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2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22화
결혼식장은 보통 꽤 넓은 홀이다.
하지만 그 안은 하객석과 온갖 장식, 진행 장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여유 공간은 적었다.
당연히 축가는 하객석과 거의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덕분에 앞자리 하객들은 코앞에서 축가 가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의 협소성 때문에, 심지어 앞자리가 아니더라도 코앞에서 축가 가수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가령 친척의 결혼식을 보러 온 사회학과 여성.
휙.
그녀는 자신이 앉은 신랑측 하객석 제일 외곽, 그 바로 옆으로 돌아서 뛰어 들어가는 훤칠한 인영들을 보았다.
남성 7명.
군청색 정장을 맵시 좋게 맞춰 입은 그들은 순식간에 지나갔으나 그 얼굴을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화면으로만 봤던 얼굴.
‘테스타.’
올해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할 남자 아이돌.
평면에서 빠져나와 입체가 된 그들은, 관념 속에 있던 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존재감과 현실감을 가진 채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뛰어가면서 일으킨 바람이 뺨에 닿을 정도였다.
‘…??’
“어?”
“어어,”
주변에서 어리벙벙한 소리가 울렸다.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가 이게 현실이 맞는지 의심하고 있을 때.
피잉-
순식간에 축가 위치에 도착한 7명의 남성은 주저 없이 마이크를 잡아 들고 외쳤다.
[폐허공단 사장님 두 분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아직도 놀라는 소리와 환호가 섞여 애매한 반응이 터졌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은 그들은 아마추어의 머뭇거림 없이 바로 웃으며 또렷한 목소리로 멘트 했다.
[저희가 축가를 부르는 건 처음이라 열심히 공부해 왔는데, 원래 축가는 결혼하시는 두 분과 모두 친한 지인분이 마음을 담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네. 두 분께서, 앞으로도 서로 행복하고 즐겁게 사시기를… 바라면서요.] [딱 저희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그런 마음으로 축가를 준비해 보았습니다~]그리고 그쯤에서야 드디어 하객들은 정신을 차렸다.
테스타다!
‘허……!’
사회학과 여성은 침을 삼켰다.
그녀도 연예인을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화면보다 더 나을지, 못날지.
결론을 말하자면, 이목구비는 똑같이 잘생겼다. 워낙 잘생기기로 유명한 그룹이었으니까 그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면은 사람이 가지는 특유의 분위기까지 완전히 담을 수는 없었다.
체격, 외모, 표정.
원래도 좋았을 조건을 매일매일 공을 들여서 갈고 닦은 예리하고 말끔한 상태.
그 모든 게 실존으로 다가올 때의 파괴력!
‘세상에.’
코앞에서 본 것은 대단한 이득이었다.
하객이 자신의 자리 선정이 미치게 좋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단단한 체격의 류청우가 웃으며 멘트의 흐름을 바꾸었다.
결혼하는 두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제작자이며 파트너인지를 언급한 후.
[그렇게 두 분이 함께 만드셨던 멋진 작품에 저희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혹시 아실까 모르겠어요.]그 말이 끝나는 순간, 뭔가를 예감한 듯 하객석에서 드문드문 신음과 비명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뭐야? 뭐 하는 거지?’
지금까지 테스타는 부부와 사적인 친분이 있는 듯한 투로 말했다. 건너 건너 부탁을 받거나, 소속사를 통해서 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테스타가 무슨 게임을 광고했던 것 같….’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시작합니다!]반주가 시작되었다.
일렉트로닉 기타 MR이 번개 한줄기가 꽂히듯 장렬히 식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
“와아아아!”
신난 비명과 의문이 하객석에서 교차했다. 뭔가를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노래가 식장의 모든 소음을 가르고 들어왔다.
[I’m gonna survive-Like you did before!]
짜릿한 고음.
‘미친!’
식장에서 들을 것이라 생각도 못 했던 맑은 고음의 엄청난 성량.
박문대의 목소리에 의문의 소리가 전부 사라지고 환호가 터졌다.
그리고 귀에 착 달라붙는 도입부 파트가 이어진다.
But NOT for me, 난 아니야
난 살아 그렇지 like-
Legends never, die!]
차유진이 눈을 찡긋거리며 부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사장 부부는 신남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어어?’
그때였다.
하객석의 정면, 거대한 하얀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더니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폐허 공장 시절부터 T1플레이즈를 지나 현재 폐허 공단까지.
사장들이 잠을 새어가며 열정적으로 즐겁게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 이미지컷을 지나간다.
‘필요한 건 뭐든지 말해보시라’라는 사장 부부의 말에, 박문대가 고심 끝에 의뢰한 요구사항이었다.
-식중 영상 같은 걸 같이 틀면 좋겠는데요.
