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3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2화
몇 시간 전.
박문대가 무대로 뛰쳐나가고 그 위로 거짓말처럼 무대 장치가 쏟아진 뒤.
꺄아아악!
으허억, 헉!
비명과 넘어짐, 혼란으로 가득 찬 백스테이지에서 이세진은 우두커니 선 채 생각했다.
‘꿈인가?’
아무래도 이상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멀쩡했던 멤버가 쓰러지더니 무대로 뛰쳐나가고 그 위로 무대 장치가 쏟아져 내릴 리가 있나.
아무리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했더라도, 이건 너무 어처구니없는… 그러니까, 말도 안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질 리가….’
짝.
통증.
“정신 차려!”
고개를 돌리자, 배세진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등을 친 것이 보였다.
“살아 있을 수도 있, 살아 있을 거야, 확인해야지…!”
“…!!”
이세진은 숨을 들이켰다.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다시 육중하고 거대한 장치가 엉망진창으로 무너져 내린 무대 위를 보았다.
도무지 틈 사이로 사람 같은 게 보일 밀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만 안에 공간이 있을 가능성은….
“안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 멍한 말을 들은 건지, 류청우가 드물게 감정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백스테이지!”
“…!”
“그쪽으로 가자!”
차유진이 즉시 튕기듯 튀어 나갔다. 나머지 멤버들도 혼란으로 스탭과 직원들이 말리지 못하는 틈을 타 백스테이지 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착한 반대편에도… 완전히 붕괴한 철골만이 무시무시한 조형물처럼 쌓여 있을 뿐이었다.
“……흡.”
치지지직….
부서진 조명에서 튀는 전기.
그리고 약간의 혈흔이 묻은 철골.
깔리는 순간 어떤 꼴이 됐을지 섬뜩할 정도로 상상이 되었다.
그래선 안 됐다.
‘여기서, 살아 있을…….’
그 순간이었다.
쿵.
끼기기긱쿠쿠쿵기익콰과쾅!
생각을 멈추라는 듯, 순식간에 무대 위 천장의 콘크리트 구조물까지 다시 무너져 내린다.
“…!!”
“여기 와요! 빨리!”
벽이 흔들렸다.
멤버들은 차유진이 급하게 달려가서 잡아 뜯듯이 연 비상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일단 들어가!”
그리고 사방에 들리는 비명과 고함,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그들도 얼결에 스탭의 지시를 따라 탈출했을 것이다.
이걸 보지만 않았더라도.
“…여기, 핏자국!”
배세진이 자신도 모르게 찾아낸 것은 위로 이어지는 박문대의 혈흔이었다.
* * *
“…그렇게 된 거야.”
“…….”
류청우는 짧게 요약된 그간의 설명을 다 털어냈다.
그 후로는 탈출하기 쉽도록 아직 건물에 남은 사람들을 모았는데, 한 번 더 붕괴가 일어난 뒤에는 1층과 3층 문이 모두 막혀서 2층에 고립되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까 드론으로 본… 무너진 비상계단의 벽 맞은편 2층 철문.
그건 내가 무대가 무너질 때 백스테이지에서 빠져나온 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때 정신없이 위로 도망치다가 순간 혼동한 것이다.
‘높이상 백스테이지 문은 우리가 드론을 날린 곳 옆에 있었을 거야.’
굳게 닫혀 있던 2층 철문은… 사실 이 오피스 공간으로 연결된 것이다.
류청우가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세진이가 안내방송을 생각해 냈어. 무전기가 충전식이라 다행히 쓸 수 있었고.”
“…….”
그렇게 혹시 내가 살아서 여기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순간 버리지 못해서 그 차이로 탈출을 못 했다는 거다.
미치겠군.
나는 간신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앞으로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라고 말하려 했으나 내 코가 석 자인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자살행위처럼 보이는 짓을 하지만 않았어도 이놈들이 남았을 리가 없지.
“…시간이 있으면 설명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급해서요.”
“…….”
류청우는 할 말이 대단히 많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으나, 결국 다 쏟아내진 않았다.
나도 설명을 해뒀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일단 일어나자.”
“네.”
시스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태창이 붕괴 메시지를 띄웠다고 방금 설명했거든.
[00:26:03]“그러면 큰달이라는 분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거지.”
“예.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탈출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관리실 문을 열고 나오자, 마침 옆 방에서도 누군가 튀어나온다.
“여기 있어요!”
차유진이 손아귀에 서너 가지의 사원증을 들고 있었다.
이 몇 분 사이에 이 복도의 사무실이란 사무실은 이 잡듯이 뒤진 건지 벌써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팬들 같이 찾았어요. 우리 이제 빨리 나가요!”
역시 인력이 충분해야 한다.
같은 의미로, 관객석에 있는 두 녀석에 대한 것도 인원이 충분하니 동시에 챙길 수 있었단 말이지.
“헉!!”
나는 옆에서 들리는 팬의 외마디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
“바, 박문대…!”
“형! 무사하셨군요!”
“…!”
벽 너머에서 배세진이 데려온 두 녀석이 보였다. 아마 나도 저런 느낌이었겠군.
