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2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1화
폐허공단 사장 부부의 열렬한 환영 끝에 테스타 축가가 확정된 그 날.
“오, 축가 오랜만이네~”
“세진이는, 축가를… 불러봤어?”
“혼자 한 건 아니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결혼하셔서 애들이랑 다 같이 했었지!”
참고로 저 영상은 이미 데뷔 초에 위튜브로 발각됐었다. ‘테스타 이세진 축가ㅋㅋ’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누가 봐도 아이돌 지망생
-혼자 각이 다른데요ㅋㅋㅋㅋ
소소하게 화제가 됐었다.
어쨌든, 20대 초에 아이돌이 된 녀석들답게 이 팀의 축가 경험은 저걸로 끝이었다.
나?
‘있을 리가 없지.’
공시 준비하면서 있던 연락도 다 끊긴 판에 무슨 놈의 축가를 불러봤겠냐.
그나마 사진 찍어달란 연락은 한번 받았는데, 무보수 노동을 바라길래 답장 안 하고 차단 박았다.
덕분에 이번 축가 준비는 사전 조사부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거실에 모인 녀석들은 나름대로 축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곡들을 열심히 피력했다.
밝고 행복한 노래!
“피크닉, 은 어떨까…!”
“우리 앨범에 발라드도 꽤 많죠?”
타이틀곡, 수록곡, 다양한 사랑 노래들이 후보군으로 등장하며 목록화되었다.
하지만 딱 ‘이거다’ 싶은 곡은 없었다.
“음, 뭔가 다 심심하네요.”
“그러게.”
심지어는 우리가 부르기는 했지만 우리 것은 아닌 곡들도 후보에 올랐다.
“박문대, 너 그… 에서 부른 곡 있잖아. 축가로 유명한 거.”
“그것도 괜찮죠. 하지만 파트 분배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런가?”
오냐.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나 혼자 부른 게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이야.’
그 곡을 나 혼자 통으로 다 불렀을 때와 테스타가 단체로 불렀을 때를 비교하려 드는 새끼들이 한둘이 아닐 것 같거든.
‘굳이 긁을 거리를 줄 필요는 없지.’
가뜩이나 최근 배세진을 이용해서 테스타를 긁으려는 놈들이 속출 중이다.
나 개인이나 테스타 둘 중 하나는 후려칠 수 있는, 이 꿀 같은 기회를 안 놓치겠지.
결국 배세진은 약간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수결 패배에 승복하게 되었다.
“알았어.”
이런 식으로, 의견이 나올 때마다 다양한 이유로 보류 및 기각 판정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우리랑 전혀 연관 없는 곡까지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저 이거 하고 싶어요!”
“유진아 이건 팬들한테 청혼할 때나 쓰자.”
결국 틱택톡에서 유행 중인 30초짜리 청혼 챌린지 곡까지 나오는 판이 됐다.
“더 좋은 곡!”
“열심히, 생각해 볼게…!”
논의는 점점 심각해졌다. 솔직히 축가에 이렇게까지 해야 싶을 정도다.
‘적당히 귀여운 거 하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 와중에 은근히 부추겨서 의견을 좀 뽑아내 보려고 했던 스티어 김래빈은 본인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정자세로 경청 중이라 환장하겠다.
‘그냥 메들리나 불러 버릴까.’
다행히 한 시간쯤 후에는 리더가 리더답게 상황을 정리하긴 했다.
“음, 결혼식 하시는 당사자분들께서 원하시는 곡을 하면 되지 않을까?”
“아.”
아주 타당한 의견이었다.
서프라이즈 같은 소리를 하며 모험수를 두기엔 남의 잔칫집이긴 하지. 차라리 안전하게 가자.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폐허공단 사장 부부가 원한 축가는…….
[와! 저기 그럼 저희 첫 콜라보했던 곡 있잖아요, 127섹션 트레일러 곡! 그게 너무 듣고 싶어요!]“…….”
그건 좀.
‘그거 가사가 ‘난 안 죽어 살아남아’ 이런 거 아니었나.’
결혼식에서 부르면 불화 조장처럼 들리지 않을까.
[아니면 이번 타이틀도 좋고요! ‘Roll the Dice’!]결혼식에서 난전을 시작하자고?
아무래도 이 사람들의 발상은 결혼식이고 나발이고 본인들이 듣고 싶은 곡 신청하는 걸로 왜곡된 것 같다.
“하하, 네. 잠시만요.”
통화를 잠깐 중단하고, 소리를 차단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멤버들이 필사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 곡 중에 커플을 축하하는 것 같은 곡도 있을 거 아냐! 그런 거 추천해 보는 건 어떨까?”
“저 알아요. 그런 거 없어요.”
“왜! 하이파이브 같은… 건 우리가 청혼하는 것 같겠구나.”
“맞아요. 제 추천곡 그래서 거절당했어요.”
자기한테는 안 된다고 해놓고 청혼 같은 노래 고를 생각 접어두라는 말이다.
