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7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73화
의료진은 차유진의 상태를 ‘스트레스성 착란’이라고 판단했다.
연예인이라는 게 워낙 별꼴을 다 보는 업계에 종사하는 직업군이다 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몇 건이나 있던 것이다.
“잠을 못 주무셔서 갑자기 정신 차려 보시니까 물건을 막 던지고 계신다거나 하는….”
일단 깨어났고, 검사상으로는 건강한 상태니 심신에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확률이 높다는 애매한 판정.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단 전문가가 ‘이전 사례들’에 대한 코멘트를 준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지 김래빈의 표정이 좀 나아졌다.
“저, 죄송하지만 잠시….”
그리고 큰세진은 의료진과 따로 또 대화를 시작했다.
아마도 ‘만일 차유진이 몇 시간 안에 저절로 괜찮아지지 않았을 상황에 취할 조치’를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직원들은 그 옆에서 뛰어다니고 전화를 걸며 미친 듯이 일하는 중이다. 절반은 회의 잡고 절반은 긴급히 스케줄을 조정 중이겠지.
‘난장판이군.’
그리고 그쯤 오니, 이 ‘스티어’ 차유진도 상황의 이상함을 깨달은 것 같았다.
최소한 여기가 미국이 아니라는 것쯤은 의료진과 직원들이 한국어를 쓰며 우르르 들어오는 순간 눈치챘을 것이다.
“문대야, 일단 네가 유진이랑 여기 있을래? 분담을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래.”
그리고 본인 입장에선 낯선 녀석들이 자신을 잘 아는 것처럼 굴고 있다는 것도.
그러나 이놈은 검사하는 동안 난동을 부리진 않았다.
-테스타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고요? 글쎄요.
-Oh…, 아뇨. 전 자고 있었는데.
단지 그리 협조적이진 않은 태도로 가만히 묻는 말에 적당한 대답만 했을 뿐이다.
‘상황을 살피는 건가.’
그때였다.
쾅!
“얘들아!”
“…!”
다급히 문을 열고 등장한 것은 바로 스케줄 중이던 다른 멤버였다.
다만, 큰세진에게 곧 올 것이라 예고 받았던 류청우는 아니었다.
“세진 형!”
헉헉거리고 있는 배세진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어왔는지 문고리를 잡고 숨을 고르는 놈은 벌겋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촤… 촬영이 일찍 끝나서, 후, 일단 왔는데… 차유진 깼어?!”
“예!”
아무래도 전전긍긍하다가 끝나는 순간 연락이고 나발이고 당장 온 모양이었다. 녀석은 김래빈과 인사하며 성큼성큼 차유진에게 다가갔다.
‘류청우가 먼저 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촬영장 거리가 가까워서 배세진 쪽이 먼저 도착한 모양….
잠깐만.
‘…배세진?’
나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내가 에 참가하지 않았던,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이전 삶.
그때 당시에… 배세진도 스티어로 데뷔를 해서 활동을 했었다.
짧게.
-‘아이돌 주식회사’ 출신 이세진, 마약유통 혐의로 검거.
“…….”
마약 공급책으로 9시 뉴스에 뜨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스티어의 활동이 소속사와 팬덤 문제로 초반부터 그리 순조롭진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 마약 뉴스가 치명적으로 스티어의 커리어가 꼬이는 시발점이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확실했다.
“…….”
그리고 지금 병실에 앉아 있는 게…….
“Oh.”
…그 ‘스티어’의 차유진이라면.
‘X발.’
나는 당장 침대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배세진이 나보다 떨어진 곳에서 걱정스럽게 질문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 너 괜찮아?”
차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뜬금없는 물건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배세진을 응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세진?”
“…!? 얘, 얘 왜 나한테…….”
[내 생각엔 당신들 사람을 잘못 고른 것 같은데, 정말로 내가 이 약쟁이…….]“…!”
이런 망할.
[입 다물어.]나는 ‘차유진’에게 황급히 목소리를 낮춰 속삭인 뒤, 배세진에게 다가갔다.
“지금 막 깨어나서 애 상태가 좀 이상한데요. 자기가 미국에 있다고 하고.”
“마, 맞습니다!”
김래빈이 격렬히 동의했다.
“아! 브라우니나 초코칩 쿠키 이야기도 했습니다! 활동기라 간식을 자제하던 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걸까요?”
그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배세진의 눈은 진지해졌다.
“그, 그런가? …아! 이 앞에 빵집 있잖아! 사 올 테니까 기다려!”
“…! 과연!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리고 둘은 우당탕탕 병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브라우니와 쿠키를 있는 대로 쓸어올 기세였다.
쿵!
“…….”
차라리 다행인가.
‘후.’
나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참으며 간병인용 의자에 앉았다.