걸어둔 로프를 이용해서 올라온 건지, 아까보다 더 먼지가 묻은 상태다.
“…….”
그리고 둘 다 거의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놈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건물이 일찍 붕괴하더니 올라간 놈과 대뜸 연락이 끊긴 거니까.
망할.
“그….”
나는 황급히 대가리를 굴렸다.
“내가 시간 계산을 잘못했다.”
“아, 안 믿어.”
“…….”
큰일 났다.
“박문대 너….”
“정말 실수였어요.”
나는 배세진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포위당한 것처럼 선아현과 김래빈을 대동하고 움직이게 되었다.
그 와중에 김래빈은 노트북과 드론 조이스틱까지 챙겨왔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김래빈! 괜찮아? 그거 뭐야? 우리는 몸 가볍게 만들어야 해, 버려!”
“네 지식만으로 가치 여부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김래빈은 드물게 주변을 확인한 뒤 분위기를 파악했다.
“…탈출에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야!”
문제는 이거였다.
지금 우리를 수십 명의 팬이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지.
지금도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애들 다 남았어?”
“아… 어떡해.”
이 상황에서 상태창 브리핑하겠답시고 우리끼리만 사라져서 대화했다가는 무슨 사태가 날지 모른다.
사실 갇혀 있는 처지인 건 매한가지지만, 공인이다 보니 주목을 끌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팬들이라 지금도 본인들 상황만큼 우리를 걱정하고 있는 판이고.
아까도 괜히 류청우와만 잠깐 방에 들어가서 대화를 한 게 아니란 뜻이다.
괜한 소리 안 지껄이도록 조심하면서 빠져나가야 하니, 난이도가 좀 높아지긴 했다.
물론 남은 시간도 더 촉박하고.
[00:24:01]당연하지만, 급변하는 분위기와 상황에 지금도 동요하는 사람이 나온다.
“저기… 혹시 문제 생겼어요?”
“괜찮아요. 제가 초반에 실수로 혼자 떨어져서 다들 놀라서 그래요.”
“아….”
나는 최대한 온건하게 미소 지었다. 대충 팬사인회와 비슷한 느낌이었길 바란다.
그 팬은 내 갈아입은 상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나머지 놈들이 다 무대 의상이라 눈에 띌 것이다.
‘상처는 눈치 못 챘겠지.’
“맞아~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너무 다행이죠? 저 아까 진짜 너무 놀라고 반가워가지고! 이제 우리 안전하게 나가는 것만 신경 쓰면 될 것 같아요!”
큰세진이 너스레를 떨며 내 어깨를 도닥인다.
안 그래도 아까 욕설까지 한 놈이 복도 분위기 다독인답시고 고생 좀 했을 것이다.
“고맙….”
“나가서 이야기해.”
“…….”
아니, 사정이 있었다니까… 뭐, 됐다.
나는 당장 급한 것부터 시작했다.
“혹시 여기 남자 관객분 없으실까요.”
여기저기 사무실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중에 큰달도 있을 가능성이 제법 높지 않은가.
‘상태창에 접속하느라 이 소란도 몰랐을 수도 있지.’
백 번 넘게 검색 시도한 걸 보면 온 정신을 거기 쏟고 있었을 것이다.
“저 힘쓰는 일이면 저희 다 같이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누구 하나를 찾는 거라서요.”
“아아….”
내가 어지간히 급해 보였는지 굳이 그게 무슨 일인가 묻지 않고 다들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없다. 팬들이 대부분 여성인 데다가, 한둘 남은 스탭도 다 여성이다.
“음.”
더 지체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어쩌지….”
“괜찮아요. 얼른 대피부터 시작해요.”
나는 팬들에게 말하며 류청우에게 눈짓했다. 류청우가 침착하게 사람들을 모아서 지하로 이동하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 래빈이가 든 거 보이시죠? 드론 조작기인데, 저걸로 지하에 문이 있는 걸 확인했다고 합니다. 저희 질서를 지켜서 차례대로….”
사람들이 희망적인 이야기에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불안한 얼굴로 여기저기 멀리 흩어져 있던 사람들까지도 고개를 든다.
그중에는 구석진 방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고개를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무, 문대?”
“…!!”
비슷한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이번 것은 조금 달랐다.
나는 그 응원봉과 목소리를 방금도 들었기 때문이다.
‘아.’
…아까 비품실에서 봤던 팬이었다. 대학원생.
잘 도망쳤구나.
“어어…….”
“안녕하세요. 아까 뵀죠, 저희.”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참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떨어져서 죽은 것 같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참은 모양이다.
‘말해봤자 공포만 조성할 테니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쉽지만, 그래도 그걸 꾸역꾸역 참는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온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없지만 X발 이건 해야지.
“아현이가 잡아줘서 잘 빠져나왔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야….”
상황상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는지, 곧 얼굴이 침착해졌다.
대학원생이라 정신력이 좋든 정신적 고통에 역치가 높든 둘 중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여운을 누릴 때가 아니라는 거지. 나도 본받아야겠군.
나는 이 대학원생에게도 물었다.
남자 자체가 잘 안 보이니 이번에는 목격담을 수집할 생각이었다.
