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화
나는 3화가 방영되는 날까지 운동과 연습을 병행하며 체력을 쌓으려 노력했다.
다행히 박문대의 자질이 바닥은 아닌지, 하면 하는 대로 잘 따라와 줬다.
아쉬운 점은 연습 업적을 대부분 500번을 채워 버렸다는 점이다.
‘이젠 레벨 업으로 빠르게 스탯을 채우기는 힘들 것 같은데.’
명성이나 무대 성공 이벤트 팝업에서 종종 스탯 보상이 뜨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쨌든 그럭저럭 충실한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온 금요일.
나는 오후 다섯 시쯤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서울 외곽 역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는데, 아마도 전 팀원 중 누군가의 자취 집인 것 같았다.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과정에서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저기!”
“예?”
“혹시… 그 아이돌 주식회사, 아니세요?”
누군가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사실 형식만 질문이었지, 그 사람의 눈은 이미 확신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크도 안 쓰고 나왔다. 누가 사진이라도 찍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거짓말한 상황이 되니까.
“네, 맞습니다.”
“아, 역시!”
말을 걸었던 여자분이 눈에 띄게 기뻐했다.
“진짜 잘 보고 있어요. 막,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저기, 사진 좀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걸 어쩌지?
큰세진이 인증샷을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적당히 차려입고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촬영 때와는 달리 맨얼굴이었다.
내가 찍어봤던 탓에 안다. 웬만하면 아이돌들도 맨얼굴 사진에 보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끔 리허설 찍으면 팔기 전에 양심상 전체 보정을 좀 넣어줬었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잡음이 안 나는 게 더 중요했다.
“네. 여기 보면 되나요?”
“아! 네네, 잠시만요…!”
여성분은 얼른 카메라 보정 어플을 켜더니, 셀카 모드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강호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
“아 진짜진짜 감사해요. 제가 꼭 투표, 아니, 주식 살게요!”
“아, 감사합니다.”
아마 박문대의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걸 봐서는 안 할 확률이 높겠지만, 해준다는데 고맙다고 말이라도 하자.
그나저나 이 사람의 반응 때문인지 은근히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기 시작하는 게, 슬슬 부담스러워졌다.
나는 얼른 고개를 꾸벅거리고 마무리 말을 던졌다.
“제가 일이 있어서….”
“아, 네! 사진 감사해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라는 질문이 금방이라도 나올 분위기라, 나는 얼른 자리를 떴다.
그리고 역 밖으로 나가자마자 편의점에서 마스크부터 샀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지만, 이미 사례가 생겼으니 돌아가는 길에는 조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벌써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다니. 이 시즌 3가 잘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놀라웠다.
‘방송 후반쯤 가면 장난 아니겠는데.’
지금 머무는 곳은 그냥 싼 방이라 보안이 형편없었다. 이대로 박문대가 통편집을 계속 면한다면, 나중에는 이것도 대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곧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오피스텔이라더니 신축인지 깔끔하고 보안이 좋아 보였다.
누구 집인지는 몰라도 괜찮게 사는 것 같다. 부럽네.
“오~ 문대 빠른걸? 어서 와!”
“아, 안녕.”
초인종을 누르니 큰세진과 선아현이 튀어나왔다.
“거실은 이쪽~”
큰세진이 안내하자 선아현이 졸졸 따라왔다. 아무래도 여긴 큰세진 집인 것 같다.
하긴, 모임 주최자가 자기 집에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그림이긴 하군.
나는 제법 근사한 오피스텔 내부를 둘러보면서, 솔직하게 감탄했다.
“집 좋네.”
“그치?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니까!”
“……?”
월세라 자가는 아니라는 뜻인가?
짧은 의문은 선아현의 말로 끝났다.
“고, 고마워.”
“…….”
여기… 선아현 집이었군.
이 와중에 큰세진은 거실 소파에 거의 드러누웠고, 선아현은 소파 구석에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주객이 전도된 이 기묘한 상황을 잠시 바라보다가, 생각을 멈췄다.
아무려면 어떤가. 3화만 보고 얼른 뜨자.
* * *
Tnet 건물 9층 구석의 편집실에서는 오늘도 의 제작진이 야근 중이다.
“PR 영상 라이브 준비 때문에 편집이 너무 밀렸어.”
“미치겠네.”
