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7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70화
잠긴 문을 따고 방으로 걸어 들어가자, 본인 침대에 침울하게 앉아 있던 이세진이 기겁했다.
“으…!”
“정신 차리시고.”
나는 맞은편 침대에 앉았다. 곧바로 따라 들어올 줄 알았던 류청우와 큰세진은 보이지 않았다.
‘…눈치껏 빠졌나 보군.’
그 둘이면 그럴 만도 하지.
뭐, 됐다. 어차피 이세진이 저러는 이상 당장 취침도 글렀으니,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
‘술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막 출범하려는 아이돌 그룹 숙소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그냥 말을 꺼냈다.
“형, 어차피 내일 아침이든 새벽이든 회사에서 면담 들어갈 건 아시죠.”
“…!”
“그럴 거면 그냥 여기서 편하게 생각 좀 정리하고 가는 게 낫지 않나요. 피한다고 피해지는 상황도 아니고.”
“…….”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특성은 이번엔 안 터지는 건지,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세진은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뭘 모르겠는데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
지금 와서 진로 고민을 하기엔 늦어도 한참 늦지 않았나.
“전 소속사로 돌아가서 연기 계속하고 싶으세요?”
“…돌아가고 싶진 않아.”
“그럼 연기는 하고 싶다는 말인가요.”
“……당연한 거 아니야?”
이세진이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에 파묻었다.
“애초에 아이돌은 생각도 안 해봤어….”
“…….”
이거 어쩐지 상태 이상 떴을 때 내가 생각나는데…?
나는 혀를 찼다.
‘오디션에 자의로 참가한 게 아니었나 보군.’
“는 전 소속사 때문에 참가했나 봅니다.”
“…맞아. 오래 쉬어서…… 그런 거라도 해야 일감이 들어온다고 해서.”
“음.”
나는 무심코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열심히 하시던데요.”
“…열심히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못 하니까.”
이세진이 약간 발끈했다.
‘흠, 그거하곤 결이 달랐는데.’
결승에서 저놈이 나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데뷔할 테니 안 끝난다, 그런 뜻이야? …좋겠네.
그건 본인도 계속하고 싶다는 말 아닌가. 게다가 이세진의 상태창 변화도 눈에 보였다.
‘이제 F가 없어.’
이세진은 촬영 시작할 때 F였던 춤 스탯을 지금 D+까지 올려놨다.
아무 감흥 없이 그냥 해야 하니까 달성할 수 있는 성장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대충 감이 왔다.
“사실 재밌었죠.”
“…!”
“해보니까 재밌어서 자기도 모르게 더 열심히 하게 된 거잖아요.”
“…….”
이세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부정 못 하는군.
“맞아. …무대에 서는 건, 좋았어.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연기도… 계속하고 싶어.”
“…? 하세요.”
“뭐…?”
대체 이걸 왜 고민 중인지를 모르겠다.
“한 이삼 년 지나면 여기 소속사에서도 알아서 개인 활동 꽂아줄걸요. 연기하세요. 5년 채우면 재계약 시즌이니까 아이돌 그만하고 싶으면 연기만 계속하면 되고.”
잠시 입을 벌리고 듣던 이세진은, 곧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못 해.”
“예?”
“너 내 전 소속사 어떤 곳인지 모르는구나.”
“…….”
뭐, 잘 모르긴 했다. 배우는 내 종목은 아니었거든.
이세진이 반쯤 포기했는지, 줄줄 상황을 불었다.
“드림K 거기… 질 괜찮은 소속사 아니야. 내가 이대로 여기 소속으로 있으면 괘씸죄로 뭘 터뜨릴지 모른다고.”
“뭐 약점이라도 잡혔어요?”
여기서 혹시라도 마약이 나오면 내가 앞서서 탈퇴를 권유할 생각이다.
다행히 이세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막살진 않았어. …일단 그럴싸한 아무거나 찌라시 형태로 터트릴 거란 뜻이야.”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재계약 안 했다고 그렇게 보내 버린 배우가 이미 몇 사람 되는 모양이었다.
재계약 시즌이 오면 일부러 루머 풀어서 몸값을 낮추기도 한다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악덕 기획산데?’
“음, 예상 가는 루머 라인업이 있다면?”
“나야 뻔하지. …일단, 오디션은 배우 재기 목적이었으며 아이돌은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고 깔아서 한번 분위기 잡고.”
“음.”
“그다음에는 불륜이나… 뭐, 어쨌든 범죄 아니라 증명 못 하는 선에서 이상한 찌라시 풀어서 보내겠지.”