결혼식에서 흔히 틀어주는, 부부가 될 두 사람의 스토리를 담은 비디오.
그것이 사장들의 특수성을 만나 독특한 컨텐츠로 구성된 것이다. 하지만 그 따듯함과 관계성은 통상의 것과 똑같이 전해졌다.
그리고.
영상에서 테스타가 촬영한 트레일러 영상도 지나가는 순간, 사정을 모르던 하객들도 모두 깨달았다.
이건 저 사장 부부가 저렇게 함께 정성을 들여 만든 게임의 노래였다.
그러니까 사장 부부의 테마곡이었다.
[That’s what keeps me alive!난 세차게 쫓아가
삶을 완성시킬 발걸음]
테스타, 스크린, 사장 부부의 모습이 시너지 효과를 내듯 분위기를 달궜다.
아주 유명한 연예인을 축가로 불렀을 때 부작용은 무엇인가?
바로 결혼식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하객들이 결혼하는 부부보다 축가를 온 사람에게 더 집중하며 함성을 지르고, 식이 끝나고 식사를 할 때도 축가 이야기만 하는 부작용.
그렇기에 단순히 곡이 유명한 게 아니라 인물 자체가 유명한 가수를 축가로 부르는 것은 예상과 달리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었다.
결혼식 자체가 묻히는 것이다.
[If I reach out, I can hold it.]하지만 지금 이 식장에서는 그 부작용이 없었다.
테스타가 부르는 것은 이 부부가 함께 만들어온 작품, 그들의 연대기와 관련된 곡이었다.
부부의 상징곡을 부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심지어 테스타 자신들의 곡이기도 하기에 그 끈끈한 서사와 연결점은 위화감 없이 관객에게도 전해졌다.
이 결혼식에서는 테스타를 축가 가수로 부를 이유가 확실히 있던 것이다.
[I will never die,]Like I did before!]
테스타는 랩 파트를 다 같이 함께 부르며 신랑과 신부, 심지어 하객들의 합창까지 요구해 너무 진지해지지 않도록 귀여운 맛을 살렸다.
결혼식의 축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구성이었다.
가사의 괴리감은 오히려 유쾌함을 불렀다. 그사이에 이야기가 있으니, 독특한 매력과 깊이감이 생겼다.
[Choose your way…Choose your side.] [Yes, choose your side!]
게다가 테스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가사를 통해, 게임곡의 중간에서 자신들의 최신곡으로 넘어갔다.
‘Roll the Dice.’
워터밤을 통해 완전히 대중성을 획득한 올해의 노래.
그 노래를 타이틀로 하는 앨범 속 게임을 오늘 결혼하는 부부가 만들었다는 것은 참석한 일가친척과 지인들을 약간 흥분하게 만들었다.
[Just roll the diceTrust take my side]
그렇게 테스타는, 가사 하나 어울리지 않는 곡으로 둘의 결혼을 완벽히 축하하는 것에 성공했다.
테스타의 공연이 아니라, 결혼식의 축가 무대로서.
[행복하세요!]3분 30초짜리 무대는 영상에 맞추어 칼같이 마무리되었다.
테스타와 부부에게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반주가 멈추자 영상과 곡이 만든 훈훈한 연대감이 사라지고 테스타 자체를 향한 관심이 확 터지려 했으나, 그때는 이미 테스타가 신속히 퇴장 중인 상태였다.
“오오오!”
하지만 이미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들은 입으로 환호를 내지르면서도 테스타를 퇴장까지 찍었다.
멍하게 박수를 치며 축가를 보던 하객도 그때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나도!’
자신이야말로 이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찍을 수 있지 않은가!
그녀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자신의 바로 옆을 지나가는 테스타를 제때 찍는 것에 성공했다.
동시에 눈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하지 않고, 직접 테스타를 향했다.
‘…와.’
TV로 봤던 그 사람들이었다.
송곳니가 살짝 드러나도록 미소를 짓고 있는 차유진, 속눈썹이 길고 볼이 붉은 선아현, 서글서글하고 시원하게 잘생긴 이세진.
화려하고 퇴폐적인 인상의 김래빈, 단단한 골격의 잘난 생김새를 가진 류청우, 무심한 듯 하얀 얼굴에 곱상한 박문대.
최근 으로 핫한 배세진의 단정한 얼굴까지.
일방적으로 나만 알고 있는 그 잘생긴 유명인들은 자신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와.’
신기함과 흥분에 목이 막혀서, 그녀는 동영상 촬영을 종료하는 것도 잊고 한동안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태였던 것은 그녀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수십 명의 하객에 의해 촬영된 이 축가는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업로드되어 공개되었다.
