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1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5화
배세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다음은… 네 차례야.”
“네, 네!”
선아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킨 뒤, 조심스럽게 외쳤다.
“세, 세진이를 지목하겠습니다…!”
“뭐어어? 아현이 아까 내가 의심했다고 너무 막 찍는 거 아니야? 이거 개인감정 들어가면 안 되는데~”
“아, 아니야!”
이 두 놈이 말싸움하는 건 처음 본다.
더 웃긴 건 주변 놈들이 손에 땀을 쥐는 얼굴로 저 대치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다 이 꼴이 됐냐.’
나는 손에 든 남은 카드를 내려다보다가 심오한 고민에 빠졌다.
이사 온 숙소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분위기가 그렇게 온화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완전 커요! 완전 좋아요!”
“화장실은 그대로 3개 맞지?”
“안쪽에 리모델링 겸 배관 넣어서 작은 화장실 하나 더 만든 집이래요. 4개입니다.”
“오.”
어차피 청소 회사에서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화장실 개수가 늘어난 건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숙소 입지가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결국 SV빌리지로 왔군….’
VTIC 숙소가 있는 그 동네 말이다.
E팰리스로 가는 게 유출되는 바람에 별수 없었다. 보안에 신경 쓰다 보니 후보군이 더 줄어서 결국 여기까지 왔다.
다만 평수 차이가 있어서 단지 내에서도 거리가 꽤 머니, 쓸데없이 볼 일은 없겠지.
‘침실이나 확인하자.’
나는 아무 쓸모 없는 꺼림칙함을 몰아내고 숙소를 둘러보았다.
“와우! 방 많아요! 저 혼자 써요??”
“침실은 4곳이잖아. 독방을 쓸 수 있는 사람은 1명뿐이야!”
“…!”
둘을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갑자기 화들짝 놀란 배세진이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혼자 쓸 수 있다고?”
“예! 혹은 3명이 함께 큰 방을 쓰고 남은 한 명이 독방의 혜택을 또 누리는 구성도 가능합니다만….”
안 된다.
‘그건 그림이 안 좋지.’
사실 숙소를 두 채 잡고 각자 독방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한 숙소를 계속 쓰는 건 뒷말을 막을 목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2주년 기념일도 전인데 벌써 독방을 쓰는 걸 보니 서로 사이가 별로인가 따위의 말이 나오기 쉽거든.
‘적어도 1년은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런데 괜히 3인실을 만들면서까지 독방을 하나 더 추가한다?
독방 쓰는 놈들에게 이상한 이미지 씌우려고 기를 쓰는 새끼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나는 그쯤에서 끼어들었다.
“괜히 좁게 쓸 필요는 없지. 네 말대로 2인 방 셋에 독방 하나가 낫겠다.”
“예!”
김래빈은 약간 뿌듯한 얼굴로 바로 수긍했으나, 막상 말한 내 입맛이 떫었다.
‘혼자 쓰고 싶은데 말이지.’
확률이 두 배로 늘어날 기회를 내 발로 차버리니 아쉽긴 하군.
“오~ 이 방 멋지다!”
“치, 침대 크기가 많이 커졌네.”
어쨌든, 숙소가 넓어지며 방들도 커진 덕에 생활에 여유가 좀 생길 것 같긴 했다.
“아, 그렇지.”
그리고 여기서 결정적인 소리가 나온다.
류청우가 씩 웃더니, 우스갯소리 하듯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 제일 큰 방을 혼자 쓰는 사람한테 몰아주는 걸로 할까?”
“…!”
그리고 이 의견을 놀랍게도 다수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통과된다.
“오! 그거 좋네요~”
“음, 팬분들께서 룸메이트 관련 컨텐츠를 시청하실 때 보상에 대한 설득력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
류청우 본인도 좀 놀란 듯했으나, 아무래도 다들 자신이 독방을 쓸 때의 그림을 열심히 그려본 듯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방 배정 게임이 말도 안 되게 과열된 거겠지.
“합리적 선상에서 검토해 보아도 지난 두 턴 동안 차유진의 발언은 모순되었기 때문에, 사기꾼은 차유진입니다!”
“아니야! 다시 생각해!”
“맞아!”
“자, 자. 그럼 래빈이는 유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차유진은 지난 턴에 뇌물을 받을 수 없었다는 명제로 ‘검증’하겠습니다!”
“싫어요!”
차유진은 지목당하자마자 무슨 사약이라도 마시는 것처럼 난리를 부리고 있다.
‘문제는 저놈만 저러는 게 아니라는 거지.’
