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Dear Santa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 퍼지고 마른 가지에는 조명이 반짝였다.
모두가 행복에 젖어 있을 때, 남팬 A는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숨을 골랐다.
크리스마스는 여동생의 생일이었다. 매해 시끌벅적했던 12월 25일이 이제는 기일처럼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숙사에 남아 있을걸.’
무뚝뚝한 부친이 마음에 걸려 본가에 내려왔지만, 말 몇 마디 섞은 게 대화의 전부였다.
트리도 없었고 케이크도 없었다. 부자는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DOL LIVE〉
깜짝 라이브 시작!
BLACK SEASON: Merry Christmas!
바로 그때, 돌라이브 알람이 울렸다.
남팬 A는 베개에 얼굴 반쪽을 묻은 채로 휴대 전화를 두들겼다.
화면 속에 나타난 블랙시즌 멤버들은 딱 달라붙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저마다 악기를 하나씩 끼고 있었다. 도겸이 눈짓을 보내자, 연주가 시작됐다.
– 어둠을 수놓은 불빛 아래
빨갛게 얼어붙은 뺨과
입술 사이로는 입김이
두 사람만의 세상 같아
지호의 맑은 미성으로 도입부를 열었다.
시선은 45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기타 줄을 튕겼다.
– 이제 와 새삼스럽지만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 나였던 거야
병철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화면 너머를 주시했다.
카혼 중앙 부근을 두드리자,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 그도 그럴 게 말이야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비슷한 옷을 입고서
비슷한 말을 건네잖아
청아한 실로폰 소리가 더해졌다.
하준은 실로폰 채를 세워 도겸을 가리켰다.
–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떠오른 사람이 나라면
후회하지 않게 해 줄게
가장 찬란한 기억을 안겨 줄게
스탠딩 마이크를 양손으로 쥔 도겸이 눈을 딱 떴다.
도겸은 가볍게 눈웃음치며 전자 키보드 쪽으로 다가섰다.
– 단지 위안이 필요했을 뿐이라도
(좋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보고 싶었다는 말에 구원받았어
(다시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선우의 기다란 손가락이 키보드 건반을 오르내렸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사근사근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 Christmas Illuminations
부디 내년에도 함께하기를
너무 소중해서 간질간질해
너무 행복해서 따끔따끔해
멤버들의 음색이 한데 어우러졌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화음이었다.
– 단지 위안이 필요했을 뿐이라도
(좋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보고 싶었다는 말에 구원받았어
(다시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도겸과 선우가 눈을 맞추고서 노래를 이어 나갔다.
도겸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자, 선우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 Christmas Illuminations
부디 내년에도 함께하기를
너무 소중해서 간질간질해
너무 행복해서 따끔따끔해
서툴지만 진중했던 연주가 차차 멎어 들었다.
선우는 화면 너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마음을 전했다.
– 보고 싶었다는 말에 구원받았어
이 순간을 오래오래 간직할게
남팬 A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멤버들의 깜짝 선물에 채팅창은 빠르게 솟구쳤다.
(내 새끼들 메리 크리스마스!!!)
(뭐야ㅜㅜ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했어)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엽고 다 해 먹네)
(너무 기특해서 김 대표 정수리 내리치고 싶어)
채팅창을 눈으로 좇기 힘들었던 걸까.
옹기종기 모여 휴대 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던 멤버들이 아차 싶어 입을 열었다.
– 메리 크리스마스! 너무 보고 싶었어요!
– 스프링을 위해 만든 캐롤인데 어땠어요?
(그런 거 물어볼 시간에 당장 발매해)
(띵곡 또 김 대표 보석함에 들어가니?)
(도겸 선우 음색 조합 개미쳤고……)
(귀가 살살 녹아서 나 지금 귀 없어)
– 귀가 없어지셨다는데…….
– 뭐? 그럼 지금 어떻게 들으시는…….
지호와 선우의 표정이 퍽 심각해졌다.
하준이 철썩 등짝을 내리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 아아…….
– 엄살은! 다시 집중! 저희 오늘 의상 어떤가요?
하준이 검은 터틀넥을 한껏 뽐냈다.
