡았다.
수풀이 우거진 정글이라 들이 은신할 곳은 차고 넘쳤다.
‘좋아.’
지크는 50여 개의 CCTV를 확보하자 미소를 지었다.
기습을 당한다?
웃기는 소리.
이 없어도, 지크가 기습에 당해 죽을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곳곳으로 흩어진 들이 반경 1킬로미터 안을 철두철미하게 감시하고 있어서, 기습을 당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보자.’
지크는 들이 공유해주는 화면을 하나하나 돌려보면서,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던 중.
‘어?’
지크는 연두색으로 빛나는 액체가 든 우물을 발견했다.
‘39번 근처에 우물.’
그 우물이 어떠한 버프를 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하나.
의 우물물은 대체로 이로운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위험하진 않았다.
‘일단 가보자.’
지크는 39번 가 발견한 우물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위험.’
지크는 우물을 발견한 39번 근처에 적들이 매복해 있는 걸 발견했다.
17번 가 지크에게 경고를 보내왔다.
우물 주변으로, 웬 야만인 20여 명이 매복해 있었다.
함정이었다.
우물을 노리고 접근한 게이머를 습격하려는 게 분명했다.
‘어딜.’
지크는 숨어 있는 야만인들의 뒤로 돌아갔다.
필드의 NPC들이 지크를 습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크가 NPC들을 습격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
한편, 이건도 이곳 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오브젝트를 챙기고 있었다.
이건도 지크처럼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게이머인지라, 이런 혹독한 환경에 적응이 빨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건은 어째서 자신이 을 가진 게이머라 불렸는지를 증명해내었다.
– 와! 뭡니까!
– 이건 선수! 엄청납니다!
– 게임 재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요!
이건은 자신을 공격해온 들을 모조리 처치하는 기염을 토했다.
[뒤틀린 헌터리안]뒤틀린 정글에 서식하는 중립 몬스터.
영장류가 진화한 종으로서 오직 사냥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이다.
남부 대정글에 서식하는 헌터리안들의 상위 개체이며 이곳 의 보정 시스템을 받아 엄청나게 강해졌다.
•존재 구분 : 몬스터
•종족 : 헌터리안
•레벨 : 550
•클래스 : 매드 헌터
•특이 사항 : 매우 뛰어난 은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기습뿐 아니라 전투력 또한 엄청나게 뛰어나다.
이건은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들을 순식간에 베어버리며, 자신의 피지컬이 초인적인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앞선 1, 2경기에서 지크에게 탈탈 털렸던 걸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 한태성 선수는 역시 대단하네요. 저런 선수를 앞선 1, 2경기에서 압도했다는 거 아닙니까?
– 지금 이건 선수가 보여준 실력만 해도 대단한데, 한태성 선수의 실력은 얼마나 더 대단한 건지 감도 안 잡히네요.
– 이건 선수. 임자 아주 제대로 만났습니다. 어쩌면 하늘은 왜 나를 낳고, 한태성을 낳았냐며 한탄할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이번 경기에서 패배한다면 말입니다!
이건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사람들은 지크를 더더욱 높이 평가했다.
이건이 아무리 잘해도, 앞선 1, 2경기의 영향으로 인해 지크의 가치만 더욱 높아질 뿐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건이 사람들의 평가가 어떤지 알았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한바탕 난리를 쳤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건은 자신의 플레이에 의한 관객 반응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이건에게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지면 끝이다.’
이건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고, 집중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마저 패배한다면 평생 잊지 못할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계정까지 삭제될 예정.
그러니 이건으로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오직 이기기 위한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시작 전 손을 벌벌 떨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으니….
‘이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긴다.’
이건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들의 시체를 지나 우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우물 속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스으으!
뒤이어 이건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르륵!
우물물을 마신 이건의 모습이 마치 유령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우물물에 담긴 버프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