도무지 상황이 감당이 안 된다.
‘그래도… 대화부터겠군.’
마침 조용해졌으니 지금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타이밍을 보고 있던 건 나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각자가 자기 할 일로 분주해진 병실 밖. 그리고 사람들이 나가며 조용해진 병실 안.
녀석은 상황을 살피다가… 관심이 분산되는 순간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저기요. Umm, ‘문대 형’?”
“…….”
나는 고개를 돌렸다.
김래빈이 부른 내 호칭을 기억해 알차게 써먹은 ‘스티어 차유진’이 병석에 앉은 그대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여기서 무슨 미친 일이 벌어지는 중인 건지 알죠?]“…….”
[내가 스페셜 브라우니라도 받아먹고 무슨 웃기는 KPOP 환각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놈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금발.
그 순간이었다.
놈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더니, 갑자기 상당히 위압적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
[그리고 당신은 날 알아봤어. 내가 ‘스티어’라고 말할 때, ‘약쟁이’라고 말할 때마다, 넌 날 알아봤다고.]“…….”
차유진은 내 어깨를 잡은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마주친 상태 그대로, 반대편 손으로 어깨 옆 팔뚝을 느리게 툭툭 쳤다.
[빌어먹을 “테스타”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게 무슨 류의 Prank쇼라면 고소당할 준비하는 편이 나을 거야. 난 사인한 기억 없으니까.]“…….”
후.
나는 깊게 숨을 쉬었다.
착잡했다.
‘이걸… 일단 갈기고 시작할 수도 없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화도 안 나긴 한다.
‘그냥 X 같군…….’
나는 두통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흠?]“굳이 해체한 KPOP 그룹 멤버로 미국에서 그런 걸 할 새끼가 있겠냐.”
“…!!”
“그리고 넌 약 안 먹었어. 김래빈도 안 먹었고.”
대체 미국에서는 왜 멀쩡한 브라우니에 약을 처넣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
‘차유진’의 눈이 약간 커졌다.
내 어깨를 잡은 힘이 약간 풀어진 순간, 나는 대강 놈의 손을 떼어냈다.
“하지만 네 말 중 맞는 게 하나 있긴 한데.”
“What?”
“미친 일이 벌어지긴 했다.”
“…huh?”
나는 얼빠진 놈의 손을 도로 침대 위로 던져줬다. 내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이었다.
* * *
새로운 멤버.
새로운 활동.
새로운 전개.
나는 빵집에 간 두 녀석에 돌아오기 전, 차유진에게 스티어가 아닌 ‘테스타’의 활동 양상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말했다.
물론 이놈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내 생각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들어볼래요?]“뭐.”
[당신이 약을 했거나, 내가 약을 했거나.]“두 가지인데.”
[아니면 둘 다 했거나.]망할.
‘이 새끼는 왜 약무새가 됐냐.’
나는 대가리를 부여잡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왜 하필 다 약인데. 환각이니까? 그게 약 증상이냐?”
[그렇다던데요.]“…….”
직접 해본 적은 없다는 뜻이군.
다행히 그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 내가 미친 건가? 이봐요, 당신 미국에서 응급실 비용이 얼마가 나오는 줄 알고 함부로 미친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왔어요?]“아니라니까.”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묵묵히 말했다.
“일단 창밖을 봐.”
“What?”
“눈만 돌리면 되잖아. 보라고.”
나는 블라인드를 살짝 열었다.
그리고 차유진은 말 그대로 시선만 살짝 돌려서, 밖을 확인했다….
“…!”
“한국 맞아.”
창밖으로 보이는 한글 간판과 익숙한 도시 전경.
서울이었다.
지금은 미국에 있다고 했지만, 이놈도 분명 서울을 거점으로 몇 년이나 지냈을 테니 못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Holy….”
드르륵.
차유진은 창문을 열어서 확실히 공간까지 확인한 뒤에야, 태도를 조금 바꾸었다.
[당신 진심이야?]“어.”
이게 진지하게 진실일 가능성을 약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우린 병원비 걱정 안 해도 된다. KPOP 보이그룹이니까. 회사에서 비용처리 할걸.”
“…….”
“너는 지금 ‘테스타’라는 그룹이고. 우리는 네 멤버야.”
[헛소리.] [헛소리 아니고.]나는 브라우니 구매에 성공했는지 병실로 뛰어오는 발소리들을 들으며,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딱 반나절만 있으면 너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 * *
“출발합니다.”
“넵!”
신체가 건강하며 특별히 폭력적 돌발행동이나 발작 증상이 없는 차유진은 일단 퇴실했다.
물론 사흘 정도의 스케줄은 전부 취소한 상태였다.
“유진아,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네. 저 괜찮아요.”
