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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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괴도 팬텀을 마우레키온에 넘기신다면, 전하께서는 재산을 지키실 수가 없사옵니다.”
“음?”
“마우레키온 제국에서 팬텀을 고문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 않지 않사옵니까? 만약 그녀가 전하의 의도를 마우레키온 제국에 고발하기라도 한다면, 아무래도 입장이 다소 껄끄러워질 수가 있지 않겠사옵니까?”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지크가 아차! 싶단 표정을 지었다.
“현재 전하와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이는 매우 우호적이옵니다. 좋은 관계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사옵니까?”
“그, 그건 그렇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슈트카르트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는 건 지크로서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크가 살짝 고민하다가 말했다.
“차라리 여기서 죽여 버릴까요? 체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순간.
“야 이 양아치 새끼야!!!”
잠자코 지크와 오스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셀레나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크가 냉정하다 못해 이제는 살인멸구, 즉 셀레나를 제거해서 입을 완전히 막아버리고 보물들을 꿀꺽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미모의 글래머와 결혼도 할 수 있다는데! 니가 뭔데 나를 죽이니 마니야! 복에 겨워서 미쳐버린 거냐! 야! 이 인간쓰레기야!”
“뭐라는 거야.”
지크는 그런 셀레나의 악에 받힌 외침을 깔끔히 무시하고는 오스칼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전하. 비록 그녀가 중범죄자이긴 하오나, 그 능력만큼은 매우 뛰어나옵니다.”
“유능한 사기꾼에 도둑놈이긴 하죠.”
지크가 그렇게 대답하던 때.
“야! 누가 사기꾼이야! 누가!”
셀레나가 또다시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지만, 지크는 역시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요?”
“전하께서 그녀를 전혀 이성적으로 느끼시지 않으니, 차라리 등용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그런 뒤 마우레키온 제국에는 체포 후에 악귀의 초상화는 회수했지만, 안타깝게 놓쳤다고 보고를 하시는 것이옵니다.”
“음.”
“그럼 전하께서는 전하의 의도를 숨길 수도 있으시고, 그녀의 보물들을 모두 독차지하실 수도 있으시옵니다. 그리고….”
오스칼이 힐끔 셀레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녀를 등용하심으로써 매우 유능한 첩보원을 하나 얻으시게 될 것이옵니다.”
“유능한 첩보원이요?”
“본국의 정보력은 상당수가 도둑 길드나 수호자들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옵니다.”
“그렇죠.”
“본국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정보국의 수준은 결코 높다고 할 수가 없사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등용하시어 정보국의 수장을 맡기신다면, 국력에도 큰 보탬이 되실 것이옵니다.”
“오!”
지크는 오스칼의 조언에 눈을 번쩍 떴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지크는 셀레나와의 결혼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보물을 독식하는 것과 프로아 왕국의 정보력을 키우는 것은 매우 구미가 당겼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물론 제일 좋은 건 그냥 죽여서 입을 막는 건데, 그러자니 능력이 좀 아깝기도 하고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셀레나는 그런 지크와 오스칼의 대화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넋을 놓고 말았다.
이런 비참함이라니….
명색이 괴도 팬텀인 그녀가 뺀질뺀질한 모험가 놈에게 붙잡혀 개무시를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죽일지 살릴지 간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될 줄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차라리 그게 낫겠네요? 죽이기도 좀 찝찝하긴 하니까.”
“예, 전하. 살생은 되도록 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지요. 게다가 이런 능력 좋은 첩보원은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편이옵니다.”
“좋아요.”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오스칼 경의 조언은 언제 들어도 좋단 말야.’
지크는 신하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셀레나를 돌아보았다.
“야.”
“…뭐.”
“너 내 부하가 되라.”
그 순간.
빠직!
셀레나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
그렇게 지크는 괴도 팬텀인 셀레나를 등용하기로 하고, 오스칼에게 그녀를 넘겼다.
“잘 데리고 가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부려 먹어야 하니까.”
“예, 전하.”
오스칼이 고개를 숙였다.
“야! 이 양아치야! 너 따위 놈이 나를 걷어차? 니가 뭐 그렇게 잘났어! 뭐가!”
셀레나는 지크가 자신을 아내로 삼지 않고 한낱 부하로 부려 먹기로 했다는 것에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토해냈다.
“그만.”
그러자 오스칼이 차가운 목소리로 셀레나에게 경고했다.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나의 주군을 모욕하면….”
“…….”
“죽일 것이다.”
그야말로 날이 시퍼렇게 선 목소리.
“존엄하신 국왕 전하께 예를 갖추도록. 이제 네 주군인 분이시니.”
“하, 하지만….”
“사람이면 전하께서 베푸신 은혜에 보답할 생각을 해라. 감히 전하를 모욕하는 무례를 저지르기 전에.”
셀레나는 오스칼의 그 무시무시한 경고를 듣고 나서야 입을 꽉 다물었다.
‘역시 오스칼 경.’
지크는 셀레나를 한 방에 제압한 오스칼에게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그럼, 전 악귀의 초상화와 카이텔 후작을 찾아서 란돌 공작을 만나러 가죠. 잘 부탁드려요, 오스칼 경.”
“맡겨만 주시옵소서.”
그렇게 지크는 오스칼과 헤어져 햄찌를 데리고 악귀의 초상화와 카이텔 후작을 찾으러 향했다.
***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지크는 악귀의 초상화를 찾고, 카이텔 후작 역시 찾은 뒤 으로 귀환했다.
“전하!”
그러자 잠에서 깬 란돌 공작이 발 벗고 나와 지크를 맞이했다.
“기어코 괴도 팬텀을 체포하신 것이옵니까?”