-지인 결혼식 왔는데 테스타 나옴 헐;;
* * *
[축가 누군지 아는 순간 다 비명 지름] [갑자기 결혼식에 난입한 테스타] [오늘자 난리 난 테스타 축가]예고도 없이 갑자기 쏟아지는 짧은 동영상과 소식에 일단 인터넷 이용자들은 당황했으나, 모르기엔 지나치게 관심이 가는 타이틀들이었다.
‘뭔데?’
그리고 클릭하면, 축가에서 갑자기 일렉 반주로 게임곡을 열창하는 테스타와 신나게 손을 흔드는 신랑 신부의 뒤통수가 잡히는 것이다.
[I’m gonna survive-]영상이라는 건 늘 그렇듯이, 현장 참여자보다는 약간 떨어져서 제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도록 객관성을 주었다.
이 축가가 시작하자마자 빵 터진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게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괴리감 미쳤고
-와 근데 재밌었겠다 진짜ㅠ
-사장님들 신난 게 눈에 보이는데욬ㅋㅋㅋ
천연덕스럽게 컨셉츄얼한 가사를 결혼식장 양가 부모님 앞에서 때리는 테스타와 콘서트처럼 호응하는 결혼 당사자들은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그 부부가 폐허 공단 사장들이라는 것과, 그들과 테스타 사이의 인연이 알려지며 상황은 더 흥미진진해졌다.
-와 저 부부도 대단하다 어떻게 이야기 안하고 참았지ㅋㅋㅋ
└ㄹㅇ저래야 사업으로 성공하나봄 독기레전드
-비밀 잘 지켜져서 사생 없이 깔끔하게 축가 잘했네 결혼 축하드립니다 폐허공장 사장님들
그냥 일주일쯤 전에 급히 결정되었을 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부부의 인내심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유머러스하고 독특한 사건 자체에 대한 어그로성이 최고를 찍고 살짝 침착함을 되찾을 즈음에는 다른 것도 말이 나온다.
바로 실력이다.
-뻔뻔하게 잘하네
-와 가수는 진짜 가수다 음향 뚫는 거 봐
-안무 안 해도 무대 재밌는 게 진짜 대단함
보정 하나 없는 생 영상이라 와닿는 실력이 더 리얼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아마추어의 흔들리는 영상은 현장감을 살렸다.
하객들의 온갖 잡담까지 들어가서 더욱 그랬는데, 이러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긴 했다.
음악방송같이 테스타의 무대를 깨끗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었으나, 오죽하면 이런 댓글도 심상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화질 직캠 요구하면 양심 없는 거냐
-양심 팔게 고화질 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발 사장님들 풀어요 결혼식 영상 찍었을 거 아냐ㅜㅜ
└아 제발 남의 결혼식 영상에서 이러지 맙시다 진상 같아요ㅠㅠ
다행히 적절한 내부 단속에 의해 얻어맞으며 마무리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한 반응’ 중에는 오히려 좋은 것들도 있었다.
가령 이런 것.
-배세진도 나왔네? 음…
-촬영 때문에 바쁜 사람 꾸역꾸역 빠져도 되는 지인 축가까지 시키는 거 봐 쎄하다니까ㅋㅋ
└시즌2 촬영 시작도 안 했는데요… 혹시 미래에서 오셨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머릿속에선 암튼 찍고 있었대
어떻게든 배세진을 이용해 보려던 어그로들이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도리어 의도가 적나라하게 보인 것이다.
한번 민망하거나 우스워진 의견은 매력을 확 잃어버린다. 그렇기에 배세진의 활동에 관한 억측은 일시적으로 기세가 확 잦아들었다.
-헐 보너스북 음원 차트인 했다
-이렇게 우리 애들 옛날 곡 재조명 받는 거 보면 진짜 시대 안 타고 오래 갈 그룹이라는 생각이 들어.. 7명 오래오래 가자ㅠ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팬들은 자연스럽고 행복한, 스트레스 없는 떡밥에 좋아하며 며칠간 즐거워했다.
컴백을 기다리며 소소하게 앓기 딱 좋은 컨텐츠였다!
-얘들아 컴백해… 이거 보니까 더 그리워졌다고!ㅋㅋ
그러나 그중 아무도 몰랐다.
테스타가 이 축가를 기획했던 이유 자체가 좌절되었다는 것은.
[…아,] [Yeah, Fate is a fake!]마이크를 들었던 김래빈의 입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못한 채, 정적이 흐를뻔했다는 것을.
굳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재빠르게 들어온 차유진과 이세진 덕에 떼창처럼 유쾌하게 랩 파트가 처리되었다는 걸 말이다.
그 이상을 알아차린 건, 본인들뿐이었다.
* * *
“목소리가 안 나왔다고.”
“예.”
김래빈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이유 없이 긴장감이 차오르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축가를 끝내고 돌아가는 차 안.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무대를 못 하는 것.
스티어 김래빈이 가졌던 증상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