“음, 저희 투자처가 T1이라 거기서 그렇게 막 나가진 못할 것 같은데.”
“일단 전자를 먼저 터뜨려 분위기 잡는 게 그런 목적이지. T1 쪽에서 날 자르게 만드는 거야.”
이세진이 쓰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막판에 추가로 붙은 거니까.”
“…….”
“지금 인터넷에서 내 여론이 좋지도 않잖아. 나 빼고 하라는 사람도 많아. …내가 잘, 못 하니까.”
“……음.”
그걸 다 찾아봤나 보군.
확실히 그런 이야기가 좀 돌긴 했다.
추가 합격자에, 배우 출신에, 제일 능력치가 떨어지니 쟤만 빼고 가면 훨씬 좋은 그룹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여론, 우리 데뷔하면 약해질걸요.”
“……쓸데없이 위로는 됐어.”
“아니, 그냥 그럴 거라는 뜻인데요.”
“…뭐?”
“VTIC이랑 동발이잖아요. 당장 그쪽이랑 견제하느라 내부로는 뭉칠 거란 뜻입니다.”
“…!!”
원래 외부에 강력한 적이 생기면 내부는 뭉치게 되어 있다.
“게다가 형 나가면 다른 사람이 타겟될 걸요. 원래 그래요. 그러니까 그걸 근거로는 생각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최약체처럼 보이는 사람을 빼버리고 싶어 하는 건 어느 집단에서나 보이는 행태였다. 특별히 이세진이라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세진은 약간 울컥하는 것 같았지만, 곧 추스르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당장 전 소속사를 막을 방법은 없어. 지금 소속사에 내가 말을 한다고 해서 찌라시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직접 하면 될 것 같은데요.”
“뭐?”
나는 팔짱을 꼈다.
“형이 직접, 먼저 발표하면 되죠.”
“…먼저?”
“전 소속사 강요로 참가했던 건데 적성 찾아서 안 돌아가고 싶다고 글 올려요. 꼭 전 소속사 ‘강요, 강압’ 강조하시고. 오디션 덕분에 거기서 잘 탈출했다는 식으로.”
“…!”
“그럼 찌라시 나와도 잘 안 먹히지 않을까요.”
전 소속사에서 루머 뿌리는구나~하고 팬들이 방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뜻이다.
일단 여론이 돌아가면 전 소속사도 소송을 끌고 가기 부담스러워질 것이고, 그럼 지분 주기 싫은 T1이 알아서 잘 끝내겠지.
이세진은 잠시 입을 벌린 채 말이 없었다.
“…너, 자퇴하고 뭐 하던 놈이야?”
“오디션 나왔죠.”
이 레파토리는 변하질 않는군. 이번에는 국정원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 소속사랑 그렇게 이야기해 보는 겁니다.”
“…그래.”
어쨌든 대충 상황은 정리했다. 나머지는 류청우가 알아서 토닥이든 하겠지. 나는 한숨을 참았다.
“…SNS 계정에 올려야 하나.”
“꼭 자필로 쓰겠다고 하세요.”
* * *
이세진의 전 소속사, 드림K의 소송 소식이 나온 후 인터넷 연예 기사란은 꼭 관련 내용이 하나 이상 채워졌다.
사실 불공정 계약이 맞긴 했기에, 방송국의 갑질 문제와 맞물리며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계약기간 남은 사람 뺏어오는 건 너무했다. 계약은 유지하고 자기들이 운영관리만 해야지
-그럼 이중으로 정산 떼이잖아 애들이 무슨 외주 용역도 아니고 왜 그래야 돼;; 아이돌한테는 오히려 저게 나음
-솔직히 전 소속사가 제대로 한 게 없으니 오디션까지 내보낸 거 아니야?ㅋㅋ 이제 와서 잘 되니 돌려달라고 하는 거 속셈 투명하다!
-연습생 트레이닝 시키고 이것저것 비용 따지면 전 소속사가 억울한 거 맞잖아.
-아 이세진 때문에 피곤하게 이게 무슨 일이냐 걍 주고 6명이서 하자 어차피 없는 편이 무대 퀄리티 팀 분위기 모두 도움 됨
특히 이세진을 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거셌다.
-아 정말 그분은 도움되는 게 없다
-우리 애들 잘 되는데 액땜했다고 치고 얼른 빼고 가자구!ㅠㅠ
-데뷔 일주일 전에 이게 무슨 일이야
-오디션도 억지로 나오셔서 존버하다보니 어쩌다 데뷔하신 분 얼굴 보고 싶은 사람? 응 없지?
