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9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98화
무대 경연 현장.
[주말 오후의 즐거움! 스타들의 만남, 세기의 콜라보레이션, 의 무대가 곧 시작됩니다!]MC가 다년간의 경험으로 정형화된 대본을 물 흐르듯이 읽었다. 그리고 방청 객석에서는 방청객다운 호응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 경연의 주제는 ‘밀레니얼 2000’! 2000년대를 테마로 무대를 꾸몄습니다.] [출연진들이 함께하고 싶은 장르의 아티스트를 선택해 합을 이루어 콜라보가 성사되었는데요, 과연 어떤 무대가 탄생했을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리고 MC는 빠르게 투표 룰도 요약 설명했다.
간단하다. 공연이 마음에 들었다면 버튼을 눌러달라!
매번 녹화마다 하는 상투적인 이야기였으나, 이번에는 처음 듣는 방청객도 꽤 있었다.
‘내가 이런 데도 오네.’
‘재현아, 고맙다. 뒷걸음치다 효도해 본다.’
다 청려의 출연 소식을 듣고 신청한 사람들이다. 즉, 기존 시청자가 아니었던 VTIC의 팬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 경연에서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만일 청려가 1위를 할 만한 무대를 선보이지 못했는데 방청객 투표로 1위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논란이 되기 때문에.
하지만 거기 앉은 팬들은 그런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재현인데 뭐.’
팬으로 지낸 기간이 길수록 견고해지는 믿음이었다.
VTIC, 특히 청려는 절대 실망스러운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그 특별한 무대의 막이 오릅니다.]그리고 드디어 시즌 7의 3번째 테마 경연이 시작되었다.
와아아-
예의 바른 환호와 함께, 가수들과 명인들이 나와서 공연을 펼쳤다.
여기서 가수란 대부분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은 기성 가수들이다.
VTIC 같은 남자 아이돌은 없었다는 뜻이다.
‘오.’
그렇게 분야가 다르다 보니, 청려의 팬들도 견제 심리 없이 꽤 호의적으로 그것을 보았다.
‘괜찮다.’
‘다들 잘하시네.’
순수한 평가가 선선히 이루어진다.
제법 파격적인 무대도 많았다.
성악가와 왕년의 래퍼가 부른 2000년대 유행 뮤지컬 대표곡은 올드함을 힙하게 느끼도록 하는 맛이 있었고, 곡예사 명인과 댄스 가수의 협연도 조금 부조화스러웠을지 언정 꽤 인상 깊었다.
‘와!’
특히 연령대가 어린 VITC 팬들에게는 더욱 와닿았다.
이 프로그램을 그다지 시청하지 않아 프로그램 특유의 정형화된, ‘관객에게 먹히는’ 무대 구성을 몰라서 신선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려의 무대를 나름대로 상상해 보는 것이다.
‘재현이는 누구랑 했을까?’
‘막 오페라 가수랑 했으면 진짜 멋있었겠다.’
가끔 명인 섭외가 부족하거나 짝이 맞지 않아 가수끼리 하는 무대도 있었으나, 설마 청려가 그랬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음, 이 사람들보다 잘하려면…….’
재현이가 혹시라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걱정까지 슬며시 들 정도의 무대도 한두 번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6번째 무대.
마지막 바로 직전의 순서.
MC가 드디어 기다리던 포문을 열었다.
[이번 무대의 출연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KPOP 아티스트죠. VTIC의 청려 씨입니다!]으아아!!
와악!
‘글로벌’ 단어가 나올 때부터 낌새를 눈치챈 팬들은 이미 열렬히 환호 중이었다.
그리고 굳이 팬이 아닌 중장년층도 반응이 좋았다. 다들 뉴스에서든 위튜브에서든 VTIC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에 대한 기대!
얼마나 잘할지 가늠해 보는 그 시선들.
그 넘치는 아드레날린 속에서 MC는 템포를 조절하며 진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청려 씨가 지목한 콜라보 상대는….]짧은 뜸 들이기.
그리고 관객의 궁금증이 최대가 됐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국민 아이돌! 바로 테스타의 메인 보컬, 박문대 씨입니다.]“…??”
“…?!”
예?
‘젊은 아이돌 애들끼리 하네~’같은 여상스러운 중장년 관객층의 반응과 달리, 객석의 청려 팬들은 귀를 의심하며 내적 기함했다.
여기서 테스타가 왜 나와…?
‘청려야?’
‘야 신재현!’
차라리 리코더 영재 유치원생이 낫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팬도 있었으나.
[그럼 지금 만나보시겠습니다! 콜라보레이션 스타트!]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MC의 외침과 함께 무대가 시작되었다!
어두운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
팬들은 반사적으로 숨을 죽이고 무대로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가수는 없었다.
외곽에서 스탠딩 마이크 하나가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 있을 뿐이다.
후우우우-
짧게 바람 소리가 울렸다.