란돌 공작이 기절한 채 지크에게 안겨 있는 카이텔 후작을 보고는 소리쳐 물었다.
“체포하긴 했는데요, 방심하는 사이에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크가 뻔뻔하게 란돌 공작을 향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다행히도 악귀의 초상화와 카이텔 후작님을 확보해놓은 상태에서 놓쳐서 망정이지, 그 전에 놓쳤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허!”
“죄송합니다, 란돌 공작님.”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란돌 공작을 향해 최대한 미안해하면서도 또 면목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옵니다! 전하! 비록 놓치긴 하셨으나, 전하께서는 황제 폐하의 소중한 애장품을 지키시고 카이텔 후작까지 구해내지 않으셨사옵니까?”
란돌 공작은 손사래까지 쳐가며 시무룩해 보이는 지크를 위로했다.
‘지크프리트 전하께서 이토록 상심을 하시다니. 허허. 상심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을.’
란돌 공작은 지크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전하. 표정이 너무 밝습니다. 더 미안해하는 기색이 보이셔야 합니다.] [이렇게요?] [조금 더 감정을 실어 보시지요.] [이렇게?] [조금 나아졌습니다.]사실 지크는 란돌 공작을 만나러 오기 전 그랭구아르에게 30분 정도 연기 수업을 받았던 것이다.
그 결과 란돌 공작은 지크의 거짓부렁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전하. 정말로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미련하게 잠들어 버린 탓에 하마터면 악귀의 초상화를 잃을 뻔하지 않았사옵니까? 이는 다 전하의 공이옵니다.”
“아닙니다.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뒀어야 했는데… 하아….”
“전하. 상심하지 마소서. 제가 황제 폐하께 전하의 활약상을 상세히 보고하겠사옵니다. 전하께서 이번 활약상에 대해 합당한 보답을 답으실 수 있게끔 말이옵니다.”
“그저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허허….”
란돌 공작은 지크의 태도에 감동 받아 그저 허허 웃으며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그리고 지크는….
‘헤헤. 죄송합니다.’
마음속으로 란돌 공작에게 미안해했다.
***
카이텔 후작은 그날 오후가 돼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아르튀르의 황립 종합 병원 안.
“여, 여긴… 어디요?”
“정신이 좀 드십니까?”
“란돌 공작님이 아니십니까? 여기엔 어쩐 일로….”
“그게….”
란돌 공작이 카이텔 후작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허!”
카이텔 후작은 자신이 며칠 동안이나 기절해 있었고, 그동안 괴도 팬텀이 다녀갔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놀랐다.
“그,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까? 맙소사!”
“하지만 여기 계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서 대활약을 해주신 덕분에 악귀의 초상화는 무사히 지켜낼 수가 있었습니다.”
란돌 공작이 진짜 카이텔 후작에게 지크를 소개해 주었다.
“오오! 전하! 제가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감사드리옵니다!”
“별말씀을요.”
“이곳 미의 전당의 책임자인 제가 더욱 조심해야 했던 것을… 면목이 없사옵니다.”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대는 괴도 팬텀이었고, 예고장을 보내기 전에 카이텔 후작님을 납치한 것이었으니까요.”
지크가 카이텔 후작을 위로해 주었다.
“하오나….”
“비록 괴도 팬텀을 놓쳤지만, 어쨌거나 모든 게 제자리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시죠.”
“전하의 위로에 감사드릴 뿐이옵니다.”
지크는 그렇게 카이텔 후작, 그리고 란돌 공작과 함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러고는 사부에게 받은 그림을 꺼내 카이텔 후작에게 보여주었다.
지난번에는 카이텔 후작으로 위장해 있던 괴도 팬텀에게 물어본 것이었기에, 진짜 카이텔 후작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 이 그림을… 아십니까?”
지크가 카이텔 후작이 그림을 잘 볼 수 있도록 각도를 잡아주며 물었다.
“감상 같은 걸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단지 이 그림을 아시는지 해서…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으음.”
카이텔 후작은 오랫동안 기절해 있었던 탓에 살짝 머리가 아픈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지크가 보여주는 그림을 한참이나 뜯어보았다.
“흐음. 으으음. 음. 흐음. 음음. 음.”
지크는 그림을 한참이나 뜯어보는 카이텔 후작의 모습에 반쯤 낙담했다.
‘역시 모르나.’
뭔가를 알았다면 한 번에 안다고 말했지, 저렇듯 요리조리 뜯어볼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모르….”
“아는 작품입니다.”
“……!”
“긴가민가했는데, 기억이 납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예, 전하.”
지크의 물음에 카이텔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그림은 사실 제가 직접 판매한 그림은 아니고, 샹젤리제 옥션에서 거래되었던 물품들을 정리하던 도중에 언뜻 지나가듯 본 것이라 확실하지는 않사옵니다.”
“그래서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이 작품은 150년 전에 샹젤리제 옥션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에 낙찰되었던 그림이옵니다.”
“헉!”
“기록에 의하면 150년 전 어느 노인이 당시로서는 정말이지 엄청난 금액에 낙찰받았다고 하옵니다.”
“……!”
“이 그림의 이름은 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혹시 아케론인가요?”
“음?”
지크가 살짝 기대하며 던진 질문에 카이텔 후작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옵니다. 아케론은 그보다 더 오래전에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연금술사가 아니옵니까?”
“그, 그렇죠?”
“이 그림은 200년 전쯤에 이곳 아르튀르에서 활동하던 여류 화가인 크리스티의 그림이옵니다.”
그 순간.
‘뭐지?’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남자가 아니었어?!’
크리스티란 이름이 남자가 아닌 여자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