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8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81화
여기는 숙소.
생존자는… 거의 없다.
“으윽.”
“허…….”
이게 무슨 질병 아포칼립스도 아니고.
안 그래도 바빠서 짐도 제대로 못 푼 새 숙소인데, 멀쩡히 걸어서 돌아다니는 놈도 없으니 휑하니 짝이 없다.
‘다 골골대고 있네.’
심지어 말이다.
“하하, 몸살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
류청우도 뻗었다.
나는 옆 침대에서 해열제를 먹으며 웃고 있는 녀석을 돌아보았다.
‘물벼락 한번 집요하게 맞더니.’
물론 이놈이 뻗은 건 겨우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흘 연속 콘서트 하고도 지친 기색 없이 멀쩡했던 놈이니까.
아마 회사가 망하면서부터 중첩된 스트레스와 부담감, 그리고 앨범 준비 기간의 무모한 강행군이 차유진 사태와 겹치며 한 번에 터진 모양이다.
‘리더니까 더 했겠지.’
그런데 그 와중에도 대단한 것은, 이놈이 그나마 상태가 제일 괜찮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걸 본인이 알아서 문제다.
“음, 약 기운 돌면 내가 잠깐 회사에 갔다 올 테니까….”
나 참.
“좀 쉬어라. 스케줄 있는 것도 아닌데.”
“…!”
“회사 연락은 그쪽에서 올 때 받아도 안 늦어. 급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응. 알았어.”
류청우는 약간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침대에 도로 누웠다.
나도 그냥… 일단 도로 이불 위로 누웠다.
‘뭐… 이렇게 푹 쉬는 날도 있는 거지.’
중요한 것들은 마무리된 이 시점.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위잉.
서큘레이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이 여름날 에어컨을 안 틀었는데도 아무도 덥다고 안 하는 게 정말 웃기는 일이다.
‘음.’
근데 한 놈만 예외다.
[…더워.]“에어컨 틀어.”
“저 쓰레기 아니에요.”
방문턱에 뚱한 눈으로 서 있는 것은… 바로 유일한 생존자.
차유진이다.
“왜 모두가 아파요?”
놀랍도록 쌩쌩한 녀석은 아침 일찍부터 거실에 나와서 지금까지 방황 중이다.
아무래도 본인 방에서 배세진이 골골대고 있어서 들어가질 못하는 것 같다.
참고로 제일 웃기는 건 SNS에는 이 상황이 정반대로 올라갔다는 점이다.
-아 유진이 어떻게든 나가겠다고 해서 출연했는데 몸이 더 안 좋아져서 쉬고 있나봐ㅠㅠ
└프로의식 미쳤다…
그렇다.
사람들은 차유진이 아픈 와중에 투혼을 발휘해 무대에서 날라다니며 레전드를 찍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유일하게 아픈 놈이, 실제로는 이 중에 유일하게 멀쩡한 놈인 상황.
“저녁이면 다 털고 일어날 테니 신경 안 써도 된다.”
“…….”
그래서 스티어 차유진은 아닌 척하지만 상당히 당황한 눈치다. 아까부터 은근히 한자리에 못 앉아 있더라.
‘……저걸 나가서 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이 자식이 또 통제가 어쩌고 하면서 탈주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스티어 차유진은 어제 무대 직후 묘하게 말수가 없어지긴 했지만, 좋은 의미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꽤 안정적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후끈거리는 이마에 손등을 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문 닫고, 거실에서는 에어컨 틀어놔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
“아니. 아예 큰…, 이세진이랑 방을 바꿔. 바로 바꿔 줄 거다.”
그래, 진작에 이럴 걸 그랬다. 이놈한테 독방을 주고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 좀 누그러들었을 텐데 말이다.
‘변수를 없앤다는 것에 너무 집착했어.’
좀 릴렉스하니까 오히려 보인다. 아픈 게 이득이 되기도 하는데? 나는 스티어 차유진을 보았다.
