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1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15화
눈 떠보니 또 몇 개월이 지난 상황인데 뜬금없이 내 옛날 공연을 보러 가게 생겼다.
그리고 이 상황의 원인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미간을 누르며 정리했다.
“그러니까… 공부하다가 시간 나면 궁금해서 내 활동을 찾아봤는데, 어느 순간 재미를 붙였단 말이지.”
[네!]굉장히 해맑게도 대답하는군.
[마법소년에… 아, 그 야구복 입은 무대도 진짜 멋졌어요! 그리고 그 단독으로 나오신 예능도 정말 재밌었는데… 공부하느라 본방은 못 봤지만요….]그 정도면 유명한 활동 소식은 다 챙겼다는 것 같은데, 용케도 과락을 면해서 돌연사를 피했구나 싶다.
…아니지, 인생의 낙이 이것뿐이었을 가능성도 있겠군.
‘아이돌 구경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나.’
그러면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
공명이 말을 흐리는 것처럼 희미해졌다.
‘나 원 참.’
나는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어디서 하는데.”
[…!]그래. 이해했다.
사람이 온종일 처박혀서 공부만 하다가는 돌아버리지. 장기적 안목에선 하루 정도는 쉴 필요가 있긴 했다.
공명이 미친 듯이 신나게 울린다.
[여기서 안 멀어요! 경기도 축제였는데….]“기다려 봐.”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사람이 수천 명은 될 텐데 설마 별일 있겠나. 내 무대 내가 직접 응원하는 숙연한 모니터링의 현장만 견디면 그만이다.
[형, 정말 감사합니다!]칫솔에 치약 짜면서 감사를 세 번쯤 들은 것 같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뭐가. 넌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네?]나는 피식 웃었다.
“내일부터 기숙학원 들어갈 텐데.”
[…으으흡!]수험생의 올해 마지막 여가생활을 방해할 생각은 없다.
* * *
한 시간 뒤.
나는 미친놈이 혼자 떠드는 것으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무선 이어폰을 편의점에서 구매했다. 이 정도면 구색은 맞추는 거겠지.
물론, 이동하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일단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말해 볼까.”
[네!]먼저 이놈에게 새로 뜬 상태이상을 확인했다.
[!상태이상 : 합격이 아니면 죽음을! (2)]‘7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의 1차 필기시험에서 합격하지 못할 시, 사망
그래. 그럴 줄 알았지.
기한은 똑같이 1년이다. 흠.
‘다음부터는 클리어 확인을 늦게 하라는 말도 해줘야겠어.’
까딱 밀리면 2차나 3차 시험 전에 기간이 만료되는 미친 상황이 올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시험이 1년 단위라 별 차이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기간으로 이득을 볼 수 있고.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나는 내 상태이상 클리어 확인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졌는지도 떠올렸다.
‘진실 확인.’
이놈에게도 ‘진실 확인 ☜ Click!’ 같은 쓰레기가 떴을지는 모르겠으니 확인해야겠다.
“날짜를 보니까 성적 확인하자마자 바로 상태이상이 바뀐 것 같진 않은데.”
[어… 네! 안 그래도 좀 이상한 게 떴었는데요….]공명이 어쩐지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놈이 설명하자마자 이유를 알았다.
1차 성적을 확인하자마자 뜬 성공 팝업 제일 밑에 뜬 선택지.
[동기화 수락 ☜ Click!]이걸 클릭하는 게 어쩐지 섬뜩해서 몇 주나 주저하다가 9월에 수령했다는 것이다.
[좀 기다렸다가 혹시 형 오시면 여쭤보고 하려고 했거든요….]하지만 나는 깜깜무소식이었고, 결국 저놈은 어제 저 버튼을 클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누적 완료.]이런 창이 떴다고 한다.
‘…더럽게 찝찝했겠군.’
[저, 형. 혹시 제가 뭘 잘못해서 벌칙 같은 게 누적되고 있는 걸까요…?]“아니, 그건 아닐 거야.”
대충 느낌을 봐서는… 내가 건 보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박문대’가 존재했던 걸로 정착 중인 것 같은데, 확신은 못 하겠다.
‘대체 어떤 매커니즘으로 뜨는 거지.’
분석해 봐야 할 게 늘었다. 나는 우선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왜냐하면,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눈앞에 보이는 체육 경기장을 확인했다.
“여기네.”
[와!]기억난다.
‘무슨 기업에서 하는 축제였던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곤 드물게 대관하지 않고 표를 팔았었지. 그걸 이놈이 용케 잡은 모양이다.
‘라인업은… 우리가 가장 좋은 수준이었고.’
나는 세부 사항을 되새기며, 안으로 입장했다.
회장 안 공기는 텁텁했다. 이상기온이 밥 먹듯 발생하는 현대사회답게 9월 말인데도 더웠으니 뻔한 결과였다.
