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4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0화
큰세진은 좀 당황한 것 같았으나, 바로 안색을 바꿔서 씩 웃었다.
“아, 뭐 찾는 거 있어?”
“아니. 배세진 형이랑 방 바꾼 건데.”
“…방을?”
“어, 오늘만.”
나는 바로 놈의 맞은편, 배세진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야기 좀 하자.”
“…….”
큰세진의 동작에 짧은 긴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말은 잘 나왔다.
“…음, 무슨 이야기?”
‘요즘 네 태도 말이다, 새끼야’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잘 참았다.
‘싸우자는 게 아니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대신 나는 깍지를 끼고 앉아서, 침착하게 해야 했던 말부터 꺼냈다.
“일단… 고맙다.”
“…!”
“네가 나 못 깨어나는 동안 고생 많았다고 들었는데. 회사랑 병원을 다 상대했다면서.”
나는 덤덤히 할 말을 이었다.
“따로 이야기 못 했던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
놈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이다.
“그리고 걱정해 준 것도 고맙… 너 우냐?”
“어? 아, 아니…, 어.”
큰세진은 눈이 벌게진 채로 뻔뻔하게 외쳤다.
“감동해서 그렇지~!”
…감동보단 안도에 가까운 것 같은데.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다만.’
역시 이놈도 이 며칠간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다.
놈은 민망하면서도 긴장이 풀리긴 했는지, 좀 덜 형식적으로 하하 웃었다.
“아~ 좀 민망한데?”
그래, 마음이 좀 풀렸다니 다행이군. 나는 팔짱을 꼈다.
“민망할 건 없지. 그건 그렇고….”
이제 나도 들어야 할 말이 있다.
“너 혹시 나한테 빡친 거 있냐?”
“…뭐?”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너한테 ‘네가 다 맞아~’만 듣고 넘어간 지 꽤 된 것 같아서.”
“…….”
나는 침대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새끼 얼굴에 다시 긴장이 빡 돌아오는 걸 보니까 좀 그렇다만, 덮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터지는 것보단 낫겠지.
“기회 있을 때 이것도 털고 가자. 혹시 콘서트 이야기할 때 내가 일방적으로 사과받고 상황 끝난 게 억울했던 거면…….”
“그게 억울했겠어?”
“…!”
“……아니, 그때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 그냥 말조심하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네~”
아닌 것 같은데.
방금 이 새끼 욱해서 대놓고 공격적으로 말을 찌르고 수습했다.
나는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아닌 것 같은데.”
“…!”
“그냥 좋게 넘어가고 싶은 건 알겠는데, 너만 의견 안 내고 참는 게 장기화되면 안 되니까 하는 말이야.”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러니까, 내가 팀 상황도 안 좋은데 다짜고짜 말도 없이 솔로 콘서트 기획했던 건 사과….”
“그런 게 아니라니까.”
큰세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하고 정색했다.
“박문대, 넌 내가 무슨 소시오패스인 줄 아냐?”
“…!”
“내가 너 솔로 콘서트 한다고 열받은 줄 알아? 팀에 문제 된다고?”
“…….”
…아니냐?
큰세진은 분을 삭이는 것처럼, 몇 번 심호흡하더니 목소리를 정리했다.
“방금까지 혼수상태던 놈이 무리할까 봐 걱정한 거란 생각은… 안 해봤냐고.”
“…그 이유도 있겠단 생각은 했는데.”
“생각은 했는데, 그것보다 내가 팀에 문제 생길까 봐 짜증 낸 거라고 생각한 거잖아. 아니야?”
“…….”
이놈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처음 듣는 것 같다.
큰세진은 탄력이 붙었는지 이제 거의 토로하듯이 말하고 있다.
“넌 매번 그러더라. 무슨 다치거나 논란 날 때마다 그래. 내가 이 일에 목숨 건 건 맞지. 그래, 나 잘하고 싶어. 근데 나도… 친구 걱정은 한다고.”
“…….”
“우리 친구 아니야? 너는…….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진짜 너랑 활동 못 해도 괜찮으니까 너 깨어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그랬는데, 너 겨우 일어났는데 거기다 대고 또 괜한 소리 해서…. 내가 안 그래도 직전에…,”
큰세진은 목이 메는지 입을 멈췄다. 나는 그 말까지 묵묵히 듣고 나서야, 왜 이놈이 그랬는지 깨달았다.
이놈은 그냥 겁먹은 것이다.