그 공백 속에서, 피아노로 연주되는 낯익은 리프 멜로디가 공기를 채웠다.
귀에 익은 반주.
그리고 그 고요한 배경음을 가르고 들어오는, 단조의 코러스.
-내 겨울에 눈이 와
두 볼을 감싸는
차갑고 포근한 온기
그리고 너
.
2000년대 중반 유행했던 감성적인 힙합 그룹의 유행곡이었다. 중독적인 코러스를 유명한 여성 솔로가 피처링하는 공식을 따라 했던 곡.
그 피처링 파트가 근사한 남성의 목소리를 타고 재현된다.
-Um, umm- Um, umm-
Um, umm-
쓸쓸한 허밍.
이별 후, 사랑의 달콤쌉싸름함을 회상하며 노래하는 오리지널에 한없이 가까운 감성.
“…….”
노래를 부르는 건 청려는 아니었다.
‘박문대…인가?’
하지만 단조인데도 청량하도록 맑은 목소리에, 순간 관객들이 귀를 기울였다.
은은한 피아노 반주와 허밍이 부드럽게 관객석에 울렸다.
-Yes
그리고 장조로 반주가 돌아가며, 본래는 밴드 사운드와 함께 좀 더 밝은 분위기에서 빠른 랩이 들어가야 하는 순간.
-No
“…!”
음이 더욱 무겁게 떨어졌다.
쿵.
유려하고 음울한 피아노 반주가 무겁게 깔렸다.
그 묵직한 단조의 음 위로, 반주의 템포가 떨어지며… 더 느릿해진다.
약간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로 느긋하고 어둡게.
그리고 등장하는 인영.
-불 꺼진 밤
애타는 우리의 마음
“…!!”
청려!
헤드 마이크를 장착한 가수가 외곽에서부터 걸어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무대가 꽉 차는 것 같은 움직임.
검은 슬랙스에 군청색 무대용 셔츠가 근사하게 어울렸다.
‘으아!’
하지만 관객들의 억눌린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의아했다.
‘어?’
청려가 부른 노래.
귀에 익은 멜로디는 맞았다.
하지만… 아까 전개되던 곡, ‘Winter love’가 아니었다.
-사랑의 목소리가 들려
.
앞 곡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의 곡은 맞았다.
하지만 섹시 컨셉으로 유명한 여성 솔로 가수의 곡이다.
게다가 빠른 템포의 테크노 댄스곡이던 원곡과 달리, 느릿한 템포 속 무거운 반주를 타고 안무와 곡이 전개된다.
-여름밤
뜨겁고 황홀한 순간을
현대 무용, 혹은 왁킹의 느낌이 약간 묻어나는 동작이 단단한 체격을 따라 펼쳐졌다.
댄서가 나와서 같은 동작을 하며 무대를 채웠으나, 그건 화려함을 더할 뿐이었다.
조명의 움직임, 흔들림 없는 라이브 보컬, 그리고 디테일 하나하나가 확실하며 강약점이 완벽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춤.
그것만으로도 꽉 조인 듯 무대가 완성됐다.
오랜 기간 무대에 섰던 사람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시선을 쭉 잡아끈다.
-기다렸어, 알지
원곡의 화려함과 섹시함을 응축해 담으면서도, 훨씬 느릿하고 정적, 묵직한 템포의 야성미가 예술성을 가미했다.
자칫 경박하게 들릴 수도 있는 옛날 유행가 특유의 촌스러움은 자취도 없이 눌려 사라진 채.
‘미쳤다.’
‘혼자 해도 됐잖아!’
‘앞에 박문대는 왜…?’
팬들이 정신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며 무대에 몰입했다.
-순간이 영원으로
사랑의 불꽃을 태워
Summer night
그사이 여유로운 듯 무게감 있는 퍼포먼스는 유려하게 무대를 끌고 가, 눈 깜짝할 사이에 1절 후렴이 끝났다.
그리고 잠깐 멈춘 음악.
청려는 구두 소리를 내며 외곽의 스탠딩 마이크로 걸어갔다.
“…….”
관객들이 다시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다음 카타르시스를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반대편에서 다른 누군가가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다.
“…!”
박문대.
부드러운 금발을 말끔하게 정리한 가수가 반대편 외곽의 스탠딩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반주가 흐른다.
-My love is in winter
봄이 와도 내 가슴 속엔
“…?”
청려가 부른 에 사용된 이전 반주가 위화감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문대의 멜로디가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어라…?’
같은 시대에 나온, 비슷한 작곡 문법을 사용한 두 곡을 연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위기와 노랫말은 정 반대.
덕분에 아주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서사점이 생긴 것이다.
여름밤의 짧은 사랑과 영원한 겨울의 이별.
-눈더미, 녹지 않는
영원한 겨울의 온기
우-
쓸쓸하던 목소리에 또렷하고 단단한 힘이 실리고, 반주와 함께 올라갔다.
