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화
첫 도네이션 글은 단도직입적이었다.
#왜 하필 닭발을 골랐나요?ㅋㅋㅋ
댓글에서 훌륭한 질문이라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박문대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음, 사실 제 콜라보 아이템 키워드는 닭발이 아니라 냉동식품이었습니다.”
-와 개구려
-닭발 다시 보니 선녀 같다
-망주사 놈들 왜 아이돌 PR에 냉동식품 따위를 넣었지요…?
-T1 탄산수도 있으면서 왜 만두 같은 걸 후보에 넣냐고ㅋㅋㅋ
댓글을 보지 못하는 박문대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샘플로 받은 냉동식품 중에 닭발이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닭발을 골랐습니다.”
-!!
-샘플을… 다 먹어봤다고?
-이 참가자는 ‘진짜’다
-이쯤 되면 열심히 한다고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잖아ㅋㅋ
“일단 광고니까…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하긴 힘들어서요.”
박문대가 대답하면서 닭발을 다시 덥석 입에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도네이션들이 연달아 터졌다.
#닭발 말고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참가자 누구하고 친함?
#그럼 삼각김밥은 뭘 기준으로 골랐나요ㅋㅋㅋ
“음식은 안 가리고 다 잘 먹습니다. 친한 참가자는… 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생략하겠습니다.”
-정말 철저한 걸ㅋㅋㅋ
-우리 문대 친한 친구가 있는 건 맞지? 할미는 문대 믿는다!*^^*
-님 방금 옆 방송에서 선아현이 님이랑 친하다고 말했는데욬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알았어 문대야 아현이랑 친하다고?
박문대 입장에서야 누군가를 직접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얼버무린 것이었다.
하지만 댓글들은 그것마저도 소재로 삼은 뒤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박문대가 삼각김밥을 고른 이유를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을 때 즈음, 밀린 도네이션이 연달아 터졌다.
“참치 마요네즈가 진해서 닭발에 소스처럼 어울리는… 아.”
#문대야제발노래한소절만좀ㅠㅠ
#넘 먹지만 말고 자기소개도 해줘용ㅋㅋㅋ
#노래 잘하는 비결 있어요?
“음, 노래요.”
박문대는 먹으려던 마지막 닭발을 내려놓았다.
-드 디 어
-아이돌 자아가 깨어났음?
-닭발이 하나 남고서야 되살아났는데 의미 있는 걸까요….
-아냐 문대 노래 개쩐다구 팀전 방청했는데 개쩔었다구요ㅠㅠ
-방송에서는 좋았는데 과연 라이브는 어떨지
댓글이 수군대는 가운데, 박문대는 노래를 시작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나, 아직은 모를 거야~”
방송 테마곡인 였다.
박문대는 별 고민 없이 이미 트레이너에게 호평을 받아 검증된 곡을 선곡한 것뿐이었으나,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캐릭터 굳히기나 다름없었다.
-박문대, 그는 프로다
-누구보다 방송에 진심인 참가자가 아닐까?
-정말 예측불가다 범인의 사고방식이 아님
-미치겠네 너무 웃겨ㅋㅋㅋㅋ
댓글에는 우스갯소리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근데 잘 부르네
-왜 닭발이 한 컷에 잡히는데 감미롭지요?
-무반주인데도 듣기 좋다
-잘했어 문대야 이제 다른 것도 한 곡 더 불러줘ㅠㅠ
77명이 동시에 생방송을 진행하는 무리수 탓에 보급형 저가 장비를 썼는데도, 박문대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송출되고 있었다.
얼버무리거나 흐려지는 부분 없이, 박문대는 시원시원하게 곡을 끌어갔다.
불안한 음 하나 없이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마치 집중하는 것처럼, 댓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살짝 느려졌다. 반응에 간간이 감탄사가 섞였다.
그리고 프리 코러스의 마지막 부분을 지나, 후렴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지금 무대 위…….”
띠리리리리링!!
책상 위의 시계에서 힘차게 알람이 울렸다.
종료 30초 전 알람이었다. 5분의 추가 시간이 끝난 것이다.
“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박문대는 즉시 노래를 중단했다.
괜히 시간을 끌면서 노래를 더 해서 논란의 여지를 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무 단호하게 그만뒀다는 점이었다.
-아니 여기서 끊으시면
-하필 후렴 직전엨ㅋㅋㅋ
-으아아 답답해 어억 그냥 내가 부를래 지금 무대 위에 빛나는 건 바로 나!! 으아아!!
-2화를 보게 하려는 큰 그림인 걸 모르시겠습니까? 문대씨는 프로그램에 진심이라구요
-닭발을 하나만 덜 먹었다면 1절은 다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당장 한 소절이라도 이어 부르면 될 텐데ㅠㅠ 아이고 문대야
딜레이된 도네이션 하나가 화면에 떴다.
