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8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82화
…그런 가설을 세운 적이 있었다.
이 시스템 업데이트라는 것 때문에 차유진이 스티어로 활동할 때의 자아로 돌아간 것이라는 추리.
정확한 기재는 모르겠지만, 타이밍과 앞뒤 상황상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업데이트에는 30일이 걸린다고 상태창은 고지했다.
당연히, 누구든 스티어 차유진과 앞으로 3~4주는 더 같이 보내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업데이트 완료!]-조기 달성
예상도 못 한, 이 팝업이 갑자기 뜨는 순간이었다.
[‘■■■ (ver.2 Beta)’ 적용 중]지이잉-
기초적인 선과 폰트만 남아 있던 홀로그램에 색이 돌아온다.
UI가 돌아오고, 휘황찬란한 게임 시스템 같은 틀이 갖춰지며, 전보다 더 정교해진 그래픽이 반투명한 창을 이뤘다.
그리고.
[완료!]“…….”
이유는 모르겠지만,
끝났다.
그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어지럽게 카트가 달리는 TV 속 게임 화면을 보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차유진.”
업데이트가 일찍 끝났다는 것은, 지금까지 차유진에게 일어난 이상 현상도 끝….
“왜요?”
“…?”
…안 끝났군?
차유진은 아무 이상 반응 없이 멀쩡히 턱을 괴고 있었다.
스티어 차유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불러놓고 말이 없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도로 TV로 얼굴을 돌렸다.
“생각나면 말해도 괜찮아요.”
“…….”
잠깐만, 이거 설마 기초 추론부터 잘못됐냐.
‘업데이트랑 연관 없는 일이었다고?’
머리가 더 복잡해지려던 찰나였다.
띠링-!
“…!”
팝업이 하나 더 떴다.
[‘회사용 ’을 재가동하시겠습니까?]“…….”
아, 그렇군.
나는 손으로 눈두덩이를 눌렀다.
나한테, 시기 선택권까지 있었다.
* * *
자, 보자.
내가 여기서 재가동을 안 하고 아예 시스템을 취소해 버리면, 혹시 차유진이 아예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 새끼를 당장 재가동하면… 꺼림칙한 건 둘째 치고.
‘이 차유진은… 바로 사라지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당연하지만, 빨리 돌려보내고 원래 차유진을 불러오는 게 맞다.
그런데 막상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니, 이걸 본인에게 말을 해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부터 가늠해 보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저놈 면전에 대고 ‘이제 원상복구 가능한 것 같으니 당장 돌아가 봐라.’라고 말해도 멘탈 손상 없이 깔끔하게 정리가 될까?
‘…저놈 기억은 스티어가 해체한 상태의 차유진이잖아.’
겨우 터놓은 물꼬다.
저 녀석이… 앞으로 한두 번이라도 더 여기서 무대를 즐길 것을 기대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있냔 말이다.
‘후.’
나는 한숨을 참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차피 이런 건 개운한 답은 안 나오는 문제긴 했다.
‘일단… 지금은 다들 컨디션이 안 좋으니 킵하고.’
내일 결정하는 걸로 하자.
“잘 자, 문대야.”
“예. 형도요.”
그러나 마지막까지 배세진과 박빙의 레이스 승부를 벌인 류청우가 본인 침대에서 잠든 뒤에도, 나는 금방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
가뜩이나 몸살약을 복용해서 그런 건지, 의식이 제멋대로 개판이었다.
‘이럴 줄 알았지.’
게다가 이놈의 팝업은 발광력이 지나치게 좋아서 안대라도 해야 할 판이다.
결국 나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
그리고 물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안 자요?”
“……!”
아직도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차유진과 마주쳤다.
“낮에 너무 많이 자서.”
“그건 잔 거 아니라 아픈 거예요.”
말 잘하네.
녀석은 하루 종일 간병을 자처한 놈치고는 자정이 넘었는데도 지나치게 쌩쌩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주방에서 물을 받았다.
그런데 저놈은 왜 안 들어가는… 아, 배세진이 불편한 건가.
“방 바꿔줘?”
“No thanks.”
단호하게 대답한 녀석은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전 그냥… 친구랑 이야기하다 보면, 알잖아요? 좀 더 깨어 있고 싶어졌거든요.]오냐.
