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 뭐 하고 놀지?
“그럼, 부탁하네.”
강소는 이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고 잘 다녀오십시오.”
이혁은 긴장된 표정이었다.
오늘 이혁은 어머니에게 백현미를 소개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때, 사귀는 여자가 있다는 말에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로 날을 잡은 것이었다.
이번에 둘이 가는 건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서나 다름이 없었다.
추석 때 이혁의 어머니는 아들을 몰라봤다고 했다.
강소는 그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이혁의 외모 변화는 극적이었으니까.
어머니가 자신을 보며 우셨다며 이혁은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내가 우량아로 태어났거든. 그리고 한 번도 뚱뚱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
아무튼, 그래서 베이커리를 하루 쉬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도순이 혼자 베이커리에 남아야 했다.
도순이를 혼자 남기는 게 걱정되어 강소에게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강소 총각하고 유 사장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 네. 사장님.
도순이는 이혁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는 백현미가 기다리고 있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강소는 도순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어떻게 해야 너를 잘 돌볼 수 있을까?”
강소의 말에 도순이가 말했다.
– 꼬롱이랑 뽀뽀랑 놀래.
“아, 꼬롱이와 뽀뽀가 있었구나.”
강소는 미소 지었다.
“그러면 내 인벤토리 안에서 함께 놀도록 해라.”
– 인벤토리? 거기 좁아.
도순이의 말에 강소는 고개를 저었다.
“내 인벤토리는 좀 다르더구나. 들어가 보면 나쁘지 않을 거다.”
그렇게 해서 도순이는 꼬롱이랑 뽀뽀와 함께 강소의 인벤토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 어? 이곳은 어디야?
“아까 말했듯이 내 인벤토리 안이다.”
강소의 말에 도순이는 두 눈을 깜박였다.
밖은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가을이었고, 복숭아꽃의 정령인 도순이는 가을이 되면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혁과 백현미도 그래서 걱정하고 있었다.
정령은 자연의 영향을 받는 존재.
도순이가 먹는 꿀뿐만 아니라 사방의 식물에서 발산되는 오러 역시 도순이에게 생기를 북돋아 주는데, 주변의 식물이라고는 나무밖에 남지 않으니 자연히 기운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소의 인벤토리 안에는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초원과,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기운이 없던 도순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자, 그럼 나는 이만 나갈 테니까 열심히 놀아라.”
저번에 인벤토리 안의 위험한 것들을 샅샅이 찾아 모두 처리해 놓았기에 위험해질 염려는 없었다.
“이따가 데리러 오마.”
– 알았어
“꼬뀨!”
“뽀!”
강소는 그들의 대답을 뒤로 하고 인벤토리에서 나갔다.
도순이는 포로록 한 바퀴 빙글 돌았고, 꼬롱이와 뽀뽀에게 물었다.
– 우리 뭐 하고 놀지?
“꼬뀨! 꼬!”
– 술래잡기를 하자고?
그 말에 뽀뽀는 커다란 두 귀를 흔들흔들 흔들며 뽀뽀거렸다.
“뽀! 뽀뽀! 뽀!”
– 의미 없는 술래잡기라고?
“뀨! 뀨뀨!”
– 내가 있으니까 결과가 달라질 거라고?
잠시 생각하던 도순이가 결정했다.
– 그럼 술래잡기를 하자!
셋은 술래를 정했고, 첫 번째 술래는 도순이었다.
– 그럼 잡는다! 셋 센다!
– 하나!
– 둘!
– 셋!
도순이는 셋을 외치고, 술래를 잡기 위해 날았다.
포로록-.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담긴 달리는 뽀뽀의 모습.
깡충! 까-앙충! 깡충!
그런 말이 있었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고.
꽃들 덕분에 기운이 만빵이 된 도순이는 쌩하고 날아가 뽀뽀의 귀를 잡았다.
– 뽀뽀! 잡았어!
“뽀오…….”
뽀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럼 이제 꼬롱이 잡아야 해.
도순이는 다시 공중으로 날아 사방을 살폈다.
작은 꼬롱이는 키가 큰 풀 사이에 숨어 뽈뽈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만약 도순이가 날지 못했다면 찾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 찾았어. 꼬롱이.
지금은 아니다.
도도도도.
꼬롱이는 열심히 짧은 네 다리로 달리고 있었다.
다다다다.
뽀뽀의 말처럼 의미 없는 술래잡기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달렸다.
톡.
하지만 그때 등에 닿은 누군가의 손.
– 꼬롱이 잡았어.
“……꼬뀨…….”
– 뽀뽀의 말 맞았어. 의미 없는 술래잡기.
“뀨우…….”
다음에는 숨바꼭질을 하기로 했다.
* * *
강소는 배달 중이었다.
가을에는 계절 메뉴인 냉면을 하지 않았기에 일부러 차갑게 만든 철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1인 가구가 많아서인지, 음식을 하나씩 시키는 곳이 무척 많았지만, 강소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열심히 배달을 하던 그의 시선이 갑자기 하늘로 향했다.
“음……. 이 기운은…….”
낯익은 기운이기에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전에 봤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제로급 각성자군. 이름이 화이트 조셉이었나? 조셉 화이트였나?”
한국과는 달리 외국은 성이 뒤에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런 차이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비행기라는 것을 타고 오나 보군. 무슨 일로 한국에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빙긋 웃었다.
“피곤할 텐데 도와줘서 나쁠 건 없지.”
강소는 손가락을 튕겼고, 곧 그의 앞으로 일곱 개의 B급 마정석이 날아왔다.
“마정석도 챙기고.”
* * *
강소의 인벤토리 안.
