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9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6화
소속사 콘서트의 공지와 예매 일정이 발표된 날에도 마침 합동 공연 연습 일정이 잡혀 있었다.
덕분에 연습 후반에 반응을 좀 봤지.
대충 정리하자면… 예상대로다.
-헐 개존잼일 듯 본방 언제라고?
-티원 진짜 아주사 출신들 엄청 밀어주네 티비 편성 무슨일;;
-설마 지들이 잘나서 애들이 잘나간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제발
-아주사 데뷔조 띄우기 진짴ㅋㅋㅋ그만 좀 해라 우리 애들 탈주사 한지가 언젠데 아 짜증
-콘서트 TV 중계의 기쁨 vs 끼팔 당하는 빡침
기대, 염려, 짜증, 흥미가 섞인 소용돌이.
어쩔 수 없다. 소속사 콘서트 TV 중계라는 건 독특한 사례인 데다가, 불안 요인과 기대 요인을 모두 가졌으니까.
게다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세팀이니 대중성도 좋다.
Tnet 채널 편성으로 접근성이 좋은 만큼 관심 있는 사람은 채널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상태.
여기에 이 소속사의 세 팀을 다 좋아하는 사람은 또 드물다.
‘그러니까 확실한 건 하나뿐이지.’
이 출신 세 팀 중 가장 처지는 팀은 전방위 조롱으로 박살 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팬들이 소속사에 자부심이나 애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서로서로 절대 커버 안 쳐준다.
‘그러면 결국 반감 생기고 피곤해지지.’
굳이 거기에 기름을 더 부을 필요는 없으니, 이번 미리내와의 합동 무대도 마찬가지였다.
혼성이라는 것 외에 하나 더 고려할 요소가 생긴 것이다.
‘직접적으로 비교하도록 구성하는 무대는 피해야 했어.’
그리고 이미 무대는 그렇게 형식이 잡혀 있었다.
…이렇게까지 빡세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여기여기! 저희 이거 착지할 때 이 스텝 딱 넣으면 너무 멋질 것 같죠?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첫 번째 후렴 끝 프리즈를 더 살리면 어떨까 생각해 봤는데요…!
-아~ 여기 한번 다 같이 볼까요? 지금도 진짜 우리 너무 잘하는데, 브릿지 들어갈 때 키가 딱 일자로 맞으면 열 배는 멋져 보이지 않아요? 깔끔하고~
저쪽도 무대 욕심이 많다 보니, 안 지려고 서로 달려드는 구도에선 다 같이 난이도가 올라간다.
결국 체력 소모량이 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더라고.
‘이번에야말로 춤을 올려?’
나는 남은 포인트를 보며 갈등했지만, 내게 더는 시스템을 이용한 레벨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식해서 더 찍진 않았다.
자연증가의 순간이 분명 온다. 지금 내 스텟만으로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한다.
“흡, 한 번 더 할까요?”
“…옙!”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적당히 시늉만 하겠거니 기대하는 특별무대 하나 만들겠다고 무슨 기합이라도 받는 것처럼 구르고 있다… 는 게 결론이다.
나는 팀원의 꼴을 확인한 후 인정했다.
‘이 정도면 연습 비하인드를 공개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남녀고 나발이고 이 판국에 댄서까지 워낙 많아서 그냥 극기 훈련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땀범벅인 관자놀이를 닦아냈다.
‘그래도 그림은 잘 나오겠어.’
“오~ 여기 이제 잘 맞네요.”
“헐, 진짜 뿌듯해요!”
무대 보고 괜히 소속사가 헛바람 드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군.
“오늘 완성하고 갈까요.”
“넵!”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군말 없이 연습이나 재개했다.
그리고 남은 여유 기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 * *
관객의 환호와 음악 소리가 쿵쿵 울리는 백스테이지.
‘잘해야 해.’
미리내의 비공식적 리더, 2위로 데뷔한 박민하는 침을 삼켰다.
공연은 즐겁다. 하지만 ‘못하면 끝장’인 공연은 시작 직전까지가 문제였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 만큼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뇌를 덮치기 때문이다.
‘우황청심환… 없었으면 정말 어쩔 뻔했어.’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지?
그녀는 문득, 자신의 옆을 돌아보았다.
거기 있는 것은 스탭에게 얼굴을 맡기고 있는 박문대였다.
훤칠한 키의 하얀 얼굴에서 무심히 땀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리를 가리켰다.
“여기. 마이크 고정 떨어져서요.”
“네네!”
‘와….’
박민하는 잠시 감탄하려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다.
확실히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설레기엔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게 너무 많았다.
지금도 머리에서 서라운드로 재생 중이다.
-혹시 최근에 회사에서 미국 이야기 들어보신 적 없나요.