“김래빈이랑 이야기했냐.”
“Yeaap.”
그리고 녀석은 차를 안 쏟고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했는데, 아무래도 미국식 속어인 것 같았다.
아마 우리 뒷담은 아니라는 뜻이라고 추측은 했다만.
“그런 속어는 잘 모른다.”
“Sorry, 하지만 문대 형 이해한 것 같은데요?”
“눈치랑 맥락으로.”
“Got it.”
차유진은 적당히 대답하며 히히 웃더니, 도로 소파에 누웠다.
여기 왔던 것 중에 제일 편안해 보이는 태도였다.
“…….”
나는 물을 마시며, 짧게 고민했다.
혹시 지금이 타이밍인지.
그때였다.
[Hey, 제가 한번 맞춰볼까요?]차유진이 소파에서 반동으로 상반신을 번쩍 일으켰다.
[혹시 문대 형이 날 바로 돌려보낼 방법이라도 찾아냈어요?]“…!”
[Yeap, 내가 알았다니까요.]차유진은 씩 웃으며 마시던 콜라를 내려놓았다.
[이제 우리는 어떤 종류의 관계도 맺었고, 모든 게 잘 가는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당신이 날 보고 고민을 하겠어요?]“…….”
[상황이 뒤집혔죠. 맞아요?]빼도 박도 못하겠군.
“그래.”
나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괜히 상황 꼬지 말고 설명이나 잘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원한다면 30일 채워도 괜찮다는 걸 은근히 전제로 열어두는 편이 낫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그러나 입을 떼기도 전에, 차유진은 먼저 씩 웃었다.
“왜 형은 망설여요?”
“…!”
[헷갈리지 마요. 당신의 팀 멤버는 내가 아니에요.]차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오, 하지만 당신의 KPOP 아이돌은 제가 맞아요. 맞죠?]그리고 농담처럼 덧붙였지만, 나는 뉘앙스를 알아차렸다.
‘쓸데없이 동정하지 말라는 거군.’
테스타의 명성을 대리랭처럼 사용해, 이 스티어 차유진에게 환호받으면서 할 수 있는 무대를 더 베풀어주고 싶다는 생각.
혹은 자신이 그게 아쉬워서 포기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은 감히 하지 말라는 뜻이다.
팬한테 그렇게 취급받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런 뜻이기도 하겠지만….
뭐, 애초에 그런 건 정말 재수 없는 짓이긴 했다.
“그래.”
그래서 나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하지만 이 말은 붙여야겠지.
“그러니까, 오랜만에 네 무대를 봐서 좋았던 건 사실이다.”
“…….”
스티어 차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간접등 하나만 들어온 거실에서 침묵이 흐른 후.
“Maybe…, 음, 우리는 또 만날지도 몰라요.”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굳이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때는 더 멋진 무대 보여줄게요.”
“……그래.”
그냥 긍정했을 뿐이다.
“Great.”
차유진은 웃으며 팔짱을 꼈다.
암묵적인 신호였다.
“작별 인사는.”
“이미 했어요.”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에게는 방금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과했으니 만족해요. 그리고….”
그리고?
“형에게는 지금 할게요.”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그건 악수의 자세가 아니었다.
손바닥을 맞부딪히는, 하이파이브나 손깍지용 자세.
팬사인회용이다.
“고맙습니다. 내 팬.”
“…….”
나도 손을 내밀었다.
악수처럼 대각선 방향의 손이 아닌, 마주치는 손을.
“고맙다. 좋은 무대 보여줘서.”
“You’re welcome.”
짧은 하이파이브였다.
[‘회사용 ’을 재가동하시겠습니까?]“…….”
‘그래.’
팍.
팝업에서 불빛이 터졌다.
그리고 무언가 갱신되는 소리, 새롭게 구축되는 효과음과 알림이 빠르고 요란하게 눈길을 끌고 싶은 듯이 나타나며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배웅은 했다.
“Bye.”
차유진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으나, 살짝 어지러운 것처럼 눈을 깜박이더니….
그대로 소파에 기대어, 천천히 잠들었다.