흠잡을 데 없이 잘 어울렸으나 크리스마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말해 뭐해)
(여기가 무릉도원이네요)
(근데 왜 터틀넥이야???)
(내가 또 목티 환장하는 거 어떻게 알고)
– 다들 왜 터틀넥이냐고 물으시는데요?
– 자고로 크리스마스 하면 터틀넥이죠! 하하.
갈고리가 난무하던 그때, 병철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멤버들은 병철이 나누어 준 검은 복면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 크리스마스에 《나 홀로 숙소에》가 빠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강도로 변신해 봤습니다!
– 5인조 강도예요.
(???????????????)
(아니 너희 지금 뭐 하는……)
(왜 케빈이 아니라 강도 쪽이야?)
(내 돌이 복면 강도? 이거 꿈인가?)
스프링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병철이 어디선가 말라비틀어진 화분 하나를 질질 끌고 왔다.
– 윗집에서 훔친 화분인데요. 트리로 꾸며 볼까 해요.
– 훔친 게 아니라 잠깐 빌린 거예요. 하하.
(……꾸밀 수 있는 거 맞아?)
(얘들아 그거 고추나무 아니니)
(맞네 누가 재배하는 거 훔쳐 왔나 봐)
(아니 누가 고추나무로 트리를 만들어)
격한 반발이 일었지만, 멤버들은 태연하게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첫 번째 타자, 병철이 입을 열었다.
– 저는 양말을 준비했어요. 트리하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병철이 양말을 고추나무에 걸었다. 그것도 무려 발가락 양말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멤버들의 구박이 쏟아졌다.
– 세상에 발가락 양말을 트리에 거는 사람이 어디 있어!
– 걱정하지 마. 깨끗이 빨았어.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ㅋㅋㅎㅋㅋㅋㅋㅋㅋㅎㅋㅋㅎㅋㅋ)
(어떻게 트리 장식이 발가락 양말)
(응 우리 병철이 하고 싶은 거 다 하지 마)
(근데 얘들아 트리가 고추나무인 건 괜찮고?)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병철은 꿋꿋이 발가락 양말을 사수했다.
두 번째 타자, 지호가 걸어 나왔다.
– 길 가다 보니까 사탕이 트리에 많이 걸려 있더라고요.
지호가 홍삼 사탕을 고추나무에 매달았다.
그러자 멤버들이 불같이 달려들었다.
– 홍삼 사탕이 갑자기 왜 나오는데요!
– 건강 식품이야! 이제 슬슬 건강 챙길 나이라고!
(홍삼ㅋㅋㅋㅋㅋㅋㅋㅋㅎㅋㅋㅋㅋ)
(아 맞지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ㄲㅋ)
(마 우리 지호 건강 챙기게 내버려 둬라!)
(최애한테서 익숙한 할머니의 향이 느껴진다)
멤버들이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지호는 양 볼에 홍삼 사탕을 무는 여유까지 보였다.
다음으로 하준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나타났다.
– 정말이지…… 정상이 저밖에 없다니까요? 저는 선물 상자를 트리 밑에 장식할게요.
하준이 코팡 로켓 배송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멤버들은 하준의 팔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 당장 회수해! 저게 어딜 봐서 선물 상자야!
– 선물이 들어 있던 상자인데요. 홍삼 사탕이 들어 있었어요.
(진짜 그놈의 홍삼 사탕ㅋㅋㅋㄲㅋㅋ)
(지호 움찔하는 거 봐ㅋㅋㄱㅋ 자기가 버린 쓰레기야)
(아까부터 선우 상자 계속 쳐다보는데?)
(ㅁㅊ 선우 상자에 들어갔다ㅋㅋㅋㅋㅋ)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고, 네 번째 타자 도겸이 나섰다.
도겸의 손에는 붉고 둥근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 저는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중에서도 볼을 가지고 왔어요. 영어로는 ‘Baubles’라고 부르던가요?
– 형 그거 볼 맞아요?
선우의 물음에 도겸은 뺨을 긁적였다.
손에 들린 것은 볼이 아닌 양파였다.
– 화면으로 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 전혀 달라! 기만이잖아!
