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화
편곡 회의는 큰세진의 주도로 진행됐었다. 그리고 제법 분량을 받았다.
[권희승 : 큰세진 형님이 리더라 다행이었죠 뭐!] [하일준 : 확실히 리더십이 있는 친구긴 해요.]골드 1, 2의 저런 인터뷰까지 나온 것으로 보아, 제작진도 큰세진의 리더 포지션을 밀어줄 생각인 것 같았다.
“크, 여러분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다음 인터뷰 땐 내 이야기를 하거라.”
“저두요!”
“아, 당연하죠~”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의 큰세진과 대비되는 한 참가자가 거실에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힐끗 최원길을 보았다.
“…….”
오늘 모임에 나오고서도 말수가 없던 최원길은 이제 대놓고 얼굴에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과연 제작진은 나에 대한 최원길의 시비를 어떻게 편집해 줬을 것인가.
내 입장에서는 역으로 내가 시비 건 걸로만 나오지 않으면 됐다. 사실 그게 아니면 별 관심 없기도 했고.
하지만 또 편집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아예 최원길의 시비를 통편집해 버린 것이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잘못하면 원곡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게다가 내 말에 대한 큰세진의 반박도 잘려 나갔다.
대신, 그 자리에 진지하게 고개를 드는 큰세진의 모습이 들어갔다.
[생각해 봤는데, 원곡 감성 살리면서 강렬하게 갈 방법… 있을 것 같은데요.]그리고 곧바로 내가 의견을 제시한 것처럼 연결되었다.
‘최원길은 스토리에 필요 없다고 생각했나 보지.’
편곡의 극적인 흐름을 살리기 위해, 그림상 애매한 시비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초반에 파트를 바꾼 것도 그냥 넘어갔군.’
최원길은 안심한 것 같았지만, 글쎄, 그럴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결국 최원길은 끝까지 제대로 된 컷을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인터뷰도 제대로 안 나왔다.
아마 인터뷰에서도 파트나 편곡 관련해서 싫은 소리를 자주 해서 쓸 게 별로 없었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고, 중요한 건 내 편집이었다.
마침 화면의 박문대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공포를 섞죠.] […!!]그러자 하나하나 팀원들의 놀란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당겨서 잡아준다.
‘…과한데?’
누가 보면 희대의 아이디어라도 낸 줄 알 것 같은 편집이었다.
심지어 또 인터뷰가 나왔다.
아역배우 이세진의 말은 어쩐지 씁쓸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이놈까지 이런 인터뷰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덕분에 거실에서는 오글거리는 인터뷰로 서로를 저격하며 장난과 야유가 난무했다. 이세진은 입을 꾹 다물고 꿋꿋하게 화면만 보고 있었지만.
그리고 큰세진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모든 게 폭소로 변했다.
[이세진(B) : 문대 걔 진짜 웃기지 않아요? (폭소) 아니, 표정은 무슨 티벳 여우처럼 해놓고 아이디어가 폭발하는데 너무 웃긴 거예요 진짜!!]큰세진의 말을 배경으로 ‘박문대’가 온갖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컷 편집되었다.
선아현의 등수평가.
[제… 제, 제가… 어, 어릴 때, 사고를 당해서요…….] [어떡해…….]안타까워하는 대세 여론이 지나가는데, 박문대가 클로즈업되었다.
“…….”
내가 봐도 평정심 그 자체다.
그리고 들어가는 자막.
[박문대 : (끄-덕)]“아! 맞아!!”
“쟤 진짜 저랬어! 으아하하학!!”
그리고 트레이너의 혹평 장면.
[이런 평은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받아야 칭찬인 거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깨무는 팀원들 사이로 홀로 평온한 박문대의 얼굴이 보였다.
[박문대 : (평-온)]그렇다.
다른 참가자들이 동요하는 온갖 상황.
박문대는 홀로 동태눈깔이었다.
“어허헉!!”
“저 얼굴이! 너무 웃겨!”
“…….”
그때서야 나는 내 패착을 알았다.
