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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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진통?! 벌써?!”
지크는 놀랐다.
귤이의 출산 예정일은 앞으로 3주 정도가 더 남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진통이라니?
“어디 아픈 건 아니고요?!”
“아니옵니다! 진통이 확실하옵니다!”
“가, 갑니다!”
지크는 있는 힘껏 왕실 내 병원으로 뛰었다.
‘벌써 귤이가 나온다고? 오 마이 갓!’
지크는 생에 처음으로 아빠-비록 게임이긴 했지만-가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전하! 멈추시지요!”
“아니 되옵니다!”
“전하! 여기서부터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지크가 브륜힐트가 있는 병실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 들어갈 수 없다고요?”
“그러하옵니다.”
시종장과 더불어 시녀들을 총괄하고 관리하는 직책인 시녀장 헤르오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아내가 출산하는데 남편이 곁에 있어줘야죠! 비키세요!”
“아니 되옵니다.”
“저 왕인데요?”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버, 법도오?!”
“전하께서는 다른 세계에서 강림하신 존재이시니 잘 모르실 수도 있사오나, 뉘르부르크 대륙의 왕가에서는 왕비마마의 출산에는 오직 여자들만이 참석할 수가 있사옵니다.”
“그, 그래서 안 된다고요? 옆에서 손잡아주고 싶은데?”
“아니 되옵니다.”
시녀장 헤르오니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들어가시려거든 소인의 목을 치시지요.”
“…….”
“전하께서는 제왕이십니다. 진중히 공주마마의 순산을 기다리시지요.”
“하지만….”
“돌아가소서.”
그때였다.
“꺄아아악!”
문 안쪽으로부터 브륜힐트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브, 브륜힐트!”
“전하!”
“좀 옆에 있어주면 안 돼요?”
“하늘이 두 쪽 나도 그건 불가능하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니 되옵니다!”
“으으으!”
지크는 브륜힐트의 비명에 좀처럼 진중할 수가 없었다.
‘아오! 이 빌어먹을 법도! 내가 언젠간 뜯어고치고 만다!’
지크는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근데 왜 벌써 진통이 시작된 거죠? 예정일이 아직 3주나 남았는데?”
“전하.”
시녀장 헤르오니가 한심하다는 듯 지크를 바라보았다.
“저희 평범한 인간들도 팔삭둥이라고 하여 열 달이 아닌 여덟 달만에 세상에 나오는 아기가 있사옵니다.”
“그, 그래요?”
“하물며 특별한 혈통을 지니신 공주마마께오서 좀 더 일찍 세상에 나오시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겠지요.”
“그렇군요….”
지크는 졸지에 바보 취급을 당하고는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전하. 부디 제왕의 몸가짐을 유지하시며 진중히 기다리소서.”
“그러죠.”
결국, 지크는 브륜힐트의 곁에 있어주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휴. 진짜 같이 있어주고 싶은….”
그때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어?”
지크는 모퉁이를 돌다가 제시와 딱 마주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좋아 보이네요.”
지크가 살짝 딱딱한 어조로 제시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크는 평소 시녀들과 시종들에게 더 없이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제시에게만은 달랐다.
제시는 오즈릭 교단의 신도로서, 귤이를 납치하려고 했던 범죄자였으니까.
만약 제시가 자수를 하지 않았고, 브륜힐트의 뭔가 특별한 애정 행각(?)이 없었더라면 지크는 결코 제시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터였다.
“전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배려해주신 덕분이옵니다.”
“저한테 고마워하지 마세요.”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계속 왕궁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니까.”
“전하….”
“그런데 무슨 일이죠? 먼저 저를 찾아오기가 부담스러웠을 텐데?”
지크의 지적은 정확했다.
제시는 칼라일을 속이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었지만, 지크를 대하는 데 있어서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가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적에게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제시는 지크가 수틀리면 그녀의 머리통을 펑! 하고 터뜨려 죽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제시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왕비마마가 곧 출산하시는 이상 오즈릭 교단의….”
“아하!”
지크는 제시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브륜힐트의 출산은 곧 오즈릭 교단을 상대로 펼치는 역공작의 시작과도 같았던 것이다.
