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6
055
한국 시간 새벽 다섯 시.
현지 시각으로 오후 두 시.
게임 BNW의 개발, 유통사인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의 본사가 자리한 미국 테네시주에서 기자 회견이 열렸다.
기자 회견이 열리기 1분 전.
웅성웅성-
기자 회견이 열리는 장소인 컴브 섹션 스타디움은 몰려든 인파로 인해 무척이나 시끌벅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의 BNW란 과거 세계를 강타했던 모든 게임을 합친 것보다 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 유저수가 3억 명에 달하는 게임은 그 영향력이 엄청나기 마련이었다.
매출?
그런 건 어디까지나 매우 기초적인 파급력에 불과했다.
3억 명의 유저가 만들어 내는 BNW를 소재로 한 영상 콘텐츠, 일러스트, 팬아트, V-스포츠, 소설, 영화, 패러디 등등은 통신망을 통해 전 세계를 장악한 지 오래였다.
소프트웨어 파워!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 산업을 장악한 것처럼, BNW는 지구인들에게 ‘이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엄청난 파급력을 과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기자 회견이 열릴 예정인 컴브 섹션 스타디움에 수없이 많은 게임 전문 기자들, 일반 기자들, 리뷰어들이 몰린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이브 게임즈 엔터테인먼트 부회장 오펜하이머입니다.”
마침내 등장한 오펜하이머가 방문객들을 향해 인사했다.
“최근 논란이 된 이벤트에 대해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하이브 사에서 직접 기획한 이벤트인 겁니까?”
“이용자 물갈이를 위한 하이브의 치팅이란 음모론도 나도는데요? 한 말씀 해주시죠!”
“무슨 놈의 이벤트가 사용자의 계정을 파멸시키는 겁니까?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초월의 룬 봉인이라는 게 진짜 유저의 레벨 업을 반영구적으로 막는 걸 의미합니까?”
“대회에서 탈락한 유저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이브 사의 정책상 계정 재생성은 절대로 안 되는데!”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마치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실제로, BNW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이 대회를 주제로 한 각종 썰들이 난무하고 있어 어떠한 정보가 팩트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쏟아진 질문과는 별개로, 오펜하이머의 답변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먼저.”
질문 세례가 사그라지자 오펜하이머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게임 운영에 관한 본사의 고집스러운 지침을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이미 여러 번 밝혔다시피 본사는 버그, 그래픽 깨짐, 네트워크 연결 장애와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그 어떤 사유로도 게임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고로, 이 이벤트는 본사가 아닌 게임 속 NPC들이 기획한 것입니다. 즉, 이 이벤트는 게임 속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제와 수뇌부들의 작품임을 명확하게 밝히는 바입니다.”
“오펜하이머 부회장님! 사망 시 모든 능력이 사라지고 초월의 룬이 봉인 당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 겁니까?”
어떤 기자가 물었다.
“레벨 초기화와 레벨 업 불가를 뜻합니다.”
“그럼 탈락자의 계정이….”
“사실상 빈 깡통이나 다름없게 될 겁니다. 1레벨로 돌아간 상태에서 10년 동안 레벨 업을 못 할 테니까.”
“탈락의 대가치곤 너무하다 싶은데요?”
“여러분들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란 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누구도 유저에게 대회의 참가를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오직 유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탈락이 두려우면, 참가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래도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싶은데… 이번만큼은 하이브 사에서 리스크를 줄여주는 패치를 하는 것도….”
“하드코어 모드에 그런 게 있습니까?”
오펜하이머가 반문했다.
하드코어 모드.
‘죽으면 끝’이란 말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주는 게임 용어였다.
“하, 하드코어 모드요?”
“이벤트에 참가한다는 건 유저 스스로가 하드코어 모드를 켠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게 싫으면 참가를 안 하면 그만입니다.”
“으음!”
“그런 이유로, 본사는 탈락자들에 대한 계정 재생성을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요.”
“그럼 탈락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계정 삭제밖에는….”