있는 대로 오버액션하는 참가자 사이에서 혼자 저러니까, 침착해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좀… 정신에 하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작진 욕할 게 아니었군.’
나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내 등을 치는 큰세진의 손을 피하며, 홀로 반성했다.
이후 방송에서는 편곡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짧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선에서 나왔다.
[이세진(B) : 저희 잘해낼 겁니다!] [박문대 : …화이팅.]내가 대체 왜 저렇게 감흥 없이 파이팅을 외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대가 시작했다.
별 잡소리를 다 하던 팀원들도 이 순간은 조용히 시청에 집중했다.
나는 무대화장을 한 ‘박문대’의 얼굴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내가 저놈이라니.
[우우우우-.]곧 도입 안무와 함께 음산한 전주가 흐르고, 본격적으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그리고 대기 중이던 다른 참가자들의 충격받은 얼굴이 파트가 바뀔 때마다 삽입되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나마 편집에 공을 들였는지 무대가 툭툭 끊기는 느낌이 덜해서 다행이었다.
‘흠.’
어쨌든 무대는 확실히 잘 나왔다.
특히 선아현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니는 게 잘 보였다. 메인 댄서가 큰세진이 아니라 선아현 같아 보일 정도였다.
‘선아현 등수가 확 오를 것 같은데.’
그다음으로 잘 보이는 건 역시 큰세진, 그리고 나머지도 각자 파트는 잘 소화했다. 의외로 이세진도 표정을 잘 써서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최원길은 후렴에서 센터에 나올 때 안무 탓에 선아현에게 컷이 분산된 느낌이라 손해를 좀 본 것 같았지만.
그리고 나는… 다행히 브릿지 파트가 제대로 나왔다.
[Can’t You feel me?]이 한 소절이 다음에 리액션이 두세 번이나 겹쳤다.
‘…거의 돌림노래가 됐는데?’
고마웠지만 동시에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또 눈치 없는 재능충 기믹 들어가는 거 아니냐.’
그래서 브릿지 파트 반응으로 트레이너들의 대화가 삽입되었을 때, 의심 가득한 눈으로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뮤디 : 저게 원래 원길이 파트였다?] [적태송 : 진짜요?] [뮤디 : 어, 원길이가 못하겠다고 하니까 (문대가) 자기 후렴 파트 주고 혼자 편곡도 …… (한 거야).]그런데 여기서 이 이야기를 살릴 줄이야.
게다가 트레이너의 대화만 들으면 내가 선의를 베풀어서 최원길과 파트를 바꿔준 것처럼 들렸다.
음, 근데 결과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군.
뮤디는 인터뷰 컷까지 나왔다.
[뮤디 : 문대가 의외로 맘이 여려.] [뮤디 : 근데, 노래는 강하고!]감사합니다.
같은 캐릭터라도 ‘눈치 없어서 X발 개빡치네’보다는 ‘눈치 없지만 착한 애야’가 훨씬 나았다.
돌연사를 피하면 보은으로 홍삼이라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무대는 앵콜을 외치는 방청객들의 열렬한 반응과 함께 끝났다.
[앵콜! 앵콜!]그리고 얼싸안고 기뻐하는 팀의 모습도 성공적으로 방송을 탔다.
“우리 쩔었다.”
“솔직히 내 무대지만 내가 봐도 좋았다.”
“인정.”
의미 없는 박수 소리와 함께, 만족스러워하는 전 팀원들의 대화가 거실을 울렸다.
나야 내 위주로 봤으니 내 분량만 이야기했지만, 사실 크게 보면 비교적 팀원들이 고르게 분량을 받았다.
덕분에 거실 분위기는 아직도 화목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초상집인 참가자도 많을 것이다.
가령 우리 다음에 나온 류청우의 팀은… 묵념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몇 가지 자막을 발췌해 보겠다.
[가장 좋은 선곡을 골랐다?] [그. 러. 나.] [계속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팀원들] [리더 류청우의 고군분투]화룡점정은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류청우의 인터뷰였다.