이윽고, 안정적인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
나는 조용히 녀석의 방으로 들어가, 잠든 배세진을 깨우지 않고 이불 하나를 꺼내왔다.
그리고 소파에 잠든 녀석에게 덮어준 뒤, 내 방에서 침구를 챙겨 거실 바닥에 깔았다.
“…….”
잠은 아주 느리게 찾아왔다.
* * *
다음 날 아침.
“Hey.”
“…….”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깨달았다.
‘차유진.’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내 바로 머리맡에, 큼지막한 냄비를 양손으로 든 차유진이….
잠깐.
‘…냄비?’
“…?!”
이 뜬금없는 상황 뭐야.
그 순간,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차유진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문대 형 일어났어요!”
“바, 박문대!”
“일어났어?”
그러자 미친 듯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냐?
무슨 동아줄 찾듯이 화색이 되어 달려온 멤버들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차유진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그, 근데… 요리를, 했어!”
그…래?
“무슨 소리….”
“저 아침 만들어요.”
차유진이 들고 있던 냄비 뚜껑을 야심 차게 개봉하더니 내 얼굴에다가 다짜고짜 가져다 댔다.
‘아니 좀.’
어쨌든 이 냄새와 모양새는….
‘…닭볶음탕.’
그냥 그거다.
어제 몸살에 걸린 놈들이 아침으로 먹기에는 정말 화끈한 메뉴 선정…….
아니 잠깐만.
그것보다 기억이 돌아왔는데 감격의 인사고 나발이고 닭볶음탕부터 만들어서 자던 놈 머리에 들이대?
‘혼란하다.’
하지만 차유진은 한결같았다.
정말, 한결같았다….
심지어 대가리가 쉴 틈도 없이 새 정보를 폭격했다.
“이거 제 사과와 감사의 표시예요! 지금까지 많은 일들 있었어요.”
뭐?
잠깐, 그 뜻은….
“너 기억이 있어?!”
“좀 있어요. 워터밤은 Bad 차유진이 즐겼어요. 저 한 번 더 할래요.”
“…?!”
“멤버들 밥 먹어요! Breakfast!”
배세진은 혼란에 빠졌으나, 차유진은 씩씩하게 모두를 식탁으로 불렀다.
그리고 식탁은 더 혼돈에 빠졌다.
“유진아, 너 몸은 괜찮아? 기억은?”
“저 건강해요. 기억 있어요.”
일단 차유진의 상태는 완전 정상으로 판명되었다.
새벽녘, 깨어나자마자 지난 며칠 간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녀석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아침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Bad 차유진도 저니까 제가 책임져야 해요. 밥 한 번으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저도 만들었어요.”
“유진아….”
다만 스티어 차유진의 호칭은 저놈 안에서 완전히 ‘Bad’로 굳어진 모양이다.
그리고 감격의 재회가 다시 이어질 줄 알았는데 말이다.
“차, 차유진!”
“김래빈은 배신자야.”
“…?!”
“내 비밀 말했어!”
“안 말했어!”
“못된 차유진한테 말했어!”
“네가 네 입으로 방금 같은 사람이라며! 무효야!”
음. 개판이군.
그런데 옆에서 약간 감격에 젖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오랜만이야….”
“…….”
나는 마침내 정든 룸메이트를 되찾은 배세진을 놔두고 밥이나 먹기로 했다.
그리고 닭볶음탕을 한입 했을 때.
‘음?’
“…….”
“왜, 왜 그래 문대야…?”
“아니.”
차유진이 불쑥 끼어들었다.
“문대 형 제 요리 맛없어요?”
“아니, 맛있어.”
“히히.”
그래. 맛은 있다.
그런데 말이다.
‘이거 그냥 닭볶음탕이 아닌데.’
치킨 스프잖아.
차유진이 W라이브에서 만들던 치킨 스프가 실패했을 때, 내가 닭볶음탕으로 회생시켰을 때와 거의 흡사한 맛이었다.
게다가 말이다.
‘차유진은 원래 닭볶음탕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치킨 스프를 잘 끓였던 건… 스티어 차유진이다.
“…….”
나는 아직도 김래빈과 투닥거리고 있는 차유진을 쳐다보았다.
‘설마.’
아예 스티어 때의 기억이… 다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