-당한 쪽은 순위가 높지 않았죠. 친구가 많은 타입도 아니었겠고.
회사든 테스타 관련이든 사건 터져서 이야기할 때마다 무슨 귀신하고 대화하는 것 같았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던 거야….’
어떤 그림까지 보면서 행동하는 건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전략적 인간상.
‘대체 사람이 어떻게 크면 저렇게 살 수 있는 걸까.’
재상장 시즌을 보며 박문대가 귀엽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돌이키면, 박민하는 머리를 벽에 팍팍 박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거의 나야, 그거 아니다!
그때, 듣기 좋은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저희 올라갑시다~”
“…! 예!”
이세진의 말에 박민하는 즉시 현실로 돌아왔다.
‘무대!’
한편, 미소 짓고 있던 이세진은 손짓을 한번 하고 박문대와 대화를 나누며 뛰기 시작했다.
“…….”
솔직히 저 선배님도 무서웠다. 박민하는 지난 연습을 회상했다.
‘정신 차려보면 저 선배님 말대로 하고 있었지….’
지금 와서 복기해 보면, 다 같이 상의해서 정한 것 같은 요소들도 사실은 휘말려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원래 오디션 출신은 다 그런 걸까? 그렇다면 우리 그룹은 왜 이렇게 다들 순박한 걸까….
“휴.”
“민하야, 가자!!”
“네넵.”
박민하는 자신의 등을 밀면서 신나게 이동하는 정율기의 템포에 맞춰 터덜터덜 뛰었다.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무대 바로 뒤.
와아아아!
“…….”
드라이아이스 냄새, 무대 골격의 금속 냄새, 의상과 렌즈의 느낌.
무대의 공기는 사람을 각성하도록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박민하도 생각했다.
‘그래도 무대는 자신 있어.’
잘할 수 있었다.
‘안 밀릴 거야.’
고개를 돌리니, 뻔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거기서 카운트다운은 끝났다.
“1!”
그렇게 네 사람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우선 회장을 가득 채운 것은, 피아노 소리에서 따온 전자음의 광활한 베이스.
그 반주 멜로디는 관중도 익히 아는 곡이었다.
‘Attack이구나.’
혼성밴드가 부른, 지난 하반기 극장가를 강타한 액션 영화 시리즈의 강렬한 OST였다.
-Woa-Woah Woa-Woah….
그리고 KPOP 아이돌이 혹시라도 혼성으로 특별무대를 하는 날이면, 유명한 팝송을 커버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이돌 곡으로 혼성 무대를 할 때보다 거부감이 덜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언어와 감성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 덕분에 ‘퍼포먼스’라는 느낌이 더 강화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있을 법한 선택’이라는 생각에 평이한 반응을 보냈다.
가수가 등장하기 직전까지는.
휘익.
제일 먼저 무대에 오른 건 한 무리의 댄서다.
전신을 감싸는 기묘한 무채색의 옷을 입은 댄서들은, 반복 동작을 기초로 하는 군무를 선보인다.
‘오.’
처음에는 웅장하다. 하지만 간주 내내 짧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은 점점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심지어 조명까지 단조로웠다.
-멋진 건가..?
-??
-뭘 하려는 거임ㅋㅋ
전주의 단 15초 만에 사람들이 그 모든 게 익숙해진 순간.
찌이이이익-
갑자기 찢어지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검은 무리가 멈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로, 눈에 확 띄는 네 명의 발걸음이 훈련된 것처럼 빠르고 거침없이 일렬로 튀어나왔다.
핀포인트 조명이 따라온다.
입은 의상은 은빛의 헐렁한 라이더 재킷을 살짝 걸친, 맵시 좋은 점프 수트.
그 뒤로 검은 군중은 그들을 빤히 응시하는 가운데.
툭.
무대 맨 앞. 어깨에 메고 있던 검은 무언가를 옆으로 던진 넷은 단단한 자세와 함께 턱을 들고 선다.
[Ooh]그리고, 공간감 큰 곡이 몰아치듯 돌아온다.
이번에는 모든 색과 반주까지 한꺼번에.
[Sometimes it doesn’t matter]색색의 조명과 전자음이 화려하게 튀어 오르는 가운데, 박문대의 발성 좋은 보컬이 확 곡 위로 들어온다.
딱딱 끊어지는 크고 강렬한 안무 동작 뒤로는 그림자처럼 검은 댄서들이 붙는다.
그들은 대형을 갖추고 신체 밸런스에 따라 남녀를 섞어놓긴 했지만, 페어 안무는 없었다.
대신 목소리 톤과 안무의 선만을 고려해 분배해 놓은 파트들은 쉴 틈 없이 몰아쳤다.
[Wherever I goThis feeling survives
The mood is all right]
복잡하고 리치가 길어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안무를 빠르게 소화한 이세진의 뒤로, 고음이 다시 터진다.