[류청우 : …해내야죠.]‘와, 제대로 보냈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보는 데 기분이 나빠지더라고.
우리 쪽 놈들도 보다가 무심코 측은하게 대화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야, 쟤네 어쩌냐.”
“청우 형이 힘들어하긴 했어. 허, 그래도….”
대충 요약하자면, 류청우가 실력은 없는데 불만만 많은 나머지 팀원들을 데리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 무대를 완성하는 그림이었다.
“청우가 성격이 괜찮긴 한데…. 야, 이렇게 보니까 성인군자네.”
떨떠름한 골드 1의 혼잣말이 편집 구도를 정확히 설명해 줬다.
어쨌든, 방송은 우리가 류청우의 팀을 가뿐히 이기는 것까지 보여주었다.
[스코어는… 무려, 82 대 401!] [와아아악!!]특별히 모난 데 없이 잘 봐준 컷이었다.
개인투표 관련해서는 류청우의 개인투표를 응원하게 만드는 묘한 편집으로 끝났지만.
[류청우 : 제 부족함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박정섭 : 솔직히 (개인투표는) 이겨야 하지 않을까.] [이도준 : 팀을 이끈 사람의 책임이….]뭐, 우리 팀은 아예 개인투표를 언급도 하지 않는 점이 깔끔하고 좋았다.
현장에서도 방송에서도, 이 팀의 완승이었다.
그렇게 3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전 팀원들이 바닥과 소파로 자빠졌다.
“와… 이거 기 빨린다.”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네!”
“무, 무서웠어.”
심지어 선아현까지 말을 얹었다.
다들 심력을 어지간히 소모한 모양이었다.
큰세진은 소파에 누워서 말했다.
“아, 새삼스러운 말이긴 한데… 다들 진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야, 방송 보니까 다들 너무 잘하더라!”
“큰세진 네가 수고했지~”
“잘 나와서 다행이야.”
골드 2는 기대감으로 눈을 번쩍거리며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반응 완전 좋겠죠?”
그리고 마치 누군가 소원이라도 들어준 것처럼,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 * *
처음 반응이 지표로 나타난 것은 위튜브였다.
박문대가 속했던 팀, 의 무대 영상이 실시간 인기 동영상에 9위로 랭크된 것이다.
댓글은 난리도 아니었다.
-편곡부터 무대 장악력까지 모두 오져 버리셨다
-누추한 망주사에 이런 귀한 무대가;;
-여러분 이게 바로 떡상할 주식입니다.
-뭐? 흡혈귀? 딱 기다려 헌혈차 몰고 간다
-이름 정리했어요! 0:12 선아현, 0:21 이세진(B)… (더보기)
-악토버즈 이대로 데뷔해ㅠㅠ
-준비 과정 보니까 다들 순딩순딩하고 친하던데 넘 귀여웠음ㅠㅠ 무대하고 갭 실화냐?
방송이 끝난 직후에는 비슷한 추천글이나 감상글이 연달아 인기글에 오르거나 만 단위로 공유를 타기도 했다.
심지어 이 무대로 를 접하고 시청자로 유입되는 경우도 슬슬 생기기 시작했다.
-그 뱀파이어 컨셉 무대 봤는데, 아주사 새 시즌임?
-망할 줄 알았는데 무대 퀄 무슨 일
-아이돌 좋아한 적 없는데 혹시 이거 투표 어떻게 하나요?ㅠㅠ
그래서인지 아예 이 팀을 묶어서 좋아한다는 글도 심상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대로 데뷔하면 좋을텐데!
-애들 번갈아가면서 투표 중이에요ㅠㅠ 아 왜 이미 그룹이 아닌 거야!
발 빠른 몇몇 골수 KPOP 리액션 채널도 움직였다.
말랑달콤의 원곡과 악토버 31의 편곡 버전 무대를 비교하는 리액션을 올린 것이다.
[WOW! It’s like, one of a kind. right?]그 동영상은 자막을 달고 리액션 번역 채널에 다시 올라오며 끊임없이 국내와 해외 유입을 재생산했다.
