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43
542
‘껄끄럽네.’
지크는 발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지크에게 있어 펠리세이드 2세를 비롯한 언데드가 된 연합군 수뇌부들은 몬스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NPC들에게는 달랐다.
특히나, 혈육인 키릭스 왕자의 입장에서는 펠리세이드 2세를 처형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게 분명했다.
그래서 지크는 키릭스 왕자를 대신해 펠리세이드 2세를 처형해 버렸던 것이다.
‘하긴. 인간이랑 똑같이 생각하는 NPC들이니까. 하여간 이 게임은 너무 고퀄리티라서 문제야.’
지크는 괜스레 느껴지는 이 측은한 감정에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유통사인 을 향해 투덜거렸다.
반대로, 키릭스 왕자의 경우엔 달랐다.
‘저, 전하….’
키릭스 왕자는 지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마워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렇듯 저를 배려해 주시다니….’
키릭스 왕자는 차마 제 손으로 아버지를 처형할 수 없던 와중에 지크가 그걸 대신해줘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지략도 훌륭하고 무력도 뛰어난데, 이렇듯 배려심까지 넘칠 줄이야….
‘전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키릭스 왕자는 멀어져 가는 지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고는 기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바마마의 유해를 수습하고… 본국으로 보내 장례를 준비하도록 하라.”
“예, 전하.”
기사들이 키릭스 왕자의 명령에 따라 죽은 펠리세이드 2세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뭣이? 악시온 요새가 점령을 당했다?”
데스포그는 제 귀를 의심했다.
당연히 성공적으로 방어할 줄로만 알았던 가 불과 두 시간 만에 점령을 당했다는 믿지 못할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모험가들이란 존재들까지 고용해서 투입했는데?”
“그, 그러하옵니다.”
“이유가 있을 텐데.”
현명하게도, 데스포그는 화를 내는 대신에 패배의 이유를 물었다.
결코 쉽게 뚫리지 않을 것만 같던 가 이렇듯 무너졌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전투에 투입되었던 모험가들이 허무하게 무너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옵니다.”
리치가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했다.
“주된 요인은?”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는 모험가의 대활약이 있었다고 하옵니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으음!”
데스포그는 스텔론 국왕의 기억을 뒤져 지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뺀질뺀질한 놈이라고 하는군.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그러하옵니다.”
“그자가 대활약을 했다?”
“흥미로운 정보가 있사옵니다.”
“무언가? 그 흥미로운 정보라는 게?”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가 대활약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방사능 에너지를 뿜어내는 특별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하옵니다. 아군 모험가들이 그 방사능 에너지에 모조리 중독되어 죽어 버렸다고 했사옵니다.”
“그런데?”
“그 방사능 에너지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매우 강한 코쿠라스 포스가 느껴졌단 보고이옵니다.”
“매우 강한 코쿠라스 포스라니? 그럼 그 뺀질뺀질한 놈이 내 파편의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이른바 란 와 같은 종족이 사용하는 에너지로써, 이계의 마나라고 이해하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연합군 측 진영에 합류한 모험가들이 아군을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던 이유도 코쿠라스 포스가 압축된 구슬로 장비를 업그레이드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사옵니다.”
“그렇다면….”
“예, 전하. 소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미 두 개의 파편이 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듯하옵니다. 북부 대수림과 남부 대정글에 떨어졌던 전하의 파편들이 모험가들에게 당한 것 같사옵니다.”
“뭣이? 이런 빌어먹을!”
데스포그가 옥좌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당장 나의 파편들을 찾아라! 누가 내 파편들을 가지고 갔는지 알아보란 말이다!”
“아, 알겠사옵니다!”
“일이 골치 아프게 되어버렸군….”
데스포그는 이를 악물었다.
일단 시간을 벌면서 나머지 파편들을 찾아 완전체가 될 생각이었는데, 이미 두 개의 파편이 모험가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건 아주 안 좋은 소식이었다.
다른 파편과 그냥 융합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서 파편을 빼앗는 게 훨씬 어려운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일단 파편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예, 전하.”
“불사 군단을 준비하라. 저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명령, 받들어 모시겠사옵니다.”
그렇게 은 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대규모 전면전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
대규모 전면전을 준비하는 건 연합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합군은 를 점령한 후 부득이하게 처형한 수뇌부들의 시체를 각자 본국으로 보내 장례를 준비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군대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덕분에 호황을 누린 건 비머리언 공방이었다.
비머리언 공방은 연합군 장병들이 가진 무기에 소켓을 뚫고 을 박아 넣는 작업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크는 비머리언 공방의 수익 중 일부를 나누어 받았다.
“오오! 덕분에 본 공방의 적자를 메꿀 수 있겠구려!”
크반트가 바쁘게 돌아가는 이동식 대장간을 보며 기뻐했다.
“이게 다 그대 덕분이오!”
“별말씀을. 후후후.”
지크가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아, 수고비는 잊지 않으시겠죠?”
“그걸 말이라고 하겠소? 걱정 마시오. 연합군으로부터 대금을 받는 즉시 그대의 계좌에 입금해줄 터이니.”
“크반트님은 역시 상도덕이 뭔지를 아신다니까? 하하하!”
“껄껄껄!”
어느새 지크와 크반트는 연합군에 무기를 대는 군수업자(?)로 변신해 쏠쏠하게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주인 놈… 이제는 사업가 다 됐다. 뀨우.’