[Then I’m gonna jump into the fire]원곡보다 다섯 배는 화려한 전자음과 비트, 그리고 마찬가지로 화려하지만 거친 군무가 펼쳐지고.
백색소음이 반주를 잡아먹으며 훅 노래가 잡히는 순간.
[Like a bomb]드랍과 함께 레이저가 터진다.
[Yeah-ahahahah]정율기가 전면으로 튀어나오며 바닥을 쓸고, 검은 물체를 집어 든다.
아까 그들이 등장하며 던져둔 것이다.
특별한 구체성이 없는 모호한 막대.
그러나 다시 앞으로 튀어나온 이세진이 그 아무것도 없는 막대로 총처럼 발포 자세를 취하자, 거기서부터 레이저가 폭죽처럼 튀어나온다.
-??
-뭐ㅜ머임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도록 타이밍과 각도를 맞춘 것이다.
이어서 검 같기도 하고, 바주카포나 총 같기도 한 각각의 동작이 쏟아지며 안무가 연결된다.
그리고 색색의 레이저가 마치 무기의 반동처럼 터진다.
-와
안무가 절묘히 각도를 맞추며 레이저와 LED를 안무 동작에 대한 리액션처럼 꾸민다.
검은 댄서들은 색색의 레이저에 쓰러지고, 그 자리에서 온갖 SF적 효과가 넘나들었다.
게다가 카메라 워크를 빨아들이듯 절묘하게 맞춰둔 덕에 TV로 보는 사람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센터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동작마다 바뀌며 돌아가는 그것은, 잘 만든 액션 영화의 원테이크 샷 같기도 했다.
체격의 차이로 서로 가장 효과적인 동작을 찾아, 바뀌는 센터마다 맛을 더 살렸다.
[Like a bombLight up tonight.]
그렇게 미친 듯이 달리는 1분 55초간의 구성이 끝나는 순간.
“허억.”
박민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미리내가 이기진 못했지만, 이 무대는 성공했다는 것을.
[Yeah-ahahahah]다 쓰러진 검은 무리의 한가운데, 다시 어깨에 물건을 걸친 네 사람이 마지막 음을 각자 다른 톤으로 부르며 곡은 끝났다.
* * *
‘미쳤다.’
박민하는 비틀비틀 백스테이지로 내려오며 멍하니 생각했다.
이렇게 토할 만큼 다 쏟아내는 무대는 어쩐지 기꺼웠다. 심지어 무대 위에서 느끼기에도 퀄리티가 좋으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게다가 소품을 쓰니까, 체구가 너무 달라서 안무 통일성이 없던 게 확 살아났어….’
박문대의 아이디어는 훌륭했다.
그녀는 치밀어오르는 덕담 욕구를 참지 못하고 고개를 휙 돌렸다.
정율기와 이세진은 메이크업 문제로 스탭과 뛰어가 버렸다.
그럼 박문대 선배라라도…!
“음.”
그러나 박문대는 물을 마시며 가라앉은 눈으로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가, 감흥이 없으신가?’
이 정도 무대는 일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걸까?
박민하는 다소 충격을 받았으나,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 다음 무대 보시는구나.’
그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 직후의 무대는 데뷔조가 커버한 테스타의 곡이다.
그리고 지금 나오고 있는 그 무대는….
[Go on picnic~]‘괜찮은데?’
생각보다 잘했다.
박민하는 리허설할 때도 생각했지만, 편곡 선택이 큰 역할을 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존경하는 테스타 선배님의! 피크닉으로 무대 준비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테스타의 온갖 컨셉추얼한 인상적인 타이틀을 두고 ‘피크닉’을 골랐으니까.
이번 ‘약속’을 제외하면 테스타의 곡 중 가장 대중적인 저 곡을 통해 떼창을 유도한 것은 현명한 선택처럼 보였다.
역량이 직접 비교되지 않으니까.
당사자의 생각이 궁금했기에, 그녀는 무심코 옆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할….’
“…!”
“흠.”
박문대는 어느새 희미한 미소와 함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특함이 담겼거나 견제 대상을 보는 눈은 아니었다.
대신 그 얼굴에서는 어딘가 승리감 어린 번뜩임이 지나간 것 같았다.
혹은 확신이.
‘어…?’
하지만 길게 생각해 볼 시간은 없었다.
“이동하실게요!”
“…! 네넵! 가보겠습니다!”
박민하는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로, 인사를 한 후 다음 무대 준비를 위해 뛰어갔다.
‘뭐였을까…. 아, 아니야! 신경 쓰지 말자.’
그녀는 박문대에게 필요 이상의 뭔가를 캐내려고 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몇십 분 뒤.
이번 데뷔조와 박문대는 복도에서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