꼬롱이와 뽀뽀와 도순이는 각자 원하는 먹을거리를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푸른 초원에서 꼬롱이는 잣나무 열매를 냠냠 먹었고, 도순이는 꽃의 꿀을 쪽쪽 빨아 먹었고, 뽀뽀는 옆의 풀을 우물거렸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구름과, 그 아래 초원의 평온함에 세 친구들은 ‘이게 행복이구나!’라고 느꼈다.
문득 도순이는 서글퍼졌다.
이제 첫눈이 오면 겨울잠을 자야 했고, 그러면 한참 동안 자신의 두 친구와 강소 그리고 이혁과 백현미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갈 때마다 자신을 예뻐해 주는 손님들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자신이 없는 동안 만들어질 추억에 자신이 낄 수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런 감정을 알아차렸는지 잣을 갉아 먹던 꼬롱이가 도순이를 보았다.
“꼬뀨! 꼬!”
– 왜 우울하냐고?
“꼬뀨뀨!”
– 위로해 줘서 고마워.
“뽀뽀.”
– 뽀뽀도 고마워.
도순이는 전에 여왕님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저는 인간계로 가는 게 무서워요. 저는 인간들이 무서워요.
– 그 마음을 나도 이해한단다. 하지만 아이야. 인간들이 너를 상처 입혀도 모든 인간이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기억하렴.
– 정말 인간계로 가야 하나요?
– 인간들과의 공존은 우리 꽃의 정령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란다. 점점 인간계와의 통로가 넓어지고 있거든.
– …….
– 아이야. 내가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느낀 건, 세상일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거란다. 수백 년을 살아온 나 역시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이지. 그 말은 즉, 제법 좋은 일도 있다는 거야.
당시 꽃의 여왕은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
도순이는 푹신한 뽀뽀의 등 위에 엎드려서 따뜻함을 느끼며 정말 여왕님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다시 멍하니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겨울잠에 들기 전에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자고.
그 전에 두 친구들에게는 말해야 할 것 같았다.
– 사실 나, 첫눈 오면. 코 자야 해.
“꼬뀨?”
– 겨울잠이냐고? 맞아.
“뽀뽀.”
– 당연하지! 봄에 깨어나지! 내가 잠들어 있는 씨앗이 무사하면.
“꼬뀨! 꼬꼬! 꼬뀨!”
“뽀뽀뽀! 뽀!”
– 너희가 지켜 줄 거라고?
도순이는 사르르 웃으며 말했다.
– 고마워.
도순이는 말을 이었다.
– 이제 우리 뭐 하고 놀까?
.
.
.
그날 저녁.
인벤토리로 들어온 강소는 미소를 지었다.
“너희를 보니 실컷 잘 논 것 같구나.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그를 따라 세 친구는 인벤토리 안에서 나왔다.
“도순아! 잘 놀고 있었어?”
인벤토리에서 나오니 양춘각 안이었는데, 도순이 앞에 이혁과 백현미가 있었다.
그들은 상기된 얼굴이었다.
백현미는 도순이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도순아. 축하해 줘. 어머니께 결혼 허락을 받았어.”
– 정말? 축하해! 언니!
아마도 이혁을 운동하게 만든 점이 큰 가산점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
– 나도요?
“당연하지!”
이혁이 말했다.
“너 역시 우리 가족이니까.”
그 말에 도순이의 두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었다.
– 나는 꿀 이외에는 못 먹는다요.
“알고 있어. 자연산 꿀을 듬뿍 주마!”
– 네!
* * *
그날 저녁.
강소는 유하영에게 연기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제 영화 촬영도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음…….”
내일 유하영이 촬영할 장면은 감정이 상당히 요구되는 씬이었다.
“하영아. 여기 보면 네가 윤진 씨의 품에 안겨서 말하는 장면이거든.”
“응. 그건 알고 있어.”
“그럼 그냥 안겨 있는 상태에서 아무 움직임 없이 말하면 좀 밋밋할 거다. 전에 오빠가 말했지? 연기라는 건 표정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다 사용해야 한다고.”
“기억하고 있어.”
유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 것 같아?”
그 말에 강소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렇게 힘없이 손을 뻗어서 윤진 씨의 얼굴을 만질락 말락 해라. 여기서 눈물을 흘려주면 더 좋고.”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유하영을 보며 강소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의 연기 지도는 상상이 아닌, 강소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죽음의 장면을 봐 왔으니 그만큼 생생한 연기 지도를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문득 그때가 생각날 때가 있지만, 가슴속에 묻을 뿐이었다.
죽이고 싶지 않았던, 살리고 싶었던 많은 생명들의 무게가 강소를 짓눌렀지만 그럼에도 그는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위에서 임소영이 내려왔다.
“하영아! 이제 잘 시간이야!”
“어? 벌써?”
그 말에 강소가 웃으며 말했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 자야 한다.”
유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리곤 임소영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하영이도 잘 자라.”
“네.”
“오빠도 잘 자.”
강소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유순태 가족의 행복을 보는 것. 그리고 이들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지금 강소가 선택한, 그가 걷는 길이었다.
그때 강소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신이었다.
“여보세요.”
– 형님,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냐?”
– 화이트 헌터가 한국에 와서 말입니다. 그래서 한잔 할까 하는데 형님도 함께 하시겠습니까?
강소는 주방을 보았다. 마침 유순태가 안주를 만들고 있었다.
“순태야. 이곳으로 이신 동생과 조셉 헌터를 불러도 될까?”
유순태는 흔쾌히 말했다.
“오라고 해. 역시 술자리는 사람이 많아야지.”
강소는 이신에게 말했다.
“양춘각으로 와라.”
– 네! 형님!
그는 전화를 끊고, 창밖을 보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연의 끝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 역시 궁금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55화