“……그럼 무슨 곡을 부르지?”
아찔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선아현이 손을 들었다.
“저, 그냥… 원하시는 걸, 불러드리면 안 될까?”
“어어, 아현아?”
“조금 어색하더라도, 두 분에겐 가장 의미 있는 곡들일 것 같아서…! 함께, 운영하시는 회사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으니까. 기쁘실 것 같아.”
“…….”
“Oh….”
몇몇 녀석들이 그 진솔한 표현에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계산기를 좀 두드려봤다는 소리다.
결혼식에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를 다 제외하고 보자면….
‘화제성은 있겠는데.’
스토리가 있지 않은가.
게임 회사 사장들이 결혼하면서, 그 게임 곡으로 1군 아이돌에게 축하받는다?
위튜브에서 벌써 클릭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굳이 이 결론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감명받은 녀석 중 하나가 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네. 듣고 싶으시다니까.”
이번에는 특별한 반발은 나오지 않았다.
“으응!”
선아현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큼, 그럼 결정된 거다?”
“옙~”
그렇게 우리는 정중하게 폐허공단 사장 부부와 통화를 재개했다.
“말씀 주신 두 곡 중에 준비해 가겠습니다.”
본인들이 선택한 축가다. 결혼식과 안 어울린다는 위화감은 스스로 책임지는 걸로 하자.
[정말요? 잠시만요, …빨리 와 봐. 되신대!] [대박.] [와, 벌써 너무 기대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사장 부부가 떠드는 것을 생중계로 들은 끝에, 통화는 그렇게 화목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전화를 끊은 후.
우리는 서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할까.”
그래.
컨센츄얼한 남자 아이돌의 개빡세고 강렬한 타이틀곡.
결혼식 축가 확정.
“저… 그런데 보너스북이라는 건 어떤 곡입니까?”
일단 이 녀석부터 교육하도록 하자.
* * *
통화를 끝낸 후, 방으로 돌아간 나는 말이 나온 곡 중 스티어 김래빈이 아직 접해보지 못한 곡을 틀어줬다.
과의 콜라보로 나온 트레일러 영상의 배경곡, ‘Bonus book’이다.
“이것도 제가 작곡한 곡이군요….”
“맞아.”
침대 사이에 앉은 스티어 김래빈은 트레일러를 정신없이 감상했다.
나는 콜라보 곡과 멜로디를 일부 공유하는 그 당시의 타이틀, ‘Better Me’를 자연스럽게 이어서 들려주며 해당 무대까지 보여주었다.
바로 김래빈의 1인 직캠을.
[찾아낼 BETTER ME]리프 멜로디에 맞추어 리드미컬한 안무가 이어질 때마다 환성이 음악을 뚫고 울렸다.
입가에 지퍼가 달린 마스크를 쓴 김래빈이 마스크를 뜯어서 던지며 랩을 시작하자 탄성이 찢어질 듯이 울렸다.
와아아아-!
나는 입을 열었다.
“너 잘하지 않냐.”
“…….”
김래빈은 한참 대답하지 않고, 세로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곡이 끝날 때쯤에야 대답이 돌아왔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 무대로 제 평이 좋았습니까?”
어. 사이버펑크 만화 찢고 튀어나왔다는 소리 들으면서 살았다.
하지만 김래빈은 모호한 표정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관객분들의 반응이 굉장히 호의적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잘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흠.
“아, 그래도 반응을 보며 간접적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팔짱을 꼈다.
내가 기억하기로, 스티어 김래빈과 테스타 김래빈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무대 운용 방식에 차이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테스타 김래빈이 한 무대 곡들이 더 좋은 정도인가.’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본인의 움직임과 표정을 구사하며 애드립을 넣었다.
하지만 아예 다른 사람이다 싶을 정도의 차이는 없다. 같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스티어 김래빈은 스스로가 무대를 못 한다고 아예 결론을 내려버리고, 테스타 김래빈은 잘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게 바로 의아한 점이다.
원래 이놈은 무대 능력치 보는 눈이 상당히 좋다.
‘프로듀싱에 재능이 있는 놈인 만큼 칼같이 판단을 내리지.’
거의 잔인할 정도였다.
이건 데뷔 전 때부터도 이놈에게 있던 태도와 능력이었다.
가령…이 녀석이 나랑 처음으로 같이 팀을 짰던 2차 팀전에서, 왜 그 많은 인원 중 배세진을 뽑아갔는지 이유를 아는가?
당시 배세진은 소속사의 압력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돌 서바이벌에 참가한 초심자였는데도 말이다.
-더 많은 파트를 가져가기 위해 팀에 갈등을 일으키실 것 같지 않으며, 주어진 파트에서 표현력이 좋으시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실력이 달리니 파트는 적게 가져가면서도 받아 간 파트는 이 악물고 제대로 소화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배세진에게 유일하게 높았던 끼 스탯과 끈기 특성을 파악한 거지.’