“모든 답은 게임 속에 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게임 속에서 벌어진 문제는 오직 게임 속에서만 풀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계정을 삭제하고 게임을 접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탈락자들이 재기할 방법을….”
“모릅니다.”
“……!”
“알려고 하면 알 수도 있겠지만, 본사는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신경 쓰지도 않을 예정이죠.”
“하하….”
“궁금증은 모두 풀어드린 것 같군요. 여기까지입니다. 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오펜하이머 부회장님!”
“잠깐만요!”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
“사행성 콘텐츠를 만들어놓고 책임을 유저의 몫으로 돌려버리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참가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떠들어대며 오펜하이머를 붙잡았지만, 그는 이미 단상을 떠나 무대 안쪽으로 사라져 버린 뒤였다.
***
적당히 템을 맞춘 뒤 로그아웃한 태성은 BNW을 전문으로 하는 현금 거래 사이트인 트레이드 매니아를 통해 가진 골드를 현금으로 팔아치웠다.
은행 앞.
“이야, 얼마 안 남았다.”
태성이 계좌 이체 내역과 자신의 잔여 대출금 현황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사채가 1억.
은행 대출금이 2억.
앞으로 3억만 더 갚으면, 빚쟁이 인생은 안녕이었다.
그래 봐야 손에 땡전 한 푼 없는 무일푼 신세이긴 했지만, 억대의 빚을 지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돈은 꾸준히 벌 것이기에 무일푼이라 하더라도 걱정할 게 없었다.
“진짜 빚 갚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저 멀리 하얀 빛이 보였다.
길었던 절망의 터널… 그 출구에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얼른 갚고 차곡차곡 모아서 나도 작은 건물이라도….”
태성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
위잉!
전화가 울렸다.
– 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발신자는 ‘재수 없는 놈’이었다.
***
“뭔데.”
태성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전화기의 전면부 디스플레이가 홀로그램 영상을 출력, 발신자의 모습을 띄워주었다.
스마트폰에 이어 차세대 통신 기기로 자리 잡은 V폰이었다.
– 잘 지내나?
발신자 재수 없는 놈의 홀로그램이 태성을 향해 물었다.
재수 없는 놈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천우진이었다.
“나야 뭐 그럭저럭 지내지. 근데 왜 갑자기 연락한 건데?”
– 겸사겸사? 렙업은 좀 했나?
“별로 못했어.”
– 왜? 갑자기 게임하기 싫은 건 아닐 텐데.
“일이 있어서.”
– 게임 외적으로?
“게임 안에서.”
– 무슨?
“노코멘트.”
굳이 천우진에게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기에, 태성은 딱 잘라 말했다.
– 뭐, 그럼 하는 수 없고. 내가 직접 알아보지.
“맘대로.”
천우진이 스스로 알아내는 것까지는 막을 생각이 없는 태성이었다.
– 너 근데 얼마 벌었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데?”
–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얼마 벌었냐고.
“나? 그게….”
– 5억 넘지?
“넘지.”
– 폭탄 맞겠군.
“폭탄?”
– 국세청에서 아주 좋아하겠네. 애국자야?
“아, 맞다.”
순간 태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차! 싶었기 때문이다.
세금.
지금 천우진은 사채업자만큼이나 무시무시하다는 국세청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래, 세금은 무서운 거였다.
오죽하면 미합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세상엔 절대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금이다’란 말을 남겼을까?
또, 천재 과학자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난 상대성 이론은 이해할 수 있어도 세금은 이해할 수 없다’란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 세율이… 5억 이상이면 40퍼센트로 매기니까… 적게 잡아 5억 벌었다고 해도 2억이나 내야 되네?
천우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
태성이 울상을 지었다.
빚을 갚느라 수중에 현금이 없는 상황이었다.
내년 5월에 최소 2억이 넘는 종합 소득세를 내려거든 지금부터 열심히 현금을 모아둬야만 하는 것이다.
“그걸 까먹고 있었네. 으으.”
– 유능한 세무사 하나 소개시켜 줄 테니까, 세무 대리 맡겨. 경비 처리 잘해줄 거다.