‘괜히 민소매 입고 자던 게 아니겠지.’
나는 외곽의 통로석에 앉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뭐, 데이터 팔이 시절이라도 떠오른 건가.
[저, 형. 혹시 이 공연도 기억하세요?]“그래.”
[그럼…! 혹시 형 언제 나오세요?]나는 의식적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누르며 대답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전.”
[와…….]대체 방금 대화에서 감탄할 요소가 뭐가 있었나 싶다. 엔딩 서겠다는 기 싸움 속에서 그냥 빨리 퇴근하는 실속을 챙긴 실용성?
‘시간 되면 활동기 일화라도 풀어줘야 하나.’
큐레이터라도 된 기분이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막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
이어진 무대들은 별 감흥 없었다. 활동 겹친 사람들이라 워낙 자주 봤어서 말이지.
다만 다시 이 아래에서 보고 있으니, 데이터팔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시감은 또 들긴 한다.
[형, 혹시 재미없으세요…?]“아니, 괜찮은데. 익숙해서 그래 보이는 거겠지.”
이렇게 시끄러운데 중얼거려봤자 주변에 안 들린다는 걸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공명은 이게 본인 몸이기도 해서 그런지 잘 이해했다.
[아이돌로 활동하셨으니까, 당연히 그렇겠네요!]“그것도 그렇고, 대학 때 이런 거 찍으러 다녀서.”
[…!]음, 괜히 말했다.
그러나 공명은 ‘기자 인턴 하셨었어요?’ 같은 소리 대신 열렬히 수긍했다.
[그렇죠! 그, 형이 그 영린 직캠도 찍으셨었고요…!]“…??”
뭘 이렇게 잘 아냐.
“내가 너한테 그런 것까지 말했었냐?”
[그… 네.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요!]그래. 뭐 특별히 비밀도 아니었으니 술 마시다 이런 식으로 흘렸을 수도 있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야를 공유하는 놈이 신나있으니,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남은 무대를 전부 관람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마침내 기다리던 놈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와아아악!!!
직전과 비교했을 때 세 배쯤 되는 비명이 난무한다.
그리고 올라와서 대형을 갖추는 인영들.
테스타.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남색 무대의상을 입고 마이크를 든… 나.
-낮처럼 파란 꿈을 꿔
“…….”
[와…!]이상한 느낌이었다.
분명 무대 모니터링은 수도 없이 많이 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다듬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완전히 관객의 입장에서 실물 공연을 보는 것은… 거의 충격적이었다.
라이터만 한 크기인데도 말이다.
‘내가 저런 표정을 하고 있었나.’
전광판의 얼굴과 뛰어다니는 성냥개비 크기의 인영들이 시야에서 교차한다.
-Cast a spell
그제야, 나는 한때 데이터로 남겼던 그 광경들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실제로 이해했다.
무대 위의 박문대, 나는 제법… 괜찮은 아이돌로 보였다.
“…….”
나는 테스타의 무대가 끝날 때까지 환성을 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박문대’가 관심 없다던 래퍼가 나올 때야 살짝 일어나서 자리를 떴다.
[형?]“화장실 좀.”
찬물이라도 좀 끼얹고 싶었다. 내가 이 상황을 이렇게까지 인상 깊게 여긴다는 게 믿기지가 않으니까.
……그리웠다.
‘맙소사.’
나는 발을 옮겨서 자연스럽게 복도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방금… 굉장히 자연스럽게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으로 들어왔는데.
“…….”
아마 누가 봐도 출연자 팬층으론 안 보이는 놈이라 스탭인 줄 알았나 보다. 행사 보안 한번 형편없군.
‘뭐, 카메라 소지한 것도 아니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세면대에서 물을 틀었다.
그리고 동시에 들었다.
쾅!
누군가 문짝이 박살 나도록 세차게 열고 화장실 칸에서 나오는 것을.
“…?”
뭐냐.
마침 정면의 거울로 당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아는 놈이었다.
“…!”
[어어어어! 이분!]배세진이다.
그 순간,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칸에 박혀서 울었네.’
아직 데뷔 초니 뻔하다. 그러고 보니 백일몽 때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던가.
“…….”
덜 까칠하게 굴려고 노력 중이었으나 가정사 문제로 여전히 성격 더럽던 시절의 배세진 말이다.
나는 세면대로 다가오지 않고 멈춰선 배세진을 보았다. 경계심으로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음.’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좀… 반갑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상한 놈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수습부터 해야겠군.
나는 손을 씻으며 짧게 말했다.
“이세진 씨 맞으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팬이라 놀라서요.”
“…!”
“아까 무대 잘 봤습니다. 언제나 표정이 정말 좋으신 것 같아요.”
배세진, 아니, 아직 성을 바꾸지 않은 이세진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아, 이때 욕도 어지간히 먹을 때였나.’