냉정하도록 성능 평가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런 놈의 자체 판단력에 문제가 생길 정도면, ‘무대를 못 한다’라는 저 강박적인 이야기가 내 예상보다도 깊은 트라우마와 연관됐을 수도 있다.
‘역시 대화를 좀 더 해보고 싶긴 한데.’
살살 구슬려서 며칠 정도 텀을 두고, 깊은 대화를 낚아보고 싶은데 말이다.
문제는 지금 김래빈 본인의 의사가 확고했다는 점이다.
“역시 최대한 빠르게 기억을 되찾는 방향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음.
여기서 안 돌려주고 대화를 계속하자고 해봤자, 도리어 불안하게 만들 확률이….
‘더 높겠군.’
나는 빠르게 판단을 마치고, 표정 변화 없이 온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오늘 하는 걸로 할까.”
“예!”
나는 그날 밤, 자정이 되기 전에 다른 녀석들을 불렀다.
“지금 돌려주려고?”
“어. 축가 부르기 전에 받고 싶다고 해서.”
“으음… 오케이.”
곧 김래빈은 무슨 생일 축하라도 받는 것처럼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다.
“김래빈 밥 많이 먹었어? 이제 잘 거니까 잘 먹어!”
“충분히 먹었어! 그리고 이미 청우 형, 님의 사례를 보며 내 나름대로 준비를 마친 상태야!”
제법 씩씩하게 대답한 스티어 김래빈은 이부자리에 누웠다.
“부탁드립니다!”
오냐.
나는 상태창을 불러온 후, 둘로 나뉜 팝업 종류를 헤치고 원하는 것을 불러왔다.
미리보기 안내 팝업.
나는 그것을 보며 읊조렸다.
‘미리보기 종료.’
큰 이펙트 없이 홀로그램이 번뜩였다.
우웅.
그리고, 어느 순간 미리보기 특유의 미완성된 듯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훅 사라졌다.
[완료!]그리고 모든 게 잠잠해졌다.
‘후.’
나는 상태창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김래빈은, 이제 다른 녀석들처럼 몇 시간 잠에 빠져 있….
‘잠깐.’
이부자리에 누운 김래빈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
“저… 문대문대, 지금 처리한 거지?”
어.
우리는 다시 김래빈을 보았다.
‘뭐야.’
김래빈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어지러웠던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청우 형께서는 기억이 돌아오셨습니까?”
“엥?”
“어어, 어어어?”
순간 일제히 멍청한 표정이 된 멤버들을 보고, 김래빈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벌떡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직 문대 형께서 시작하시지 않은 상황이군요. 혹시 제가 졸아서 기다려주신 겁니까?”
“래빈아.”
“예?”
“우리 방금 뭐 하고 있었지?”
녀석이 약간 의아하단 태도로 대답했다.
“…? 문대 형께서 ‘미리보기’라는 것을 시행해 보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깨달았다.
김래빈에게 테스타 기억이 돌아오긴 했는데… 스티어 기억이 증발한 것 같다.
스티어 김래빈이 경험한 최근 며칠까지 전부!
“…….”
“죄송합니다. 진행에 더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겠습니다!”
“…그게.”
나는 눈두덩이를 눌렀다.
‘미리보기 이런 X발…!’
* * *
며칠 후.
“축하드려요.”
“어이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모 결혼식장.
친척 오빠의 결혼식에 참석한 한 승객은 모르는 사람으로 가득 찬 식장 앞과 각종 화환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출세했네.’
저 작은 할아버지의 아들인 친척이 무슨 게임 회사로 대박 나서 서울에 건물도 샀다는 카더라가 집안에 핫이슈였다.
컴퓨터 게임이라면 학을 떼던 어르신들도 돈과 사업은 좋아했다.
‘자본주의란 정말….’
사회학과인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축의금 줄에 섰다.
물론 그녀도 게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친척 오빠가 무슨 유명 모바일 게임을 만들었다는 희미한 인상만 남아 있었다.
아무튼 돈을 많이 벌었다더니, 시작된 결혼식에서는 확실히 그런 티가 났다.
‘되게 크고 독특하게 하시네.’
사업으로 만난 것 같은 다양한 젊은 나이대의 사람들과 회사 직원들이 회장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약간 변칙적인 진행과 게임에서 따온 것 같은 독특한 이벤트가 신선한 감각을 주었다.
‘밥도 맛있을 것 같다.’
하객이 그런 판단을 할 때, 아주 짧고 간결한 설교를 끝으로 결혼식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바로 축가 파트.
[축가로는… 이야, 역시 폐허 공단 사장님들 결혼식답습니다.]‘무슨 소리래.’
그녀가 심드렁하게 진행자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진행자는 긴장한 듯 웃으며 외쳤다.
[축가로는… 아이돌 그룹 테스타 분들이 오셨습니다!]“허어어어!?”
순간 그녀를 포함한 하객 대다수가 거의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다.
‘뭐, 뭐?’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한 그 순간.
조명을 따라 고개를 황급히 돌리자, 어두워진 식장 저편에서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
정장을 입은 테스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