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6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67화
며칠 후 휴일.
“그러고 보니 후배님 그룹은 전용기가 없었죠? 음, 아직 수지타산이 안 맞나 보네요.”
사람 빡치게 말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놈의 말이었지만 오늘은 썩 긁히지도 않는다.
“국내 수요가 충분하니까 동선상 굳이 전용기가 필요 없지.”
“그래요?”
“우왁! 대박! 시트가!”
“…….”
옆에서 온갖 호들갑 떠는 놈이 붙어있어서 말이다.
골드 2, 권희승은 입을 떡 벌리고 청려의 전용기 내부를 보고 있다.
“와… 서, 선배님 저 이거 찍어도 괜찮을까요?”
“유출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
나는 권희승이 조용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리는 것을 보며, 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찍게요?”
“아니.”
그럴 리가 있냐. 이건 연락용이다.
나는 다시 한번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류청우 형 : 다들 잘 다녀와] [선아현 : 모두 몸조심하시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배세진 형 : 뭉게는 잘 있어 (사진)] [김래빈 : 강아지가 잘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아직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도착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차유진 : (손 흔드는 이모티콘)] [이세진 : 넵 다들 휴가 화이팅ㅋㅋ]내가 놀러 간 줄 아는 놈이 반, 일하러 간 줄 아는 놈이 반.
그 순간, 단체 메시지 방이 갱신된다.
나는 피식 웃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 : 나왔다. 다들 모레 봐요.]그리고 며칠 전, 사정을 아는 놈들에게 ‘처리 좀 하러 간다’로 이 상황을 설명했을 때 저놈의 반응을 떠올렸다.
-그래? 같이 가면 되겠네.
그럴 줄 알았다.
-그건 어려운데.
-뭐?
-네가 방해되거나 휘말릴까 봐 그러는 건 아니야. 구조의 문제다.
-뭐?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안 되거든.
그렇다.
내가 세운 가설은 간단하고 타당하다.
우선 전제.
-시스템은 상태이상이 끝나는 순간 다음 숙주를 찾아서 이동한다.
가장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의 적합한 사람을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는가.
‘숙주가 없는 상태를 못 버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오랫동안 숙주를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가령… 사방 수백 킬로미터 내에 적합한 사람이 없는 곳에서 권희승이 상태이상을 클리어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론대로라면 못 버티고 사라진다.’
그게 내 노림수였다.
그리고 이미 시스템의 이동에 대해서 나와 추리한 적이 있던 청려는 상황 설명을 듣자마자 전용기를 내놓게 됐다는 것이다.
‘이 새끼가 그때 재밌어했으니 순순히 내줄 줄 알았다.’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청려는 전용기 안을 둘러본 후, 자연스럽게 시트에 앉….
잠깐.
“너 왜 안 내리냐?”
“음?”
청려가 고개를 옆으로 숙인다.
“왜 내가 내릴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요. 내 비행기 아닌가?”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어쩐지 돈을 안 받겠다더니.’
나는 미간을 누르며 읊조렸다.
“이번엔 변수를 최대한 줄이자니까.”
“하하, 후배님은 타면서?”
“…!”
“후배님과 내가 다를 게 있나. 상황은 우리 둘 다 똑같잖아요. 나만 적용이 다른 건 이상한데.”
눈치 빠른 새끼.
그래, 사실 내 케이스에 대해서는 이미 확답을 들어놨다.
큰달을 통해서.
-같은 사람에게 다시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왜?
-그건 이미 썼으니까.
단어 선택이 좀 꺼림칙했다만, 어쨌든 이전에 과거로 돌아왔던 시스템 사용자들에게 다시 들어올 수는 없단 뜻이다.
모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시스템과 동화되는 중인 놈이 한 말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다음 숙주에서 예외 사항이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큰달은 데려오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스템이 류건우의 몸에 들어갔던 적은 없으니까.
‘정신만 빼낸 거지.’
그러니까 큰달은 나와 시야를 공유하며 원격으로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예외 사항인 청려는 왜 빼려고 했는가.