차유진은 앞자리에서 온화하게 묻는 류청우에게 매우 얌전히 대답했다.
그러나 곧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런 X같이 이상한 세상….]“말.”
차유진은 ‘네가 무슨 권리로?’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으나, 곧 순순히 대답했다.
“Sorry. 자유가 된 지 몇 달 돼서요.”
“…….”
나는 기억한다.
마지막까지 스티어의 이름으로 유닛 활동을 하던 셋.
류청우, 김래빈 그리고 차유진.
그 유독 열심히 그룹 생활을 하던 놈들도 해체 이후로는 소식이 없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녀석 중 이 ‘스티어 차유진’은, 활동이 끝나자 바로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유’라.
‘어지간히 아이돌 생활이 별로였나.’
하기야 ‘맡은 일을 끝까지 제대로 했다’와 ‘맡은 일이 좋았다’가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하긴, 상황이 어지간히 X 같긴 했다만.’
알면서도 어쩐지 뒷맛이 씁쓸했다.
“여긴 우리가 이사한 숙소야. 오래 지내지 않아서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면 꼭 말해!”
“OK.”
차 안에서 내내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던 차유진은 숙소에 도착하고서도 특별히 말수가 늘진 않았다.
그냥 그럭저럭 대강이라도 숙소의 몰골을 확인하는 것 같기는 했다.
사건은 다음이었다.
“저희 뮤직비디오 재생목록인데, 혹시 차유진이 시청하다 보면 더 빠르게 정신을 차리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괜찮네!”
“오랜만에 우리도 보겠다.”
그래서 테스타의 첫 데뷔 뮤직비디오, ‘마법소년’부터 쭉 연속 시청이 시작된 것이다.
“…….”
사실, 이걸 보여주는 게 맞는 방법인지는 좀 고민을 했다만….
‘안 보여주면 이놈이 납득을 할 것 같지가 않다.’
차유진은 안 그런 것 같지만 의외로 지극히 현실주의자적인 놈이었다.
친분이 없는 이 상황에서는 본인이 납득할 만한 증거물이라도 나와야지만 협조하는 시늉이라도 해줄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거.”
“차유진! 이 곡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어떻게 했어?”
“…?”
-아 어지러워~
놈이 찍은 것은… 푸른 하늘이 인상적인 학교 운동장, 야구복을 입고 웃으며 춤을 추는 테스타가 화면에 가득 찬 뮤직비디오.
‘하이파이브’다.
본래 데뷔 그룹의 첫 타이틀 곡으로 회사에서 준비했던 곡.
더 컨셉에 맞지 않게 애매한 디스코풍으로 나올 예정이었던 곡이었다.
하지만.
“원래 회사가 디스코풍으로 가자고 했는데, PPT까지 써가면서 설득했지. 시원하게 락으로 가자고.”
“…….”
“그리고 래빈이가 편곡했어.”
차유진은 말없이 하이파이브 뮤직비디오를 다 시청했다.
그리고 그다음 뮤직비디오도, 그다음도.
결국 ‘Better me’에 도착한 순간.
“OK, 인정할게요.”
“…?”
“테스타.”
스티어 차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한국식 발음으로 ‘테스타’를 발음한 놈의 얼굴에는 깨달음도 당혹스러움도 아닌, 묵직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림자 같은.
“……”
…어쩐지 기분이 썩 상쾌하진 않았다.
‘그래도 일단 출발선에는 섰다.’
이제부터 이놈이 돌발행동을 안 하도록 잘 제어를….
“…??”
“지금 차유진이 뭐라고 말하는 겁니까?”
…물론 이쪽에도 좀 설명을 한 다음에 말이다.
* * *
몇 분 후.
“그러니까… 이 유진이는 문대가 문대가 되기 전에, 건우 형일 때 유진이라는 거지? 음? 이 표현이 맞나?”
“맞는 것 같은데… 어, 맞아.”
류청우와 배세진이 혼란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아무리 별일을 다 겪었다지만 이건 또 처음 겪는 케이스다 보니 다들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심도 한 것 같았다.
“…어쨌든, 차유진이 아픈 건 아니라니까… 다행인 건가?”
“원인을 파악한 건 그렇긴 하죠.”
김래빈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문대 형께서 참가하시지 않은 에서 데뷔했다니… 그다지 상상이 가진 않습니다.”
“그러게~ 난 데뷔 못 했을 것 같은데. 아, 혹시 누가 데뷔했는지 물어봐도 괜찮은가?”
큰세진이 질문했다.
순수한 의문도 있고, 이 차유진을 약간 파악해 보려는 시도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차유진은 씩 웃으며 탁자에 턱을 괬다.
“안 괜찮아요.”
“…!”
“당신들이 들어도 별로 의미 없어요. 그러니까 난 말 안 해요. got it?”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