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3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0화
이 상황을… 교통사고 후 코마로 결론을 내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부상 정도다.
‘파편이 가슴에 적어도 5㎝는 들어갔다.’
직전에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고, 혹시 과장이 없는지 몇 번 더 되새김질했으나 확실했다.
무조건 치명상일 것이다.
내 기억으론… 출혈도 심했다.
파편을 뽑은 것도 아니고 꽂힐 때 그 정도면 예후가 좋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즉사는 아닐 것이다.
‘심장에 직통으로 박힌 것도 아니잖아.’
심야의 도로지만 서울 한복판이다.
배세진이 신고했으니 경찰이 확인이라도 했다면 구급차가 왔을 테고… 그럼 적어도 사경을 헤매는 정도는 됐을 것이다.
‘바로 죽어서 다시 시작할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
두 번째는 거울로 확인한 내 얼굴 때문이다.
“…29살이 아니잖아.”
‘류건우’의 얼굴이라 당황한 탓에 바로 파악하지 못했으나, 다시 천천히 보니 알겠다.
너무 어렸다.
‘이건… 적어도 대학 졸업은 한참 전이다.’
그러나 여기는 내가 ‘박문대’로 처음 깨어났던 모텔이고, 당시 확인했던 달력과도 같은 날짜였다.
즉,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
혹시 몰라서 화장대의 지갑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시작만 3으로 바뀐 ‘류건우’의 번호였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류건우 0X1208 – 3XXXXXX]20살의 류건우.
“이게 무슨….”
다만 침대 위에 음독자살용 약과 유서는 없었다.
…마치, 박문대의 상황만 따와서 류건우에 적당히 맞춘 것 같은 꼴 아닌가.
‘앞뒤가 맞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깔끔히 떨어지지가 않는다.
여기까지 오면, 상태창에 떴던 문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름 : 류건우 (박문대)]-Enjoy your daydream :)-
‘daydream’은 백일몽이란 뜻이지.
그리고 그냥 ‘류건우’가 아니라 괄호로 ‘박문대’가 같이 표기된 건…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 내가 박문대의 몸에 있기 때문이라면?’
내가 혼수상태로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는 중은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 시스템이 개입했다.’
…그 코인.
내가 무의식 속에서 본 그게 직전 상태이상을 클리어하고 받은 코인이 맞다면, 이 상황은 그 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클리셰를 고려해서 상점에 쓰는 게 아닌가 짐작했으나 이젠 다른 추측이 든다.
‘…오락실 게임처럼 여벌 목숨이 아닐까.’
이쪽도… 게임 시스템에 어울리긴 하군.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의미 없이 스스로 비웃었다.
“하.”
아무튼,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나는 양손을 움켜쥐었다.
“…돌아갈 방법이 있을 거다.”
코마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방편으로 이 상황이 주어진 거라면, 깨어나면 된다.
그리고 보통 꿈에서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뛰어내려야 하나.”
이 모텔이 특별히 고층은 아니라 여기서 떨어져도 죽진 않을 텐데, 그 정도로 충분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진짜 박문대의 몸이 죽을 수도 있으니 일단 기각.
다음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인데, 솔직히 지금 어지간한 걸로는 충분한 충격을 받을 것 같지 않다.
이미 누적된 게 많아서 말이다.
‘또 뭐가 있을까.’
나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 남아 있긴 했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기.’
외부의 회복.
다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회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
“…….”
나는 주어진 상황을 조합해서 가장 온건한 방법을 우선 뽑았다.
‘우선 힌트를 찾는다.’
이게 시스템의 개입이라면, 이 꿈을 파악하는 동안 깨어날 힌트가 나올 수도 있겠지.
‘상태창이 반응할 수도 있고.’
나는 침대 밑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지갑을 챙겨서, 모텔방을 나섰다.
일단 이 코마 속에서 ‘류건우’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자.
* * *
“…….”
나는 새로 개통한 휴대폰을 들고나오며 이를 악물었다.
‘똑같다.’
내 20살 적과 금전 상황이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곤 박문대처럼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다만 친척들과 연락은 닿지 않았다.
‘철저히 편리한 대로 구성됐군….’
모순점이 나타나지 않도록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인 점을 깨달았다.
‘노래를 잘해.’