‘이번에 무대 같이하면서 서로 간 긴장감도 꽤 풀어진 것 같고.’
일단 조별 과제 결과가 A로 끝나면 과정이 좀 X 같았어도 참여만 제대로 한 조원에겐 악감정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놈이 잘했어.’
차유진.
이 녀석이 없었다면 아마 이 버즈량의 상당량이 깎이긴 했을 것이다.
일단 출연 안 할 것 같은 놈이 갑자기 중간에 출연한 것에서 어그로 한 번 끌고, 끼 스탯 EX로 온갖 인기 동영상을 다 잡아먹어서 화제성이 쏠쏠했다.
‘…이쪽 차유진이 돌아왔을 때 반응이 좀 문제인데.’
제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군.
아무튼, 그러니까 이렇게 우호 관계를 구축하는 상황에서는 제안이 잘 통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이번엔 될 것 같은데.’
나는 꽤 자신감을 가지고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저 아픈 사람 방 뺏을 생각 없어요.”
“…!”
[제가 말했잖아요.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라고.]그리고 녀석은 티셔츠 목가를 펄럭거리며 방문을 떠났다.
“…….”
아니….
‘그럼 어쩌라고.’
해결책을 줘도 뱉고 있네.
대체 왜 덥다고 한 거냐. 뭐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겠다는 빌드업용 의사 표현이었냐?
나는 객관적인 확인을 위해 류청우를 돌아보았으나, 곧 녀석이 곤히 잠들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
놔두자.
‘…모르겠다.’
그래. 네가 알아서 해라.
결국 나는 차유진에게 적당한 자율권이나 보장하기로 했다.
굳이 침대에서 기어나가서 이렇게 말했다는 뜻이다.
“매니저분 번혼데… 네 폰에도 있을 거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부탁해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든가 해라.”
“…….”
“우리가 뭐 누가 어떻게 아프다, 그런 세세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다른 소속사로 말 새어 나간 걸 보니까 제대로 입 단속하기 전까지는 좀 주의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이 차유진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은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러나… 스티어 차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뭐?
“OK. 이제 알겠어요.”
“뭔….”
“Go to bed, now.”
그리고 나는 도로 방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
돌아본 차유진은 소파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잡고 있었다.
‘저놈 뭐하냐.’
그리고 이 의문은 차근차근 풀리게 된다.
* * *
일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숙소에 뭐가 박스째로 오긴 했다.
띵-동.
‘아이스크림이랑… 아이스팩?’
그리고 몇 가지 생필품과 식료품들이다.
정황상 차유진이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고 추측했는가?
아니다. 회사 직원이 마련한 게 아니었다.
“네가 했다고?”
“Yeah.”
본인이 직접 마트에 배달을 시켰다.
“문대 형 회사 연락 싫어했어요. 아니에요?”
“…….”
“그리고 한국 사는 성인이면 누구나 이 방법 이용할 수 있어요.”
아니, 네가 배달을 못 시킬 줄 알았다는 게 아니다.
‘왠지 직접 하는 건 지나치게 이쪽 삶에 적극적인 제스처라 안 할 것 같았단 말이지.’
“정리를 해야….”
“Nope.”
그러나 차유진은 비틀거리면서 나온 김래빈의 엉덩이를 걷어차 도로 방으로 돌려보낸 뒤, 자신이 주문한 박스를 직접 정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차유진의 ‘직접 하기’ 실천은 여기서 시작이었다.
일단 모두에게 따듯한 물과 찬물을 텀블러에 담아 돌리고.
“괘, 괜찮….”
“당신 얼굴 안 괜찮아 보여요.”
수건 덧댄 아이스팩을 배부하더니.
“어~? 이런 수건이 있었….”
“샀어요.”
결국 열 체크하고 약 먹는 타이밍까지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열 아직 안 내렸어요. 아이스팩 해요.”
“…….”