“전하. 곧 칼라일 경이 저를 다그칠 예정이에요. 오즈릭 교단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슬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흠.”
지크가 잠깐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자리를 좀 옮길까?”
“네.”
지크와 제시는 오즈릭 교단을 상대로 펼칠 역공작을 위해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
‘뭐?! 그 빌어먹을 연놈들의 새끼가 곧 태어난다고?!’
칼라일은 그 와중에 지크와 시녀의 대화를 엿들었다.
‘드디어!’
칼라일이 그런 생각을 하던 때.
빠악!
부르스의 발차기가 칼라일의 옆통수를 때렸다.
“커헉!”
피를 토하며 쓰러진 칼라일.
부르스가 쓰러진 칼라일의 귓가에 대고 위협적인 어조로 속삭였다.
[너 X발 집중 안 하냐?]“죄, 죄송….”
[뒤지게 한번 처맞아 볼래?]“이미 뒤지게 쳐 맞고 있었….”
[어쭈? 말대답을 하네?]“아, 아닙니다!”
[이거 보자보자 하니까 아주 개념이 없어?]“죄송합니다!”
[잘하자. 응?]“예!”
[실수로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는 거, 알지?]“명심하겠습니다!”
칼라일은 부르스의 협박에 벌떡 일어나 자세를 다잡았다.
‘이 개 같은 목각인형 새끼! 두고 보자! 곧 네놈과도 안녕이니까!’
칼라일은 속으로 부르스를 향해 쌍욕을 퍼부으며 이를 갈았다.
그간 부르스에게 얼마나 많이 쳐 맞았던가?
칼라일은 아주 골병이 들대로 들어서, 하루라도 삭신이 안 쑤신 날이 없었다.
매일 치료 마법과 포션을 달고 사는 중인데도 골골대기 일쑤였으니,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나날도 이제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는 거다. 그 망할 연놈들의 애새끼가 태어난 이상 이 지옥 같은 생활도 곧 끝난다.’
칼라일은 지크와 브륜힐트 사이에 태어난 아기를 납치할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의 칼라일은 그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다.
왜?
곧 복수가 완성될 테니까!
***
지크의 집무실 안.
“그래서 여차저차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지크는 미켈레에게 제시와 나누었던 대화를 설명해 주었다.
“좋은 방법입니다.”
미켈레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전하께서는 쓸데없이 잔머리 하나만큼은….”
“뭐 인마?”
“아, 아닙니다.”
지크가 눈을 부라리자 미켈레가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모험가 디자이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황제한테 편지를 써서 다시 척살령에 따른 현상금부터 올려달라고 말해야겠지? 그럼 걔가 가진 아티펙트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못 팔게 될 거야.”
“아주 죽이려고 작정을 하시는군요.”
미켈레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간이 어쩜 저리도 잔인할 수 있는지….
그러나 지크가 과거에 당했던 걸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뿐이었기에, 심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켈레는 단지, 자신이 모시는 왕이 가진 악랄함에 순수하게 놀랐을 뿐이었다.
“똑같이 느껴봐야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 어떤 건지.”
“하하….”
“그건 그렇고. 아마 황제가 현상금을 다시 내걸고 길드원들의 추적이 시작되면….”
지크는 채형석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 보았다.
“후후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뭡니까?”
“그게 그러니까 말야….”
지크가 미켈레에게 자신이 가진 생각을 들려주었다.
“와.”
“왜?”
“전하.”
“응?”
“혹시 악마 아니십니까?”
“아, 악마?”
“사람 피를 말리는 방법에는 아주 도가 트셨군요. 어휴.”
미켈레는 진심으로 지크에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오싹!
지크가 말해준 는 듣기만 해도 악랄해서, 이게 사람이 꾸민 계획인지 악마가 꾸민 계획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맞는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끄응!”
“왜 그러십니까? 혹시 볼일이 마려우신 겁니까?”
“아니거든!”
미켈레의 물음에 지크가 발끈했다.
“브륜힐트가 걱정돼서 그런 거거든!”
“그러셨군요.”
미켈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분들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뭐 인마?!”
지크는 미켈레가 왕답지 않게 안절부절못하느냐는 걸 현실의 가족들이 아냐고 물어보는 줄 알고 발끈했다.