#목소리 너무 좋아요!
현 댓글 분위기와 상반되는 온화한 도네이션에 댓글이 더 폭주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남은 도네이션 질문들은…….”
박문대는 빠르게 질문을 다시 훑어보며, ‘자기소개’와 ‘노래 비결’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사실 박문대는 일부러 노래로 시간을 끌며 다음 도네이션에 대한 답을 미루고 있었다. 대답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먼저 자기소개는… 남의 몸에 들어온 탓에 말할 것이 없었다.
본인도 ‘박문대’의 배경에 대해 완전히 파악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파악한 배경도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노래 비결은 더 말하기 난감했다.
‘시스템창이 도와줘요? 미친 소리지.’
박문대는 순식간에 판단을 마치고 말을 이었다.
“일단 자기소개를 하자면,”
그 순간, 화면이 검게 변했다.
[라이브가 끝났습니다.]방송 시간이 다 끝난 것이다.
-??
-뭐임
-끝난 것 같은데?
-제작진에서 일괄 방송 종료했네
남은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하다가, 곧 상황을 파악하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자기소개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냥 앞광고 먹방 본 느낌인데요
-아 간만에 빅잼이었다
-아니, 박문대 진짜 웃기넼ㅋㅋㅋ 의문의 개그캐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는 실시간 댓글창에 한마디씩 남기고 나갔다.
하지만 제법 많은 인원이 꽤 오랫동안 남아서 댓글을 계속 남겼다. 박문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화에서의 박문대와 직전 PR 라이브의 박문대를 비교하며 신나게 즐거워했다.
-근데 문대 진짜 귀엽다… 저렇게 의욕 없어 뵈는 얼굴로 오물오물 잘 먹고 노래도 잘해ㅠㅠ 요령 없는 것까지 최고 얌얌굿
-얼굴이 트렌디상이라 화룡점정임 관리 좀만 더 받으면 진짜 잘생겨질 듯
-좋아 오늘 바로 팬 계정 파야지
-투표 어디서 할 수 있어요?
-아이돌 주식회사 홈페이지 -> 주식 구매창입니다. 1일 1투표에 콜라보 번들 구매하면 추가 투표 가능함
-상술 오졌다
-문대가 귀여워서 한 표 줬다 진짜
댓글에서는 돈독 오른 투표방식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지만, 곧 다시 박문대의 직전 방송으로 화제가 돌아왔다.
-그 와중에 닭발 너무 맛있게 먹더라ㅠㅠ 나 결국 링크 타고 가서 샀다.
-난 지금 배달시킴. 고맙다 문대야 이 야밤에 닭발이라니 다이어트 작살났다
그러다 갑자기 한 댓글이 뜬금없는 말을 내놨다.
-근데 난 문대 먹는 거 왜이렇게 친숙하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엥 진짜?
-애기 때 분유 광고라도 찍었나? (두근)
-ㅋㅋㅋㅋㅋ문대 연예계 경험 없다며
-아 찾았다. 이거임. 존똑 (링크)
링크는 한 닭발 먹방 동영상으로 연결되었다.
닭발을 덥석 한입에 집어넣고 오독오독 씹는 모습은 직전에 그들이 본 라이브 방송과 똑 닮아 있었다.
단지 종이 달랐다.
[시골 댕댕이가 닭발 먹방!]동영상에서는 혈통을 알 수 없는 대형견이 생닭발을 먹고 있었다.
채널명은 ‘시고르자브종의 식생활탐구’.
귀가 쫑긋하고 털이 까만 개는 털이 밀려 시무룩해 보이는 얼굴로 꼬리를 흔들며 닭발을 열심히 입에 받아 넣었다.
그 모습 위로 박문대의 무심한 듯 호쾌한 먹방이 저절로 겹쳐졌다.
-헐
그 순간, 박문대의 첫 별명이 정해졌다.
* * *
-이거 봐 둘이 개똑같잖아ㅋㅋㅋ 이제부터 박문대는 문댕댕이야 반박 안 받음 (시고르자브종 먹방 캡처) (박문대 라이브 캡처)
4천 번 이상 공유된 SNS 글에는 ‘박문대’의 모습을 한 내가 무뼈닭발을 입에 넣는 장면과 웬 큰 개가 닭발을 무는 사진이 함께 게시되어 있었다.
좀 심란해졌다.
일단 친근감을 줘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쇄한 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 같았지만.
“문댕댕…….”
29살 먹고 이런 낯부끄러운 별명을 가지게 될 줄이야.