이 과정 속에서, SNS 등 관련 커뮤니티에서 팀원들의 언급 빈도수도 압도적으로 늘었다.
가히 지각 변동 수준이었다.
화룡점정은, 말랑달콤 본인들이 이 무대를 리액션하는 영상을 위튜브에 게시하며 일어났다.
[아주사 화제의 무대! 말랑달콤이 직접 봤다? 악토버 31의 ‘새로운 세상으로’ 리액션 영상]전성기가 지나고 그룹 활동이 끝난 말랑달콤의 멤버들은, 배우로 성공한 한 멤버를 제외하면 SNS 셀럽 정도의 위치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중 두 멤버가 의기투합해 대세에 편승하여 유투브 채널을 개설했었다.
그리고 마침 본인들과 관련된 이 화제성 있는 컨텐츠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배우 스케줄로 바쁜 한 멤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멤버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악토버 31의 편곡 무대를 감상했다.
“와~”
“아, 여기 어려운 부분인데.”
“유은이 파트 한 분, 선아현 씨? 이제 내 주식이야.”
“오~ 메인보컬 분이 저희 팬이시래요! 박… 문대 님!”
“감사합니다~”
리액션은 의례적인 감탄사로 시작해서 디테일에 대한 감상으로, 또 참가자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앗! 의상에 드라이 플라워!”
“저희 각자 상징 꽃대로 넣었네요. 우와…….”
“되게 섬세하시다.”
물론 브릿지가 나올 때는 다 같이 경악하기도 했다.
“키를 이렇게 올리셔?!”
“원킨데!?”
“와, 진짜 멋있어…….”
“정말 우리 팬인가 봐.”
그리고 종내에는, 울먹거림으로 끝났다.
“아, 아니, 왜 울지? 나 왜 울어?”
“아아~ 너무 잘해주셔 가지고, 저희가 많이 감동했나 봐요.”
울먹이며 손부채 질을 하던 멤버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가… 즐거운 B급 컨셉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었잖아요. 근데 원래, 데뷔곡은 이랬거든요.”
말랑달콤은 꽃의 요정으로 데뷔한 다음, 소위 말하는 ‘병맛’ 컨셉으로 확 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인터넷 등지에서 유명해진 밈이 있었다.
-꽃의 요정에서 머리에 꽃 단 X됨ㅋㅋ
무대에서 각자의 꽃을 상징하는 머리핀을 달고 나온 날이었다.
누군가 그 캡처 사진과 첫 앨범 무대의 사진을 비교하며 저 댓글을 달았던 것이다.
“사실 저희가 그… 데뷔곡하고 갭?을 좋아해 주셔서 더 사랑받으며 활동했던 건 맞는데, 그래도 약간… 아쉬웠거든요.”
그 댓글이 유명해졌기 때문에 곡이 더 화제가 됐던 것은 맞았다.
그녀들도 자신들의 전성기를 불러준 병맛 큐티 컨셉에 나쁜 추억보다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서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저희도 다양한 컨셉을 할 수 있었는데…….”
은근한 조롱에 마음 상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자신들의 데뷔곡을, 진지하게 접근해 준 참가자들에게 큰 감동을 느꼈다.
“정말 감사해요. 말랑달콤의… 음, 청순 컨셉을 멋지게 소화해 주셔서!”
“예. 재해석하신 것도 너무 좋았어요. 뱀파이어… 저희도 기회가 되면! 정말 해보고 싶네요.”
원곡의 감성을 너무 해치지 않고 멋지게 재해석한 무대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도 감명을 키웠다.
그녀들은 약간 글썽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무리했다.
“정말… 멋진 무대였어요. 저희도 다 주식 살게요!”
“악토버 31 화이팅!!”
“화이팅~”
이 동영상의 캡처본이 커뮤니티와 SNS에 올라오면서, 악토버 31의 무대 동영상은 다시 한번 조회수가 급격히 상승했다.
그리고 4화가 나오기 전.
모든 팀전의 개인 직캠 동영상이 먼저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