이 몸은 현실 ‘박문대’의 능력치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처음 ‘박문대’로 깼을 때처럼, 노래방에 가서 노래 한 곡 부르고 깨달은 사실이다.
내가 박문대의 몸으로 겪었던 모든 무대의 감각이 그대로 이 몸에도 남아 있었다.
‘부추기는 건가.’
현실에서 ‘박문대’가 갔던 길을 그대로 가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 모든 걸 진짜 ‘류건우’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처럼….
“…….”
쓸데없는 생각 집어치우고, 그렇다면 꿈을 진행해 보자.
‘다음에 내가 했던 일이… 참가지.’
류서린 작가에게 섭외되기 위해 근처 노래방에 죽치고 있는 것 말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말 참가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는… 골 아픈 일이긴 하나, 시도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원래 내 얼굴도 보기 나쁜 편은 아니니까.’
일단 노래가 S급이니 가능성은 나쁘지 않았다.
다른 옵션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이걸 다시 시도해 보는 것으로 결정하고 즉시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
날짜가 어긋났는지, 꿈이라 무슨 차이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으나… 며칠 동안 류서린 작가가 노래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X발.’
그리고 난 알고 있었다.
‘오디션은 이미 끝난 시점이야.’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내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방법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하.”
다시 힌트 없이 제자리에 봉착했다.
‘뭘 어쩌라는 거냐.’
미친 척하고 어디 옥상이라도 올라가야 하나.
그러나, 안 그래도 몸이 정상이 아닐 텐데 너무 과한 리스크라는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 할 수 있는 건….’
내가 데뷔할 만한 방법은…….
있다.
“…!”
나는 확실한 방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다만 위험했다.
‘…잘못하면 이 안에서도 뒈질 수 있겠는데.’
그래도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시도해도 손해는 아니다.
‘다짜고짜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는데 이 정도야.’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하도 문자로만 본 탓에 눈에 익은 연락처를 쳤다.
한두 자리 헷갈리는 번호도 있긴 한데, 그냥 전부 다 보내 버리면 그만이다.
[매번 견종을 바꿔 기르더니 이번에는 안 기르네 지난번에 조현병 루머로 망해서 그런가]이 문구에 반응할 놈은 정해져 있으니까.
오로지 당사자만이 스팸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니, 과거니, 재시작 같은 소리를 할 것도 없다. 그런 뻔한 소리에 동요해서 연락할 놈도 아니다.
이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동요한다.
“…….”
나는 문자들을 보낸 후, 확인 여부가 뜨기를 기다리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뒤.
드르르륵.
-너 뭐야
바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나온 고조 없는 말에,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너 같은 사람
이 정도면 이해했겠지.
그리고 짧고 살벌한 통화 뒤, 나는 LeTi 소속사 내부의 회의실에서 놈을 보게 되었다.
“…….”
“왔네.”
마침 휴식기였는지 야밤이나 새벽이 아닌데도 용케 만날 시간을 냈군.
하기야, 활동 첫 주라도 이 상황이면 무조건 신상 명세부터 파악했을 놈이다.
지금도 일단 실마리를 잡으려 연락은 했으나, 내 번호 뒷조사라도 맡겨뒀을 게 분명했다.
나는 캡을 쓰고 앉은 놈에게 고개를 까닥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재시작 중입니다.”
“…….”
놈은 표정 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툭 말을 던졌다.
“몇 번째.”
“세 번째요.”
그러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얼마 못 갔겠네요.”
청려는 온화하게 대꾸하더니, 팔을 풀어 탁자에 올렸다.
‘…계산 끝냈군.’
아직 몇 번 안 한 놈이니 털어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3번째인데도 자신이 놈을 모르는 걸 보니… 과거로 함께 돌아올 수는 없겠다는 생각.
‘오해하게 내버려 둔다.’
코마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는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이 새끼가 내 머릿속의 지식으로 재구성된 것이든, 시스템이 개입해서 진짜와 똑같든, 이 시점의 놈은 리셋 증후군의 미친 새끼다.
나는 얌전히 말을 꺼냈다.
“일단 문자로 무례한 소리 한 점 사과드립니다. 웬만한 말로는 반응 안 할 테니, 그 정도는 하라고 하셔서.”
“아, 나랑 그런 말도 했어요?”
“예. 어쩌다 보니.”