지금 턴 돌아가는 내내 다들 저러고 있다. 나는 다 포기한 채로 턱을 괬다.
사실 이건 마피아 게임과 카드 게임이 섞은 간단한 보드게임이었다.
시작 때 비밀리에 뽑은 직업 카드에 따라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정해져 있는데, 그걸 통해 돈을 제일 많이 모으는 놈이 이기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차별화된 점이 있다.
‘그냥 아무 행동이나 막 해도 안 걸리면 그만이다.’
직업상 못 하는 행동도 블러핑으로 맘대로 저지를 수 있었다.
즉, 필연적으로 온갖 거짓부렁이 판칠 수밖에 없었다.
‘…웃길 것 같아서 골랐는데.’
문제는 첫판에서 큰세진이 온전한 뻥카로 이겼다는 것이다.
-세, 세진이… 국회위원, 아니에요…?
-…꽃집 주인이라고?
-그렇습니다~ 아, ‘그걸 속냐~’ 이야, 이럴 때 쓰는 말 맞죠? 하하하하!
-으으으!!
자신의 뮤직비디오 대사를 인용한 큰세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지, 다음 판부터 거짓말이 판을 지배하는 메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돈 모으려고 거짓말을 마구 하기 시작하니 결국 3번째 라운드만에 개판이 됐다.
“자, 유진이 ‘검증’하자. 카드 보여줘.”
참고로 다른 이로부터 직업을 ‘검증’당하게 되면, 해당 사람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한동안 돈을 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검증’에 지목당한 놈들은 하나같이 극렬히 자신을 변호했으나….
뭐, 아까 말했지 않은가. 개판이라고.
“음… 유진이 직업은 ‘경찰’이었네! 지난 턴에 뇌물을 받았으니 유진이 탈락!”
“우우….”
“역시!”
이젠 ‘검증’하는 족족 다 걸리고 있다.
‘망했네.’
이거 지금 두 시간 넘도록 촬영 중인데, 보니까 다 편집되고 한 삼십 분 분량으로 축약될 느낌이다.
팬들은 풀버전을 달라고 슬퍼하겠지만, 막상 정말로 풀버전을 풀면 분위기가 숙연해질… 그런 재미 없는 뇌절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거짓말 안 할 것 같은 놈이 이겨야 뇌절을 벗어나겠는데.’
안 되겠다.
‘다음 판은… 선아현을 몰아주는 게 낫겠군.’
제일 거짓말 못할 놈 아닌가.
그래서 4번째 라운드에서는 선아현이 선전하도록 약간 밀어준 것이다.
-이, 이거 살게…!
-음, 가게 인수 쪽이 더 돈을 많이 주는 것 같은데.
-그, 그런가? 그럼 그걸로…!
그리고 선아현은 착실히 돈을 잘 불리더니, 의외로 큰세진과 말싸움에서도 안 밀리며 놈을 ‘검증’ 타이밍에 지목하는 것에 성공했다.
“저, 정말, 새, 생각해서 결정한 거니까… 저, 세진이 검증 부탁드립니다…! 지난 턴의 빌딩 건설이요!”
“알았어, 아현아.”
독방에 큰 매력을 못 느꼈는지 자진해서 사회자로 빠진 류청우가 바로 큰세진의 카드를 확인했다.
나는 팔짱을 꼈다.
‘한 놈 탈락인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으나, 류청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 세진이… 거짓말 아니었네!”
“…!!”
“지, 진짜요?”
“그래. 빌딩 건설 가능한 직업이야.”
이 새끼가 이중 뻥카를 친 것이다.
“에이, 이번에도 또 거짓말하면 그렇잖아요. 저도 양심이 있지!”
거짓말이 줄줄 나오는군.
덕분에 ‘검증’에 실패한 선아현은 그 패널티로 3턴이나 쉬어갔다.
“아현이는 이번 턴도 행동 금지.”
“네, 네….”
“세진이도 한 턴 더 돈 못 버는 거야.”
“알겠습니다~”
덕분에 뜬금없는 승자가 나왔다.
“이번 판 1등은… 문대!”
바로 나다.
“예, 감사합니다.”
참고로 다 의미 없는 짓이다.
어차피 전전 판에서 큰세진 놈에게 집중 마킹을 당한 탓에 총액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X발.’
그냥 재미고 나발이고 돈 싹 쓸어올 걸 그랬나.
어쨌든, 그래서 최종 승자가 누구냐면….
“방을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종합 1등은 바로 이세진입니다!”
“하하하!”
결국 저 새끼가 이겼다.
보는 사람은 재밌을 것 같긴 하다만… 어쩐지 배알이 꼴리는군.