보컬 애드립이 기교 없이 듣기 좋게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내 겨울에 눈이 와
두 볼을 감싸는
차갑고 포근한 온기
고음으로 치닫는 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초고음으로, 우아하고 아름답게 뻗었다.
-Yes, you
그리고 거기서, 또 음과 가사가 이어진다.
-You and me
in summer night
치고 들어온 청려의 곡.
두 사람은 마치 한 곡의 파트를 나눠 부르듯이, 자신이 부르던 곡을 번갈아가며 계속 불렀다.
-기회를 놓치면 안 돼
그리고 고조되는 음의 끝, 무대 중앙에 두 점의 스포트라이트가 거대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무대 위 두 사람이 움직였다.
“…!”
중앙으로 온 둘은 빌드업되는 반주에 맞추어 움직였다.
거울 안무.
-여름밤
뜨겁고 황홀한
(목소리가 들려)
동작이 섞이고, 서로 가사가 뒤섞인다.
-My love is in winter
(in summer night)
어느새 둘은 곡을 바꿔 부르고, 다시 자연스럽게 받아서 이어 불렀다.
-순간이 영원으로
(영원한 겨울의 온기)
그리고 마지막 구절.
-그리고 너.
퍼포머는 마주 보고 안무를 멈췄다.
그리고 화음을 맞춰 곡을 끌어올린다.
-Yes, you!
You, you, u- uu, umm, umumm,
현악기가 벅차게 울렸다.
그리고 안무도 클라이맥스에 다 달았다.
-Um, umumm, Um, umumm, um, Umm…
두 곡의 멜로디가 섞인 허밍이 절묘하게 화음을 만들고 떨어진다.
그리고 두 움직임이 거울처럼 맞아들어가며 복잡한 페어 안무를 구사한다.
발이 엇갈리고, 상체 꺾고, 서로의 어깨를 잡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곡예처럼 빈자리를 채우는 퍼포먼스.
일견 부드러워 보이는 그 모든 동작은 사지를 완벽히 통제할 힘이 있어야 우아하게 보일 수 있었다.
즉, 이 동작을 하면서 고음을 내지르는 것도 아닌 ‘허밍’을 완벽한 피치의 라이브로 소화하는 것은 거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광경이었다는 뜻이다.
‘와.’
“…….”
시선이 빨려들 듯이 고정된다.
댄스 무대, 즉, KPOP 무대에 대한 이해와 숙련도가 지극히 높은 퍼포머만 할 수 있는 구성.
‘아…….’
그래서 소수의 몇몇 팬들은, 청려가 왜 박문대를 선택했는지 이해했다.
‘그랬구나.’
‘이런 걸 하고 싶었다면 아이돌을 골랐겠지.’
다만 오해도 있긴 했다.
사실 박문대가 이 클라이맥스 파트의 안무를 홀로 구현하는 것은 현재 능력치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연습량으로, 30초 정도의 짧은 안무를 ‘상대와 똑같이’ 카피해서 출 수 있도록 커버한 것이다.
하물며 몇십 년간 멤버들에게 효과적으로 안무를 각인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온 당사자가 직접 한 동작 한 동작을 욱여넣었다면.
잠깐은 말도 안 되는 재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싱크로율의 끝에서 찍는, 화려하게 빌드업된 반주 위로 솟아오른, 짧고 확실한 고음역대의 화음.
-뜨겁고 황홀한 순간을
기다렸어, 알지
카타르시스!
-Wh-whewhewhewhe!
금관 반주에 맞춰, 등을 맞대고 관객석을 바라보며, 겨울로 시작한 무대는 여름밤으로 엔딩을 맞는다.
쿵!
“…….”
그렇게 무대는 끝났다.
아이돌다운 무대 틀에, 이 프로그램에 맞는 예술성을 쏟아 넣은 구성.
그 분위기!
그리고 절묘한 편곡과 라이브, 묘기 같은 안무까지.
퍼포먼스의 정수였다.
‘찢었다.’
‘미친.’
와아아악!!
비명 같은 환호가 객석을 채웠다.
팬이라서 보내는 환호가 아니라, 무대에 대한 리액션이었다.
[정말 대단한 무대였습니다!]MC의 멘트마저 진심으로 들렸다.
곧 무대 위의 두 사람은 작게 웃으며 정중히 몇 번 객석을 향해 인사한 뒤, 점잖게 자리로 복귀했다.
투표를 위해서였지만, 사실 결과는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팬들은 알았다.
‘이건 무조건 찍어도 돼.’
방영되어도 절대로 청려가 1등 했다고 욕먹지 않을 것이다.
그 확신이 자리의 팬들을 벅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방청을 온 팬 대다수의 머릿속에는 혼란과 물음표가 남았다.
‘어떻게 박문대랑 한 건데??’
‘미친 저 선곡 뭐야?’
그리고 그 궁금증들도 곧 충족될 예정이었다.
주말, 본방송에서 둘이 팀을 짜는 과정이 분량을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