친한 친구가 죽을 뻔했는데, 거기에 싸우기까지 했으니 조심하려고 했을 뿐이다.
‘자기 말실수를…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였어.’
그리고 그 정도로 박문대와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세진은 아직 20대 초반이다. 보통 한창 대학에서 헛짓하고 다닐 나이 말이다.
평소에 워낙 백업이 잘 들어오다 보니, 무의식중에 다른 놈들보다 엄격히 판단했다. 진짜 내 또래 직장동료라도 된 것처럼.
자꾸 이놈의 행동을 커리어와 이득만으로 분석하려고 든 것이다.
‘이건… 내 실수가 맞다.’
좀 가혹한 짓이었지 않나.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알았어. 넌 배려해 주려고 했던 건데, 나도 걱정하느라 너무 삐딱하게 받아들인 거야. 미안하다.”
“…아니야.”
“아니긴. 그리고… 넌 내 친구 맞아.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어.”
“…!”
나는 상태창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온갖 의문들을 떠올렸다.
“그냥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서, 당장 성과가 급했을 뿐이야.”
“…….”
“미안하다. 이건 솔로 콘서트 이야기 아니고, 서운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뜻이야.”
큰세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침대 위 이불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래도 공기는 한결 시원해졌다.
“……후.”
나는 배세진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 주인이 보면 기겁할 짓이군.
그리고 생각했다.
‘만화가 따로 없군….’
무슨 모험 만화도 아니고 내가 이놈과 질질 짜면서 친구 증명을 하게 될 줄이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
“…….”
좀 머쓱하긴 했으나, 한결 편안해진 방 공기 속에서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뒤. 겨우 진정이 됐는지, 일부러 큰세진이 쾌활한 목소리로 운을 다시 뗐다.
“아~ 이제 진짜 민망한데.”
“남의 방에서 이러는 내가 더 민망한데.”
“야, 됐어. 나 혼자 울었구만!”
큰세진은 빙긋 웃었다. 엉덩이에 뿔 나기 부족함이 없는 조건이군.
“근데 문대문대야.”
“왜.”
“…왜 그렇게 여유가 없는데.”
“…….”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성과 걱정할 타이밍은 지났잖아. 좀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나? …5년 뒤에도 이 그룹 할 거잖아.”
“…하고 싶지.”
이제 쉽게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동시에 현실을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진 알 수 없어. 지금 내가 하고 싶다고 그때도 할 수 있을진 모르지.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
“그러니까 5년 뒤에도 할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려는 거지.”
…비현실적 요소로 떡칠된 디테일은 제외했으나, 깔끔한 진실이었다.
짧게, 큰세진의 한숨과 헛웃음을 소리가 들렸다.
…헛웃음?
“문대문대, 혹시 진짜 국정원이야?”
“…??”
“아니, 너무 요원 같은 말이라~”
갑자기 다 쉰 떡밥을 왜 또 물고 있냐.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자, 큰세진이 킬킬 웃었다.
“너 기억상실증이라면서, 가끔 엄청 구체적으로 옛날이야기 하는 거 알아?”
“…!”
“근데 그게 묘~ 하게 연도가 안 맞는다?”
“…!!”
…그러고 보니, 지난 2년 반 동안 특별히 ‘박문대’의 과거를 묻는 놈들이 없어서 깜박했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래도 내가 가끔 방심해서 ‘류건우’ 베이스로 말하는 것 같은데.
식은땀이 흐른다.
‘X발.’
그러나 큰세진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자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으차~ 뭐, 각자 비밀이 있고 그런 거지.”
“…….”
“그래도… 내키면 말해. 세진이 입 되게 무겁다? 이런 친구 사귈 기회 드물어요~”
나는 반대편 침대에 누운 놈을 쳐다보았다.
저놈 성격에 상태창이니 재시작이니 하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진짜 나이를 속이고 있나 정도겠지.
‘그래도….’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
“말할 수 있게 되면 할게.”
상태 이상이 다 끝나고 나면, 언젠가 2박 3일쯤 술 마시며 진득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게 통할 수도 있고.
나는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때까진 좀 봐줘. 협조 부탁한다.”
“…….”
큰세진은 복잡미묘한 생각이라도 드는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느리게 대답했다.
“국정원 업무를?”
“야.”
“하하! 오케이~”
실실 웃으며 장난치는 꼴이었지만, 나름대로 분위기 안 어색하게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걸 알겠다.
“아, 문대문대, 벌써 12시야~ 내일 연습하려면 일찍 자야지!”
