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0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08화
‘미리보기’를 시행하며 색이 돌아온 상태창은 어딘가 이상했다.
폰트도 없고, 인터페이스랄 것이 거의 구현되지 않은 상태.
마치 몇 가지 기능만 가능하도록 비상 실행해 놓은 컴퓨터 운영체제 같은 모습.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양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쪽에 시선을 줄 여력은 없다.
“김래빈! 괜찮아?”
“윽….”
당장 김래빈이 복도 벽에 실수로 뒤통수까지 박아가며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눕혀.”
나는 당장 방문 밖으로 나와서 김래빈을 부축했다. 차유진이 군말 없이 김래빈을 부축해 바닥에 눕히고, 선아현이 뛰어가서 베개를 가져온다.
“윽…….”
“두통?”
“래빈아, 아픈 거야?”
“…….”
김래빈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숨이 차분해지며 의식이 잠기는 듯이 고요해지더니….
“허억!”
“…!”
악몽에서 깨어나듯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을 크게 녀석이 입을 연 순간.
“누, 누구십니까?”
“…….”
이미 들어본 말이 나왔다.
‘X발…….’
나는 한 손으로 미간을 눌렀다. 그 사이, 김래빈은 아직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 같더니, 드디어 아는 얼굴을 발견했는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차유진?”
하지만 곧 다시 경악했다.
“차유진! 너 어떻게 입대했어? 설마 국적을 포기하고 자원입대를….”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차유진도 황당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 김래빈 정신이 날아갔어?!”
“…! 혹시 네가 면회를 왔는데, 내가 넘어져서 의식을 잃고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다.
옆에서 큰세진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입대? 설마 래빈이 너….”
그리고 모두가 어렴풋이 떠올렸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했다.
“군대 갔어?”
“…? 예. 현재 훈련소를 막 수료한 상태입니다!”
죽음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
스티어 김래빈, 아니… 전(前) 스티어 김래빈은 군대에 가 있었다.
* * *
“오, 그러니까… 영장이 나왔…다고.”
“예! 현재 학점은행제를 이용한 학사 과정을 전부 이수하여 입영 연기 기간이 끝났습니다.”
(아마도) 스티어일 김래빈은… 생각보다 씩씩했다.
아마도 음악 관련 학사 학위를 사이버로 이수한 것 같고, 이후 바로 영장이 나와서 입대했다고 한다.
‘…스티어가 해체됐으니, 다른 연기 사유를 짜낼 이유도 없었겠지.’
그리고 군대에서는 생각보다… 잘 지낸 것 같다.
김래빈은 자신의 이등병 생활을 이렇게 요약했다.
“비록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만, 전에 누나에게 받은 조언을 떠올리며 굳이 질문드리진 않고 있습니다.”
거참 다행이기도 하다….
‘운이 좋았군.’
저 성격에 괴롭히는 새끼가 있을 법도 한데, 심성 꼬인 놈이 선임 중에 없었나 보다. 그러면 사실 김래빈은 교정이 필요 없는 군대 체질이긴 했다.
‘상급자가 까라면 까는 놈이라서 말이지.’
그러나 입이 깔깔하긴 했다.
‘저 나이에 군대라니.’
물론 그냥 대학생이라고 생각한다면 24살도 늦긴 했지만, 아이돌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빠르다.
어느 정도 성공한 아이돌 그룹은 20대엔 최대한 입대하지 않고 버티는 메타가 지배적이니까.
‘그걸 반대로 말하자면, 이 녀석은 더 이상 ‘어느 정도 성공한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는 거야.’
…스티어 김래빈은, 말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한 번 과거로 돌아갔으며, 현재 다른 그룹으로 데뷔한 저는 아직도 아이돌 활동 중이란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런…….”
당장 상황 설명을 들은 스티어 김래빈은 이 초자연적인 환경에 눈이 핑글핑글 도는지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가 드디어 시야가 말끔해졌는지, 저 뒤에 서 있던 인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스티어 류청우 말이다.
“청우 형…?”
“너도 왔구나.”
그리고 류청우는 입을 다물었다.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이놈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지?’
자기랑 비슷한 처지에, 몇 년이나 같이 지내던 놈이면 오히려 반갑지 않나.
김래빈은 사고를 칠 놈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
어쩐지 어색한 침묵이 흐르려던 그때.
기색을 눈치챈 건지 큰세진이 의식적으로 부드럽고 쾌활하게 설명을 잇는다.