나는 체온계를 놓고 가는 놈을 보다가, 침대에서 침음을 참았다.
이쯤 되자 혼란스럽다.
내가… 차유진한테 간호를 받는다?
그것도 저놈한테?
‘실화냐.’
고개를 돌렸다. 류청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스팩의 수건을 여는 꼴을 보니 현실은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화룡점정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던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한 시간 후.
“……형.”
“왜.”
“이거 무슨 냄새지?”
“…!”
나는 고개를 들어서 밖을 보았다.
문밖으로 보이는 주방에서 끓고 있는 냄비가 보였다.
거기서부터 감칠맛 나는 육수 특유의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
그리고 그 냄비 앞에 서 있는 건… 차유진이다.
“…?!”
차유진이 요리를 해?
대체 뭘 했는지, 아니, 왜 굳이 본인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으나….
놀랍게도 요리 목적은 자급자족이 아니었다.
“나와서 먹어요.”
“…….”
녀석은 골골대는 놈들을 식탁으로 불러냈다.
그렇게 얼결에 소집된 멤버들은 식탁에 둘러앉아서 녀석이 한 음식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어어.”
“이거.”
낯이 익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이미 차유진이 몇 번 시도해 보았던 레시피였기 때문이다.
‘본인 어머님이 알려주셨다고 했던가.’
나름대로 추억이 있는 맛인 것 같긴 했다. 다만 녀석이 이 요리를 시도할 때마다, 어떤 꼴이 났었냐면….
한 번은 꿀을 넣었고.
-와악!
한 번은 불이 날 뻔했다.
-으아아악!
한 마디로, 대차게 망했었다.
이 자리에 기억 못 하는 놈은 없을 것이다.
“…….”
“…….”
배세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죽을 시킨다는 선택지를 두고 굳이?”
차마 반박할 수 없군.
그러나… 나는 고개를 들어, 아직도 뒷정리 중인 주방의 차유진을 보았다.
정확히는 놈의 손놀림을.
‘음.’
그건 경험해 본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무작정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전에도 일상적으로 요리를 했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케어를 잘 안 해준 시기가 있었던 건가.’
한 마디로, 하다 보니 솜씨가 늘어난 경우일 것이다.
나는 약간 고민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이걸 다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그냥.
“…고맙긴 하잖아요.”
“……그래.”
그 말에 모두 짠 듯이 굳은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곧게 앉았다. 뭐가 나와도 처먹어주겠다는 기세군.
곧 차유진이 사이드 메뉴로 챙긴 건지 부드러운 흰죽 비슷한 것까지 들고 식탁에 앉았다.
멤버들이 움찔거렸으나, 스티어 차유진은 별 반응 없이 입을 열었다.
“좀 낯설 수도 있지만. 난 아플 때 먹는 요리 그것밖에 못 해요.”
“…….”
‘그럼 죽을 시키라고’라는 말 대신, 선아현의 기쁜 듯한 선창이 나왔다.
“자, 잘 먹을게…!”
“고맙다.”
그리고 제법 비장하게 숟갈을 든 잠시 후.
“…!”
“맛있네…?”
“독특한 풍미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차유진의 치킨 스프는 맛이 썩 괜찮았다.
‘아니, 진짜 괜찮은데.’
아픈 타국 사람 입에 붙을 정도면 진짜 맛있다는 뜻이다.
스티어 차유진이 작게 미소 지었다.
“Good.”
한결 분위기가 풀린 상태로 식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픈 놈들도 위장이 채워지자 기력이 나는지 슬슬 입을 열어 떠들기 시작했다.
“어제 워터밤… 재밌었지.”
“아~ 진짜요. 너무 즐겨서 다들 이 꼴이 되긴 했지만!”
“맞아. 그런데 유진이는 반응도 제일 좋았는데, 제일 건강하네.”
류청우는 아마 부드럽게 ‘그리고 이렇게 챙겨주기까지해서 정말 고맙다’로 이야기를 끌고 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유진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듯이 웃으며 이렇게 반응했다.