-잠 못 자고 울고 무대만 보고 달려서 합격한 테스타에 배우님 안 어울리니 제발 빼자
그 말에 이세진의 팬들이 상처받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첫 글 이후로 알람이 없던 테스타의 SNS에 새 글 알람이 들어왔다.
빛의 속도로 클릭한 팬들은 자필 편지 사진이 첨부된 글을 봤다.
-…!
이세진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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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테스타의 멤버 이세진입니다.]: 최근의 뉴스와 이야기에 대하여, 제 생각을 전하기 위해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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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글씨체로 조심스럽게 적힌 글 내용은, 자신의 어릴 적 연예계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정리하자면 전 소속사가 어린 자신을 어마어마하게 혹사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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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과도한 스케줄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오며 아역배우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3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일정을 12살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회복해서 새롭게 도전하려는 순간, 전 소속사로부터 오디션 참가를 강요받았다는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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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무대에 서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으면 네게 작품이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등의 설명에 큰 압박을 받고 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가한 오디션.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이세진은 적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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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관계에 소극적인 제게 다가와 주는 좋은 친구들, 또 그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 무대에 서는 것은 굉장히 짜릿하고 행복했습니다.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저는 이 일을 꼭 계속하고 싶어졌습니다. 간절해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 꿈이 이루어져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데뷔할 수 있는 지금이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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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진은, 자신은 꼭 이 친구들과 함께 테스타로 데뷔하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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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글을 즐거운 소식으로 전해 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글은 테스타 멤버로서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소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세진에게 조금이라도 호의적이었던 테스타 팬들의 여론이 살아났다.
-ㅠㅠㅠㅠ
-세진이 아이돌 하겠다잖아! 그냥 하게 좀 둬ㅠㅠ
-아니 전 소속사 양심 어디 갔냐고 12살 애기한테 저래놓고 무슨 불공정 이 지랄ㅋㅋㅋ니들이 한 게 불공정 아니냐?
-이번만은 T1이 맞았다. 그리고 드림K는 처맞을 소리를 했다.
-사실 나도 세진이 얼결에 테스타 된 건 아닌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맞나, 그런 의심 가끔 들었는데ㅠㅠ 미안하다
아역배우 때부터 팬이었던 사람들은 더 마음 아파했다.
-12살 어린애가 그렇게 힘든 데도 방긋방긋 웃으면서 방송 나왔던 거 생각하면 속이 탄다…
-난 세진이가 많이 커서 성격이 차분해진 줄 알고… 하…
-연기하는 세진이 보고 싶었지만… 그보다 세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보고 싶다. 일단 저 소속사로 돌아가는 건 안 돼.
그리고 한번 여론이 꺾이니, 이세진을 배척하는 것을 재밌어하던 사람들이 제법 떨어져 나갔다.
물론 여전히 비꼬는 사람도 많았지만, 일단 머릿수에서 밀리는 형태가 된 것이다.
-이세진도 감성팔이 좀 하네ㅋㅋ 그래도 제일 못하는 걸 어쩌겠니 어휴.
└23살한테 열폭해서 악플 다는 인생보단 잘하고 있잖아!ㅎㅎ
└ㅋㅋㅋㅋ뼈 때리네
-이세진 아이돌 간 보니 괜찮아서 계속 해 먹고 싶다는 말이잖아ㅋㅋㅋ 한 3년 해 먹고 탈주할 듯 탈락한 애들만 불쌍하게 됐네
└대체 사고가 얼마나 꼬였으면 이렇게 음습하게 해석하냐…
└이런 놈들 특징: 다른 글에선 이세진한테도 밀렸다고 탈락한 애들 빈정댐
오디션 합격자 팬으로서 이세진의 글에 느끼는 공감대 때문에, 도리어 테스타 개인 팬덤들도 이 사건에 대한 악플에는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회를 틈타서 Tnet은 드림K를 약간의 당근과 넘치는 채찍으로 잡았다.
기사들이 조용히 내려가며 수습되고, 팬들의 분위기가 반전된 그 날.
쐐기를 박듯, 자정에 또 다른 티저가 떴다.
그러나 이번에는 테스타 위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Tnet의 테스타 리얼리티 항목으로 추가되었다.
[TeSTAR(테스타) ‘Hi-five’ Official Teaser]‘채널 실순가?’
‘마법소년이 아닌데…?’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일단 영상을 얼른 클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