(응 그냥 아무거나 올려서 얼버무리기~)
(차도겸 너무 뻔뻔스러워서 속을 뻔)
(고추에 양파에ㅋㄲ 환장ㅋㅋㄱㅋㅋ)
(우리 애들 특 자기가 장식한 거 까먹고 다른 멤버 갈구는 중)
양파를 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바람에 멤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우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고서 걸음을 내디뎠다.
– 안 되겠다. 나라도 제대로 해야지. 저는 꼭대기에 별을 달게요.
선우는 고추나무 꼭대기에 자연스레 냉동 꽃게를 올려 두었다.
손을 떼기 무섭게 멤버들이 선우의 정수리에 이를 박아 넣었다.
– 냉동 꽃게가 거기서 왜 나와!
– 아악! 그럼 어떡해! 아무리 찾아봐도 별 비스름한 게 안 보이는데!
발가락 양말, 홍삼 사탕, 코팡 로켓 배송 박스, 양파, 냉동 꽃게.
이것이 바로 블랙시즌식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트리가 무슨 상상 속 동물이니?)
(솔직히 말해 너희 트리가 뭔지 모르지)
(얘들아 고추나무가 너무 힘겨워 보여)
(그거 훔친 거라며 주인 극대노할 듯;;;)
– 모쪼록 멤버들과 힘을 합쳐 트리를 꾸며보았는데요. 나름대로 뿌듯하네요.
– ……이게 트리?
동공 지진이 일어난 멤버들을 뒤로하고, 도겸이 핫케이크 믹스를 집어 들었다.
멤버들은 움찔 어깨를 떨었다.
– 다음으로는 다 같이 핫케이크를 만들어 볼게요. 참고로 광고 아닙니다!
– 워어…….
시선을 주고받던 멤버들이 결심이 선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청테이프로 도겸을 고추나무 화분에 칭칭 묶었다.
– 음, 얘들아? 이건 또 무슨 장난일까?
– 장난이 아니라 생존인데요? 저희도 살아야 해서요.
멤버들은 태연하게 핫케이크 반죽을 만들었다.
도겸은 공허한 눈으로 채팅창을 바라봤다.
– 이건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돌발 행동인데요. 뭘까요.
(도겸아 너만 몰라 너만)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차 리더……)
(키메라 못 만들어서 실망한 얼굴www)
(이것은 괴롭힘이 아닙니다. 그는 연금술사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핫케이크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메이플 시럽과 생크림 그리고 딸기를 곁들이면 완성이었다.
– 자, 이렇게 딸기 생크림 핫케이크 완성입니다!
– 우왓, 생크림이 녹아서 흘러내려요!
멤버들은 곧장 핫케이크를 시식했다.
마트에서 파는 핫케이크 믹스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진짜 맛있다!
– 오오, 딸기 왕자가 감탄할 정도면 팔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정확히 3초 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졌다.
난리 통 속에서 병철은 묵묵히 핫케이크를 잘라 도겸에게 먹여 주었다.
– 맛은 있는데, 이만 풀어 주면 안 될까.
– 응, 안 돼.
그런 멤버들을 바라보던 선우가 촬영용 휴대 전화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속삭였다.
– 작년에도 그렇고…… 크리스마스라는 게 원래 이렇게 난장판이에요?
그 모습에 남팬 A는 배를 잡고 웃었다.
끼익.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남팬 A가 뒤를 돌아봤다.
“아빠.”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 미안하구나. 네 웃음소리를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남팬 A의 부친이 말꼬리를 흐렸다.
입술을 벙긋거리던 남팬 A가 용기를 짜냈다.
“혹시 배 안 고프세요?”
“배고프면 뭐라도 만들어 줄까?”
“그게 아니라, 제가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요. 핫케이크 어떠세요? 맛은 장담 못 하지만…….”
부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남팬 A도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남팬 A에게 블랙시즌은 좋아하는 보이 그룹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남팬 A는 블랙시즌을 통해 잃어버렸던 감정을 되찾았다. 기쁠 때는 실컷 웃어도 좋다고 허락해 주는 것만 같았다.
만일 산타가 존재한다면 부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블랙시즌에게 유쾌한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기를. 남팬 A는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