물론 거짓말이다, 새끼야.
“음… 몇 년 후에서 왔을까.”
“3년 뒤입니다.”
“아, 3년이라…. 난 어떻게 살고 있나요?”
“잘 살고 계십니다. VTIC은 올해도 대상이라는 게 전반적 여론이었고.”
“그렇구나.”
본인이 돌린 기간만큼은 아니겠지만, 3년이면 제법 쓸 만한 수치다. 눈 돌아갈 정도는 되지.
‘…솔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지금 이놈이 고려할 패가 아니다.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청려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가 제법 잘 지냈나 봐요.”
“제가 재시작해 봤자 본인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신 뒤로도 그럭저럭.”
“그럴싸하네요.”
청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요 없이 미소 지은 그대로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연락한 이유가?”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나는 이미 한번 해본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기서 데뷔하고 싶습니다. 최대한 빨리.”
“아, 그게 미션이구나.”
“…….”
청려가 웃는 표정 그대로 대꾸했다.
“그리고 그쪽은… 후배님이라고 하면 되나?”
“예.”?
“그래요. 후배님은 나에게 미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겠다는 말이겠네요.”
“그렇습니다.”
당장 ‘널 어떻게 믿고’ 같은 대사는 안 나올 줄 알았다.
어떻게든 손에 두고 감시할 놈이 저절로 왔는데 기꺼운 상황 아닌가.
그러나 곧바로 긍정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데뷔하게요?”
“…!”
“LeTi는 솔로 활동은 지원 안 하는데. 지금 연습생들은… 데뷔할 놈들도 없고.”
“…….”
“아, 이미 알고 있겠구나. 미래에서 돌아왔다면서요.”
네가 솔로나 신인 데뷔를 막고 있는 것 같은데.
전자는 그룹 활동에 소홀할까 봐, 후자는 그룹 활동에 방해될까 봐.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나는 생각했던 방안을 말했다.
“…생각해 둔 멤버들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같이 데뷔했었고.”
“아. 어떤?”
“곧 시작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 출연진입니다.”
나는 잠깐, 떠오르는 놈들을 생각했다.
“…프로그램 중, 타 소속사로 공식 섭외될 기회가 있는데…… 데려왔으면 합니다.”
말이다.
…여기서도, 뭐로 가도 그놈들과 데뷔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침을 삼켰다.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한 거구나.”
그리고 눈앞의 이 새끼는 위협이 될 싹을 자르려고 어느 순간 내 뒤통수를 후려갈길 테니 되도록 그 전에 깨어나자.
* * *
“…….”
류청우가 처음 들은 것은 기기에서 울리는 알림음이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병원 천장이었다.
“…!”
당장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주변에서 부축하며 다시 눕히려는 손길이 느껴졌다.
“…번 의식 돌아왔습니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누우실 게요.”
긴 운동선수 시절로 인해 의료진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 버릇이 된 그는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누워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발이 고정되어 있었다. 아마 금이 가거나 부러지진 않은 것 같았다.
‘…팔이 아니라, 다행…….’
아니다, 자신은 더 이상 팔만을 최고 우선순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다만, 상처가 심하지 않다는 것에는 감사해야겠다.
“…후.”
류청우는 긴 한숨을 쉬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노력했다.
주변이 요란하고 시끄러웠다. 그는 상황을 이어붙였다.
‘…사고가 났지.’
그 전 매니저.
일단 탑승자들은 무사히 응급실로 이송된 것 같다.
유명인이라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를 배려해 준 것 같긴 했는데, 그래도 소리는 들렸다.
“…괜찮…….”
“보호자분 여기…….”
다들 놀랐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내가 제일 뒤였으니까, 다들 나보단 괜찮겠지.’
부모님이 오시기도 전에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까. 아마 다들….
그 순간이었다.
정신 잃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 섬광처럼 그의 시야에 떠올랐다.
자신을 밀치던 어깨와, 그 아래 살로 꽂히던 거대한 파편….
“…선생님!”
“예?”
“문대…, 문대 혹시 어때요.”
“…….”
“문대, 박문대. 아시죠?”
“……그 부분은 저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환자분 안심하시고 쉬고 계세요.”
류청우도 알았다.
…거짓말이다.
달칵. 문이 닫혔다.
류청우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