지금 류청우가 네가 알던 그 스티어의 류청우라는 점. 그리고 차유진에게 기억이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으음, 그래서 계속 설명하자면 우리, 그러니까 지금 래빈이 그룹인 테스타는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서 무대를 준비하는 중이야~”
“그렇습니까….”
“으응, 이, 이것도… 래빈이가 편곡한 거야!”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선아현이 허겁지겁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재생했다.
김래빈이 며칠 전에 경연을 위해 만든 뮤디의 편곡, 완성본 버전.
-Umm, umm….
데모를 녹음한 내 허밍과 함께 천천히 음악이 흘렀다.
“…….”
스티어 김래빈은 멍한 얼굴로, 스마트폰에서 저음질로 뭉개져 나오는 그 소리를 들었다.
절묘하고 섬세한 구성과 멜로디를.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던 차유진은 답지 않게 좀 초조한 것 같았다.
‘알고 있어서겠지.’
스티어 시절, 김래빈이 그다지 곡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 참여했다고 해도 지금처럼 전권이 있는 방향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소속사 윗놈들이 감각 없이 조악한 방향성을 밀어붙이면 그걸 어떻게든 수용하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2차 팀전 때, ‘태양처럼 타오르는’을 처음 편곡하면서 발생했던 개판처럼 말이다.
‘그리고… 친인척 끼워넣기로 저작권료 빼먹는 짓이나 했겠지.’
한마디로 착취나 다름없다.
그러니, 여기서 테스타 김래빈이 자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결과물을 저 녀석이 이렇게 직접 듣는 것은,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당사자에게 좀 씁쓸할지도 모른다.
이전에 스티어 차유진이 그랬던 것처럼….
“놀랍습니다! 정말 제가 편곡한 겁니까?”
“…??”
모든 추론을 취소하겠다.
김래빈은 번쩍번쩍 눈을 빛내고 있었다. 좀 살벌한 인상이긴 했다만, 누가 봐도 신난 얼굴이었다. 들뜬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덩달아 선아현도 얼굴이 상기되었다.
“으응! 마음에, 들어…?”
“예. 과연……. 예.”
김래빈은 심지어 본인 특기인 ‘관심 있는 분야에서 신나서 말 쏟아내기’까지도 벅차서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이 상황에서 큰 껄끄러움보다 기쁨이나 감격 같은 것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아.’
그리고 그게 가능할 이유를 나는 깨달았다.
‘자기가 테스타로 다시 데뷔한 걸 믿었군.’
자신과 ‘테스타 김래빈’을 분리하지 않은 것이다.
현 상황을 연속적인 시간선 위의, 자기 미래의 모습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건 단순히 김래빈이 순박하다고 설명될 게 아니었다.
‘우리 태도 때문이야.’
우리가 지금 이 김래빈은 전과 똑같이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래빈도 무리 없이 우리를 ‘기억 못 하는 지인’이라고 받아들였다.
게다가 이미 스티어의 기억이 있는 인물이 둘이나 되고, 그중 하나는 연습생 시절부터 같이 지낸 친구다.
경계심도 누그러들 수밖에 없다.
‘조건이 다 맞았군.’
김래빈이 워낙 전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리고 급작스럽게 벌어져서 마음의 준비를 할 새가 없었기 때문에 얻은 행운이었다.
‘후.’
나는 서서히 더 침착해지며, 내가 제법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더 훈훈해지고, 선아현도 감명받은 스티어 김래빈에게 덩달아 들떠서 다른 곡을 재생하려던 순간이었다.
차유진이 툭 물었다.
“그럼 김래빈, 다음 무대 편곡하고 싶어?”
“내가?”
“오~ 그러게. 욕심 있으면 언제든 말해 래빈아!”
김래빈은 눈을 휘둥그레 떴으나, 곧 꽤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지나치게 과분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만, 도전해서 결과물을 내놓으면… 후보군으로 고려해 주실 수 있습니까?”
순간 멤버들의 얼굴에 안도와 기쁨이 스쳤다.
‘김래빈은 여전하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분명했다.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멤버들이 훈훈하게 웃는 가운데, 큰세진이 활기차게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무대 준비부터 할까?”
“…?”
그 순간이었다.
“제가… 무대를 해야 하는군요!”
김래빈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 어투는 깨달음보다는 경악이나 난감에 가까웠다. 갑자기 우박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말이다.
즉, 부정적이다.
“하, 하기 싫어?”
“하기 싫다기보다는, 제가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김래빈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답했다.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는 방송, 혹은 무대 활동을 할 만한 재목이 아닙니다.”