‘찌를까.’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축하한다.”
“오~ 문대문대, 고마워!”
“독방 쓰면 편하겠네.”
“…??”
“이거 독방 쓸 사람 고르는 거였잖아.”
“맞아요, 부러워요!”
“넓은 방에서 즐거운 1인 생활 보내시길 바랍니다.”
독방 쓰는 걸 기정사실로 몰아가니, 큰세진의 표정이 순간 꿈틀거렸다가 얼른 돌아왔다.
“하하, 아니! 음, 꼭 그런 건 아닌데~”
오, 피하려는군.
이번 컨텐츠에서 분량 뽑으려고 게임에서는 활약했지만, 역시 독방을 쓰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혼자 쓰면 자체 컨텐츠에서 등장 분량에 약간 손해를 볼 확률이 높을 테니까.
‘자연스럽게 양보하는 그림으로 가려나.’
그럼 뭐, 후보는 하나뿐이겠다.
“에이, 저도 쓰고 싶긴 한데… 음, 청우 형에게 독방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리더 형님이 데뷔 때부터 정말 이 팀을 지탱해 오셨죠!”
“어, 나?”
“그렇습니다 형님~ 이런 건 원래 연장자, 리더가 쓰시는 거 아닙니까!”
“오오오!”
“멋진 선택이십니다!”
그렇게 류청우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독방을 잡아갔다.
‘부럽군.’
내심 혀를 차는데,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최연장자….”
배세진은 소리 내서 말할 생각은 없었는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생일은 배세진이 제일 빠르군. 이미지가 이래서 중요한 거 아닐까.
‘…물론, 따지고 보면 내가 진짜 최연장자다만.’
나는 날아간 독방의 기회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뭐, 2인실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일단 룸메이트도 조용한 놈이 걸렸고.
“그럼 문대와 아현이가 한 방이구나.”
“자, 잘 부탁해…!”
“그래. 오랜만이다.”
선아현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인원으로 자리가 마감되자마자 선아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설마 이놈도 독방이 아니라 차유진 피하려고 열심히 한 건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 머릿속을 지나갔으나,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참고로 큰세진 놈은 분량에 눈이 멀어 게임을 뒤흔든 업보를 제대로 뒤집어썼다.
애꿎은 놈도 같이 맞아서 문제지.
“오, 그러면… 두 세진 형님께서 같은 방이십니다!”
“…….”
“…….”
차유진과 김래빈이 서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같은 방을 골랐기 때문이다.
결국 본인의 선택권을 류청우에게 양보하며 선택권이 없어진 큰세진은… 자동으로 배세진의 방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형, 잘 부탁드립니다!”
“그, 그래.”
둘은 한 박자 늦게 화목한 인사를 나누었다. 라이브 방송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나 해라.
‘싸우진 않겠지.’
한바탕 싸운 뒤로는 아예 서로 필요한 대화 외에는 간섭을 안 하는 놈들이다.
그리고 같은 방이라고 해도 지난 숙소 거실 크기다. 부딪힐 일은 없을 거라도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뭐, 낌새 보이면 바꿔주면 된다.’
대외적 변명은… 취침 시간이 너무 달라서 서로 고통받는다는 식으로 좀 웃기게 말하는 정도면 되겠군.
“자, 그럼 저희는 각자 방에 짐을 풀고, 또 다른 룸메이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러뷰어 또 봐요~”
그렇게 엔딩 멘트로 룸메이트 게임 촬영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내 방으로 결정된 곳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확실히 질이 더 좋긴 하군.’
리모델링을 많이 거쳤다더니 정말 그런 티가 났다.
“무, 문대야. 우리 재밌게, 잘 지내자…!”
“그럼 좋지.”
소음공해 없는 쾌적한 취침 시간이 벌써 기다려지는군.
-저 놀러 가요! 많이 가요!
-마음만 받는다.
이 대화가 좀 불길하긴 했다만 그래도 차유진 룸메이트를 벗어난 게 어디냐 싶다.
‘그 새낀 말이 너무 많아.’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뻗었다.
들리는 건 선아현이 본인 프랑스 자수와 수세미를 정리하는 소리뿐이다.
‘평온하군.’
이게 이사 온 맛인가 보다.
…참고로 이 감상은 하루를 가지 못 한다.
바로 다음 날.
또 비행기를 타고 LA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원인은 그놈의 예능 추가 촬영이었는데, 컨텐츠가 X 같았다.
멘토진을 섞어서 1회용 특별 무대를 하게 생겼거든.
문제는 내 팀에 청려가 있다는 것이다.
‘X발.’
발단은 그놈이 나온 2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