방영 몇 시간 전에서야 완성본이 나온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작가 류서린은 짜증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PR은 그냥 외주로 돌렸으면 좋았을 텐데.’
광고까지 밀어 넣었으면서 제작비는 쥐꼬리만큼 올려주니 외주를 쓸 수가 없던 것이다.
덕분에 겨우 막내 작가를 벗어난 짬인 그녀의 스케줄 역시 밤샘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자막 작업을 하면서 확인한 편집본이… 너무나 예상 밖이었다.
‘왜 얘네를 죽이고 걔네를 밀어줬지?’
류서린 자신의 건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도 없었다. 이틀 밤을 새운 탓에 눈앞이 노랬다.
‘어차피 내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건의한 것인데, 아쉬웠다.
‘1, 2화 편집 방향 보고, 좀 기대했는데.’
그녀는 한숨을 쉬며, 편집실을 나섰다.
방영까지 앞으로 1시간, 잠시 당직실에서 눈이라도 붙이고 올 생각이었다.
* * *
“시작한다!”
“후하후하! 제발 우리 팀 이번 화! 제발!”
선아현에 집에 모인 전 팀원들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근황을 떠들며 시간을 때웠다.
주로 1, 2화가 방영된 뒤 지인들의 반응을 각자 신나서 떠들던데, 별 영양가는 없었다.
-문대야, 닭발 시킬까?
…저걸 히죽거리면서 물어봤던 게 그나마 제일 기억에 남았다.
어쨌든 대충 흘려듣다 보니 곧 방송시간이 되었다.
‘큰 화면으로 보는 건 좋네.’
나는 거실 벽의 사분지 일을 차지하는 거대한 벽걸이 TV를 보며 무심코 생각했다.
“아, 시작한다.”
배가 차서 소파나 바닥에 늘어졌던 놈들이 각 잡고 앉는 것을 보니, 모니터링을 방해받지는 않을 것 같아 그것도 썩 괜찮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첫 번째 팀전인만큼, 여러분 모두 같이하고 싶은 참가자가 있겠지요?]MC의 말이 방송을 타자, 곧바로 인터뷰가 삽입되었다.
[차유진: 래빈이랑 했으면!] [이세진(B): 저요? (편집) 아, 문대도 좋고!] [박문대: (고개 저음)]“으아악 형들 나왔어!!”
“큰세진 형 인터뷰 컷 잘 받으시네요.”
“와 나는 너 말했는데! 안 나왔네.”
팀원 중 하나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다들 오만 반응을 해대는 것이다.
화면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라 미치겠다.
와중에 큰세진이 폭소까지 했다. 동명이인이 있다고 이세진(B)로 나오는 건 아무래도 좋은가 보다.
“박문대 너 진짜 저랬어? 크하하학!”
“……아니.”
그럴 리가 있겠냐.
큰세진 저놈도 하나만 걸리라는 식으로 한 일곱 명 이상 이름을 쭉 댔는데, 내 이름만 방송을 탄 게 분명했다.
어쨌든 화면에 계속 집중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자.
떠드는 와중에도 방송은 계속되고 있었다.
[와아!!] [우리 팀 좋은데?]일단, 이 팀이 정해지는 순간은 훈훈하게 나왔다.
서로 껴안고 빙빙 도는 걸 위주로 보여줘서, 순수하게 되고 싶던 참가자와 같이해서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예상외였던 것은 전 양궁 국가대표 류청우가 있던 상대 팀의 편집 방향이었다.
분위기가 비교적 처지긴 했지만 류청우 주도하에 빠르게 수습되었던 팀이었는데, 방송에서는 분위기 작살났던 것처럼 나왔다.
“어…….”
“음.”
뭐라 코멘트하기가 난감했는지, 옆에서 애매한 탄성이 나왔다.
좋아하기도 힘들고 비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다른 팀들의 결성 과정을 한 바퀴 지나가며 보여주고 난 뒤, 다음은 선곡 과정이었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판넬 위 버튼을 괴성과 함께 누르는 골드 1이 단독 컷으로 나왔다.
“아아아…….”
골드 1이 자신의 흑역사를 보며 고통스러워했다. 화면에서는 자신이 얼빠진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으니까.
[오, 오륜가?]그리고 이어진 편집은…… 진지하지 않았다.
뚱땅거리는 개그용 BGM과 함께 팀원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참고로 하일준이 골드 1, 권희승이 골드 2다.