천우진이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 그래 봤자 게이머라 경비 처리도 얼마 안 될 테지만, 다 내는 것보다는 낫잖아. 아님 부과된 세금 깔끔하게 다 내고 애국자가 되는 것도….
“연락처 줘.”
태성에게 그 정도까지의 애국심은 없었다.
왜?
세무사를 통한 절세를 하지 않으면 최소 수천만 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할 테니까.
탈세는 범죄이기에, 손도 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절세는 달랐다.
탈세는 불법이지만 절세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세금을 줄이는 것이었으니까.
– 제국의 역습이 무섭긴 한 모양이지?
“당연하지.”
– 현금 많이 모아 둬. 내년 5월에 피눈물 흘리는 일 없게.
“그래.”
–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천하제일생존대회….
“그런 데 가는 거 아니라고 배웠다.”
태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부터 인생 종치긴 싫다. 미쳤다고 거길 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도 유분수지.”
맞는 말이었다.
현재 태성의 계정은 잠재적 캐쉬카우였다.
성장만 하면 떼돈을 벌 텐데, 천하제일생존대회에 참가해서 망캐가 되는 리스크를 부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그럼 됐고.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난 혹시나 니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셔.”
태성이 딱 잘라 말했다.
“왕이 아니라 황제 시켜줘도 참가할 일 없으니까. 절대로.”
잃을 게 많은 사람은 조심스럽기 마련이라는 걸 몸소 증명하는 태성이었다.
***
다음 날 오전.
여느 때처럼 BNW에 접속해 뉘르부르크 대륙에 강림한 지크는 남쪽 바다로 향하는 소형 비행선(Zeppelin)에 몸을 실었다.
지크가 다음 행선지를 남쪽 바다로 잡은 이유는, 비로소 완성된 보물 지도가 헤르베르트의 유작이 남쪽 바다의 섬 어딘가에 있다고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 헤르베르트의 유작을 손에 넣겠단 생각은 없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현재 지크의 능력으로는 그림의 떡에 불과할 테니까.
‘간만 보고 오는 거다.’
그런데도 지크가 굳이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헤르베르트의 유작이 자리한 던전이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왜냐하면, 그걸 알아야 언제 아이템 획득을 시도할지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걸린다고 했지. 책이나 보자.’
지크는 선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채 책을 펼쳤다.
샤키로가 그에게 당부했던 대로, 틈틈이 수련하려는 것이다.
[제1권 : 섬전] [제2권 : 만천화우]샤키로가 지크에게 준 비급은 이란 이름을 가진 창법과 그의 평생의 깨달음을 담은 오의이자 비기인 였다.
두 가지 기술 모두 샤키로의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긴 비기로써, 창법인 섬전만 해도 필살기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고위급 기술들이었다.
“섬전은 제1식, 제2식, 제3식, 그리고 제0식. 이 네 가지 찌르기로 이루어진 매우 단순한 창법이다….”
지크는 비급을 소리 내어 읽으며 그 내용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렇게 한 30분쯤이나 지났을까?
삐- 삐이-
갑자기 선실 내부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지크가 눈살을 찌푸리고 조종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크, 큰일 났네!”
조종실 문이 홱! 하고 열리더니 비행선의 선장이 소리쳤다.
“예? 뭐가….”
“전방에 태풍이 몰아치고 있어!”
“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오늘 날씨 괜찮다고….”
지크가 따지려 했지만, 선장은 굳은 표정으로 제 할 말만을 꽥꽥 소리칠 뿐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내 비행선 선장 노릇만 20년을 한 사람이야! 내 반드시 자네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겠네! 그러니 날 믿고….”
바로 그때.
퍼엉!
선체 오른쪽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알림 : 경고, 경고!] [알림 : 정비 불량과 기체의 노후화로 인해 비행선의 오른쪽 엔진이 파괴되었습니다!]나만 믿으라며, 비행선 선장 노릇만 20년을 해왔단 말이 무색한 알림창이었다.
선장 노릇 20년을 하는 동안 정비는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
두두두두두!!
비행선의 동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추락의 시작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