추가 합격자에 무대 능력치가 부족해서 인터넷 여론에게 얻어터지고 있을 타이밍이니, 오히려 더 경계를 살 수도 있겠군.
그러나 배세진은 그러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대신 좀 창피했는지, 민망한 기색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응원할게요.”
“…예.”
배세진은 그제야 세면대로 와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넘겼고.’
나는 물기를 털고 문으로 걸어가려 했으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인이라도 드릴, 큼, 필요하시면요.”
“아.”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놈 은근히 팬서비스가 좋단 말이지. 나는 몇 번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하다가, 고개를 꾸벅거렸다.
“펜이 없어서요. 다음에 꼭 부탁드립니다.”
“…네.”
나는 그렇게 과거의 배세진과 짧은 대화를 끝내고,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고 조심스럽게 스탭 구역을 빠져나왔다.
신선한 경험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와… 혹시 형을 알아본 게 아닐까요?]“그건 아닐걸.”
이땐 잡담도 거의 안 하던 사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데뷔한 해 9월이라면….’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이 아버지 사기도박을 경찰에 찌르고 개명해버리는 게 곧이었다. 10월 초였던가.
‘흠.’
그때… 분명 도박만 걸린 게 아니라 마약까지 걸려서 형량이 왕창 늘어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뒷발로 얼결에 마약쟁이 정체까지 알았지.’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혹시?
“잠깐 어디 좀 들렀다 가도 될까.”
[네? 네!]나는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기를 찾았다.
[…?]그리고 경기도북부경찰서 민원실로 전화를 걸었다.
[형??]아, 받았다.
“XX시 소재의 XX 건물 지하 불법 도박장에 마약 적재 중입니다.”
그리고 끊었다.
[어… 어어…….]지금은 장난 전화라고 생각하겠지만, 배세진이 익명 신고를 하면 한 번은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날짜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데, 똑같은 위치로 느낌이 전혀 다른 제보가 둘 들어온 거니 말이다.
‘마약 있나 한번 뒤져보는 효과는 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화부스에서 나왔다.
“장난 전화 아니니까 걱정 말고. 경찰 안 찾아와.”
[그, 그럼요…?]나는 몇 가지 데뷔 초 일화를 이야기하며, 천천히 오피스텔로 귀가했다.
그리고 저녁 먹고 씻고 나니, 벌써 하루가 끝날 즈음이 됐다.
‘외출이 확실히 시간을 잡아먹어.’
나는 우선 상태이상과 관련된 당부부터 한 뒤, 빠르게 내년 1차 기출도 한 번 찍어줬다. 몇 달 공부 좀 했다고 빨리 받아먹긴 하더라.
그러고 나니 딱 오늘이 30분 남더라고.
덕분에 좀 우울해하는 것 같은 ‘박문대’의 공명과 잡담을 하는 중이다.
[형, 혹시… 이 상태이상을 없앨 때마다 형이 돌아오시는 걸까요?]“그럴 수도 있지.”
사례가 하나뿐이긴 했다만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공명이 우울하게 웅웅 거린다.
[그럼… 다음에는 1년 후에나 뵐 수도 있겠네요.]나는 피식 웃었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네가 1차만 붙으면 또 얼굴 보게 생겼다는 거지.”
[그… 렇네요??]“어. 열심히 해라.”
[…네!!]열심히 안 하면 돌연사인 마당에 새삼스럽긴 하다만, 그래도 길잡이가 연간 회원권처럼 찾아오면 좀 낫지 않겠는가.
나는 혹시라도 돈이 급해질 경우를 대비해, 주식을 파는 법을 마지막으로 알려준 뒤에 잠이 들었다.
자정이었다.
* * *
그리고 다시 아침.
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알람 소리 때문이었다.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자, 과연 ‘박문대’의 가설은….
[형! 형 맞죠?]목소리 들어보니 맞는 것 같군.
“그래.”
나는 흥분한 것 같은 공명 울림에 피식 웃었다.
“시험 잘 봤냐.”
[네! 네!! 저 붙었어요…! 1차!]그래, 훌륭하다.
아무리 기숙학원을 등록했다고 하더라도… 잠깐, 근데 여기 여전히 그 오피스텔이잖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살폈다. 탁자에 뭔가 올라가 있었다.
“너 기숙학원 등록 안 했나?”
[했어요! 아, 지금 주말인 데다가 어제 할 일이 있어서 잠깐 오피스텔에 왔어서요… 그리고 형 오면 이쪽이 안 낯서실 것 같아서.]“그래.”
제법 기특한 발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로 향했다. 탁자 위에 있는 것은 웬 광고 브로마이드….
잠깐.
[행복하세요^^ VTIC 청려]“……”
이 새끼… 사인이 왜 여기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