햄찌는 그런 지크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막 한가운데서도 수익을 창출해 부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연합군의 일감을 비머리언 공방에게 몰아주고, 중간에서 인센티브를 받아먹을 줄이야….
하지만 키릭스 왕자를 포함한 연합군 수뇌부들은 그런 지크의 검은 속내는 까맣게 모른 채 그저 감탄하고 있었다.
“맙소사. 비머리언 공방을 섭외하다니.”
“저런 엄청난 인맥을….”
“빠르게 비머리언 공방과 계약을 맺고 아군의 장비를 강화시킬 줄이야… 지크프리트 전하의 능력이란 도대체 어디가 끝이란 말인가?”
뉘르부르크 대륙 3대 공방 중 하나라는 비머리언 공방이 이렇듯 출장까지 와 병사들의 무기를 직접 강화시켜 주는 장면이란, 연합군 수뇌부들로서도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진풍경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연합군 병사들이 를 이용해 를 갖추는 동안 사령부에서는 전략 회의가 열렸다.
“형님, 전략 회의한다고 오시랍니다.”
“그래, 알겠어.”
지크는 승구에게 전략 회의가 열린단 말을 듣고 회의실로 가 회의에 참석했다.
***
“자, 그럼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께서 참석하셨으니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키릭스 왕자는 지크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문제는 회의가 시작된 지 정확히 5분이 지났을 때 벌어졌다.
“저어… 지크프리트… 전하?”
키릭스 왕자가 지크를 불렀다.
“전하?”
“…….”
“전하, 주무십니까?”
“…….”
“어….”
키릭스 왕자는 탁자 위에 아예 엎어져서 잠들어버린 지크를 바라보며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스륵, 스르륵!
그런 지크의 육체는 마치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졌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건 게이머가 캡슐 안에서 잠들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
“…….”
“…….”
회의에 참석한 이들 역시 잠들어버린 지크를 바라보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회의가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잠들어 버린단 말인가?
“전하, 전하.”
키릭스 왕자는 곤히 잠들어 있던 지크를 조심스레 깨웠다.
“전하?”
“음냐음냐….”
“전하.”
“으응?”
지크는 키릭스 왕자가 연거푸 깨우자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눈꺼풀을 겨우 떴다.
“전하,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옵니다. 어제 밤잠을 설치신 것이옵니까?”
“아닌데요?”
“예?”
“어제 푹 잘 잤어요.”
“그, 그런데 조신 것이옵니까?”
“제가 회의만 시작하면 잠들어 버리는 버릇이 있어서….”
“…….”
“으!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하암! 으아아아아아악!”
지크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더니 기지개까지 켜면서 잠을 쫓았다.
“…….”
“…….”
“…….”
덕분에 키릭스 왕자를 포함한 연합군 수뇌부들은 또다시 할 말을 잃은 채 지크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런데 어디까지 했죠?”
“전하께 본 연합군의 총사령관 직책을 맡겨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전하. 민폐를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 본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이번 전쟁을 이끌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름 잘나간다는 국가들의 연합체인 연합군이 이번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막말로 제3자에 불과한 지크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건 그야말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연합군 측 수뇌부들 중 누구도 그 안건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지크가 보여준 능력이 그만큼 뛰어났으니까.
“어떻게… 본 연합군을….”
“공짜로요?”
“예?”
“총사령관 정도면 하는 일도 엄청 많아지는데, 맨입으로 해드리기는 좀….”
“…….”
“저도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하, 합당한 임금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지크는 돈을 준다는 말에 연합군 총사령관 자리를 냉큼 받아들였다.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지크는 속으로 매우 좋아했다.
‘최소한 내가 지휘하면 삽질할 일은 없을 테니까.’
지크는 연합군이 삽질하는 걸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의 발언권이 강해지도록 처음부터 고위급 지휘관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아예 총사령관 자리를 제안하고, 또 돈까지 주겠다니 넙죽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총사령관이 된 기념으로….”
지크가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테이블의 정중앙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며 말했다.
“전체적인 틀부터 손을 좀 보죠. 하아아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전략, 누가 건의한 겁니까?”
지크가 키릭스 왕자의 물음에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저기 슈베린 대장이 기본 틀을 잡은 것이옵니다.”
키릭스 왕자가 회의에 참석해 있는 4성 장군을 가리켰다.
“슈베린 대장님.”
“예?”
“죄송한데, 제가 손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 그러시지요.”
슈베린 대장은 살짝 자존심이 상했지만, 총사령관을 맡은 지크의 말이라 흔쾌히 전략을 수정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사실 계급과 직책이 깡패라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별 소용도 없을 테지만 말이다.
“자, 일단 이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지크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첫째, 여기 이 경로로 쳐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예?”
슈베린 대장은 제 귀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지금 지크가 지적한 공격로는 지극히 정석 중의 정석과도 같아서 딱히 손볼 곳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겠사옵니까?”
슈베린 대장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크에게 물었다.
그러자 지크가 오히려 슈베린 대장에게 물었다.
“여기 이 공격로를 선택하신 이유가 적들의 거점을 공략하기 쉽고, 대규모 병력 운용도 편하고, 근처의 적 거점도 공략하기 편해서 그러신 거죠? 탁 트인 지형이고요?”
“그러하옵니다. 게다가 적들의 보급로를 손쉽게….”
그 순간.
“……!”
슈베린 대장은 지크의 지적에 오싹 소름이 돋아서 얼어붙고 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