“오냐.”
나는 머리를 휘저으며 불을 끄기 위해 일어섰다.
“오~ 솔선수범해서 불 꺼주는 거야? 일일 룸메이트 멋지다~”
“잠이나 자자.”
“넹.”
동명이인 룸메이트의 방은 그대로 소등했다.
그리고 다른 말 없이 조용히 취침 시간을 보냈지만, 다음 날부터는 이놈과 어색하지 않은 느낌으로 돌아갈 것을 알았다.
부작용은 배세진이 상당히 쓸쓸한 얼굴로 거실에 복귀했다는 것뿐이었다.
…가끔 바꿔주는 걸 고려해 봐야겠다.
“의상 나왔습니다~”
“헉.”
“이, 이런 것도 괜찮을까…?”
“지금까지 경험을 고려했을 때 분명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어쨌든, 콘서트 준비는 문제없이 차근차근 잘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일 송출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박문대 호스트, 테스타 게스트의 토크 콘서트 가 송출되는 날.
대학원생은 오랜만에 랩실에 출근하지 않고 집의 데스크탑 앞에 앉았다.
‘척척박사는 있어도 척척석사는 없다’는 궤변에 시달리며 진로를 고민하던 그녀에게 오랜만에 온 엔도르핀 타임이었다.
“아… 너무 좋아.”
정말 오랜만에 마음 편히 문대를 만나는 것 같았다.
지난 지옥 같은 18일 끝에 회복한 박문대를 보면 너무 감정이 벅차서 생활이 좀 힘들 지경이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냥 기분이 들떴다.
‘토크 콘서트니까, 그렇게 무리하는 것도 아닐 것 같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 기대하면서 신나 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문대도 많이 기대하고 있겠지?’
대학원생은 히히 웃으면서 그녀의 홈마 친구와 설레는 톡을 몇 번 주고받은 뒤, 콘서트가 상영되는 플랫폼에 로그인했다.
‘실시간 댓글 달려면 가입해야 하니까!’
그녀에게는 약간 낯선… 덜 대중적인 플랫폼이었으나, 구성이 이용자 친화적이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가입에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거부감이 있더라도 이 콘서트엔 꼭 댓글을 남기고 싶었다.
‘못 보겠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싶어…!’
문대가 회복되어서 정말 다행이고, 건강하게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와, 나도 덕후 다 됐다!’
대학원생은 홈마 친구가 들으면 고개를 저을 소리를 하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콘서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화면에 무지개 선이 생기며 카운트다운이 들어갔다.
-3333
-테스타 사랑해ㅠㅠ
-ㅋㅋㅋ사람 개 많네
-기부 콘서트 좋아용~
-3!
-아아아아 청우본다ㅏㅏ
댓글이 순식간에 훅훅훅 지나가더니, 곧 화면이 다소 신나는 클래식 반주와 함께 켜졌다.
의자 7개가 올라간 공연장.
포스터와 똑같은 장면이었다.
즉, 테스타는 아직 없었다.
-오오
-테스타 어디감
-아직 등장 전?
‘이제 등장인가? 문대부터겠지? 문대가 호스트니까??’
대학원생이 신나서 무릎을 치며 화면을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
박문대였다.
-문대문대다
-목소리만 나와?
-어디서 등장할까
“헐, 먼저 나오는 거 맞나 봐!”
대학원생이 얼른 댓글에 ‘문대 최고!’를 달고 있을 때였다.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원만한 진행을 위해 여러분의 선택이 필요합니다.]공연장 뒤 전광판에 문구가 들어왔다.
[테스타는]1. 멋지다
2. 귀엽다
“…??”
대학원생은 눈이 콩알처럼 변해 화면을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실시간 댓글창 역시 물음표와 폭소로 가득 차는 도중.
여전히 평화로운 박문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키보드의 #버튼과 조합하여 번호를 실시간 댓글로 올려주시면, 전광판에 선택하신 숫자가 카운트됩니다.] [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그 이야기를 들으며 몇 사람은 댓글창에 해당 조합을 얼른 쳐보았다.
-#1
-#2
그것이 댓글로 올라가는 순간.
실제 화면 속 전광판 문구 옆에도 숫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1. 멋지다 ? ?(25)
2. 귀엽다 ? ?(31)
확실한 반영이었다.
-헐!
-야 이걸 콘서트에 쓰다닠ㅋㅋㅋ
그렇게, 21세기형 비대면 토크 콘서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