“그건 ‘이’ 테스타 차유진에 대한 반응도 있어요.”
“…!”
나는 나서지 않았다.
‘시비 거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차라리 리스펙트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나 말고도 반박하는 녀석들이 있다.
“그, 그래도… 어제 사람들이 본 무대는, 네가 한 거잖아.”
“맞아~ 우리 팬분들보다 그냥 행사 오신 분들이 더 많았을걸?”
“…….”
“그, 크흠, 우리 차유진도 진짜 잘하는데… 너도 진짜 잘했다고. 그래서 너 잘해서 사람들이 좋아했다니까.”
차유진은 짧게 침묵했다. 그리고 순순히 대답했다.
“알아요.”
“……!”
녀석은 침착한 태도로 식탁에서 자세를 고쳤다. 약간 정중한 태도였다.
“저한테 기회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처음 제 무례했던 태도 사과할게요. 죄송합니다.”
스티어 차유진은 고개를 꾸벅 숙였고, 당황한 몇몇 멤버들은 식탁으로 고개를 처박다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허이고.
“아, 아냐. 으응, 공연 같이해서 좋았고…! 나, 나야말로,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고….”
“어어, 맞아….”
분위기가 더욱 풀렸다.
완연한 화해 무드였다.
“그래~ 우리 앞으로 잘 지내면 되지!”
뭐, 이놈이야 사과는 받을 만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서로 기본적인 신뢰를 쌓은 것 같은 분위기는… 정말 나쁘지 않았다.
“잘했어.”
“나도 알아.”
나는 김래빈과 차유진의 작은 대화를 듣고 피식 웃은 뒤, 식사를 계속했다.
그리고 정말로 차유진의 간호 덕분인지는 모르겠다만, 몇 시간 후 저녁.
테스타는 모두 대강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가!”
“세진이가 거치네.”
그래서 지금, 거실에 모여서 코를 훌쩍이며 게임이나 하고 있다는 뜻이다.
딴따라라 딴따랑!
나는 거칠게 손잡이를 돌리는 배세진과 신중한 류청우 뒤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직 머리가 어지러운데.’
차유진도 의외로 방에 들어가지 않고 소파 옆에 앉아 있었다.
“좀 편하냐.”
[그런 편이죠. 친구와 팬 덕분에요.]그래, 김래빈과… 아니, 나는 팬이 아니라니까.
뭐, 그건 그렇다 쳐도 말이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청우 형은?”
배세진이야 뭐 마약 문제 때문에 그렇다쳐도 류청우는 괜찮지 않나? 마지막까지 괜찮게 활동했을 텐데.
그러나 차유진은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나를 훑어봤다.
뭐야.
[가끔은 팬의 꿈을 지켜주는 것도 아티스트의 의무죠.]“…?”
무슨 소리냐.
차유진은 발을 뺐으나, 나는 대강 어투에서 분위기를 잡아냈다.
‘낫띵은 무슨 개뿔.’
스티어 류청우도 멘탈이 터졌던 게 분명했다. 지금이랑 좀 다른 인간상이었나 보군.
‘뭐, 그래도 상관없나.’
어쨌든 스티어 차유진은 여기 꽤 적응한 것 같았고, 전처럼 불편해하거나 날을 세우는 것 같진 않았으니까.
당장 지금도 복숭아 가져온 선아현이 잘만 말 걸고 있다.
“저, 그래도,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잘 지냈으면 좋겠어. 호, 혹시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같이 해보기도 하고.”
“그래. 편하게 말해!”
스티어 차유진은 짧게 침묵했으나, 곧 어깨를 으쓱했다.
“OK.”
“오오!”
거실에서 잠깐 환영하는 듯한 환성이 터졌다. 마치 새로운 동료라도 영입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음.’
나쁘지 않지.
나는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업데이트 완료!]-조기 달성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