뻔하지 않나. 당장 저 새끼 성격을 좀 봐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다.’
변수를 안 만들기 위해 제외할 생각이었는데.
‘…잘 감시해야겠군.’
나는 결국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마음대로 해라.”
“역시 후배님은 논리적이라 좋네요.”
정정하겠다. 이 새끼 오늘도 사람 잘 긁는다.
나는 거칠게 등받이에 기댔다.
“형님들! 저희 목적지가 어디였죠?”
“태평양.”
“대박.”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바다 위가 계획 실행장소였다.
비행기는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점심을 넘어 오후가 되어서야 해당 위치에 도착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 있는 기분은?”
“한두 번도 아니고 새삼.”
“하하.”
일 때문에 미국 갈 때마다 보는 건데 그런 걸로 감흥 느낄 리가 있나.
그럴 시간에 계산을 한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미대륙에 너무 가까워진다.’
30분 내로 수행해야 적당하다.
그리고 나는 조종실을 바라보았다. LA 공항을 목적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기장과 부기장이 있을 위치였다.
그리고 파일럿을 고용한 당사자와 했던 문답을 떠올렸다.
시스템이 혹시라도 저쪽에 들어갈 가능성에 대해서.
-저 사람들이 적합할 가능성은?
-그것까지는 도박이죠. 성향을 봐선 확률은 지극히 낮겠지만.
청려는 웃으며 제안했었다.
-아니면 헬리콥터를 써서 무인도나 무인 사막에 두는 방법도 있는데요. 음, 당사자는 좀 힘들겠네요.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게 낫지 않나?
-됐다.
사람이 없는 땅덩어리는 다 이유가 있다. 못 사니까 없는 거지.
일말의 가능성도 주지 않기 위해 권희승에게 목숨 걸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자제하자.’
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최선의 수를 뽑기로 했고, 이게 그 결과다.
권희승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약간 긴장한 표정이 됐다.
“그럼 지금, 후, 클릭해 볼까요?”
“그래. 잠시만.”
나는 내 상태창을 호출했다. 당연한 듯이 튀어나오는 팝업.
[형, 설마…?]그래, 다 됐다.
‘귄희승한테 상태이상 클리어창 좀 다시 띄워라.’
팝업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미묘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그래도 권희승의 앞에 홀로그램은 떴다.
“어흑, 휴! 매번 놀라네!”
저 자식 이상한 감탄사를 쓰는군.
청려가 약간 흥미가 식은 눈으로 중얼거린다.
“특별한 점은 없는데.”
“당사자한테만 보일 테니까.”
“흠.”
청려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럼 이 상태로?”
“그래.”
나는 입을 다물고 마찬가지로 자세를 고쳤다.
그때였다.
[형.]큰달의 팝업이 다시 뜬다.
‘심각한 문제 없으면 이대로 한다. 지금 말할 거면….’
[아니, 그게 아니라요!]아니냐?
팝업이 민망한 것처럼 글씨를 쪼그라뜨린다.
[사실… 조금 희망도 생기고요.]“…….”
그래. 이놈도 사실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었겠지.
그냥 어쩔 수 없고, 부담 주기 싫으니 미련 없는 척했다는 건 안다.
팝업이 다시 떨리더니, 조심스럽게 한 글자씩 글을 뱉는다.
[형, 정말 감사해요…. 절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셔서.]‘됐다.’
사실 이놈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애초에 이런 시한폭탄을 그냥 두기 찝찝해서 기회만 생기면 없애려고 했으니까.
도리어 이놈은 날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다.
‘진행한다.’
[…네!]“그럼… 누를게요!”
권희승은 긴장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누른다.
[!상태이상 : ‘메이크 잇 워크’ 제거!: *^@5#& 확인 ☜ Click!]
Click.
그리고 상태창은…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없었던 것처럼.
“아.”
기내에서는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놀랍도록.
“…….”
“이거… 끝인가요?”
권희승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내 케이스다.