“너 지금 나 욕해?!”
“예? 제가 왜 전하를 욕합니까?”
미켈레가 왜 화를 내냐는 듯 생뚱맞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으응?”
“전하께서는 저쪽 세상에 어머님과 여동생분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전하의 어머님과 여동생분께는 각각 손녀와 조카가 생기신 것이지요. 저는 그걸 알리셨냐고 전하께 여쭤본 것뿐입니다만?”
“그, 그래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겁니까?”
“아니….”
지크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민망하다는 듯 대꾸했다.
“난 니가 호들갑 떤다고 나 욕하는 줄 알았지….”
“…….”
“미, 미안.”
하도 욕을 먹다 보니 이제는 무슨 말을 들어도 자신을 험담한다고 생각하게 된 지크였다.
“그래서 어머님과 여동생분께 알리셨다는 겁니까, 안 알리셨다는 겁니까.”
“아, 알렸지!”
지크는 어쩔 수 없이 미켈레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크의 머릿속에 어떠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엄마.] [응?] [나… 아빠 됐어.] [뭐, 뭐라고?! 아빠가 돼?! 너 사고 쳤니?] [그, 그게 아니라… 게임에서 NPC랑 결혼해서 아기를….] [이놈 새끼야!] [악!]지크의 머릿속에 엄마표 등짝스매시가 작렬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아, 안 돼! 절대 말 못 해!’
지크는 게임 속에서 결혼하고 애도 낳았단 사실을 어머니께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불효를 저지르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미켈레는 갑자기 고개를 휘휘 젓는 지크를 바라보며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
지크는 로그아웃은커녕, 왕실 병원 건물 앞을 서성이며 날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브륜힐트의 진통이 워낙에 길어져서, 도저히 로그아웃을 할 수 없었다.
진통을 겪는 아내의 곁을 지키지도 못하는 주제에, 출산 직후에도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지크는 병원 건물 앞을 밤새도록 이리저리 서성이며 딸, 귤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브륜힐트의 진통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지크는 무려 이틀을 꼬박 지세우고 말았다.
[경고 : 브레이브 뉴 월드를 플레이하신 지 47시간이 지나셨습니다. 과도한 게임 이용은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알림 : 게임 과다이용으로 인해 한 시간 후 접속이 종료될 예정입니다.]오죽했으면, 지크의 눈앞에 강제 접속 종료를 알리는 알림창마저 떠올랐을 지경이었다.
“아. 한 시간만 자고 올까. 이러다 강제로 로그아웃 당하면 곤란한데….”
지크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응애- 응애애-!”
병원 건물로부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지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하!”
그때, 시녀장 헤르오니가 병원 건물에서 나와 지크에게 보고했다.
“감축드리옵니다. 왕비마마께서 무사히 공주마마를 생산해 내셨사옵니다.”
“그, 그래요!”
“오래 기다리셨사옵니다. 어서 가 보시지요.”
“아! 네!”
지크는 헐레벌떡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 브륜힐트가 귤이를 낳은 병실로 향했다.
“응애! 응애애- 응애!”
병실에 도착하자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귤이는 최고급 비단보에 싸인 채 시녀에게 안겨 있었다.
하지만 지크는 갓 딸아이보다는 브륜힐트를 먼저 챙겼다.
그런데.
“흑흑… 흑흑흑!”
브륜힐트가 울고 있었다.
‘왜 울어?’
지크는 당황했다.
지금 브륜힐트는 결코 기쁨이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흑흑, 흑흑흑… 여, 여보오~ 흑흑흑!”
브륜힐트는 정말이지 서럽게 울고 있어서, 너무나도 불쌍해 보였다.
안 그래도 아기를 낳느라 파김치가 되어 버렸는데, 온통 눈물범벅인지라 지크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여보! 왜 그래요! 왜 울어요!”
“여보… 아기가, 아기가요… 흑흑흑!”
“아기가?”
“아기가… 흑흑흑!”
“울지 말고 말해 봐요! 왜 울어요!”
“흑~ 아기가….”
브륜힐트가 자신이 어째서 우는지를 지크에게 말해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