[이세진(B): 보셨죠 우리 얼굴?? 막 이렇게!] [권희승: 우리… 어쩌지? 으흐흐…….] [선아현: (웃으며 어깨를 움츠린다.)] [하일준: …죄송합니다. 크흐흑.] [♡새로운 세상으로 / 말랑달콤♡]판넬이 장난처럼 뒷배경에서 번쩍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왠지 박문대의 인터뷰가 등장했다.
[박문대: 전 좋았어요. (엄지 척)]자막이 떴다.
[팬심은 모든 걸 이긴다…!☆]거실은 폭소의 도가니탕이 되었다.
“아하하하!!”
“하학, 헉, 너무 웃어서 배 아파…!”
심지어 이세진도 얼굴이 시뻘게져서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
“크흡, 저거 진짜야? 너 진짜 저랬어?”
“…팀 좋다고 한 거야.”
“허흠, 큼, 아~ 그래? 고맙네.”
큰세진이 키득거리다가 소파에 처박혔다.
나는… 그냥 닭이나 입에 처넣었다.
‘휘말리지 말자.’
이후 안무 연습과 트레이너 피드백 시행착오까지도 너무 심각하지 않게 분위기가 잡혔다.
[이렇게 맞추자!] [흠, 알았어.]실제로는 적당히 암울했던 초반 연습이 마치 뭣 모르고 열심히 하는 것처럼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긴장된 배경음이 나온 것은 안무가의 독설을 받을 때였다.
[아무도 눈에 안 들어와. …뭐 어쩌자는 거야?]이후 줄줄 이어지는 인신공격이 거대한 자막과 함께 단어가 강조되어 그대로 송출되었다.
“다시 들어도 진짜 세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진짜 무서웠어.”
“응. 그래 보여.”
“어. 너도.”
화면에서 굳은 표정의 팀원들을 비춰주자, 농담처럼 진심이 거실을 오갔다.
다행히 선아현이 안무가에게 까이는 장면은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충격받은 선아현을 위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예상 못 한 타이밍에, 예상 못 한 장면이 나왔다.
[피곤해?] [아, 아니…….]‘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선아현 참가자’류의 편집을 받고 있던 선아현에게 내가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내가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특성을 사용한 그 대화였다.
심지어 시기도 맞지 않았다. 저건 편곡 결정한 이후에 한 대화였는데.
“어, 어?”
“뭐야?”
선아현이 당황했는지 먹던 치킨을 떨어뜨렸다.
나도 좀 의아했다.
‘저거 메인 카메라 다 빠지고 구석에 설치 캠만 돌아갈 때 한 말인데.’
굳이 방송에 쓸 것 같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오히려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어서 오프 더 레코드 느낌도 났다.
덕분에 대화는 좀 더 진심처럼 들렸다.
[지, 진짜 내가 자,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지?] […!!]거기에 감동적인 편집이 가미 되자 소년만화 동료 영입신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편집 잘해줘서 좋긴 한데…….’
1화부터 제작진놈들이 빌드업해 온 내 캐릭터를 생각하면 뜬금없는 선택이었다.
영 편집이 안 나와서 갈아치우기로 결심한 건가?
그 와중에, 화면 속의 박문대는 멋진 BGM과 함께 ‘그 대사’를 꺼냈다.
[그냥 ‘이걸 해내겠다’ 정도만 생각해.]그리고 거실이 리액션으로 울렸다.
“오올~”
“이걸… 해내겠다?”
“문대 씨 평소에 이런 생각을, 캬~ 명언!”
그냥… 무시하자.
야유인지 감탄인지 알 수 없는 놀림이 난무하는 가운데, 방송은 선아현의 짧은 인터뷰를 보여주었다.
[선아현: 마, 마, 많이 고마웠고…….] [선아현: 열심히… (해야겠다.) 그, 그렇게 생각했어요. 해, 해내야지.]선아현이 기는 좀 약해도 확실히 의리가 있단 말이지. 나는 즉시 인사했다.
“고맙다.”
“어, 어… 아, 아니, 내가 고맙…….”
“아, 훈훈하네요.”
“그렇습니다.”
대화를 탈취당한 선아현이 더 당황하는 가운데, 드디어 TV 화면에 뮤디의 조언하에 편곡이 진행되는 컷이 나왔다.
[얘들아. 일단 방향부터 잡아봐야겠다.]그래, 여기가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