“뭐, 뭐?”
멤버들은 굳었다.
그리고 나도 표정을 굳혔다.
‘이게 무슨 말이지?’
스티어 때도 저놈 무대 능력치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내부 정보.’
나는 같은 멤버였던 기억이 있을 차유진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약간 씁슬한 표정이었다.
“…….”
느낌이 안 좋은데.
다행히 여기서 먼저 급발진해 줄 놈이 있긴 했으나… 아니, 이놈은 안 되는데.
하지만 이미 배세진은 입을 연 상태였다.
“무슨 소리야! 너 무대 잘해!”
“예?”
배세진의 외침에 당황한 김래빈이 화들짝 놀랐으나, 곧 배세진의 얼굴을 보고 더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지금 눈치챘나.’
스티어 초기에 마약 사건으로 날아간 ‘이세진(A)’의 얼굴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래빈은 결심한 얼굴로… 정중히 물었다.
‘…?’
“죄송하지만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배… 배세진인데.”
“…! 혹시 아역배우셨던 이세진이라는 분과 안면이 있으십니까?”
“…….”
나야.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는 표정인 배세진의 얼굴에 황당함이 들어찼다.
그리고 표정대로 대답했다.
“나야!”
“…?!”
김래빈은 경악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긴 했다.
‘차라리 이렇게 덜 심각한 분위기에서 터트리는 게 낫나.’
마약이든 뭐든 말이다.
‘오해라는 걸 확실히 도장 찍고, 적당히 배세진의 생물학적 아버지나 욕하고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황상 마약 운반 문제는 분명 그 새끼 때문일 테니까.
하지만 김래빈은 입을 열려다 말고 힐끔, 눈을 돌려서 누군가를 확인했다.
‘…?’
스티어 류청우를.
“하, 하지만.”
“래빈아. 지금 많이 혼란스럽고 피곤할 텐데, 일단 좀 쉬어.”
류청우가 단번에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쪽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괜찮을까?”
“아… 그, 그럼요!”
“김래빈 방 여기야!”
“가, 감사합니다….”
타당하게 들리는 류청우의 말에 다들 허겁지겁 김래빈을 부축해서 침대로 인도했고, 녀석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뿌리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
그리고 나는 스티어 류청우를 의식했다.
아까 느꼈던 위화감.
‘방금, 김래빈 말을 막은 것 같은데.’
기억해 두기로 했다.
물론, 지금은 김래빈의 무대 기피 발언부터 좀 더 파봐야겠지만 말이다.
* * *
“놀랍습니다….”
이건 자신의 직캠에 수백만의 조회수가 붙고, 팬들의 열광적인 댓글이 달린 것을 본 스티어 김래빈의 반응이다.
그리고 바리바리 영상 찾아와 보여준 멤버들은 약간 희망을 가졌다.
“그래, 역시 그렇지?”
“역시 무대에 오르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
“이런 수준의 무대를 구사하는 것은 저로서는 불가능할 일일 것 같습니다.”
멤버들은 당황했다.
그 와중에도 선아현은 단호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하, 하지만. 우리 그룹일 때 너는… 무대를 정말, 잘했어!”
“…? 어떤 계기나 피나는 노력이 있었나 봅니다.”
김래빈은 태연히 대꾸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약간 섬뜩할 정도의 단정이었다.
그리고 테스타 모두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X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놈도 문제가 생겼었군.’
이건 무조건… 아이돌 활동에 대한 거부감이다.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날의 어이없는 사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래빈이 무대 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드디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리보기’가 시행된 상태창, 그 팝업에 뜬 내용이었다.
[새 기능 미리보기 (extra)]-파편 기록 열람
‘파편 기록?’
이 지랄이 난 원인이나 다름없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집중력이 활성화되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속독하며 그다음 줄을 읽었다.
[도움말: ‘파편 기록 열람’을 통해 System 소유자의 파편 흡수 당시 미션 실패 시나리오를 재현할 수 있습니다.]뭐?
잠깐, 내가 거쳐온 미션 실패 시나리오라면….
‘설마.’
나는 반사적으로 기능을 확인했다.
[파편 기록 열람]-미션 실패 : 건물 붕괴
-미션 실패 : 원상 복귀
첫 번째는 말 그대로 건물이 붕괴했던 재난이다. 내 대가리가 쪼개지지 않은 이상 미쳤다고 재현하겠냐.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미션 실패 : 원상 복귀
류건우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
이 순간, 큰달과 몸을 바꿀 수 있는 기능이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