살면서 잘 먹는다는 덕담을 들은 적은 몇 번 있었다.
‘아마 음식을 잘 안 남기고, 안 가려서 그랬던 것 같은데…….’
단순히,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먹을 걸 가릴 형편이 못 돼서 그랬을 뿐이다.
그래서 고작 닭발 좀 먹었다고 이런 반응이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4번째라니.”
라이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PR 영상이 업로드되었는데, 현재 내 동영상의 조회수 순위가 손가락 안에 들었다.
심지어 아직도 상승세였다. 잘하면 3위인 아역배우 출신 이세진의 영상도 뒤집을 것 같았다.
나는 상황에 순응하기로 했다.
‘민망이고 나발이고, 좋은 상황이니까.’
돌연사가 걸린 판에 까다롭게 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민망함보다도 신기함이 컸다. 좀… 많이 고맙기도 했고.
‘덕분에 돌연사에게 한 걸음 멀어졌습니다.’
나는 SNS글을 올려준 사람과 공유해준 사람들에게 짧게 감사를 올리고, 다음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 가까운 문제는 하나였다.
잠시 후 방영될 2화에서 내 편집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특히 등급평가에서 플래티넘을 받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편집이 조금만 구려도 ‘얘가 받아야 했는데 박문대가 받음’ 같은 반응이 나올 것 같단 말이지.’
나는 약간 긴장한 채로 스마트폰의 온에어 창을 켰다.
그래도 2화는 쓸데없이 리액션 촬영을 안 해서 편했다. 덕분에 맥주 캔도 하나 딸 수 있었고.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오프닝에 삽입된 영린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내용에 집중했다.
“…….”
2화가 끝날 때 즈음에는 스마트폰 옆에 놓인 맥주가 두 캔으로 늘어 있었다.
나는 마지막 맥주 한모금을 마시며, 생각했다.
‘괜찮았는데?’
제작진이 내 등급평가도 공을 들여서 편집해준 것이다.
안무를 빠짐없이 소화하는 것과 음정이 정확한 것을 심사위원들의 입을 통해서 한 번 더 검증하며, 잘한다고 도장을 찍어뒀다.
심지어 플래티넘 등급을 받는 장면도 별로 조명하지 않았다. 그냥 ‘당연히 이 정도 하는 참가자는 받아야지~’ 같은 뉘앙스로 처리했다.
판정 논란을 아예 도마에 올리지도 않은 것이다.
“무슨 생각이지?”
술이 들어갔다고 속마음이 막 나오는군. 나는 곰곰이 내 편집 방향을 되새김질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다.’
내가 일주일간 잠을 자지 않고 연습한 것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77명의 사정을 다 보여줄 수는 없을 테니 그것까지야 그러려니 해도, 선아현에게 안무를 물어보는 장면을 굳이 내보내 준 게 이상했다.
그것도 마치 내가 한 번 듣고 안무를 전부 따라 추는 것처럼 편집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 등급을 받을 때도 별 감흥 없어 보이는 인터뷰를 넣었지.’
음, 여기까지 정리해 보니 감이 왔다.
제작진들은 1화에서의 ‘박문대’ 캐릭터성을 계속 밀 모양이었다.
속되게 말하자면… ‘눈치없는 마이페이스 재능충 일반인’ 캐릭터 말이다.
다행인 점은, PR 라이브 덕분에 인터넷 여론이 이미 나에게 닭발 강아지 이미지를 붙여줬다는 점이었다.
‘대충 넘어가 줬을 것 같은데.’
바로 SNS를 켜서 확인해 봤다. 역시나 2화의 박문대도 똘똘한 강아지 기믹으로 처리해 버린 사람들이 먼저 여론을 잡았다.
다행이긴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편집은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더 살려야 하나.’
드르르륵!
고민 중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큰세진이었다. 메시지 앱이 아니라 문자로 보낸 것에서 치밀함이 느껴졌다.
[문대야 우리 팀끼리 3화 다같이 보려는데 어때?]굳이 그래야 할까? 나는 곧바로 답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그때는 일이 있…….’
적당히 핑계 대서 거절하려는 순간, 연달아서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설마… 문대만 빠지는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는 거지?ㅜㅜ 이세진 형님도 온다고 했는데!]“…….”
이미 다 동의한 상황이야?
이놈은 제작진에게 같이 봤다며 썰을 풀고 인증샷까지 보낼 놈이었다.
가뜩이나 편집 방향이 수상한데 나만 빠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나는 천천히 문자를 고쳤다.
[어 그래. 가야지.]곧바로 답장이 왔다.
[ㅎㅎ 문대도 좋아할 줄 알았어~ 그때 보자!]“…….”
어쩐지… 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