“혹시 키가 이 정도 되는, 안경 쓴 남자 못 보셨나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일 텐데.”
“잘생겼대요.”
“…….”
큰세진이 빡친 상태에서도 거들어주긴 한다. 도움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원생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줄 알았….
“나, 나 아는 거 같아!”
“…!!”
“내가 앞자리에서 나가다가, 넘어져서 제때 대피로를 못 쓴 건데… 그때 나 부축해서 일으켜 세워준 분이 있었어!”
뭐?
대학원생이 손짓 발짓을 한다.
“이렇게, 모자 쓰고 안경 쓰고… 키 크고 피부 하얗고, 어, 맞아. 잘생겼던 것 같아!”
완벽히 일치한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그 사람 대피했나요?”
“아, 아니, 이미 대피로 막혀서 그때 멤버들이 불러서 같이 막 올라오려고 했는데…….”
대학원생은 난리통에 떨어져서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여긴 그런 놈이 없다.
“어? 어디 가셨지…?”
망할!
“그게 언제쯤인가요.”
“그 두 번째로 난리 났을 때였어! 아예 무대 천장 떨어지고 막… 그랬을 때!”
“비상계단으로 올라오셨죠.”
“어, 어!”
“…….”
나는 심호흡한 뒤, 그 루트를 머리로 그렸다.
이 사람이 앉았던 것은 왼쪽 앞 관객석.
‘뒤로 달려가서 나가려고 했을 거야.’
그런데 중간에 넘어져서 큰달이 일으켜 세워줬고, 그사이 대피로가 막히면서 다들 비상계단으로 갔다.
‘하지만 비상계단에는 큰달이 없다….’
드론으로 봤을 때도 안 보였고, 3층 위는 무너진 상태.
그렇다면.
“…….”
아, 망할.
나는 몸을 돌려서 복도를 뛰어갔다.
“야!”
“누가 남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비상계단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가게 부탁드립니다!”
나는 소리를 지른 다음에 벽을 넘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양옆으로 선아현과 큰세진이 붙었다.
“너 지금….”
“찾은 것 같다고!”
나는 대기실을 지나쳐, 계단 밧줄이 아직 걸려 있는 무너진 무대 위로 향했다.
그리고 보았다.
무대 너머의 관객석을.
“여, 여긴 다시 왜….”
나는 밧줄을 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 있을 거야.”
“…!!”
큰달은 아직 관객석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까 여기 한참 있었는데도 못 만난 이유는….’
만날 수 없는 상태라서.
“그런데, 쓰러져 있겠지.”
“…!”
왜 갑자기 동선에서 사라졌겠는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몸을 못 쓰는 거 아닌가.’
이 지랄을 막아보겠다고 상태창에 접속하기 위해 집중하는 걸 넘어서 아예 또 상태창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비상계단으로 못 따라갔고, 그럼 아직도….
“분명 관객석에, 있을 거라고.”
머리가 맑아진다.
나는 밧줄을 잡아다가 허리에 감았다. 이대로 내려가서 이 잡듯이 뒤질 생각이었지만… 잠깐.
‘문제가 있다.’
머리가 맑아지자, 어두컴컴한 관객석의 넓이도 눈에 들어왔다.
“…하.”
여긴 천명을 수용하는 관객석이다.
이 넓이에서 시간 내로 찾아서 깨운 다음에 그놈과 뭘 상의할 시간이 있을까.
[00:19:35]이 시간 안에?
그리고 다시 여길 올라가서 지하로 갈 수 있나.
“…….”
X 됐다.
사실 그 감상을 느낄 시간에 빨리 움직여야 하는 걸 알았으나, 본능적으로 힘이 빠져서 순간 밧줄을 놓았을 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박문대, 너 지금 다쳤잖아.”
“별로,”
“아니, 내가 빠르게 내려 갔다 올 테니까 줘.”
큰세진이 굳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선아현도 머뭇거림도 없이 다가온다.
“아니…! 내, 내가, 밧줄도 써봤고 아래도, 잘 아니까… 갔다 올게.”
미치겠다.
허리에 밧줄도 잘 감았겠다, 운이 좋을 수도 있으니 일단 X발 그냥 아래로 몸을 날릴까 고민하는 순간.
투두둑.
“…!”
거대한 무대와 관객석. 그 어둡고 광활한 공간의 끝.
저 구석, 푸른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비상구였다.
“저긴….”
반쯤 막혀서 드론을 넣었던 곳인데.
그러나 거짓말처럼, 그곳에서 구둣발이 나온다.
먼지가 묻었으나 여전히 몰골이 좋은 남성용 정장 구두.
그리고 긴 다리가 비상등 아래로 나오고, 마지막으로 손을 털고 나오는 상체의 얼굴은….
“…!!”
청려.
놈은 관객석을 한번 둘러보지도 않고 정확히 시선을 돌렸다.
붕괴한 무대 위.
손전등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로.
“…….”
이게… 무슨 상황이지?
청려는 비상등 불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구 찾아요?”
놈의 손에는, 시설 직원용의 것으로 보이는 휴대용 감시기기가 들려 있었다.
…CC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