‘축하창이 떴었는데.’
하지만 그건 큰달이 띄웠으니, 시스템과는 관련이 없….
“어어어?”
“…!!”
권희승의 앞에 다시 홀로그램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몰골은 전과 다르다.
[??? ?? ] [? ??? ????? ? ???] [: ?? ?? ? ?????]물음표로 가득한… 괴상한 상태.
‘X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청려.
“음… 이건 보이네.”
“…!”
뭐?
“혀, 형님.”
청려를 돌아볼 시간은 없다. 나는 권희승 눈앞에 뜬 상태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권희승의 얼굴은 당황으로 얼룩져있다.
‘…큰달!’
내 호출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 대신, 상태창이….
떨리기 시작한다.
우드드드드드득.
권희승이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연다.
[형, 이거 이상….]소리가 파편화된다.
진동처럼.
피이이이이이잉—!
이명.
들릴 리 없는,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시야가 새하얗게 변한다.
‘이건….’
다음 순간.
사방에 온갖 홀로그램이 난무한다.
[상태이!$#6] [돌&23!$@12] [■■■■■■■음을■] [상상상상태상태상상상태이#%2]뭔가가 우악스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은…….
‘X발 꺼져!’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에서 뜨거운 핏물이 흘러나왔으나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다.
선이 일그러지고, 하얗게 점멸한다.
깜박.
깜박.
‘…아.’
그리고 해발 일만 미터 상공.
아니, 작은 실내 안.
모든 것이 찢어진다.
찌이이이이이이이익–
비명이나 고통은 없다.
그냥 현실이, 산산이, 조각나…….
비상한다.
화아아아악!
화이트 아웃.
* * *
-…삐빅!
뭐지.
무거운 정신 너머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알람인가?
나는 둔탁하게 생각했으나, 왠지 그럴 리가 없다는 감상이 따라왔다.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그래서 감상은 오래 남았고,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더 오래, 더 깊이.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 단어만 떠오르지 않았다면.
-백일몽?
‘X발.’
“-허억!”
나는 눈을 떴다.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큼직한 천장에 여럿 걸린 백열등이 빛을 낸다.
검은 벽, 그리고 그 옆에서 빛을 반사하는, 한 면을 다 차지하는 거대한… 전신 거울.
안무 연습실.
“……!”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트레이닝 복 차림이다.
손을 뻗어서 어깨와 목을 만진다. 땀의 흔적이 느껴진다.
-삐비비비빅!
아직도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을 반사적으로 끈다.
그리고 생각한다. 차이점.
“후욱.”
위치부터.
나는 분명, 기내에 앉아 있….
설마.
나는 고개를 돌려서 거울을 보았다.
아니, 보려고 했다. 그 전에 내 옆에 비스듬히 뻗어있는 다른 트레이닝복 차림의 놈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게 낯익은 얼굴만 아니었다면.
“…!”
그건 청려였다.
다만 내가 직전에 본 놈과는 차이점이 있다.
‘…나이가.’
20살 전후로 보이는 청려다.
그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쭉 돋았다.
“너….”
다음 말을 할 것도 없이, 상대방이 눈을 뜬다.
“…!!”
“아.”
눈을 뜬 놈에겐 표정이 없다. 그리고 무감한 얼굴로 연습실을 익숙하게 확인한다.
아는 것처럼.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패턴처럼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야 표정이 생긴다.
“…!”
처음은 놀람, 다음은….
“하하!”
감흥이다.
탄식, 기쁨, 흥미, 절망, 희망, 별 괴상한 감정을 다 붙여도 어울릴 만한 모호하고 강력한 감흥.
“아, 이런 일이 생기네. 이런 일도 생기네요. 그렇죠?”
나는 간신히 입을 뗐다.
“너 여기가 어디….”
“여긴 LeTi 연습실이에요. 내 소속사!”
뭐?
청려는 우는 것처럼 실실 웃었다.
“이번 시작에서는 후배님, 아니지, 후배님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하하!”
머리가 새하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